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염색
-혀, 혀……현진이가 죽었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에 유혁진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 멀쩡히 집에 있던 동생이었다.
그동안 공부와 과제로 피로가 쌓여 친구와 1박 2일 여행을 간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런 동생이 밑도 끝도 없이 죽었다는 말이 납득되지 않았다.
‘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흐으윽!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춘 채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온 건 아버지의 울음소리였다.
‘아버지! 울지 마시고 다시 한번 말씀해 보세요. 현진이가 어떻게 됐다고요?’
-죽었어. 현진이가…… 죽었다고!
탁-
반복해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던 유혁진은 당장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중요한 업무 미팅도 있었고 회의 일정도 있었지만, 그딴 건 아무것도 중요치 않았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회사를 나온 그는 곧장 부모님께 받은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저, 저기요.’
‘어서 오세요. 진료 보러 오셨나요?’
‘아니요. 제 동생이 여기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응급실 접수처 직원에게 말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던 그때였다.
‘아이고! 현진아!’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유혁진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접수처 직원의 말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는 부모님의 우는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현진아! 내 새끼가 왜 죽어!’
‘현진아!’
처절한 울음소리를 가로지르며 다가간 베드 위에는 싸늘하게 식어 버린 여동생이 누워있었다.
‘혀, 현…… 현……!’
너무 놀란 유혁진은 차마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응급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생기 넘치던 밝은 피부는 색을 잃었고 붉은 입술은 핏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동생이었다.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 남매였다면, 다른 집처럼 아옹다옹하며 지냈을 것이다.
나이 터울이 워낙 많이 나는 동생이기도 했고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동생을 돌보는 시간이 많았기에 사이가 남달랐다.
그만큼 어린 여동생이 더 애틋했고 남매 사이도 좋았다. 유혁진은 동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오빠였다.
그런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충격이란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야! 유현진! 눈 떠!’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그는 반듯하게 누워 있는 여동생을 흔들어 깨웠다.
‘현진아! 그만 눈 뜨라고!’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어깨를 흔들어 깨워도 아무 반응이 없는 동생을 유혁진이 더 강하게 흔들자 곁에 있던 의료진이 그를 말렸다.
‘저, 저기요. 선생님. 우리 동생이 안 일어나는데 이거 왜 이런 거예요?’
‘……!’
‘동생이 원래 잠이 좀 많긴 해도 이 정도 깨우면 일어나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안 일어나네요. 좀 도와주세요.’
동생의 죽음을 부정한 유혁진이 말했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의료진은 말이 없었다.
‘제 동생 좀 깨워 달라고! 당신들 사람 살리는 의사잖아!’
‘보호자분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동생분께서는 이미 사망하셨습니다.’
난감한 의료진 사이로 연차 높은 의사가 다가와 그에게 현실을 알려 줬지만 그는 발악하듯 부정했다.
‘씨발! 죽긴 누가 죽어! 내 동생이 왜 죽어! 살려 내. 살려 내라고!’
‘발견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한쪽에서 가족들의 힘든 모습을 보고 있던 경찰이 다가와 동생의 죽음에 관해 설명했다.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간다고 했던 동생은 혼자 펜션을 찾았고 유일하게 들고 왔던 가방 안에는 xx탄과 술이 담겨 있었다.
유서라고 할 만한 것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연기를 본 펜션 주인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비상키를 이용해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신체 외적으로 보이는 외상도 저항한 흔적도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했다.
‘말도 안 돼! 내 딸이 자살이라니…….’
‘흐윽! 현진아!’
자식을 잃은 부모님은 영혼이 빠진 사람처럼 울었고 유혁진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눈물을 흘렸다.
‘현진아! 흑!’
늘 행복하던 가족의 모습은 더는 없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꽃처럼 활짝 피었던 예쁘고 사랑스러운 동생은 가족의 곁을 떠났다.
그날 이후 가족들은 ‘행복’이란 단어를 잃어버렸다.
“원장님, 전 아직도 아침에 눈을 뜨면 동생의…….”
이야기하던 유혁진은 감정이 북받쳤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동생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제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동생이었어요. 그런 동생이……. 하!”
