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치료 거부하겠습니다
태경과 장득칠은 속옷만 입고 있는 그의 몸을 얇은 담요로 가린 채 병실로 이동했다.
병실로 이동할 때 1층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미리 올라와 병동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들과 자연스럽게 안쪽 사무실에서 이야기했기에 유혁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혁진이 병실로 들어가고 다시 환자를 받기 시작한 병원은 정신이 없었다.
“여보세요. 우리병원입니다. 응급실 이용할 수 있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지금 진료 보러 오셔도 됩니다. 네.”
“어서 오세요. 진료 보러 오셨나요?”
“네, 응급실 진료 보러 왔는데요.”
진료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는 물론이고 하나둘씩 외래 진료와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 때문에 접수처 직원들은 응대하기 바빴고 응급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저기요. 저 아까 왔는데 진료 좀 빨리 봐 주세요.”
“아. 네. 바로 갈게요.”
“이 쌤. 7번 베드요.”
“네, 결과만 확인하고 갈게요.”
“최 쌤 11번 베드 환자 한 번만 더 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찬희와 최모나뿐만 아니라 의진까지 응급실로 내려와 베드를 꽉 채운 환자들을 보고 있었다.
“엑스레이 나왔어요?”
유혁진의 병실에 있던 태경 역시 외래 진료 환자를 보기 위해 일단 1층으로 내려왔다.
“네, 원장님. 나왔습니다.”
“그럼 환자분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태경은 곧장 진료실로 향했고, 곧이어 노부부가 안으로 들어왔다.
“원장님 이게 뭔 일이래요. 우리 할아버지랑 나는 병원이라면 여기밖에 안 오는데 별안간 문 닫아서 얼마나 난감했는지 몰라요.”
병원 주변에 사는 할머니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할멈 말이 맞아. 다른 병원은 이 시간에 일반 진료는 하질 않지, 응급실은 의사들 코빼기 보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지. 여기 아니면 우리 같은 사람들 갈 곳이 없다고.”
할아버지 역시 할머니와 같이 불편해했다.
태경은 두 사람의 불평 섞인 소리를 들으면서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갑자기 병원 진료가 막히면서 불편한 건 노부부뿐만이 아니었다.
응급실은 찾은 다른 환자들도 같은 말을 하며 불편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병원은 다른 병원과 달리 야간에도 진료를 보기 때문에 응급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 환자들도 꽤 많았다.
주변에 사무실과 식당이 많아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들도 상당했다.
아무래도 근무 시간에는 마음 편히 병원 진료를 본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노부부처럼 저녁이나 새벽 시간에 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태경은 김철기와 마찬가지로 굳이 수고스러움을 자처하면서도 야간 진료를 고집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병원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아직은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난 병원 문 닫는 건가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급하게 내부 사정이 있어서 환자를 받을 수 없었어요. 죄송해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그럼. 없어야지. 김 원장님 안 계시면 우리 같은 노인들 병원도 마음 편히 못 다녀. 노인들 진료실 들어가면 말도 잘 안 들어 주고 소통도 힘들다고.”
“네, 할아버지.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야. 열심히 하는 건 이미 충분하니까. 덜 열심히 해도 돼. 자네 몸이나 잘 챙겨.”
“네, 감사합니다. 엑스레이 보니까 허리 디스크는 아니고 증상 보니까 요추 염좌 같아요. 최근에 무거운 거 들거나 허리 무리 간 적 없으세요?”
“원장님 말이 맞아요. 오늘 아침에 가게 물건 옮긴다고 난리 치다 그때부터 허리 아프다고 했거든요. 나이도 있는 양반이 아직도 청춘인 줄 안다니까.”
“당분간 물리치료 꾸준히 받으시고, 허리 괜찮아질 때까지 일을 좀 쉬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일을 쉬라고? 나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쉬면 할멈 혼자 일해야 해서 안 돼.”
“이참에 가게 며칠 쉬면 되니까 여러 소리 하지 말고 원장님 말씀 들어요.”
“장사 쉬면 안 되잖아.”
“늙은이 둘이 용돈벌이로 하는 일인데 무리하다가 더 큰 일 나고, 그러다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으면 그땐 큰돈 들어요.”
