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67화 (366/472)

367화. 세 가지 변수

“오 쌤, 나 좀 도와줘요.”

스테이션 간호사에게 오창규가 화장실에 있다는 걸 들은 이찬희가 그를 찾으러 들어온 것이다.

‘젠장! 왜 하필 지금 부르는데…….’

오창규는 짜증을 속으로 삼키며 보내던 문자를 중지한 채 밖으로 나왔다.

“오 쌤? 멀었어요?”

“네, 이 선생님. 저 여기 있어요.”

“볼일 보러 온 사람 쫓아와서 미안해요. 일 보는데 나 때문에 나온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다 봤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다른 게 아니라 환자 일 때문에 오 쌤 도움이 필요해서요.”

“네. 도와 드릴게요.”

유혁진에게 연락하려던 오창규는 환자 이동 문제로 도와 달라는 이찬희를 따라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을 나갔다.

* * *

CCTV 관리실에서 유혁진이 있던 병동 계단 영상을 확인하던 태경과 직원은 다른 곳을 비추고 있는 화면 때문에 모두 황당한 상태였다.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특히 직원은 황당함과 함께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원장인 태경이 직접 찾아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상당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단 한 번도 CCTV 화면이 다른 곳을 가리킨 적도 없었고, 카메라 기기를 만진 적도 없기에 더욱 그랬다.

주기적으로 잘 확인하고 다녔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알 길이 없었다.

“화면이 왜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죠?”

“그러게 말입니다. 원장님, 죄송하지만 저도 솔직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제가 확인할 때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거든요.”

당황한 직원은 장황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멀쩡하던 CCTV가 왜 엉뚱한 곳을 향해 있는지 저도 어이가 없습니다.”

“오늘 일하면서 자리 비운 적 없죠?”

“예. 자리를 비우거나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뭐에 홀린 사람처럼 계속 졸음이 쏟아지더라고요. 분명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 마시고 더 졸려서…….”

“잠시만요.”

직원이 우왕좌왕한 말투로 화면을 만지는 사이 태경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원장님.

전화를 건 사람은 임정숙 간호사였다.

“두 분 깨어났어요?”

-네, 원장님. 대화할 정도는 깨어났어요. 방금 저한테 그랬는데 커피를 마시고 잠들었대요.

그러고 보니 불 꺼진 병실에 들어갔을 때 잠에 취한 두 사람 주변에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떠올랐다.

“커피는 사 온 건가요?”

-아니요. 그게 이 부분이 좀 이상해요. 교도관님들이 그러는데 커피를 오 선생이 준 거래요.

“오창규 선생이요?”

-네, 생각해 보니까 아까 오 선생님 두 분 커피 주러 갔다 왔다고 저한테도 그랬어요.

“알았어요. 지금 올라갈게요.”

전화를 끊은 태경은 직원에게 오창규에 대해 물었다.

“우리 직원 중에 오창규 선생 알죠?”

“그럼요. 알죠. 그 친구가 젊은 사람이 싹싹하고 착하고 일도 열심히 하잖아요.”

“오늘이랑 어제 오 선생 영상 좀 빠르게 확인해 주세요. 확인하다가 이상한 점 있으면 나한테 바로 콜하시고요.”

태경은 CCTV 화면을 만진 사람으로 오창규를 생각했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오창규는 혼란을 주기 위해 유혁진이 있던 병동 계단뿐만 아니라 다른 병동 계단 쪽에 있는 CCTV의 방향도 전부 돌려 놓았다.

생각보다 치밀했던 그는 카메라를 돌려 놓을 때 유니폼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쓴 채 사각지대 쪽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화면에는 그의 얼굴이 확실히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오 선생 영상을 확인하라는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그리고 다른 직원들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원장님.”

직원에게 말하고 관리실을 나오던 태경은 순간 빠르게 걸어가던 발길을 멈추고 다시 관리실로 들어갔다.

“도대체 오 선생 영상은 왜 확인하라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

“……뭐라고 했죠?”

“아! 깜짝아.”

혼잣말을 하고 있던 직원은 다급하게 들어온 태경의 소리에 깜짝 놀랐다.

“예? 아니, 그게 갑자기 오 선생 영상을 왜 확인하라고 하신 건지 모르겠다고…….”

“아니요. 그 말 말고요. 아까 커피를 마시고 더 졸음이 왔다고 말했던 거 같은데?”

임정숙 간호사에게 오창규가 커피를 줬다는 말을 듣고 관리실을 나가던 태경은 순간 전화 받기 직전 직원이 했던 말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아까 직원이 ‘분명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를 마시고 더 졸려서…….’라는 말을 했었다.

“네, 맞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반짝하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미치게 졸렸어요. 아니, 무슨 커피가 아니라 잠 오는 약을 먹은 거 같았다니까요.”

“그 커피 혹시 오창규 선생이 줬나요?”

직원의 말을 들은 태경은 확신하듯 물었다.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원장님도 오 선생한테 커피 받으셨나요?”

“일단 아까 말한 영상 좀 빨리 부탁할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직원에게 일을 맡긴 뒤 태경은 빠르게 병동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두 교도관은 물론이고 관리실 직원에게 커피를 준 사람은 오창규였고,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창규가 유혁진의 조력자였어!’

