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92화 (391/472)

392화. 결국 소장 일부가

“안녕하세요. 환자분, 잠은 잘 잤어요?”

베드에 누워 수술방으로 들어가려던 조응기를 태경이 불렀다.

“네, 선생님. 잠은 푹 자서 컨디션은 좋은데 그래도 수술실로 이동하니까 살짝 긴장되네요.”

“그럼요. 저랑 의료진이 최선을 다할 테니까 한숨 푹 자고 나온다고 생각하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병명과 상관없이 수술받는 환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가벼운 수술이라고 해도 긴장될 수밖에 없다.

환자들의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태경은 언제나 그렇듯이 따뜻한 말로 환자를 안심시켰다.

수술방으로 들어간 조응기의 마취가 진행되는 사이, 태경은 깨끗이 손을 소독하고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조응기 환자 마취됐습니다.”

“수술 끝날 때까지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 수술 시작합니다.”

수술 시작을 알린 태경은 환자 복부에 복강경을 집어넣기 위해 준비했다.

“자! 복강경 들어갑니다.”

조응기의 배에 작은 구멍을 낸 뒤 그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간다.

배 안에는 지방인 장간막이 마치 커튼처럼 소장 앞에 있고 혈관들이 보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옅은 붉은 색의 무서운 혈관들과 장기들이 널뛰는 공포의 풍경이지만, 태경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다.

아니, 익숙하다 못해 정겹기까지 해서 기분이 복잡할 때 수술에 집중하면 오히려 편안해지고는 했다.

장간막을 조심스럽게 위쪽으로 걷어 올리자 살색을 띤 소장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태경이 위쪽에서부터 40cm 정도 되는 곳의 소장을 기구로 잡자 옆에서 어시를 보고 있던 이찬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이게 새삼스러운데 뭔가 다르게 보이는 거 같아요.”

“뭐가?”

환자에게 집중하고 있는 태경이 상대적으로 두꺼운 GI(1cm 두께의 긴 기구로, 끝에 검지와 중지 정도 길이의 집게가 있으며 이 안에 촘촘한 스테이플러가 있음)를 쑥 집어넣으면서 무심히 말했다.

“저번에 돼지 내장으로 수술해 보니깐 그전에 느꼈던 것과 달리 수술방에서 이뤄지는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 다르게 보입니다.”

“아. 맞다. 이 선생, 거기 센터 갔다 왔었지?”

“네.”

이찬희는 일전에 의료기기 회사가 협찬으로 지어 준 일반외과 소속 술기 연습센터를 다녀왔다.

센터에서는 동물들의 장기를 이용한 수술을 연습할 수 있는 곳으로, 태경은 후배들이 배울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권하며 보내 주고 있었다.

“어떻게 가서 잘했어?”

“열심히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어. 그래도 센터에서 동물 장기를 통해 연습하면 도움이 꽤 많이 되니까 연습할 때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해.”

“네, 선생님.”

태경이 소장의 한 부분을 GI stapler(*로) 잡고서 기계를 가동했다. 그러자 기계로 길게 잡은 소장이 잘리면서 잘린 면에 촘촘한 철심들이 박히면서 봉합과 절개가 동시에 됐다.

“저 소장을 잡는 행동이요. 강하게 잡아서 소장을 찢어먹기 일쑤고 약하면 원하는 대로 조작이 안 되고 정말 어려웠습니다.”

이찬희가 감탄 섞인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수술방에서 어시를 할 때는 몰랐는데 센터에서 동물 장기를 통해 연습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센터에서 동물 장기로 연습한 뒤로는 전보다 더 수술방에서 어시 할 때 조심스러웠다.

조금 전, 환자의 소장을 잡을 때도 힘 조절에 상당히 신경 썼다. 사람의 장기는 생각보다 찢어지기 쉽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럼. 어렵지. 그래서 강약 조절이 중요한 거야. 돼지 장기야 얼마든지 찢어져도 되지만 사람은 큰일 나니깐 장기를 잡을 때도 긴장이 됐을 거야.”

“요즘은 제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될 때가 많아요.”

“실력은 분명히 는다. 그러니까 벌써 너무 걱정하지 마.”

