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93화 (392/472)

393화. 포기 안 했는데?

“수술은 잘 끝났고 환자분은 회복실에 있다가 곧 병실로 이동할 겁니다.”

수술방에서 나온 태경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응기 아내에게 남편의 상태를 설명했다.

“잘 회복하실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내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낭종을 제거하는 수술 자체가 다른 수술에 비교해서 큰 수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환자나 가족들 입장에서는 수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긴장되고 겁이 나는 건 사실이다.

남편이 수술하는 동안 마음 졸이고 있던 아내는 이제야 한시름 놓으며 인상을 폈다.

“사실 남편이 별거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이가 그동안 워낙 술을 많이 마셔서 혹시나 다른 곳에 안 좋은 게 있지는 않을까 염려됐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이제야 안심이 되네요.”

“충분히 그런 걱정하실 수 있어요. 수술은 잘 끝났지만 앞으로 절대 술 못 마시게 단단히 말씀해 주셔야 해요.”

“그럼요. 진짜 다시 술 마시면 그땐 이혼 도장 찍는다고 제가 단단히 일러 두었어요. 고생하셨어요. 선생님.”

“별말씀을요. 그럼.”

“네, 수고하세요.”

태경이 보호자 대기실을 나가고 남편이 병실로 이동했다는 말에 아내는 병동으로 올라갔다.

“여보, 괜찮아?”

“괜찮아. 아!”

“왜? 어디 아파? 왜 일어나, 그냥 누워 있어.”

상체를 일으키려던 조응기가 얼굴을 살짝 찡그리자 아내가 말렸다.

“아니, 여기 명치 안쪽이 좀 당기는 거 같아서.”

“선생님 불러올까?”

“아니야. 복강경 수술했던 부위라서 불편할 수 있다고 아까 간호사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어.”

“어휴!”

“왜?”

아내가 베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자 남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웬 한숨이야? 집에 무슨 일 있어? 애들 일이야?”

“애들은 학교 잘 갔고 일은 무슨 일! 당신 때문이지.”

“내가 왜? 나 수술도 잘됐잖아.”

“그렇게 술 마시고 몸 안 좋아져서 당신 이러고 있는 거 보니까 속상해서 그렇지. 내가 이번에 느낀 건데 전에도 말했지만 돈 다 필요 없어. 건강이 최고야.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별생각이 다 들더라. 난 애들도 당신도 그냥 건강하기만 하면 돼.”

지금까지 가족과 친척 중에 수술한 사람이 없었던 아내는 남편의 수술에 느끼는 바가 많았다.

“당신 말이 맞아. 건강하게 사는 거 그게 진짜 가장 큰 재산이고 복이야.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내가 앞으로 진짜 잘할게.”

“됐고! 당신 건강이나 챙겨.”

“하하!”

“뭐야, 왜 그래?”

조금 전까지 수술 부위가 불편하다고 하던 남편이 뜬금없이 웃자 아내는 의아했다.

“그게 아니라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당신이 이렇게 챙겨 주니까 기분 좋아서 그래.”

“참나! 그럼 남편이 아파서 수술했는데 안 챙겨? 그걸 말이라고…….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그럼 울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맞다! 아까 당신 수술했을 때 그 기사님한테 전화 왔었어?”

“택시 기사님?”

“응. 당신이랑 떠들다 보니까 깜빡했네. 당신 괜찮으냐고 물어보시던데 연락해 봐.”

“알았어.”

다리 위에서 만났던 택시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던 조응기는 입원해 있는 동안 택시 회사에 문의해 그의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두 사람은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이다.

조응기에게 수술 소식을 들은 기사는 수술이 잘 끝났는지 묻기 위해 전화를 했던 것이다.

“여보세요? 기사님 접니다. 조응기.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네? 정말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알겠습니다.”

“왜 이렇게 통화를 빨리 끊어?”

“그게 기사님이 면회를 오겠대.”

“면회? 택시 운행하시는 분이 무슨 면회야? 괜찮다고 하지.”

“나도 괜찮다고 했는데 굳이 오시겠다고 해서.”

“지금 오신대?”

“아니, 이따 오후에.”

“진짜 고마운 분이시다. 그러지 말고 당신 이번에 퇴원하면 밥 한 끼 대접해 드려.”

“그러게. 정말 그래야겠어.”