이미 십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유혁진의 마음에는 어제 일처럼 모든 신경에 문신처럼 자리 잡아 잊히지 않았다. 그에게는 죽어서도 기억될 그런 일이었다.
“많이 힘들었겠어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태경이 휴지를 가져와 유혁진 손에 올려 두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은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될 것이다.
물론 가족이라고 해서 다들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가족이 남보다도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상처와 아픔이 느껴지는 가족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던 유혁진의 가족은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이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원장님,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 아시죠? 저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억장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있습니다.”
가까스로 감정을 다스린 유혁진은 다시 말을 꺼냈다.
“베테랑 경찰도 자살이 확실하다고 했지만, 전 동생의 갑작스러운 자살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요.”
아무리 사이가 좋고 가족이 화목했다고 해도 모든 걸 다 안다고 말하는 자체가 오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동생이 자살할 이유는 없었다.
“염색했어요.”
“네?”
“동생이 자살하기 며칠 전에, 그러니까 과제로 힘들고 피곤해하기 전에 미용실에서 머리를 염색했거든요. 자살할 사람이 머리를 새로 염색하고 오랜 시간 공들여 파마하며 꾸미지는 않잖아요.”
유혁진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우발적으로 자살을 택한 사람이든 계획적으로 자살을 택한 사람이든 대게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뭔가 시간과 돈을 들여 애써 자신을 꾸미지는 않는다. 물론 모두 다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개 그렇다.
심적으로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그러기란 쉽지 않다. 특히 세상과 작별을 택한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장례를 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됐습니다. 동생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었다는 걸.”
“……!”
자살이지만 타살이라는 말에 아연해진 태경은 곧이어 유혁진으로부터 숨겨진 모든 진실을 듣게 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 맞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동생의 장례를 치르고 부모님은 충격으로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사모님이 두 분께 큰 위로가 됐어요. 장례식장에도 사모님과 회장님 가족들이 와서 애도를 표했고 그 자식들도 절 많이 위로했습니다.”
장례 절차가 끝난 뒤, 동생의 죽음의 의문을 가진 유혁진은 회사에 사표를 냈다.
워낙 유능한 직원이었기에 상부에서는 원하는 만큼 휴가를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동생의 살아생전 발자취를 따라다녔다.
아르바이트하던 미술학원도 찾아갔고, 학교에도 찾아가 교수들과 친한 친구들도 전부 만났다. 그러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뭔가 이상한 말을 듣게 됐다.
‘장례식장에도 와 주고 정말 고마웠어요.’
‘아니에요. 당연히 제가 할 일인데요. 아주머니 아저씨는 좀 괜찮으세요?’
‘아직 그렇지 뭐. 실은 내가 좀 궁금한 게 있어서 보자고 했어.’
‘네, 뭐든 물어보세요. 가족분들이 더 그러시겠지만, 저도 현진이가 자살했는데 믿기지 않아요. 제가 아는 건 다 답해 드릴게요.’
‘현진이가 학교 공부랑 논문 준비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하던데 혹시 친구들 문제나 다른 문제가 있던 건 아닌 가 해서…….’
‘어! 아닌데? 오빠가 잘못 알고 계신 거 같아요. 현진이 학교 일로 힘들어한 건 전혀 없었어요.’
동생 본인이 여러 번 말했기에 가족들 전부 동생의 낯선 모습이 학교 일 때문일 거라고 확신했지만, 아니었다.
‘현진이는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주변 사람들도 잘 도와주고 그래서 교수님들도 친구들도 다들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대학원이 힘들긴 하지만 그건 다들 비슷할 정도지, 현진이가 힘들어하는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 그럼 도대체 뭐 때문에……. 혹시 현진이가 만나던 사람은 없었어? 남자 친구라든가 아니면 현진이를 좋아하던 사람이라든지.’
‘자주 어울리는 사람 말고는 딱히……. 태철 선배 일 도와줬던 건 오빠도 아시죠?’
‘지이 네가 태철이를 어떻게 알아?’
‘현진이랑 제가 같이 도와주고 있었어요.’
