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화. 볼록한 복부와 마른 사지
“원장님 나가시자마자 바로요. 대원님들 말로는 55세 남자로 상복부 통증을 호소하고 있어요. 3번 베드요.”
임정숙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태경의 발길이 이미 3번 베드를 향하고 있었다.
-챠륵
커튼을 열고 베드 안으로 들어가자 환자가 너무 아픈지 아랫다리를 펴지 못한 채 누워 있었고, 그 모습을 본 태경은 복벽이 자극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심하게 아파하는 환자의 표정을 보니 아마도 배를 만지지 못하게 할 게 뻔했다.
누가 봐도 아파 보이는 환자는 다리 위에서 택시 기사에게 신세 한탄을 하며 속상해하던 그 남자였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지금 통증이 시작된 지는 얼마나 됐어요?”
“아프기는 어젯밤부터 아팠는데 이 정도로는 아니었거든요. 그게 아까부터 별안간 미치게 아파 오기 시작했어요.”
“환자분 기침해 보시겠어요?”
“기……침이요?”
“네. 한번 해 보세요.”
콜록-
“아이고, 못 해요. 못 하겠어요. 선생님 너무 아파요.”
태경의 말에 환자가 기침하자 복통의 통증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다.
보통 환자가 복통을 호소할 때면 우선 배를 촉진해 봐야 한다. 하지만 이 환자처럼 통증이 상당히 심할 때는 촉진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침으로 배를 자극해 보는 것으로 갈음하곤 한다.
복벽이 자극되었다면 복막염이나 복막이 자극되는 장기의 염증을 의심할 수 있다.
태경이 환자를 좀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다가가자 그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환자분. 술을 많이 드셨군요?”
“네, 선생님. 제가 한 달 전부터 계속 술만 마셨어요. 속이…… 제 속이 너무 상해서 마셨습니다.”
속상해서 술을 마셨다는 환자의 이런 말이 태경은 익숙했다. 술 마신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대부분 저런 답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쟁과 긴장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국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물론 이 말이 백 퍼센트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응급실에서 보면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다가 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환자분, 전에도 이런 적 있으시죠? 그리고 쥐어짜듯이 아프시고요?”
“……네. 그런데 그때는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어요. 배꼽 주변에서부터 옆구리 쪽으로 배가 쥐어짜듯이 아프고 누우며 더 아픈 거 같고 아주 미치겠습니다.”
그 뒤 더 자세히 문진하며 질의한 태경은 환자의 과도한 음주와 전에도 비슷한 증상, 그리고 쥐어짜듯이 아프다는 것과 다른 증상들을 종합한 결과 AP(acute pancreatitis, 급성 췌장염)를 의심했다.
“선생님, 저 심각한 병인가요?”
“환자분, 우선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진단을 위해서 CT와 검사를 좀 해 볼게요.”
“……네.”
췌장염은 말 그대로 췌장에 염증이 생기는 것으로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가 음주이다.
술을 과도하게 먹으면 췌장 내의 관들이 일시적으로 수축을 하고 그 수축된 길로 내용물들이 정체되어 염증이 생긴다. 그러면 췌장 세포들이 손상되고 세포 내에 있던 췌장 효소들이 혈관을 돌게 된다.
그러니 췌장염에서는 췌장 효소가 당연히 증가하게 된다.
“환자분 amylase(췌장서 분비되는 소화효소)와 lipase 수치 검사하고요. 조영제 증강 CT도 촬영해 주세요.”
“네, 원장님.”
챠륵-
오더를 내리고 베드 밖으로 나온 태경은 환자가 췌장염으로 진단될 것으로 생각했다.
췌장염 치료야 수액과 금식이라서 아마 이 환자에게 앞으로 해 줄 처치가 많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무슨 사연이길래 그렇게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술을 마셨는지가 궁금했다.
아마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문제임이 분명했고, 그 때문에 잦은 술로 병원에 오게 된 것 같았다.
태경은 이 환자의 다음과 그다음이 걱정됐다.
계속 술을 먹으면 또 몸에 무리가 가고 안 좋은 상황을 반복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특히 술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끊기 힘들어서 나중에도 더 큰 병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술에 의해 문제가 된 환자에게 의사들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하는 말이 있었었다.
바로 ‘환자분 술 끊어야 합니다.’였다. 하지만 의사의 말을 듣는 환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태경은 결과가 나오면 환자에게 강력하게 술을 끊어야 한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CT실에 전화해서 지금 내려가는 조응기 환자 빨리 찍어 달라고 하세요.”
“네, 원장님.”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 준비만 해 주세요.”
“환자분이 많이 아파하는데 혹시 투여도 할까요?”
“아니요. 아직 원인도 정확하지 않은데 투여하면 안 되죠. 환자분이 많이 아파해도 잘 설명하고 췌장염으로 확인되면 그때 투여할게요.”
막내 간호사에게 설명을 마친 태경은 스테이션으로 돌아갔다.
그 뒤, 10분 정도 지나고 조응기 환자의 피검사에서 신장의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조영제를 투여하여 촬영한 CT 결과가 30분도 안 돼서 영상이 올라왔다.
“원장님, 조응기 환자 CT 결과 나왔습니다.”
“바로 확인할게요.”
대답과 동시에 태경의 시선이 모니터를 향하며 뚫어져라 쳐다봤다.
언제나 그렇듯이 조영제를 머금은 하얀 간이 나오고 마우스로 화면을 더 내리자 췌장이 등장했다.
‘맞네. 맞아.’
역시나 췌장 주변에 먹구름이 끼듯이 자잘하고 지저분한 염증들이 가득했다.
