366화. 달라진 병원 분위기
“오늘은 왜 불이 꺼져있지?”
게다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하는데 불이 꺼져 있는 게 이상했다.
똑- 똑-
노크한 뒤 태경은 바로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린 문 사이로 복도 불빛이 병실을 밝히자 태경은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이게 지금…….”
병실 안에는 교도관들이 바닥에 널브러지다시피 쓰러진 모습으로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두 교도관 중 한 명의 옷가지와 신발이 벗겨진 상태라는 거였다.
“저기요?”
“…….”
“교도관님?”
“…….”
“이봐요!”
연신 그들을 깨우려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교도관님!”
태경은 소리를 높여 두 사람의 뺨을 가볍게 터치하고 몸을 흔들며 물리적으로 그들을 깨우려 했다.
“……으.”
그러자 방금 전보다 반응은 있었지만, 일어나진 않았다.
태경은 직감적으로 이들이 수면제에 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 두 사람의 자세를 바로잡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1137번이 없이 휑한 베드 위에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는 수갑을 자세히 보자마자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도주!
비정상적으로 잠에 빠진 교도관들과 주인 잃은 수갑, 그 와중에 옷이 벗겨진 한 사람.
마지막으로 불이 꺼진 병실 안까지 모든 정황이 제소자의 도주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다리에 수갑이 채워져 있는 사람이 어떻게 감쪽같이 사라진 건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노란 명찰에 수감번호 1137번 이름 유혁진.
장기복역수이며 연손 교도소에서는 알아주는 모범수에 제소자와 교도관들에게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교도소 안에서 이야기일 뿐.
그가 아무리 모범수라 해도 과거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 제소자가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에서 사라졌다.
현재 그가 밖으로 나갔는지 병원 안에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황을 알기 전에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봐요! 정신 차려!”
“으!”
“으으…….”
현재 가장 급한 건 두 사람을 깨우는 일이었다.
조금 전보다는 잠에서 깨어났지만, 마치 술에 취한 듯 수면 내시경을 한 사람처럼 교도관들은 비몽사몽 했다.
두 사람의 상태를 보니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듯싶었다.
“……!”
혼자서는 무리라고 생각한 태경이 스테이션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생각을 고쳐먹고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스테이션 간호사가 움직이게 되면 자칫 환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병원 안에 모든 환자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고, 혼란이 생겨 소란스러워져 상황 통제가 더 힘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유혁진이 아직 병원 밖으로 나가진 못한 상태라면 소란을 일으켜 봤자 그에게 도움만 줄 거라고 판단했다.
당연히 경찰에 신고 역시 중요했지만, 일단 상황 파악을 한 다음이라고 생각했다.
-네, 원장님.
“임 선생님, 지금부터 제 얘기 조용히 듣기만 하고 대답만 하세요.”
-네.
“내가 지시할 때까지 모든 환자 받지 마세요. 119에 연락 오면 수술할 선생님이 안 계신다고 하고 외래 환자는 물론 응급실 환자도 받지 마세요. 그리고 진료가 끝난 환자는 되도록 정문을 이용하게 하고, 주차장으로 가야 한다면 응급 구조사가 반드시 차까지 동행하도록 하세요. 마지막으로 N/S(normal saline) 두 팩 들고 빨리 유혁진 환자 병실로 오세요.”
-네, 원장님.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임정숙 간호사는 빠르게 움직였고, 태경은 곧이어 최 팀장에게 전화했다.
“팀장님 접니다.”
-네, 원장님.
“당장 장 보안요원 뒷문으로 이동시키고 팀장님은 정문 쪽을 맡아 주세요. 따로 지시가 있을 때까지 신규 환자는 받지 마세요. 이유는 추후 알려 드릴게요. 그리고 의료진 및 직원들 각자 자리 지키며 이동 최소화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태경은 스테이션 간호사에게 환자들이 복도에 나오지 않도록 관리를 부탁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했고,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임정숙 간호사와 최 팀장은 물론 전달받은 직원들 또한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직원들은 원장으로서, 의사로서 그리고 같은 동료로서 태경을 전적으로 신뢰했으며 그가 하는 말은 무조건 믿고 따랐다.
또 한 가지는 태경이 예전부터 조회 시간에 병원에 생길 수 있는 위급상황 시에 대응에 대해 종종 이야기했기에 그 영향도 있었다.
잠시 후-
드르륵-
“원장님?”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임정숙 간호사가 N/S 두 팩을 들고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떻게 된……!”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던 임정숙은 혼자서 교도관을 옮기고 있는 태경을 보고 도왔다.
이미 선배 교도관은 간이침대로 옮겼기에 후배만 베드 위로 빠르게 옮겼다.
“교도관님?”
“에……?”
계속해서 태경이 두 사람을 깨운 탓에 조금 전보다는 반응이 빨라졌지만, 여전히 술에 취한 듯 비몽사몽이었다.
“두 분 다 왜 이래요?”
“수면제를 복용한 거 같아요.”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가 들고 온 N/S(normal saline, 생리식염수) 두 팩을 교도관들에게 차례대로 주사했다.
수액을 맞으면 몸에 있는 수면제 성분을 희석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웬 수면제를 왜? 어머! 유혁진 환자!”
정신이 없던 임정숙 간호사는 그제야 1137번인 유혁진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어떻게 된 건지 감이 잡혔다.
“원장님, 유혁진 환자 설마…….”
“아무래도 그 설마가 맞는 거 같아요. 조금 전에 정기옥 할머니 보러 왔다가 밖에서 병실을 보는데 불이 꺼져 있었어요. 뭔가 이상해서 곧장 들어와 보니까 화장실은 저 꼴이었고 두 사람 모두 잠에 취해 있었고요.”