“참 신기한 거 같습니다.”

“뭐가?”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정말 그렇게 될 거 같은 힘이 있거든요.”

태경은 이찬희에게 그런 존재였다. 스승인 그가 하는 모든 말은 언제나 큰 힘이 됐다.

“그런 힘이라면 앞으로도 팍팍 줄 테니까 염려하지 말고 지금은 수술에 집중하자.”

“네, 알겠습니다.”

대화하면서도 태경의 시선은 수술 부위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입은 움직였지만, 눈과 손은 흐트러짐 없이 수술에 임했다.

태경이 자른 소장의 먼 쪽 단면을 위로 쭉 끌고 올라가자 췌장에 하얗고 붉은 기를 품은 낭이 보인다. 그 근처에 자른 소장을 툭 놓아두었다.

“석션(suction, 흡입기)에 long needle 연결해서 주세요.”

그 말에 간호사가 두껍고 긴 바늘을 연결한 석션을 태경에게 건넸다.

슈욱-

그 바늘을 췌장 낭종에 푹 꽂아 넣자 흡입기를 통해 짙고 어두운 검붉은색의 액체가 석션 안으로 끈적하게 빨려들어 갔다. 그러자 팽팽하던 낭종이 약간 쪼그라드는 게 보였다.

곧이어 태경은 리가슈어(Ligasure, 열에너지로 절개와 지혈을 동시에 하는 기구)로 낭종에 구멍을 내고 옆에 끌어다 놓은 소장에도 구멍을 냈다.

그리고 큰 젓가락 모양의 스테이플러를 벌려서 낭종 구멍과 소장구멍에 각각 밀어 넣었다.

이후 복강경용 포셉(forcep)으로 낭종과 소장이 잘 맞물리게 한 다음 GI stapler로 고정시켰다.

그러면 기계와 기계 사이에 낭종과 소장이 집히고 드르륵 소리와 함께 기계를 작동시키자 낭종과 소장 사이에 통로가 생겼다.

그때 간호사가 GI stapler를 다시 조작해서 건네자 태경이 말했다.

“그거 아니에요.”

“네?”

“그걸로 안 할게요. 그거 말고 round 8분에 5 circle(봉합실의 한 종류. 주로 큼직한 봉합 시 사용하는 반원 모양의 봉합실로 복강경 봉합할 때 사용함)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이 선생?”

“네, 선생님”

사실 GI stapler로 해도 상관없고 오히려 편했다. 하지만 태경은 후배인 이찬희에게 두 가지를 보여 주고자 일부러 한 땀 한 땀 봉합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내가 봉합하는 거 잘 봐.”

“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집중하고 있던 이찬희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봉합하는 손길에 더 집중했다.

배를 열고 해도 힘든 장기간 봉합을 복강경 상태로 70cm 정도의 기구 끝으로 미세하게 봉합하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지만, 태경에게는 오히려 쉬웠다.

게다가 빠르기까지 했는데,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하니라 봉합하는 그 간격마저 일정하고 정확했으며 힘 조절 또한 완벽했다.

“내가 GI로 봉합해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어. 이 선생, 뭔지 알겠어?”

“한 가지는 봉합하는 방법에 대한 숙지고…… 나머지 하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맞아. 보여 주려고 한 거고 나머지 하나는 GI stapler 때문이야.”

“GI이요?”

“그래. 저 기계가 정말 편하지만 의존하지 말라는 거야.”

“아…….”

“GI는 경계면이 불규칙하거나 잘 찢어지거나 길이가 충분하지 않으면 못 쓰는데, 저것만 할 줄 알면 그런 곳은 수술을 못 하게 돼. 수술은 아무리 사전 검사를 철저하게 해도 막상 다를 수도 있고 언제 무슨 변화가 있을지 모르니까 기계를 못 쓰는 곳도 항상 대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야.”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태경이 말끝을 흐리며 손끝에 집중했다.

이제 잘린 소장 중 위에 연결된 소장을 낭종에 연결하기 위해 길게 끌어올린 소장 기둥에 연결하면 수술은 끝난다.

