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90화 (389/472)

390화. 그 짓을 10년 넘게 했어

“죽는다니!! 어? 죽긴 왜 죽어!”

자기 몸이 넘어진 건 안중에도 없던 노인은 마른 몸에서 사자후를 날리며 조응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살아야 해!!!”

“……!”

“나도, 나도 당신하고 똑같았어.”

“어르신 혹시 저 아세요?”

“몰라, 내가 너 같은 놈을 어떻게 알아? 그래도 이거 하나는 정확히 알아. 자네가 죽겠다고 마음먹은 거.”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그를 보며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쏟아 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놈이었으면 진작 나한테 혼나고도 남았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절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남의 멱살은 잡고 그러세요?”

“왜 그러냐고? 날 보는 거 같아서!”

조응기의 말에 노인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

생각지 못한 노인의 말에 조응기는 기분 나쁘게 쳐다보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내가 아까 그랬지? 당신하고 똑같았다고.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울화가 치밀어서 멱살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 보여?”

“……예?”

“지금 내 꼴이 보이냐고?”

“예……. 보입니다.”

노인이 손가락으로 자기 몸을 가리키며 물어보자 기세에 놀란 조응기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당신처럼 똑같이 술로 인생을 허비했어. 그런데 돈 몇 푼 잃은 거 같고 목숨을 버려!”

“어르신 몇 푼이 아니라 몇천 만…….”

“시끄러워! 그래봤자 그 돈이 자네와 자네 가족 목숨값에 비하겠어? 아무리 큰돈이라도 사람보다 더 중요하겠냐고?”

“…….”

“내가 술에 미쳐서 그 짓을 10년 넘게 했어. 그 결과가 바로 이거야. 결국 목숨 잃게 되면 그 후회가 얼마나 큰지 알아? 자식들에게 아내에게 미안한데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해. 그런데 뭐? 같이 죽겠다고?”

“아니, 어르신 그게 진짜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생각만…….”

“시끄러! 내 꼴 보이지? 난 시한부야.”

그랬다. 다짜고짜 조응기의 멱살을 잡고 목청을 높이던 노인은 시한부 환자였다.

태경이 노인과 처음 만난 건 몇 달 전이었다. 그는 119에 실려 한밤중에 우리병원으로 왔다.

베드에 실려 병원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사고를 당한 흔적도 없이 포르말린을 넘어선 5단계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노인을 보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역시나 함께 온 구급 대원들은 노인이 시한부라고 전했고, 근방에 있는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에서는 꽤 유명한 환자라는 것도 알려 줬다.

세상을 등지고 술독에 빠져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노인은 심각한 간암 말기였다.

보통 간 이식의 기준이 있는데, 이탈리아 밀란 그룹에서 간 이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만든 밀란 척도(Milan Criteria)라고 부른다.

그 기준은 단일 종양의 크기가 5cm 이하이거나 종양이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일 때는 세 개를 넘지 말아야 하며, 크기가 3cm 이하여야 하고 혈관침윤이 없어야 한다.

물론 저 기준이 반드시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고, 여러 나라 훌륭한 의료진들에 의해 어려운 간암 수술을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간 이식할 때 밀란 척도를 중요하게 보는 건 사실이다.

노인의 경우는 밀란 척도 기준을 많이 벗어났고 이미 치료 시기를 놓쳤다. 도움을 주고 싶어도 현재 상태는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노인 역시 병원에 오는 걸 극도로 꺼렸는데 어쩔 수 없이 통증과 복수를 빼기 위해 오긴 와야 했다.

문제는 성격이 워낙 괴팍하고 고집도 세고 남의 말을 듣지 않아서 병원만 가면 트러블을 일으킨다는 거였다. 그렇게 병원을 돌고 돌아 우리병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의 사정을 알게 된 태경은 며칠 동안 그를 살릴 방법이 없을까 고심했지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르신! 도대체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아무것도 안 하셨어요?’

‘죽든 말든 내 몸뚱아리 내 마음대로 하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내가 언제 살려 달라고 했어?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환자나 잘 치료해.’

‘환자를 진료하는 일에 시간 낭비란 없습니다. 할아버지 통증이 심하실 텐데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으세요.’

‘일 없어.’