또한 피검사 결과에도 췌장 효소들의 수치와 염증 수치들이 천정부지로 높아져 있었다.
태경의 생각대로 조응기 환자는 AP(acute pancreatitis, 급성 췌장염)가 맞았다.
“술을 얼마나 마셨으면. 적당히 좀 드시지……. 조응기 환자 말이에요.”
“네, 원장님.”
“준비해 둔 마약성 진통제 우선 달고 금식 유지하면서 입원 병실 확인해 주세요. 그리고 자세한 설명은 내가 이따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현재 환자 상태가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태경은 필요한 처방을 내린 뒤 다른 환자의 진료를 보고 조응기 환자에게 향했다.
챠륵-
“환자분 좀 어떠세요?”
“아까는 정말 죽을 듯이 아팠는데 진통제가 강해서 그런지 지금은 통증이 좀 괜찮아졌습니다.”
“통증이 줄어들었다니 다행이네요. 환자분 병명은 급성 췌장염이에요.”
“췌장……염이요? 그거 혹시 수술해야 하나요?”
“아니에요. 합병증으로 인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환자분 음주를 많이 하셨죠?”
“……네. 많이 했습니다.”
“사실 환자분 같은 경우에는 술을 끊는 게 가장 중요해요. 반드시 금주하셔야 해요. 혹시 내 의지로 술을 끊기 어려우시면 음주 관련해서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시겠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그러실 거 없어요. 저 술 먹고 죽으려고요. 사실 아까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갔다가 택시 기사님이 말리던 중에 복통이 심해져서 병원에 온 겁니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고요?”
“네, 선생님.”
“왜 그러시는데요?”
이런 질문 자체가 오지랖이라는 걸 태경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술이 가장 큰 원인이기에 꼭 물어봐야 했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다지만 제가 정말 힘들게 살았거든요. 가진 게 없으니까 주변에서 미련하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면서 돈을 모았고 이제 허리 펴고 살 만해졌는데……. 그런데 제가 그 돈을 주식과 코인으로 다 날렸어요.”
주식과 코인이란 소리에 태경은 안타까움과 씁쓸한 표정이 교차했다.
저 두 단어로 좌절하고 삶에 희망조차 잃어버린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어느 순간 주식과 코인 열풍이 불어오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 열에 아홉은 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누가 주식을 했는데 코인을 했는데 얼마를 벌었다 대박이 터졌다 등의 이야기는 언제나 많이 들려온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도 저런 대박이 올 것만 같은 생각에 자연스럽게 주식과 코인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때부터 거의 모든 신경은 핸드폰 화면과 모니터에 쏠려 있게 된다.
더불어 올라가는 그래프와 빨간 선을 보며 재벌이 된 상상을 하다가 내려가는 그래프와 파란 선을 보면 똥줄이 타고 입이 바짝 마른다.
그러다 계속된 마이너스로 돈을 날리면 쓰린 속에 술을 들이붓고 그렇게 마음도 상하고 건강도 잃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게 되는 것이다.
태경 역시 주식과 코인으로 돈을 날리고 병원에 온 사람들을 여럿 봤다.
강물에 뛰어들다 병원에 실려 온 사람, 술이 떡이 되도록 먹다 다쳐서 실려 온 사람, 그리고 오늘처럼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다가 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조응기 환자처럼 술 때문에 건강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도 꽤 많았다.
속상한 마음에 잠시나마 잊고자 술을 마시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술을 끊어야 했다.
그래서 태경이 아까 정신건강의학과 이야기까지 꺼낸 것이다.
“전, 이제 살아갈 희망도 보이지 않아요.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저기, 환자분 가족은요? 자녀는 있으세요?”
“아내랑 딸 하나, 아들 하나 있고 둘 다 아직 학생입니다. 근데 사실 제가 이번에 너무 크게 돈을 잃다 보니 도저히 미래가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애 엄마랑 같이 죽을까도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가족들만 남겨질 텐데 그럴 바에는 다 같이 가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그런데 차마 집사람에게 같이 죽자는 말이 안 떨어져서 그냥 저 혼자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조응기 환자의 말을 듣고 있던 태경은 순간 움찔했다.
주식과 코인뿐만 아니라 요즘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사회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리고 그런 힘든 가정 중에 간혹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아이들까지 삶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태경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조응기 환자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급성 췌장염으로 인한 통증은 심하지만 아주 심각한 중병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몸이 회복된 뒤에 이 환자가 또다시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일단 그의 마음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분, 상심이 정말 크시겠어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우선은…….”
“야! 이 자식아!”
그런데 태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커튼이 쳐진 옆에서 양손이 쑥 들어왔다.
“이 개새끼야!!!”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었다. 옆 베드에 누워있던 환자가 갑자기 조응기의 멱살을 잡으며 버럭 소리를 지른 것이다.
당사자인 조응기와 함께 있던 태경은 물론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전부 놀랬다.
“아니, 당신 뭐야!!”
놀란 조응기가 손을 뿌리치자 그의 멱살을 잡았던 남자가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그 남자는 복부가 불룩하게 나왔고 사지는 상당히 마른 상태였다.
심지어 배에는 복수를 빼고 있어서 바늘이 꽂혀 있는 상태였다.
“아니, 환자분!”
태경은 재빨리 일어나 넘어진 환자에게 다가가 배에 꽂힌 바늘부터 뺐다.
“죽는다니!! 어? 죽긴 왜 죽어!”
자기 몸이 넘어진 건 안중에도 없던 노인은 마른 몸에서 사자후를 날리며 조응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살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