“그건 맞는데 그래도 가게 쉬면 손님들…….”
“됐어요. 기계도 오래 쓰면 고장 나는데 70년 넘게 산 우리 몸은 어떻겠어요.”
“할머님 말이 맞아요. 어르신 푹 쉬고 잘 드셔야 해요. 아셨죠?”
“알았어. 강제로 휴가받았네. 할멈 우리 놀러 갈까?”
“허리 아픈 사람이 놀러는 무슨. 집에서 꼼짝하지 말아요.”
“집에서 푹 쉬시고 진통제 놔 드리고 처방전도 드릴게요. 약 드실 때는 식후에 물도 넉넉히 해서 드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원장님이 늘 말해서 잘 알아요. 수고하셨어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노부부가 진료실을 나가고 진료 차트를 작성한 태경은 응급실 상황을 체크했다.
조금 전 정신없던 응급실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였다.
“원장님?”
임정숙 간호사가 응급실을 나서는 태경을 따라 나오며 불렀다.
“병실로 다시 올라가시는 거죠?”
“네, 다시 가 봐야죠.”
“그럼 이것도 챙겨 가셔야죠.”
임정숙 간호사가 건넨 통 안에는 라서레이션(laceration, 베인 상처)에 사용하는 나일론(nylon, 녹지 않는 실로 피부 봉합 시 사용될 수 있음) 4-0(바늘과 거기에 달린 실에 대한 굵기를 표시하는 방법)과 마취 주사 등 필요한 의료 용품이 담겨 있었다.
아까 유혁진을 병실로 옮기고 그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가져갔던 것들이었다.
“저도 정신이 없어서 물어보지 못했는데 유혁진 씨 상처는 좀 괜찮아요?”
“다행히 상처가 아주 깊지는 않지만, 봉합이 필요한 상태예요.”
“그런데 병실에 있을 때는 멀쩡했는데 어쩌다 다쳤을까요?”
“아마 환풍구 안에서 다친 게 아닌가 싶어요.”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다쳤나 보네요. 어쨌든 다친 사람 하나 없이 잘 마무리돼서 다행인 거 같아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 아까 원장님이랑 팀장님이 환풍구로 가셨을 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사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임정숙 간호사는 속으로 기도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누구 하나 다치는 사람이 없게 해 달라고 계속 되뇌었다.
유혁진이 다른 것도 아니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니 속으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런 거 보면 원장님 참 대단하세요. 안 무서우셨어요?”
“웬걸요. 저도 속으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아무튼 일은 잘 해결된 거 같은데 작은 문제가 생겼네요.”
“작은 문제요?”
“이거요.”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가 건넨 의료 용품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유혁진 씨가 치료를 안 받겠대요.”
“안 그래도 왜 이걸 다시 갖고 올라가시나 했는데…….”
태경이 외래 진료 때문에 내려오기 전까지 유혁진은 상처 치료를 거부했다.
“왜 치료를 안 받겠대요?”
“글쎄요. 이유를 물어도 말을 하지 않네요. 일단 들어가서 다시 이야기해 봐야죠. 맞다! 오 선생이 안 보이던데……?”
“오 선생이라면 아까부터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어요.”
병실에 함께 있던 오창규 역시 응급실로 내려와 일하고 있었다.
일손을 돕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혹시나 한 마음에 일단은 유혁진과 오창규를 떨어뜨려 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괜히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오래 있다가 행여 유혁진이 다시 도주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 안쪽 베드에 있어서 안 보였을 거예요.”
“그래요? 정 선생님이 보기에는 어떤 거 같아요?”
“오 선생이요?”
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응급실에 내려올 때 눈이 좀 부은 게 울고 온 거 같았어요. 그래서 속으로 일할 수 있으려나 하고 있는데 다른 직원들이 안 볼 때 나한테 오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평소에도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하는데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뭐랄까…….”
임정숙 간호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오 선생이 유혁진 씨와 가까운 사람이라서 무섭거나 그런 느낌보다는 뭔가 북받치는 감정을 숨기면서 꾸역꾸역 일하는 모습이 좀 안쓰럽다고 할까요. 이런 생각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근 한 달 넘게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마음이 쓰이네요.”