처음으로 태경이 노인 환자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입원해서 통증 치료를 하자고 했지만, 살려는 의지가 크게 없는 노인은 끝까지 거절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설득하며 진료비 때문이면 그것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노인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대신 태경은 아프면 참지 말고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결국 끈질긴 태경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노인은 그때부터 우리병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끔 오늘처럼 함부로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삶의 의지를 불태워 주고는 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괴팍하고 고집이 센 노인처럼 보였지만, 태경의 눈에는 안타깝고 안쓰러운 환자로 보였다.

“이봐?”

노인이 버럭 소리를 높이며 부르자 조응기가 고개를 들었다.

“나, 얼마 못 산다고. 그러니까 내 말 새겨들어. 살아! 어! 무조건 살아. 평생 모은 돈 다 잃고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면 그딴 거 없어. 그냥 사는 거지 이유가 어디 있어! 그깟 돈 잃었다고 죽지 말고 기죽지도 마! 처자식도 있다면서.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 어? 돈은 다시 모으면 돼. 자네, 사지 멀쩡하고 정신 멀쩡하고 거기에 죽을병도 아니잖아. 아니야?”

“췌, 췌장염입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자네가 죽으면 남은 가족들은 행복할 거 같아? 개소리하지 마. 가족들 평생 아픔 속에 살아야 해. 자식 커 가는 거 볼 수 있는 것도 마누라 잔소리 듣는 것도 행복이야. 감사하며 다시 살아.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도 있잖아.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겠어? 안 그래?”

“아, 예…….”

“자네, 이름 뭐야?”

“제, 이름이요?”

“그래.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 있잖아. 이름이 뭐냐고?”

“조응기라고 합니다.”

“이름 자체가 아주 좋은 기운을 부르고 있네. 조응기 씨, 당신 두 번 다시 죽는다는 이상한 마음 먹지 마. 알았어?”

“…….”

“아! 대답 안 할 거야?”

“네, 어르신 알겠습니다.”

“그래. 모쪼록 치료 잘 받고. 원장님 나, 이만 갑니다. 약속 있으니 붙잡지 마요.”

“약 타셔야죠?”

“아직 남았수다. 원장님은 내 걱정일랑 그만하고 살 사람이나 잘 봐주세요. 가요.”

노인이 긴 연설을 하는 동안 태경은 더 이상 그의 몸에 바늘이 더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았기에 원하는 대로 하게 뒀다.

“조심히 살펴 가시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내가 알아서 합니다. 수고하세요.”

할 말을 마친 노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더니 그 길로 홀연히 응급실을 나갔다.

노인이 응급실을 나가고 조응기는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나쁜 마음을 먹은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던 태경은 노인의 연설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조응기의 표정이 뭔가 깨달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예? 아, 네…….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아주 혼이 쏙 빠진 기분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어야 하는데 혼이 빠지면 안 되죠.”

여전히 멍한 조응기는 태경에게 어떤 치료를 할지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 병동으로 올라가 입원했다.

몇 시간 뒤-

“여보!”

연락받고 달려온 조응기의 아내가 병실로 들어오며 버럭 소리를 높였다.

“이 사람아, 여기 다인실이야. 조용해!”

“내가 지금 조용하게 생겼어?”

“알지. 일단, 나 따라와. 저쪽 가서 얘기해.”

미간에 내 천 자가 그려진 아내의 얼굴을 본 조응기는 아내의 손을 잡고 빠르게 병동 휴게실로 자리를 옮겼다.

“당신 음료수 하나 뽑아 줄까?”

“장난해? 내가 지금 음료수가 넘어갈 거 같아?”

“아니. 걱정 많이 했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기막힌 표정을 보인 아내는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남편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여보, 못난 남편 만나서 고생만 시켜 미안해. 그래도 내가 당신이랑 우리 애들 많이 사랑한다는 거 잊지 말고 나 같은 거 잊고 행복하게 잘 살아. 나 찾지 마.

“덩그러니 이것만 써 놓고 나가서 전화도 안 받고 있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미안해. 여보.”