오늘뿐만 아니라 그동안 병원 직원들에게 음료를 돌렸던 것도 일부러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오창규는 공장 일을 하다가 열심히 공부하여 힘들게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게다가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우리병원 직원들도 좋기 때문에 이곳에서 오래 일하고 싶다는 말도 했었다.

늘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병원 일에 열심히 했고, 애나 어른 할 거 없이 모든 환자에게 친절했으며 단 한 번도 힘들어하는 얼굴을 본 적 없이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병원과 환자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일을 열심히 하는 태경이 이 정도로 생각할 정도로 오창규는 완벽한 직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게 철저한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태경은 오창규를 보면서 조금 특이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본인 스스로 무식하고 머리가 나빠 공부를 못했다고 했고, 이쪽 자격증 시험을 준비할 때도 상당히 힘들어서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런데 가끔 식당에서 이야기할 때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보면 무식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쪽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쪽 분야에 관한 지식도 상당했다.

오히려 무식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고 교육을 잘 받은 유식한 사람 같았다.

한 번은 임정숙 간호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근데, 오 선생 말하는 거 보면 공부 엄청 잘했을 거 같은데……. 전혀 공부 못한 사람 같지 않아.’

‘선생님이 좋게 봐주셔서 그렇지 저 공부 진짜 못했어요. 제가 공부를 잘 못해서 그 부분에 콤플렉스가 있거든요. 그게 부끄러워서 책을 엄청 많이 읽었어요. 장르 따지지 않고 많이 읽어서 그런가 봐요.’

공부를 잘했을 거 같다는 말에 오창규는 책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 말도 아마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태경은 그가 처음 병원에 근무를 한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나라도 진실된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원장님!”

교도관들이 있는 병실 앞에 다다르자 통화하던 임정숙 간호사가 태경에게 직원들이 보낸 메시지를 보여 줬다.

-혹시 병원에 무슨 일 있어요?

-수 쌤, 우리 갑자기 환자는 왜 안 받는 거예요?

“아까부터 직원들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자꾸 물어보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병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건 직원이라면 누구라도 느꼈을 것이다.

궁금증과 함께 정말 병원 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지 하나둘 걱정하기 시작했다.

다들 태경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수 간호사인 임정숙에게 물어오는 사람이 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따로 말하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임 선생님은 응급실로 가서 직원들이 물어보면…….”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에게 한 가지 묘책을 제시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쯤 병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정도로 일을 벌인 오창규라면 당연히 눈치도 빠르고 머리 굴리는 것도 보통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병원의 이상해진 분위기가 유혁진과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걸 믿게 하는 게 중요했다.

“오창규 성격상 직접 물어보지는 않을 거예요. 그럴 때는 일부러 그가 들을 수 있도록 주변에서 이야기하세요.”

“오창규를 속이려고 하시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이 속을까요?”

“속게 만들어야죠. 아직 CCTV 영상을 다 본 게 아니라 확실하진 않지만, 유혁진이 외부로 나간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래요? 그건 다행이네요.”

CCTV 영상도 영상이었지만, 만약 유혁진이 병원 밖으로 나갔다면 오창규가 지금까지 병원에 있을 리가 없었다.

도주를 도와준 조력자이지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자들 생각하면 그 사람이 병원에 있는 게 다행인 것만은 아닌 거 같아요. 하다못해 어디 숨었는지도 모르니까 더 위험한 거 같아요.”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아내야죠. 그리고……. 그럼 부탁할게요.”

“네, 원장님.”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에게 몇 가지를 더 부탁하고 교도관들을 만나러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한편, 태경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때 유혁진은 환풍구를 계속 지나고 있었다.

“하아!”

묵직한 숨소리가 환풍구 안을 지날 때마다 낮게 울렸다.

열심히 앞으로 향해 갔지만, 생각보다 많이 가지는 못했다.

유혁진은 이번 계획을 꽤 철저하게 세웠지만, 그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세 가지 있었다.

첫째는 몸이었다.

공간의 제약 때문에 낮은 포복 자세를 유지해야 했는데, 아직 몸이 완전하게 회복된 게 아니었기에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척추뼈를 건드리지는 않았어도 개복을 했기 때문에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오창규가 준비한 강한 진통제를 복용하긴 했지만, 100% 통증을 못 느끼게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두 번째는 몸에 들이부은 오일이었다.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갈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양 조절 실패로 그 미끄러운 강도가 상당했다.

또한 오일 때문에 각종 먼지와 죽은 벌레들이 몸에 달라붙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성가셨다.

“젠장! xx. 놀라라.”

유혁진은 낮은 욕설과 함께 작은 벌레를 손으로 짓누르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가자.”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은 것도 오일 때문에 말썽인 것도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괜찮았다.

오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티고 버텼는데,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심정은 허리가 주저앉아도 두 팔만 있으면 몸을 끌고 기어서라도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유혁진은 스스로에게 힘을 주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조급해하지 말자. 할 수 있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던 그는 조금씩 요령이 생겨서 처음보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쉬지 않고 앞으로 기어가던 유혁진은 별안간 포복 자세를 멈추더니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

동작이 멈춘 것뿐만 아니라 그의 표정까지 얼어붙었다. 그 모습이 못 볼 걸 본 사람의 표정과도 같았다.

1초 2초 3초…….

10초가량 멍하니 얼어붙은 표정에서 점점 황당함과 함께 황망함까지 느껴졌다.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작은 벌레가 눈 주변으로 기어가도 유혁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벙찐 표정 그대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