‘그랬구나. 태철이야 계속 봤었지.’
사모님의 큰아들인 차태철은 동생 현진이와 같은 학교였다.
과는 달랐지만, 어려서부터 얼굴을 봐 왔던 사이였기에 두 사람은 학교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차태철 역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공부하며 친구와 작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몇 년 뒤에는 아버지 회사로 들어가 경영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하고 싶은 걸 해 보라는 부모님의 허락과 함께 작은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 그리고 현진이와 친구가 차태철의 부탁으로 디자인 관련 일을 가끔 도와줬다.
유혁진 역시 그 일은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기에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만 가 봐야겠다. 바쁠 텐데 나와 줘서 고마워. 공부 열심히 하고 우리 현진이랑 친하게 지내 줘서 고마웠어.’
‘아니에요. 도움 못 드려 죄송해요.’
혹시라도 주변 사람과 동생의 죽음이 관련 있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괜한 기우였나 싶던 그때였다.
‘아! 맞다! 오빠 잠시만요.’
인사를 하고 가려던 유혁진을 동생 친구가 불러 세웠다.
‘그러고 보니 한 명이 더 있어요.’
‘한 명이 더 있다고?’
‘네, 창규요.’
‘누구?’
‘오창규라고 다른 과인데 학부 때 동아리가 같아서 서로 알던 사이고 현진이를 좋아했어요.’
‘현진이를 좋아했다고?’
‘애가 막 나대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고 순하고 얌전하고 착한 애 거든요. 그런데 현진이를 도와주는 일에는 적극적이고 친해지려고 많이 다가갔어요. 제 생각이지만, 창규가 고백할 기회를 보고 있던 거 같아요. 친구들끼리 언제 고백할까 이런 농담도 하고 그랬어요.’
‘현진이도 알고 있었고?’
‘그럼요. 사람이 누군가 좋아하면 숨기려 해도 티가 나잖아요. 당사자인 현진이가 제일 먼저 알았을걸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현진이가 좀 이상해지고 그 뒤부터 얘가 학교를 안 나왔던 거 같아요.’
‘그 친구 혹시 장례식장에 왔었니?’
‘아니요. 안 왔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걔는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좀 의외긴 했어요.’
‘오창규라는 애 전화번호 아니?’
‘번호는 아는데요, 전화를 안 받아요.’
‘혹시 어디 사는지 알고 있어?’
‘학교 인근 오피스텔촌에 사는 거로 아는데 자세한 거는……. 잠시만요. 제가 알아볼게요.’
동생에 죽음과 오창규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섣부른 판단을 하지는 않았지만, 확인이 필요할 거 같았다.
유혁진은 집 주소를 받아 즉시 오창규의 집으로 찾아갔다.
학교도 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은 사람에게 벨을 눌러도 답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딩동
한 시간 넘게 온갖 머리를 굴린 끝에 벨을 눌렀다.
‘계세요? 밑에 집인데요, 천장에서 물이 새서 올라왔어요.’
딩동-
‘그쪽 집 물 때문에 지금 집에 물이 떨어져서 잠을 못 잔다고요. 집이 물바다가 됐어요. 위에 물 좀 해결해 주세요.’
쾅- 쾅-
‘저기요!’
철컥-
물인 샌다는 이야기와 함께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자 닫혀 있던 현관문이 열리며 어딘가 퀭한 모습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정확히 한 뼘 정도만 문을 열고 얼굴만 문밖으로 살짝 내밀고 있었다.
‘오창규 씨?’
‘누구……세요?’
‘유현진. 누군지 알죠?’
‘……!’
‘나, 현진이 오빠인데 그쪽한테 물어볼게…….’
‘전 할 말 없어요.’
유현진의 이름을 듣고 움찔하던 오창규는 유혁진이 오빠라고 밝히자 급격하게 당황하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쪽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요.’
‘몰라요. 난 아무것도 몰라요.’
‘잠깐이면 돼요.’
문을 닫으려는 사람과 문을 열려는 사람 간의 기 싸움이 한창이던 그때였다.
‘……!’
순간 오창규 뒤로 보이던 벽을 보던 유혁진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