태경의 말을 들은 임정숙 간호가 화장실로 걸어갔다.
“바닥 조심해요.”
“세상에! 이게 다 뭐야.”
변기 뚜껑은 열려 있는 상태였고 바닥은 오일 때문에 미끄러웠다.
“원장님, 이거 식용유 아니에요?”
“정확하진 않지만 몸에 바르는 오일 같아요.”
조금 전, 미끄러운 화장실 바닥과 병실 바닥에 간헐적으로 떨어진 용액을 만져 보고 냄새를 맡아 본 태경은 오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임 선생님 저, 관리실 좀 다녀올게요.”
“CCTV 확인하러 가시게요?”
“네. 유혁진의 행방을 알아야 할 거 같아요.”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오일도 그렇고 두 분이 수면제로 저렇게 된 것도 그렇고, 이 정도면 누가 도운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병실 안 상황을 종합해 보면 도저히 유혁진 혼자서 병실을 나갔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두 분 깨어나면 바로 연락 주세요.”
“네, 원장님.”
태경은 곧장 관리실로 뛰어 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담당자가 보이질 않았다.
“원장님?”
휴대폰으로 전화하려는 찰나 등 뒤에서 담당자가 태경을 불렀다.
“어쩐 일이세요?”
“CCTV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어느 쪽을……. 아함!”
말을 하다 말고 하품을 한 직원은 미간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졸음이 심하게 쏟아져서 난리네요. 세수하고 와도 졸리니 원. 원장님 어디를 보여 드릴까요?”
“2층 병동 끝에 있는 1인실이 보이는 쪽부터 보여 주세요. 시간은 지금부터…….”
태경이 말한 시간을 검색한 직원은 녹화된 영상을 빠르게 돌려가며 보여 줬다.
“잠깐! 방금 거기 다시 돌려 봐요.”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 속에서 병실에서 나오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 저 사람을 좀 확대할 수 있어요?”
“그럼요. 모자를 써서 얼굴은 완전히 보이지 않네요.”
“……!”
교도관과 비슷한 옷을 입고 모자로 얼굴까지 가렸지만, 태경은 그가 유혁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정문이랑 후문 쪽 영상 보여 주세요.”
“네, 원장님.”
유혁진이 병실에서 나온 걸 확인한 이상 그가 병원을 나갔는지에 대한 확인도 필요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정문과 정문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병실을 나갔는데 병원을 나간 모습은 없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직원과 함께 또 확인해 봐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교도관의 옷을 벗겨 입고 나갔기에 그사이 또 한 번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환자들은 물론 의료진 중에서도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한시가 급한 도주자가 옷을 또 한 번 갈아입는 수고를 할 거 같지 않았다.
“아까 봤던 병동에서 계단 내려가는 복도 쪽에 CCTV 있죠?”
“네, 원장님. 있습니다. 보여 드릴까요?”
“시간은 비슷한 시간으로 보여 주세요.”
“어라! 이게 왜 이러지?”
영상을 클릭한 직원은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화면을 본 태경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계단 쪽을 비추고 있어야 할 CCTV가 엉뚱한 곳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녹화된 영상은 무용지물이었다.
* * *
그 시각 유혁진을 도와준 뒤 직원 휴게실에 있다 밖으로 나와 응급실로 향하던 오창규는 뭔가 기분이 묘했다.
분명 아까 전과 병원 분위기가 다른 기분이었다.
기분 탓인지 공기까지 묵직한 느낌이었다.
활기 넘치던 접수처 직원들의 표정은 차분했고, 보안요원 대신 최 팀장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오 선생?”
“네, 팀장님.”
오창규와 눈이 마주친 최 팀장이 그를 불렀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아, 그게 배가 좀 불편해서 잠시 누워 있다가 응급실로 가는 중입니다. 아까 임 선생님이 안 좋으면 쉬라고 하셔서요.”
“지금은 좀 괜찮은가요?”
“네. 괜찮습니다.”
“가능하면 자리 비우지 말고 특별한 일 아니면 이동도 자제해 줘요.”
“네, 팀장님.”
인사를 하고 돌아서던 오창규는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확신했다.
“네, 대원님. 지금 수술이 힘들어서 환자를 받을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에요? 환자 안 받아요?”
방금 막 전화를 끊은 스테이션 간호사에게 오창규가 물었다.
“아! 오 쌤 모르는구나.”
“뭘요?”
“지금 환자 안 받고 있어요. 그래서 119 전화 오면 당연히 수술 환자도 다른 병원으로 안내해 드릴 수밖에 없고요.”
그러고 보니 평소치고 빈 베드가 보였다. 진료받던 환자들이 나가고 새로운 환자를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왜요? 왜 갑자기……?”
“수 쌤이 말씀하신 거라 그것까진 저도 몰라요.”
간호사의 말이 끝나고 이찬희가 복도와 연결된 문을 닫는 게 보였다. 저 문이 닫히는 건 굉장히 보기 드문 일이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오창규는 응급실 화장실로 들어오자 표정이 좋지 않았다.
덜컥-
가장 끝에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근 그는 잠시 생각했다.
‘형님이 나간 걸 알게 된 건가?’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유혁진이 사라졌다는 걸 병원 사람들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유혁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알게 된 거 같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직 뭐가 뭔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창규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유혁진에게 상황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형님?
“오 쌤?!”
정확히 두 글자를 쓰던 그때 자신을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쌤, 나 좀 도와줘요.”
스테이션 간호사에게 오창규가 화장실에 있다는 걸 들은 이찬희가 그를 찾으러 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