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유혁진의 다섯 번째 바이탈
“병실에 있어야 할 재소자 유혁진 씨가 갑자기 사라졌거든요. 오 선생, 아니 오창규 씨? 유혁진 씨 지금 어디 있죠?”
“네?!”
태경의 말을 듣고 있던 오창규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면서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기, 원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제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왜 재소자 환자가 없어진 걸 저한테 물어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요? 어떻게 내가 알게 해 줄까요? 오늘 교도관들에게 커피를 줬죠?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의심하지 못하게 병원 직원들 것까지 전부 사 줬죠. 그냥 커피를 준 것도 아니고 두 명의 교도관과 관리실 직원 커피에는 다량의 수면제를 타서 줬고요.”
“…….”
“오창규 씨가 약품실에서 수면제와 진통제를 몰래 가져다가 커피에 넣었잖아요.”
“원장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제가 약품실에서…….”
“오해라고? 이래도 오해인가요?”
태경은 핸드폰 화면에 녹화된 CCTV 영상을 앞으로 내밀었다.
“……!”
핸드폰을 본 오창규의 얼굴 위로 놀란 표정이 느껴졌다.
화면 속에는 약품실에서 커피에 약을 타는 본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른 CCTV처럼 약품실 카메라도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렸는데 왜 찍혔나 궁금하죠?”
안 그래도 태경의 말처럼 분명 약품실 CCTV 방향도 다른 곳으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어떻게 영상이 찍혔는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오창규 씨가 돌려놓은 CCTV는 고장 난 CCTV예요.”
“……!”
약품실에 원래 있던 CCTV는 오래된 것으로 잦은 고장이 났고 관리실 직원은 그걸 최 팀장에게 알렸다.
최 팀장에게 보고받은 태경은 교체를 지시했고 그게 바로 얼마 전에 일이었다.
새로운 CCTV를 교체하면서 업체는 새로 나온 제품을 추천했다.
누가 봐도 CCTV로 보였던 카메라와 달리 새로운 제품은 크기도 작고 보안 카메라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또한 기존의 자리보다 약품실이 더 잘 보이는 천장 등 안쪽에 설치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새로운 보안 카메라를 설치한 뒤, 기존 카메라 제거하지 않은 건 최 팀장 때문이었다.
뒷문 주차장 입구 쪽에 자꾸 담배 꽁초를 버린 사람이 생기자 그쪽에 갖다 놓으려고 했다.
당연히 이 사실을 몰랐던 오창규는 결과적으로 고장 난 CCTV의 방향을 바꿔 놓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야 병원 분위기가 이상했던 게 유혁진과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 주변 응급실을 돌며 행패를 부린다는 임정숙 간호사의 말도 전부 거짓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창규 씨가 우리병원에 왔던 것도 전부 유혁진을 돕기 위해서라는 거 알아요. 그리고 지금 유혁진이 병원 내부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요.”
“……!”
오창규는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태경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그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우리병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 어떤 안 좋은 감정도 없었다.
한 달 조금 넘게 일하면서 다들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였다.
이번 일을 함께하겠다고 나선 것도 본인이었다. 절대 안 된다는 유혁진의 만류를 들은 척도 안 하고 같이하게 해달라고 했다.
태경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여기서 유혁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말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일에 가담한 이상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지금 당장 경찰에 끌려간다고 해도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오창규 씨!”
“원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가 유혁진을 도왔습니다. 우리 병원에도 일부러 취직했고요. 다들 저한테 잘해 주셨는데 원장님과 직원분들에게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형님이 있는 곳은 말할 수 없습니다. 원장님 입장에서는 도주하려는 나쁜 재소자로 보이겠지만, 저한테는 안타깝고 가여운 사람으로 보여요. 그 형님 불쌍한 사람입니다. 나가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래서 저라도 도와줘야 합니다.”
“오 선생, 내 말 잘 들어요. 여긴 병원이에요. 아까 그랬죠? 병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 안 좋은 감정 없다고. 그러면 병원에 있는 환자나 직원들이 유혁진과 오 선생으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위험해지면 안 되잖아요.”
“병원 안에 있는 사람 누구도 위험해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건 제가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전부 진심이었다.
오창규와 유혁진은 그 누구도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직 단 한 사람이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말이 신빙성이 없다는 거 본인도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방금 유혁진이 나가서 할 일이 있다고 했죠?”
“……네. 맞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유혁진 씨가 교도소에서 소문난 모범수라는 말 들었어요. 오랜 시간 동안 복역하면서 단 한 번도 말썽을 부린 적이 없다는 것도요. 그런 사람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일 내가 도와줄게요.”
“네? 도와주신다니 그게 무슨…….”
“오 선생이 날 도와주면 나도 두 사람을 도와주겠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유혁진 씨가 숨어 있는 곳에서 나올 수 있게 설득해 줘요. 그 사람 허리 개복해서 아직 회복도 잘 안 되었고 진통제로 버티는 건 무리예요. 그리고 오 선생이 잘 모르겠지만, 외상 정도가 꽤 심해서 통증이 상당할 거예요.”