그 뒤, 남편과 함께 있던 아내는 출근하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조응기는 면회 온 택시 기사와 만났다.

“좀 괜찮아요?”

“기사님, 어서 오세요.”

“아침에 수술받았다면서 벌써 이렇게 걸어 다녀도 되는 거예요?”

“큰 수술도 아니고 조금씩 걷는 건 오히려 회복에도 도움 된다고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뭐 하러 면회까지 오고 그러세요. 안 그래도 죄송한데…….”

“죄송할 게 뭐 있어요. 어차피 일 끝나고 들어가는 길에 들른 거라서 괜찮아요. 그래도 손님 표정이 다리 위에서 봤던 날보다 표정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사님 참 대단한 분이세요.”

“제가요?”

“네. 전 솔직히 면회까지 오신다고 해서 놀랐거든요.”

“내가 말했잖아요. 소방대원으로 일해서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그럽니다.”

택시 기사는 소방차 운전사로 일하면서 안타까운 사건, 사고를 많이 접했다. 그렇기 때문에 태경처럼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택시를 운행하면서 조응기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인연을 이어 갔다.

인연이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고 가끔 안부를 주고받은 게 다였지만, 그 마음을 받은 당사자에게는 그게 큰 힘이 됐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요.”

30분 정도 지나고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려고요?”

“얼굴 잠깐 보러 온 건데 이만 가야죠. 그래야 수술받은 사람도 쉬죠.”

“기사님 이거 받으세요.”

조응기는 오전에 아내가 사 놓고 간 케이크와 빵이 든 쇼핑백을 기사에게 건넸다.

“난 빈손으로 왔는데……. 사람 미안하게 뭘 이런 걸 주고 그래요.”

“전 이미 기사님께 큰 걸 받았잖아요. 아내가 꼭 전해 드리라고 신신당부했어요. 가족분들이랑 같이 드세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감사는 제가 해야죠. 퇴원하고 나면 제가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할게요.”

“몸조리 잘하시고 얼른 쾌차하세요. 나오지 마요.”

“기사님도 운전 조심히 잘 들어가세요.”

“알았으니까 얼른 올라가요.”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후문에서 인사하고 들어온 조응기는 병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발길을 갑자기 틀었다.

그러더니 수액걸이를 끌고 응급실 입구에서 안쪽을 이쪽저쪽 살폈다.

“환자분, 뭐 필요하세요?”

마침 응급실에 오가던 간호사가 그 모습을 보며 조응기에게 물었다.

“예?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어디 불편하신 거 아니에요.”

“불편한 거 없어요. 수고하세요.”

간호사가 관심을 보이자 조응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다시 접수처 쪽으로 향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연락처라도 물어보는 건데…….”

그렇게 혼잣말하며 가족에게 전화를 걸려 하던 바로 그때였다.

“……!”

뭔가 발견한 조응기가 수액걸이를 밀며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저기? 잠시만요.”

하지만 오늘 아침에 수술한 탓에 아직 평소처럼 빨리 걷는 게 쉽지 않았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던 조응기는 정문 쪽에 있는 장득칠에게 부탁했다.

“보안요원님, 방금 나간 그분 좀 잡아 주세요.”

“저분이요?”

“네, 빨리요!”

“어르신? 어르신!”

“아, 왜 불러?”

이제 막 정문 입구 계단을 내려가던 노인을 장득칠이 쫓아가며 부르자 노인이 걸음을 멈추며 버럭 소리를 높였다.

“바쁜 사람 왜 불러 세우고 야단이야? 나한테 할 말 있어?”

인상을 팍 쓰며 까칠하게 반응하는 노인은 바로 조응기에게 바른 소리를 했던 응급실에 시한부 할아버지였다.

“제가 할 말이 있는 게 아니라 저분이 어르신 좀 잡아 달라고 했어요.”

“누구?”

노인이 고개를 돌리자 조응기가 수액걸이를 밀며 다가왔다.

“어르신, 안녕하셨어요?”

조금 전, 응급실을 기웃거리던 이유가 바로 이 노인 때문이었다.

조응기는 응급실에서 장신이 확 들도록 혼내 준 노인이 택시 기사 못지않게 고마웠다. 그래서 노인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때 노인의 상태를 봐서는 병원에 자주 올 것만 같았고, 혹시나 한 마음에 응급실을 갔던 건데 진짜로 만날 줄을 몰랐다.

