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88화 (387/472)

388화. 날 밟고 올라가서 뛰어요

“안 그래도 기분이 싸하면서 설마 했는데……. 손님! 이러시려고 다리에 온 거예요?”

“맞습니다. 사실 이 다리에서 콱 뛰어내리려고 왔습니다.”

“어허! 손님도 참. 그러니까 지금 이 다리에서 뛰어내려 죽겠다고 말하는 거죠?”

“네.”

“참나!”

“왜요?”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할 말을 잃은 기사를 보며 중년 남자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저 뛰어내리는 거 보고 놀라서 말리려 오셨어요? 아무리 말리셔도 소용없습니다. 전, 이미 마음먹었습니다.”

“아닌데요?”

확신 가득한 남자의 말이 민망할 정도로 예상 밖의 대답이 되돌아왔다.

“예?!”

“나 손님 뛰어내리는 거 말리려고 온 거 아니라고요.”

“……!”

보통 이런 상황에서 그것도 전직 소방대원이란 사람 입에서 나올 법한 소리가 아니었기에 남자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말려도 뛰어내린다면서요.”

“아, 예……. 뭐 그렇죠.”

“거봐요. 이미 그렇게 마음먹은 사람을 내가 말린다고 그 의지가 꺾이겠어요?”

“아니, 그러면 왜 오신 겁니까?”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도, 도와준다고요?”

“예.”

“설마 여기서 뛰어내리는 걸 도와준다는 뜻은 아니죠?”

“맞아요. 손님 아까 다리 난간에 한쪽 다리 올렸죠?”

“예. 올렸습니다. 그게 왜요?”

“근데 생각보다 다리가 높아서 다리가 잘 안 올라갔잖아요. 그렇죠?”

“그런데요?”

“그거 도와주러 왔어요. 여기가 보시다시피 꽤 높거든요.”

택시 기사는 한 손으로 다리 난간을 만지며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바닥에 기어가는 자세로 등을 세웠다.

“자! 날 밟고 올라가서 뛰어요.”

“뭐라고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뭐 하긴요. 말 그대로 날 밟고 올라가서 편하게 뛰어내리라고 하는 거잖아요.”

“예!? 저랑 장난하십니까?”

뛰어내리려는 사람에게 밟고 올라가서 뛰어내리라고 부추기다니.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장난이요? 다리 위에 차 세워 두고 왔는데 이게 장난처럼 보여요?”

탁- 탁-

동물처럼 네 발로 엎드려 있던 택시 기사는 손을 털고 일어났다.

“아! 안 뛰어내려요?”

“뛰어요. 뛸 건데 기사님이 재촉해서 잠시 숨 고르기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손님 그거 아세요?”

“또 뭘요?”

“저기……. 저 밑에 저거 보이죠?”

“뭐가요?”

“거기서 안 보이죠. 이리 가까이 와 봐요.”

기사는 난간 아래 강물을 가리키며 남자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잠시 주춤하던 남자가 옆으로 다가와 기사처럼 얼굴을 내밀고 다리 밑을 내려다보던 바로 그때였다.

“워!”

“아! 깜짝아!”

기사가 남자의 어깨를 툭 건드리자 중년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진짜, 사람 놀라게 왜 그래요. 그러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할 뻔했어요. 네?”

“살짝 건드린 걸로 안 떨어져요. 그리고 어차피 손님 떨어진다고 했잖아요. 아니에요?”

“그, 그거야…….”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자신의 태도에 남자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기사는 그런 남자 옆에 앉으며 그를 불렀다.

“손님? 고개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또 뭐 하려고요?”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들어 봐요.”

기사의 말에 남자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저기 하늘 보이죠? 요즘 미세먼지가 심했었는데 며칠 사이 이렇게 화창하고 맑은 날은 처음 봅니다. 안 그래요?”

“예. 뭐. 그러네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죽기 아까울 정도로 화창한 날씨를 자랑했지만, 남자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이렇게 멋진 날 죽긴 왜 죽어요.”

“어휴!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요. 기사님, 살아갈 자격이 없는 놈이에요. 내가!”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인데 살아갈 자격까지 있어야 하나요?”

“그렇긴 한데……. 제가 사고를 크게 쳤어요.”

“예? 혹시 경찰 수배범이나 뭐 그런 사람 말하는 건 아니죠?”

중년 남자의 사고란 말에 놀란 기사는 핸드폰으로 112에 신고하려는 제스처를 보이며 물었다.

“당연히 그런 거 아니죠. 그게 아니라 우리 마누라랑 새끼들에게 사고를 쳤어요.”

“설마 바람피웠어요?”