오창규는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렇다고 유혁진이 있는 장소를 말할 수는 없었다.
“원장님, 아무리 그러셔도 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별수 없네요. 지금 그 사람 2층 계단 쪽 환풍구 안에 있죠?”
“……!”
생각지 못한 말에 오창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가장 크게 놀란 표정이었다.
약품실도 교도관과 관리실 직원에게 수면제를 준 것도 당연히 들킬 거라고 예상했기에 놀라긴 했어도,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유혁진이 환풍구에서 제 발로 나오거나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 들킬 일이 없었는데, 도대체 태경이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그게 그러니까…….”
“환풍구 안에 유혁진이 있다는 거 다 알고 확인까지 했으니까 거짓말할 생각하지 말아요.”
유혁진이 현재 환풍구에 있다는 사실을 태경이 알게 된 건 조금 전 일이었다.
교도관들과 대화를 마치고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들에게 환자들을 잘 살펴보라고 당부한 태경은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했다.
올라올 때는 중앙 계단을 이용했지만, 다른 환자들의 병실을 살펴보며 자연스레 다른 계단으로 걸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급하게 걸음을 옮기던 중 무언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바로 의사 김태경만이 느낄 수 있는 다섯 번째 바이탈이었다.
사람이 아플 때 나는 냄새.
그 냄새가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옆쪽 벽면에 있는 환풍구에서 풍겨 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안에 있어!’
태경은 유혁진이 환풍구 안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다다다-
그는 의심을 피하려고 마치 다시 내려가는 것처럼 일부러 발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환풍구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자 진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끝에 진동했다.
사실 유혁진이 처음 응급실에 와서 가장 의아했던 점이 바로 그의 다섯 번째 바이탈이었다.
척추를 수술할 정도면 적어도 단계가 높은 냄새가 나야 하는데, 유혁진에게서는 그가 아파하는 것만큼의 다섯 번째 바이탈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큰 병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몸이 안 좋을 수 있을 때 나는 그 정도에서 좀 더 진한 냄새만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냄새는 언제든지 안 날 수도 있기에 태경은 환자인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진료한 것이다.
‘좀 진해진 거 같은데?’
환풍구 안에서는 처음보다 더 진해진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뭔가 그의 몸 상태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닌지 싶었다.
유혁진이 환풍구에 있다는 걸 알게 된 태경은 이 사실로 오창규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임정숙 간호사를 통해 진료실로 유인한 것이다.
“오 선생!”
“하! 저한테 자꾸 묻지 마세요. 원장님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형님은 잘못한 거 없어요. 가진 게 없어서 억울하게 저 꼴이 된 거예요.”
오창규는 괴로운 듯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으며 묻지도 않은 말을 쏟아냈다.
“사람 죽인 거요? 그 새끼는 죽어 마땅한 놈이었어요.”
태경은 혹시라도 유혁진이 억울하게 형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하지만 방금 말로 그가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라는 건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로 억울하다는 건지 그게 의아스러웠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거라서 이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어요.”
“원장님 말이 틀린 건 아닌데요. 죽어 마땅한 놈들도 있어요. 그 새끼들이 그런 놈들이에요. 그놈들은 죽어서도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해요.”
“만약 정말로 유혁진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내가 도와줄게요. 대신 오 선생이 자연스럽게 유혁진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
“오 선생! 이대로 두 사람 모두 경찰에 끌려가든지 아니면 내 말대로 하든지 지금 결정해요. 그리고 현재 유혁진의 몸 상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형님 몸에 문제가 있다고요? 그걸 원장님이 어떻게 아시죠?”
“그건 말해 줄 수 없어요.”
태경은 유혁진을 강제로 끌어낼 생각은 없었다. 그건 맨 나중 문제였다.
현재 그가 어떤 물건을 소지한 상태인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주를 계획한 사람이고 누군가를 해하려는 목적이라면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괜히 강제로 끌어내서 그를 자극해 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창규를 설득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끝내 오창규가 도와줄 생각이 없다면 병동 환자들을 대피시키고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려 도움을 받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오 선생, 어떻게 할 거예요?”
“하아!”
오창규는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가슴이 답답했다.
문자를 못 봤다면 믿지 않았겠지만, 문제가 있다는 유혁진의 문자를 본 이상 태경의 말이 진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몸에 이상이 생긴 거라면 환풍구 안에 계속 있게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유혁진이 병원 밖으로만 나가면 되는 일이었는데 잘 진행되던 일이 순식간에 꼬여버렸다.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그러면 그땐 형님을 설득해서 환풍구 밖으로 나오도록 할게요.”
“부탁이 뭐죠?”
“그것보다 아까 도와주시겠다는 말은 확실한 거죠? 그냥 하신 말씀 아니죠?”
“그냥 한 말 아니에요. 유혁진 씨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고 그게 합당한 일이라면 도와줄 생각 있어요.”
“원장님 믿겠습니다. 그리고 제 부탁은 형님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