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화. 긴급체포
그렇게 사무실에 단둘이 남게 된 차태철은 눌러 놨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잘못된 욕정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유현진은 그런 차태철을 막아 보려 했지만, 힘으로 당할 수가 없었다.
철컥-
‘승운 선배!’
온갖 저항을 다 해 가며 버티고 있던 그때, 때마침 함께 일하는 고숭은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선배, 나 좀 도와줘요.’
‘야! 태철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살았다고, 이제 살았다고 생각하던 그 작은 희망은 곧이어 들려온 두 악마의 대화 소리에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왜? 너도 얘 좋아하잖아? 아니야?’
‘맞지.’
도와줄 거라 생각했던 친구란 놈도 나쁜 짓에 가담할 뿐 그녀를 외면했다.
악랄한 두 사람의 악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불법 촬영까지 했으며 그걸로 입을 다물라고 협박했다.
만약 입을 잘못 놀리면 가족들이 전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건 물론이고 가족에게 해코지한다고 엄포를 놓았고 촬영까지 운운하며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유현진은 시들어 가는 꽃처럼 하루하루 마음이 피폐해졌고 살아도 사는 거 같지 않았다.
사실 부모님과 오빠인 유혁진에게 몇 번이나 말을 하려고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의 협박이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이 엄청난 소식을 듣고 충격받을 가족들의 모습을 차마 볼 자신이 없었다.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을 잃은 유현진은 마음을 굳혔고 그 전에 마지막으로 차태철을 찾아갔다.
짐승보다 못한 놈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웠지만, 그들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용기 냈다.
작은 녹음기를 사서 몸에 숨기고 그를 자극해 자연스럽게 범행 사실을 말하도록 유도하여 그걸 녹음기에 담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차태철이 집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오창규의 집에 숨겼다.
예쁜 꽃 같던 그녀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다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창규는 가족들에게 말하는 대신 본인이 일을 해결하려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자식의 부고로 힘든 가족들에게 이 잔인한 사실까지 알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까 유혁진이 집에 찾아와 물었을 때 모른 척한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유혁진은 말문이 막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돼. 하!’
‘형님!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해요. 그 새끼들 진짜 보통 놈들이 아니에요.’
‘으아악!’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던 유혁진은 터질 것 같은 심장은 간신히 누르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고민했지만, 결국 부모님께 알리기로 했다.
동생의 일이었고 너무 엄청난 일이었기에 가족들이 전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고 현진아! 세상에!’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떻게……. 얼마나 무서웠을까? 혼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
‘여, 여보!’
‘어머니!’
예상대로 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았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란 어머니는 죽을 사람처럼 울다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어머니는 정신을 차렸고 가족들은 함께 회장님 댁으로 찾아갔다. 처음에는 경찰서로 찾아갈까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신고하고 형사들이 조사하면 절차에 따라 시간이 걸릴 게 뻔했기 때문에 일단 그전에 직접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억울하게 죽은 동생을 생각하면 그딴 건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아주머니? 가족분들 전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사모님과 회장님께 꼭 할 말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평소와 다른 부모님의 태도에 사모님은 무슨 일인가 싶어 가족들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차태철도 같이 들어야 할 거 같은데요?’
‘태철이는 아직 입에 안 왔는데 무슨 일이에요?’
‘그럼 회장님도 불러 주시죠.’
집에 없는 당사자 대신 그의 부모인 회장과 사모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다.
소리도 지르고 악도 쓰고 죽여 버릴 거라는 말과 함께 쏟아지는 분노를 터트렸다.
‘당신들 아들이 내 동생을 죽게 만들었어.’
‘……!’
죽은 동생과 차태철의 이야기를 들은 사모는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으아악!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거실 벽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 속 차태철의 사진을 보던 유혁진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때려 부쉈다. 그 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저와 부모님은 차태철을 고소할 겁니다.’
가족들은 차태철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면목 없고 미안합니다. 나도 딸 가진 부모로서 고개를 들 수 없어요. 내 아들이라고 감싸지 않고 확실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진 회장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들에게 확인 후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게 사실을 경우 아들이라고 해도 가만있지 않겠다고 전했다.
차태철을 기다리던 유혁진은 회장의 말을 믿고 이 집에 더는 있고 싶지 않다는 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가족들이 경찰서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던 그때 회장이 집으로 찾아왔다.
‘접니다.’
차태철과 함께 오겠다고 아들이라고 감싸지 않겠다던 회장은 차태철 대신 변호사와 함께였다.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일한 분들이기에 저도 어제 가족분들이 한 말이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제와 묘하게 다른 태도를 보인 회장은 급기야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철이한테 확인해 보니까 어제 가족분들이 말씀하신 거랑 좀 다르더군요. 유 기사님 따님이 우리 아들을 마음에 두고 있다 혼자 상심한 모양입니다. 나머지는 여기 우리 변호사가 이야기해 줄 겁니다.’
‘그날 사무실에서 있던 일은 젊은 두 남녀의 사이에서 일어난 합의된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이 댁 따님분의 죽음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차태철 씨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는 그만하시고, 만약 계속된다면 고소하겠습니다.’
함께 온 변호사는 개소리를 지껄이며 가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여보!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예요.’
‘야! 그러고도 당신이 자식 키우는 아버지냐! 잘못을 감싸는 게 아버지야?’
‘유 기사님. 뭔가 대단한 착각에 빠진 거 같은데 내 아들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방금 변호사가 말했지만, 젊은 남녀 사이에 서로 마음이 잠시 맞았다가 틀어진 일을 갖고 딸의 죽음까지 몰아가지 마시죠.’
‘네가 인간이냐!’
‘유 기사? 우리 와이프랑 내가 그동안 잘해 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본데 이쯤에서 그만해.’