“저 기억하시죠?”

조응기는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왜 몰라? 내가 몸은 고장 났어도 머리는 멀쩡해? 그때 응급실에서 죽는다고 설치던 놈이잖아.”

“예, 어르신. 그때 설치던 놈 맞습니다.”

“곧 죽을 사람처럼 굴더니 아직 살아 있네?”

“죽긴요. 그때 어르신한테 제대로 혼나고 정신 차렸습니다. 저 술도 끊었어요.”

“그래? 그거 아주 기특한 생각을 했네. 그런데…….”

노인은 조응기를 위아래로 훑은 뒤 말을 이었다.

“꼭 병든 닭처럼 해가지고는 여태 입원복을 입고 있어?”

“오늘 아침에 낭종 제거 수술을 해서 입원했어요.”

“술 많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니야?”

“뭐, 결과적으로 그렇기는 합니다.”

“고생했네. 수술이야 뭐, 원장님이 했으면 물어보나 마나 잘됐겠지.”

“네, 아주 잘됐습니다.”

“그래, 그럼 몸조리 잘해.”

“아니, 어르신 잠깐만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노인이 자리를 뜨려 하자 조응기가 다시 붙잡았다.

“아직 얘기도 안 끝났는데, 가시면 어떡해요?”

“병원에서 볼일 끝나서 내 갈 길 가겠다는 건데 자네가 왜 야단이야? 이래 봬도 나도 바빠.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네, 할 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조응기는 정중하게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그날 어르신께 혼나지 않았다면 솔직히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술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계속 술에 의지했겠지.”

“맞습니다. 어르신께서 사람 하나 살리셨어요.”

“자네를 살린 건 이 병원 원장님이지 내가 아니야. 어쨌든 표정을 보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정신 차린 거 같긴 한데……. 지금 그 마음이 계속될 거 같지?”

“그럼요. 저 진짜 제대로 정신 차렸습니다.”

“뭐, 지금이야 그렇겠지? 자네 말이야. 사람 마음이 언제 해이해지는지 알아?”

“예?!”

노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조응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익숙해질 때. 사람은 말이야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익숙해지면 다시 마음이 해이해져서 나도 모르게 같은 실수를 하게 돼 있어. 지금이야 그때 내가 한 말과 몸이 안 좋고 그래서 정신을 차린 것처럼 느껴지겠지.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힘든 순간이 오면 ‘젠장! 그때 콱 죽어 버릴걸.’이란 말과 함께 힘들다는 핑계로 또 술을 입에 댈 거야. 왜 그러냐고? 사람의 의지는 그렇게 강하지 않거든.”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 어떤 건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이 악물고 살게요.”

“그 되지도 않는 소리 그만하고 그거 자네 핸드폰이지?”

노인은 수액걸이 작은 선반 안에 있는 휴대폰을 가리켰다.

“네.”

“그걸로 나 좀 찍어 봐.”

“제 폰으로 어르신 사진을 찍으라고요?”

“그래. 물어보지 말고 얼른 찍기나 해.”

찰칵-

“삭제할 수 있으니까 몇 장 더 찍어.”

찰칵- 찰칵-

노인의 말에 조응기는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러 사진을 찍었다.

“이제 됐어.”

“저기, 어르신 사진은 왜 찍으라고 하신 건지…….”

“살다가 또 힘든 순간이 오면 그땐 내 사진을 봐. 핸드폰 속에 있는 초라하고 병든 내 모습을 보면서 그때 응급실에서 내가 했던 말을 떠올려. 그러면 또 열심히 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될 거야.”

“……!”

생각지도 못한 노인의 말에 조응기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항상 경각심을 갖고, 나 대신 자네가 열심히 살라고. 알았어?”

“네, 열심히 살겠습니다. 대신 어르신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살아 주세요.”

“나 포기 안 했는데?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 갈 거야.”

“어르신 연락처 있으면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됐어. 귀찮게 무슨 연락이야. 인연이면 오고 가다 또 보겠지.”

괴팍하고 까칠한 노인은 마지막까지 조응기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간 진짜 귀인이었다.

“어르신, 아프지 마세요.”

“자네나 건강해.”

병원 정문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조응기는 노인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빌었다.

‘부디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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