“아까부터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런 쪽으로는 평생 하늘을 우러러 우리 집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요.”

“그럼 무슨 사고를 얼마나 쳤길래 죽을 마음까지 먹고 그래요.”

“그게……. 하!”

도저히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던 남자는 입고 있던 재킷 주머니에서 팩 소주를 꺼냈다.

“여기서 술 마시려고요?”

“제가 맨정신이 버틸 수가 없어서 그래요. 딱 한 모금만 마실게요.”

“안 그래도 술 냄새가 나는데 마시긴 뭘 마셔요. 이 사람 진짜 큰일 낼 사람이네.”

기사는 남자가 들고 있던 팩 소주를 뺏으며 호통쳤다.

사실 기사가 가던 길을 멈추고 남자에게 다가왔던 것도 택시를 탈 때부터 느꼈던 술 냄새 때문이기도 했다.

남자는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미 한차례 술을 마신 듯 계속 냄새가 나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술 마시다 잘못해서 떨어지며 어쩌려고 그럽니까? 네?”

“어차피 맨정신으로 떨어지나 술 마시고 떨어지나 그게 그건데요. 그리고 아까 나보고 떨어지라고 하더니 기사님이야말로 왜 이러시는데요? 그냥 모른 척하고 가던 길이나 가세요.”

“모른 척할 거였으면 아까 오지도 않았어요.”

“기사님 마음대로 하시고 술이나 내놔요.”

“싫습니다.”

“아! 술 달라니까요.”

“그러지 말고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요. 집 주소나 말해 봐요.”

“아니, 택시 운전 안 하실 거예요? 내 소주나 얼른 줘요.”

“집 주소 말할 때까지 못 줘요.”

그렇게 다리 위에서 두 사람의 실랑이가 한참 동안 이어지던 그때였다.

“아! 아!”

갑자기 중년 남자가 상체를 숙이며 앓는 소리는 내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 죽네…….”

“손님? 갑자기 왜 이래요?”

“아! 아아……. 기사님 나 ㅂ……배, 배가 너무 아파요.”

“아니, 갑자기 배가 왜 아파요?”

“어젯밤부터 아프긴 했는데 이 정도로…… 아이고, 나 죽어요.”

“많이 아픈가 보네. 손님 내가 병원으로 데려다줄게요.”

택시 기사는 놀라긴 했지만, 소방서에서 일했던 이력답게 차분하게 남자를 도와주려 했다.

“일어날 수 있겠어요?”

“아! 아아! 기사님 나 못 일어나요.”

별안간 배가 아프다고 한 남자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배를 잡고 고통을 호소했다.

“내가 잡아 주면 일어날 수 있겠어요?”

“안 돼요. 너무 아파서 못 일어나겠어요.”

복부가 아픈 거 말고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던 택시 기사는 결국 119에 신고한 뒤 구급 대원들이 올 때까지 남자 곁을 지켰다.

그리고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다.

“기사님, 이분들 오셨으니까 그만 가서 일하세요.”

“정말 괜찮겠어요?”

“가족들 부르면 되니까 그만 신경 쓰고 어서 가세요.”

구급 대원들이 도착하고 기사가 함께 가려 하자 중년 남자는 극구 말리며 괜찮다고 했다.

안 그래도 본인 때문에 택시 운행을 못 했는데 병원까지 같이 가는 건 미안했다.

“대원님, 이 사람 좀 잘 부탁드려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결국 중년 남자는 택시 기사 없이 홀로 119 구급대원과 함께 구급차에 올라 병원으로 출발했다.

* * *

우리병원 응급실-

“어려워! 너무 어려워!”

스테이션에서 태블릿으로 자료를 보고 있던 이찬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봐도 잘 이해가 안 간다고요.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머릿속에 쏙 안 들어오네.”

이찬희는 태블릿을 들어 눈 가까이 댔다가 머리에 갖다 댔다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LT(간 이식)요?”

“네, 자료가 보통이 아니네요.”

“아무래도 원장님이 주신 거니까 더 그렇겠죠. 우리 이 쌤 공부 복 터졌네.”

“제 말이요. 학생 딱지 뗀 지가 언제인데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거 같아요.”

임정숙 간호사의 말에 이찬희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원래 의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야.”

처치실에서 나온 태경이 옆자리에 앉으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건 맞는 말씀인데 환자 진료에 공부까지 하려니까 아무래도…….”

“그래서 힘들다고?”

“네, 선생님. 자료가 거의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백과사전 급이에요.”

“그러면 이 선생은 간 이식 빠지든가.”

“예?!”

