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68화 (367/472)

368화. 세 번째 변수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작은 벌레가 눈 주변으로 기어가도 유혁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벙찐 표정 그대로였다.

순간 눈앞이 아찔해진 그는 잘 못 본 건가 싶은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떴다.

그의 눈앞에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막혀 있었다.

엑스 모양으로 이뤄진 철제 구조물은 낡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두께감이 있었고 단단했다.

세 번째 변수.

그가 알지 못했고 예상치 못했던 마지막 세 번째가 변수가 바로 이것이었다.

유혁진은 물론이고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면 도주 루트를 짰던 오창규 역시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병원 안에 있는 몇 개의 환풍구 중에 이곳을 선정한 이유는 밖에서 맨몸으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바로 아래쪽에 커다란 재활용 분리수거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환풍구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밖으로 나오는 건 시간이 걸릴지언정 어렵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창규는 틈만 나면 환자들은 물론 동료들의 재활용을 수거하며 밖으로 나와 건물 외곽을 수시로 체크했던 것이다. 그런데 환풍구 중간이 막혀 있을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유혁진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구조물을 살펴봤다. 천장과 아래쪽에 나사로 고정된 게 보였다.

그는 갖고 있던 커터칼로 나사를 돌려서 구조물을 분리해 볼 생각이었다.

탁- 타탁-

그런데 몇 번 힘을 주어 봐도 구조물에 박힌 나사는 꿈쩍을 하지 않았다.

“아!”

오히려 강제로 힘을 줘 나사를 돌리려 하다 칼날에 손목을 베이고 말았다. 제법 깊게 베었는지 손목 위로 금세 붉은 피가 올라왔다.

“씨x!”

쾅-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유혁진은 저도 모르게 환풍구 바닥을 내리쳤다.

커터칼은 부러지고 손목은 베이고 환풍구는 막혔다. 그야말로 멘붕 그 자체였다.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유혁진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억지로 머리를 굴렸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손으로 구조물을 힘껏 당겨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이대로라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느낀 그는 계획을 변경하기로 했다.

유혁진의 시선이 휴대폰을 향했다. 오창규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까지 별다른 연락이 없다는 거였다.

만약 자신의 도주 사실이 들통나면 오창규가 바로 연락해 주기로 했었다.

-창규야, 문제가 생겼어. 네 도움이 필요할 거 같아.

유혁진은 빠르게 문자를 보내고 초조한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 * *

병실-

“커피를 준 사람이 정말 오 선생이 맞나요?”

“맞습니다. 확실해요. 둘 다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 하고 마셨어요.”

“그리고 그 선생님이 워낙 잘해 줬거든요.”

생각해 보니 병실에 온 첫날부터 친절한 미소와 따뜻함을 베푼 오창규를 교도관들은 전혀 경계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았다.

“병원 직원이고 사람이 워낙 좋아 보여서 이상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어요. 원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재소자도 아니고 그 친구가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고는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전 지금 눈 뜨고 코를 베인 기분입니다. 그만큼 어이가 없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 유혁진을 찾는 일입니다.”

“그럼요. 저희도 같이 찾겠……어!”

베드에 누워 있던 선배 교도관이 일어서려 했지만, 순간 어지러움을 느껴 다시 누워야 했다.

수액을 맞고 있긴 했지만, 워낙 많은 수면제를 복용한 탓에 아직 몸을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두 분은 수액을 끝까지 맞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일단 교도소에 이 일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좀 더 이따 알릴까 합니다. 그리고 원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아직 경찰에 알리지 않으셨다면 그것도 조금 더 있다가 알리면 안 될까요?”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

뚱딴지같은 소리에 태경은 어안이 벙벙했다.

순간 두 사람이 유혁진과 한패가 아닐까 하는 생각하던 그때 선배 교관이 이유를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실은 제가 곧 승진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승진도 늦었고 이번이 마지막이라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 승진은 힘든 상황입니다.”

“선배님, 막내가 이번에 대학도 들어가서 꼭 승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래요.”

“그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우리 병원의 책임자로서 전 환자의 안전이 가장 최우선입니다.”

두 사람은 어쩔 줄 모를 정도의 민망함과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태경은 그들의 말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저도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유혁진 때문에 환자나 직원들이 다친다면 그땐 두 분이 책임지실 건가요?”

“…….”

두 사람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전 병원 안에서 사람이 다치면 책임져야 합니다. 그게 제 자리니까요. 유혁진이 환자나 직원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그땐 지체 없이 경찰의 도움을 받을 겁니다. 두 분께서 유혁진과 함께 병원에 온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네요.”

* * *

응급실-

“고마워요.”

“제가 할 일인데요.”

“오 선생이 도와줘서 환자분이 편하게 진료받고 가셨어요.”

이찬희를 도와준 오창규는 겉으로는 따뜻하게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급했다.

병원이 분위기가 갑자기 왜 이런 건지도 알아야겠고, 무엇보다 환풍구 안에 있는 유혁진이 괜찮은 건지도 궁금했다.

“……저기, 이 선생님?”

“네.”

“병원에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오창규는 병원 분위기가 이상한 이유가 유혁진과 관련이 있는지 알기 위해 질문했다.

평소 사람 좋은 이찬희라면 뭔가 숨기는 거 없이 알려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좀 평소랑 다르긴 하죠? 그런데 나도 몰라요.”

“아. 그러세요.”

“저도 같은 직원인데 저라고 알게 있나요. 어! 저기 수 쌤 계시네. 수 쌤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다.”