퍽-
‘닥쳐!!’
뻔뻔함을 넘어선 회장의 말을 더 이상 들어 줄 수 없었던 유혁진은 부모님을 무시한 회장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러면 허위 사실 유포에 폭행죄까지 더해지는 건가?’
입술이 터진 회장은 끝까지 가족들을 조롱한 뒤 집을 나갔다. 그 기막힌 모습을 본 어머니는 졸도했고 119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아버지와 함께 응급실에 있던 유혁진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의사 말을 듣고 그 길로 경찰서로 향해 사건 전말을 이야기하며 차태철을 고소했다.
‘고소장 전부 접수됐고요, 저희가 빠르게 조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사님, 그 나쁜 놈 꼭 좀 처벌받게 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혁진은 사건 기록이 전부 담긴 동생의 다이어리까지 증거로 제출하며 경찰서를 나왔다.
그날 녹음기도 함께 제출하려 했지만, 주머니에 들어 있던 녹음기가 보이지 않아 제출하지 못했다. 다행히 녹음기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응급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어떻게 경찰서 간 일은 잘됐니?’
‘네, 아버지. 형사님이 철저하게 조사한다고 하셨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초조한 마음으로 형사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일에 진전이 없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유혁진에게 형사는 동생의 죽음과 차태철이 상관없다는 말과 함께 수사를 강제 종결시켰다.
차태철의 아버지인 회장이 돈으로 형사를 매수한 거였다. 다른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돈과 인맥이 많은 대기업 회장을 평범한 가족이 이기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경찰이나 변호사는 물론 방송 쪽으로 도움을 받으려고 했을 때도 유 회장 일가가 손을 써서 번번이 수포도 돌아갔다.
유혁진 못지않게 부모님도 동생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죄를 지은 아들을 감싸기 바쁜 회장과 달리 그래도 사모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몇 날 며칠을 사모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고 자주 다니던 피부샵 앞에서 기다렸다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사모님! 저예요.’
‘여, 여긴 어떻게…….’
유혁진의 부모를 본 사모는 깜짝 놀라며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사모님 만나려고 여기서 기다렸어요.’
‘사모님은…… 사모님은 우리 딸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잖아요?’
‘현진인 태철이를 좋아한 적 없어요. 사모님이라도 사건을 똑바로 봐 주세요.’
‘자식이 잘못했을 때 바로잡아 주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하는 게 그게 부모의 도리잖아요.’
‘두 분 말씀 맞아요. 그런데 저도 엄마예요. 그래서 내 새끼 말을 믿을 수밖에 없어요. 죄송해요.’
사모는 회장처럼 행동하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들을 두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들을 믿는다는 사모의 얼굴의 확신보다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마도 남편의 지시 때문이라고 부모님은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죠. 아무리 내 자식이 중요해도 남의 자식 죽게 만든 아들을 감싸는 건 아니잖아요.’
‘이봐! 당신들 사모님께 무슨 짓이야?’
‘사모님!’
사모에게 더 확실하게 말하려 했다. 그런데 주차장에 있던 기사와 경호원이 달려와 유혁진의 부모를 강제로 떼어 놓았다.
가족들이 백방으로 노력해도 도무지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결국 분노한 유혁진은 법이 심판할 수 없다면 억울한 동생을 위해서라도 직접 심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몇 날 며칠을 그들의 뒤를 캐며 기회를 엿보다 오랜만에 사무실에 나타난 두 사람을 따라 들어갔다.
‘야! 이 새끼들아! 죽어!’
유혁진은 먼저 눈에 보이는 고숭은에게 가차 없이 흉기를 휘두르며 숨을 끊어 놓았다.
그사이 화장실에 있다 몸을 피하게 된 차태철은 유혁진에게 걸려 끌려 나왔다.
‘개 같은 xx야. 내가 오늘 너 죽이고 아주 끝장을 볼 거야.’
‘혀, 형님. 잘못했어요. 정말 실수였어요. 이럴 줄 알았냐?’
유혁진이 정말 자기를 죽일 거라고 직감한 차태철의 행동은 뭔가 이상했다.
‘뭐라고! 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어디 그 더러운 주둥이 끝까지 놀릴 수 있나 두고 보자.’
‘잘됐네. 죽여 봐. 근데 그거 알아? 나 죽인다고 네 동생 살아 돌아오지 않아. 죽여 보라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였다.
‘이 개xx! 그 입 다물지 못해!’
철컥-
‘당장! 칼 버려!’
눈에 보이는 거 없이 흉기를 휘두르던 중 화장실에서 차태철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들이닥쳤고, 유혁진은 경찰에게 끌려갔다.
‘유혁진, 당신을 살인 및 폭행 혐의로 긴급체포한다.’
‘이거 놔! 저 새끼 죽이기 전까지 아무 데도 못 가. 이거 놓으라고!’
피를 흘리며 만신창이가 된 차태철은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혁진을 죽이지 못한 걸 억울해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벌인 일이기에 경찰에 끌려가는 거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다만 저 악마 같은 놈이 살아 있는 게 분할 뿐이었다.
그 뒤, 재판이 진행됐다.
돈과 인맥이 대단한 차태철 집안은 죽은 고숭은 집안과 결탁해 자식들의 죄는 쏙 뺐고, 유혁진을 잔인한 살인범으로 몰아 장기 복역수로 만들어 교도소로 보내 버렸다.
차태철은 그날 큰 부상으로 목숨이 위태로웠지만, 수술이 잘돼 목숨을 부지하며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아들인 유혁진의 소식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회장의 회사와 집에 시위하러 갔지만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러다 속상한 마음에 술을 잔뜩 마시고 신호를 못 보고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야말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화병으로 몸져누워 오 년 전, 병상에서 눈을 감았다.
“전 부모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유혁진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