쪽지를 보고 뭔가 직감한 아내는 남편이 갈 만한 곳을 전부 갔다. 회사 동료는 물론 친구들과 평소 자주 가는 술집까지 전부 찾아다녔지만, 남편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막 경찰에 신고하려는 찰나 남편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병원에 온 것이다.

“전화는 왜 안 받고 꺼놨어?”

“나 사실 속이 너무 상해서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왜! 돈 때문에?”

“그렇지. 당신에게 미안하고 면목도 없고…….”

“미안하다는 사람이 죽겠다는 마음은 왜 먹냐! 미안하면 더 열심히 살아야지. 그리고 무슨 면목이야? 부부 사이에 체면 찾아?”

한두 푼도 아니고 많은 돈을 날린 남편 때문에 아내 역시 속이 뒤집어지고 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 상황에 속이 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누구보다 남편 본인이 가장 속상해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동안 크게 잔소리하지도 않았다.

평생 열심히 산 사람이 본인 실수로 돈을 날렸으니 오죽할까 싶어 술로 마음을 달래는 남편을 크게 말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병원에는 왜 온 거야? 설마 진짜 뛰어내리다가 다친 거야?”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당신 술 먹고 취해서 교통사고 당했어?”

“술 먹고 이렇게 된 건 맞는데 교통사고는 아니야.”

“그럼 뭔데? 빨리 말해.”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급성 췌장염이 왔대.”

“뭐라고? 어휴! 내가 진짜 당신 때문에 늙는다. 늙어. 그러니까 좀 적당히 좀 마시지 그랬어.”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맨정신에 있으면 자꾸 생각나고 속이 상해서 그럴 수가 없었어.”

“그래서 계속 술만 마시고 결국 나랑 애들만 두고 가려고 했어?”

“당신한테 죽을 만큼 미안해서……. 그 돈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살고 싶지 않았어.”

“여보! 우리 이제 그 돈 잊어버리자. 나 쪽지 보고 당신 찾아다니는 동안 정말 당신 잘못됐으면 어쩌나 무섭고, 걱정돼서 미치는 줄 알았어. 거짓말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당신만 찾아다녔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당신 없으면 나랑 우리 애들 어떻게 살라고. 난 못 살아.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잖아. 이미 떠나간 돈 때문에 당신이 그만 힘들어했으면 좋겠어.”

아내는 자책하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알아?”

“……?”

“당신이나 나나 생각보다 되게 단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거야. 돈 없어서 힘들 때도 그것 때문에 싸운 적 있어? 없잖아. 당신이 매일 나한테 했던 말 잊었어? 돈은 벌면 된다고. 건강한 게 재산이라고. 건강 잃으면 다 소용없어. 돈은 다시 열심히 벌면 돼.”

착하고 지혜로운 아내는 돈보다 남편에게 아무 일이 없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러니까 두 번 다시는 죽겠다는 생각 하지 마. 알았어?”

“알았어. 고마워. 여보.”

조응기는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며 진심을 전했다.

“나 앞으로 당신이랑 애들만 생각하면서 살게. 내가 비록 가진 건 없지만, 당신이랑 결혼한 거 그게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이야.”

“말이나 못 하면……. 당신 정말 몸은 괜찮은 거지?”

“괜찮아. 같은 병실에 입원한 사람이 그랬는데 여기 원장님이 유명한 의사래.”

“정말? 그럼 당신 알고 온 거야?”

“아니. 119 타고 왔지. 나 다리까지 타고 간 택시 기사님이 119에 신고해 주고, 올 때까지 같이 있어 줬거든. 그러고 보니 그 기사님이 말려 준 덕분에 좋은 의사한테 진료도 보게 되고 고맙네.”

“정말 고마운 분이다. 나중에라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그래야지. 여보? 당신 내가 오늘의 운세 매일 보는 거 알지?”

택시 기사를 떠올리던 조응기는 핸드폰으로 봤던 오늘의 운세가 떠올랐다.

“갑자기 무슨 운세 타령이야. 왜? 거기서 오늘 다리에 가라고 했어? 그런 것 좀 그만 봐.”

“그게 아니라. 오늘 귀인 세 명을 만난서 잘 해결된다고 했거든.”

“귀인?”

“어. 아까는 이게 뭔 개떡 같은 소리인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귀인 세 명이 맞았어.”

“그게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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