이찬희 역시 이 사태에 대해 아직 몰랐기에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마침 병동에서 내려온 임정숙 간호사가 스테이션에 있었기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 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임정숙 간호사의 시선이 이찬희 뒤에 있는 오창규를 향한 뒤, 다시 이찬희에게 향하며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좀 이상하긴 하죠?”

“많이요.”

“그게 실은 주변 응급실을 돌아다니면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고 연락받아서 안전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것 때문에 병원에서 사람이 크게 다쳤거든요.”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고, 오창규를 속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그 때문에 다른 의료진들도 전부 진짜라고 믿었다.

“행패요? 아니 왜 병원에서 행패를 부려요?”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제가 듣기로는 병원에 악감정이 있어서 밤에 불 켜진 병원만 보면 일단 들어간대요. 몇 년 전에도 응급실에서 사람을 다치게 한 적도 있고 좀 문제가 있나 봐요.”

“웬일이야? 가끔 뉴스 보면 응급실에서 의료진 다친 사건 있잖아요. 이 동네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니 무섭다.”

“이 동네만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은 어디에나 있어.”

“하긴. 요즘 돌아이 같은 사람들 너무 많아요.”

“아니, 그 정도면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사람 아니에요?”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간호사들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듣기로는 예전에 정신병동에 있던 사람이래.”

“어쩐지.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창규는 속으로 안심했다. 적어도 병원의 이상한 분위기가 유혁진 때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 유혁진이 병실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을 병원 사람들이 아직 모른다는 뜻과도 같았다.

물론 교도관들이 수면제에서 깨어나지 않은 게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새벽 시간이라 의료진의 회진 시간도 아니었고, 환자들도 자는 시간이라 병동에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도 그랬다.

어찌 됐든 도주 사실이 늦게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좋은 일이었기에 오창규는 진심으로 안심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안 그래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오창규에게 이찬희가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네?”

“난 솔직히 그 환자 때문인가 했다니까요.”

“예? 그 환자요?”

“그 재소자 환자 있잖아요.”

“아! 실은 저도 같은 생각 하고 있었어요.”

“아무튼 한시름 덜었네요. 그럼 수고해요.”

“네, 선생님.”

이찬희가 최모나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자 오창규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움직이며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안 보이네?’

그러고 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병원 분위기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까도 안 보였는데…….’

원장인 태경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항상 진료실이나 응급실 또는 수술실에만 있는 사람이라 안 보일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아까부터 보이질 않았다.

방금 전까지 안심하던 마음이 다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진료실에 있는 건가? 설마 병동에 있는 건 아니겠지?’

평소 누구보다 병동 회진을 자주 도는 사람이었기에 오창규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직접 병동에 올라가 병실을 확인한 뒤 유혁진에게 연락하는 게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그렇게 스테이션에서 멀어지고 있던 그때 누군가 그를 빠르게 불러 세웠다.

“오 선생?”

뒤를 돌아보니 임정숙 간호사였다. 오창규는 자신에게 손짓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잠시만요.”

“네, 선생님.”

“몸은 좀 어떤가 해서.”

“아직 괜찮습니다.”

“다행이네. 그런데 어디 가려던 참이었어? 혹시 병동 올라가려고?”

“아. 네. 병동 선생님이 도와달라고 하셔서요.”

“그러면 가는 길에 이것 좀 원장님 진료실에 놔줄 수 있어요?”

임정숙 간호사는 의미 없는 종이를 서류라고 말하며 건넸다.

“그럼요. 그런데 선생님. 원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원장님?”

“네. 아까부터 안 보이시는 거 같아서요.”

“원장님 콜 받고 ICU(중환자실)에 계시는데……. 뭐, 원장님께 할 말 있어?”

“아니요. 원장님이 안 보이셔서 여쭤봤어요. 그럼 전 진료실 들렀다가 병동 갔다 올게요.”

“오 쌤. 고마워.”

응급실을 나온 오창규는 태경이 중환자실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진료실 앞에서 노크한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똑똑-

철컥-

임정숙 간호사의 말대로 중환자실에 있는지 태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져온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오창규가 진료실을 나가려던 그때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동안 응급실에서 환자를 도와주느라 유혁진에게 문자가 온 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오창규는 재빠르게 문자를 확인했고 두 건의 문자가 온 상태였다.

-창규야?

-여기 문제가 생겼어. 네 도움이 필요해.

‘형님한테 문제가 생겼다고? 무슨 문제지?’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오창규가 재빨리 답장을 보내려던 순간 진료실 문이 확 열렸다.

철컥-

“워, 원장님?”

중환자실에 있다던 태경이 갑자기 진료실로 들어오자 오창규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재빨리 들고 있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오 선생 내 진료실에 다 오고, 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임 선생님께서 원장님 ICU에 계신다고 서류 좀 진료실에 갖다 두라고 해서 들렀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저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오 선생?”

오창규가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자 태경이 그를 불러 세웠다.

“네?”

“잠깐 여기 앉아 볼래요? 다름이 아니라 오 선생한테 물어볼 게 좀 있는데……. 바빠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는지……?”

“오 선생도 알고 있죠? 지금 2층 병동에 재소자 환자가 입원해 있는 거?”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병실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문제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는 태경을 보며 오창규는 당황스러움을 숨긴 채 되물었다.

“병실에 있어야 할 재소자 유혁진 씨가 갑자기 사라졌거든요. 오 선생, 아니 오창규 씨? 유혁진 씨 지금 어디 있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