“그렇게 힘들면 빠져야지. 내가 공부하라고 강요할 수 없잖아. 최 선생도 힘들어?”

“아니요. 전, 아직 괜찮습니다.”

때마침 스테이션을 지나던 최모나는 태경의 질문에 태연하게 답하며 가던 길을 갔다.

“어떻게 이 선생, 많이 힘들면 수술에서 빠질래?”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빠지긴 누가 빠져요. 전 안 빠집니다.”

“힘든 거 아니었어?”

“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가뜩이나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쉬우면 안 되죠.”

상황 파악이 끝난 이찬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빠른 태세 전환을 보였다.

“그나저나 LDLT(생체 간 이식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수술)로 하실 거죠?”

“가장 좋은 경우는 가족 중에 맞는 사람 걸 이식하는 게 좋지. 대기자 명단 올리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니까. 일단 환자가 가족과 충분히 상의한다고 했으니까 기다려야지.”

“며칠 전에 치료받으러 오셨을 땐 별다른 말 없었어요?”

“아직 대화 중이라고 하던데 가족들이랑 대화가 잘되면 좋겠네.”

“잘되겠죠.”

“그래야지. 이 선생 힘들어도 내가 주는 자료 꼼꼼하게 잘 봐.”

“네, 알겠습니다.”

“저기…….”

대화를 마친 태경이 응급실 안쪽으로 걸어가자 때마침 베드 사이에서 나온 보호자와 환자가 그를 불렀다.

“원장님?”

“이제 집에 가시려고요?”

“네, 오늘도 우리 원장님께서 진료 잘 봐 주셔서 죽지 않고 갑니다.”

“엄마도 참 그 소리 좀 그만해요.”

흰 머리가 성성한 할머니의 장난 섞인 말에 옆에 있던 딸이 정색했다.

“그만하긴, 어차피 나이 먹고 오래 살면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거야.”

“그건 아는데 여기 아픈 사람 치료하는 병원이잖아요. 다른 환자들 들을까 봐 그렇지.”

“맞네. 노인네가 무식해서 그래. 농담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데 안 그래요, 원장님?”

“네, 맞습니다. 우리 할머님 오래 사셔야죠.”

“그럼 난 장수할 거예요.”

“그럼요. 장수하셔야죠. 그런데 대신 앞으로 음식 잘 가려 드셔야 해요.”

유쾌한 할머니는 병원에 자주 오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는데, 오늘처럼 상한 음식을 먹고 탈이 나서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음식에 냄새가 나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버려야 하는데, 예전에 찢어지게 가난했던 할머니는 그때 기억 때문에 음식을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원장님 말씀 잘하셨어요. 엄마? 원장님 말씀 잘 들었지? 이제 음식 이상하면 바로 버려요.”

“쉰 음식 좀 먹었다고 안 죽어. 그리고 음식 함부로 버리면 벌 받아.”

“할머님, 쉰 음식도 상한 음식도 다 버려야 해요.”

“음식을 버리라고?”

“네. 버리세요. 우리 할머님은 연세가 있으셔서 잘못하다간 진짜 크게 탈이 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진짜 주의하셔야 해요.”

“아까워서 그렇죠.”

“상한 음식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니니까 아까워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그건 또 원장님 말씀이 맞네요. 하여간 참 똑똑하셔.”

“감사합니다. 그리고 혈압약도 잊지 말고 꼭 챙겨 드시고요.”

“우리 딸내미가 알람 맞춰 줘서 잊지 않고 챙겨 먹고 있어요. 재연아, 그거 얼른 들려.”

“네,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

할머니의 말에 딸이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태경에게 건넸다.

봉지 안에는 노인들이 좋아할 만한 옛날 사탕과 캐러멜이 가득했는데, 할머니는 병원에 올 때면 늘 이렇게 한 봉지를 챙겨 왔다.

사탕 봉지를 받지 않으면 할머니가 상당히 서운해하는 걸 알고 있기에 태경은 일부러 챙겨 준 마음이 감사해서 거절하지 않았다.

“일하시다가 당 떨어지고 피곤하시면 다른 선생님들이랑 하나씩 입에 넣으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수고들 하세요.”

할머니와 인사를 마친 태경이 응급실을 나와 접수처 직원에게 사탕 봉지를 준 뒤 진료실 문을 막 열려던 그때였다.

“원장님!!”

급하게 뒤따라 나온 임정숙 간호사가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응급환자입니다.”

그 소리에 태경은 다시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언제 왔어요?”

“원장님 나가시자마자 바로요. 대원님들 말로는 55세 남자로 상복부 통증을 호소하고 있어요. 3번 베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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