“왜 아니겠어요. 저도 그런데 가까이 일했던 선생님은 더 그렇죠. 그럼 지금 좀 불러 주시겠어요?”
“오 선생이랑 같이 올라가시려고요?”
“네, 아무래도 유혁진을 치료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거 같아서요.”
“방법이요? 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네요. 바로 불러 드릴게요.”
“네. 그리고 응급 오면 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뒤, 임정숙 간호사에게 전해 들은 오창규가 빠르게 응급실을 나왔다.
“워, 원장님. 절 부르셨다고요…….”
“오 선생?”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죽을죄를 지은 사람처럼 태경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한 뒤 바닥만 응시했다.
“정말 죄송해요?”
“네? 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죄송하면 나 좀 도와줘요.”
“예? 그게 무슨…….”
“나 지금 유혁진 씨 병실 가는 길인데 오 선생 도움이 필요해요. 유혁진 씨 라서레이션(베인 상처) 치료 아직도 거부하고 있는데, 오 선생이 도와주면 치료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어떡하면 될까요?”
“간단해요.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돼요.”
“……!”
“올라가죠.”
어리둥절한 오 선생과 함께 태경은 병실로 올라갔다.
드르륵-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교도관들은 여전히 유혁진 옆에서 그에게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이 사람아! 자네 진짜 이러기야? 진짜 계속 고집부릴 거냐고?”
“계속 피 나잖아. 얼른 치료받아야지.”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한 거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하고 치료받으라니까.”
“싫습니다!”
유혁진은 병실 안으로 들어온 태경과 오창규를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형님, 치료받으셔야죠. 베인 상처라도 계속 그렇게 두면 안 좋아요.”
“창규야. 내가 지금 상처 치료해서 뭐 하겠니? 다 필요 없다. 그리고 너도 이제 네 인생 살아. 괜히 나랑 엮여서 시간 낭비하고 미안하다. 이제 너랑 나 진짜 남이야. 그러니까 더는 나 신경 쓰지 말고 나가.”
“형님!”
“자네! 정말 자꾸 이럴 거야?”
“교도관님?”
“그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뭐든 해 봐.”
“죄송하지만 이 수갑 좀 잠시 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왜?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자네 설마 또 나갈 생각 하는 거 아니야?”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문 유혁진을 보며 선배 교도관이 호통하듯 말했다.
“저 창밖으로 떨어져 죽어 버리려고요.”
“……!”
열리지 않게 막아 놓은 창문을 보며 죽고 싶다는 유혁진의 말에 놀란 교도관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죽고 싶다니? 그게 지금 할 소리야?”
“1137번, 아니 유혁진! 자네, 정말 자꾸 이럴 거야?”
“…….”
보다 못한 교도관이 버럭 소리를 높였지만, 유혁진은 입을 닫은 채 베드에 누웠다. 그러더니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얼굴을 다 덮어 버렸다.
그 모습이 마치 현실을 차단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두 교도관과 오창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때였다.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태경이 별안간 유혁진이 뒤집어쓴 이불을 확 젖혀 버렸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세 사람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유혁진 또한 살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유혁진 씨?”
태경은 침착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베드 앞으로 바짝 자리를 잡고 다가가 그를 불렀다.
“정말 치료 안 받아요?”
“네, 안 받습니다.”
“아무리 상처가 심하지 않아도 그대로 두면 안 돼요. 지혈하고 봉합해야죠.”
“죄송하지만 치료받고 싶지 않습니다. 저 같은 놈한테 신경 쓰지 마시고 나가서 진짜 환자들 보세요.”
“유혁진 씨도 나한테 진짜 환자예요. 그러지 말고 치료해요. 그리고 난 내 병원에 온 환자는 모른 척하지 않아요.”
“제가 알기로는 환자도 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치료 거부하겠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닌데. 그럼 계속 치료 안 받을 생각인 거죠?”
“예, 안 받아요.”
“근데 그거 알아요? 유혁진 씨가 치료 안 받으면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건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이제 전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세요.”
“난 유혁진 씨를 신고하겠다고 말한 게 아닌데……. 번지수가 틀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