리가슈어(Ligasure, 열에너지로 절개와 지혈을 동시에 하는 기구)를 이용해 세로로 되어 있는 소장에 구멍을 내고 연결할 소장에도 구멍을 냈다. 그리고 역시 GI stapler를 이용해서 둘 사이에 통로를 낸다.

이제 리가슈어로 낸 구멍을 봉합하면 끝이다.

“여기, 어때?”

“네? 아, 네. 마진이 매끄럽고 길이도 충분해서 스테이플러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스테이플러로 마무리하면 되겠지?”

“네.”

“그래서 라운드 한 번 더 주세요.”

“아니 방금……!?”

분명 GI 스테이플러도 마무리한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라운드를 한 번 더 한다는 태경의 말을 이찬희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말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테이플러 쓸 거야. 기계 쓰면 요만큼 끝부분은 잘려나가잖아. 맞지?”

“네.”

“그 잘려나간 부분은 필요가 없겠지?”

“맞습니다.”

“자! 그럼 이제 해 봐.”

“예?”

“예가 아니라 해 보라고. 뭐 이렇게 놀라고 그래.”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복강경용 needle holder를 건네는 태경의 표정과 손길을 번갈아 쳐다보던 이찬희의 눈이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

“제가요?”

순간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다시 물어봤지만, 태경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께서 나한테 이걸 해 보라고 하신 거야? 와! 미치겠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속으로 말한 이찬희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서늘한 수술방이 순식간에 열기가 올라 등줄기에 나지도 않은 땀이 폭발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온몸에 솜털이 바짝 서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긴장되네.’

지금까지 어시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집도의인 태경이 하는 걸 직접 해 보는 것이었다.

수술방에서 후배에게 가르침을 주는 건 선배로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막상 당사자는 누구나 떨 수밖에 없었다. 그게 처음이면 더욱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이찬희가 순식간에 긴장한 것도 유난 떠는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거였다.

대단한 실력을 겸비한 태경도 여러 의사도 다 이런 과정을 숱하게 겪으며 진정한 써전으로 성장한 것이다.

“긴장되지?”

“아, 네. 엄청 많이요.”

“그렇다고 너무 긴장할 거 없어. 내가 옆에 있잖아.”

“네. 선생님.”

그렇다. 태경이 함께 있는 것 자체만으로 이찬희에게는 정말 큰 힘이었다.

“이거 받아.”

“네.”

태경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장간막을 끌어다가 밑에 깔았다. 그리고 후배에게 도구들을 넘기고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이찬희! 이거 하나만 기억해. 절대 바늘을 놓치지 말고 화면 밖으로 나가지 마.”

“네! 명심하겠습니다.”

태경의 조언을 머릿속으로 계속 반복한 이찬희는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도구를 잡은 손을 움직였다.

“아니! 아니야!”

그리고 수술방에서 생기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에도 차분함과 침착함을 잊지 않던 태경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헤에! 아니지!”

그러데이션으로 높아지는 목소리가 수술방에 쩌렁대게 울렸고 태경의 처음 보는 모습에 스텝들도 적잖이 놀란 표정들을 보였다.

“거기 말고! 그래! 그렇지 좀 더! 아니, 아니지…….”

“죄, 죄송합니다!”

결국 소장 일부가 실에 뜯어졌다. 기구를 다루는 손길에 너무 힘이 들어간 것이 원인이었다.

이찬희의 사과와 함께 태경이 조용히 스테이플러를 집어넣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니야.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환자한테 아무 영향 없으니까 괜찮아.”

“난 우리 원장님이 수술방에서 이렇게 목소리 높인 건 처음 보는 거 같아요.”

“저도요. 아까는 순간 깜짝 놀랐다니까요.”

“원래 남 가르치는 게 제일 어려운 거야.”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침착한 태경이라고 해도 후배를 가르칠 때는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운전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심장이 뛰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니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 선생, 괜찮아.”

그렇게 몇 년 만에 가장 크게 목소리를 높인 태경은 수술을 잘 마무리한 뒤, 얼이 빠진 이찬희를 위로하며 수술을 끝냈다.

“다들 수고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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