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98화 (397/472)

398화. ……!

“예, 작은 사모님.”

“그러니까 아주머니 말은 진이 아빠랑 내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우리 진이를 저렇게 만들었고 그 말을 우리 시어머니에게 들었다는 거죠? 맞아요?”

“맞습니다. 아주 정확히 이해 하셨슴다.”

“아주머니 정말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말한 거 맞아요? 거짓말 아니죠?”

김연주 못지않게 놀란 이재산 역시 가정부에게 진위를 물었다.

“거짓말이라니요. 당치도 않슴다. 제가 깡촌에서 태어나 배운 건 없지만, 남을 속이면서 살지는 않았슴다. 처음 큰 사모님을 뵙고 이 집에 들어오는 조건도 무조건 내가 하는 말만 믿고 내 말을 잘 들으라고 했기 때문에 전 그대로 따른 것뿐입니다.”

“아주머니. 저랑 남편은 이상한 단체에 빠진 것도 아니고 사이비 종교를 믿지도 않아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와이프 말이 정말이에요.”

“그럼 그 병원이라는 단어가 암호가 아니라 진짜 병원을 뜻하는 말이었슴까?”

“그럼요. 지금 아주머니에게 가족에게 있던 일까지 전부 말해 드릴 수는 없지만, 예전에 가슴 아픈 일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딸이 아파도 병원에 데려갈 수가 없었어요.”

“아니, 자식이 아파 저러고 있는데 병원에 데려갈 수 없었다는 게 고거이 무슨 말인지…….”

가정부는 아픈데 병원을 데려갈 수 없다는 김연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할게요.”

“속 시끄러운 일이면 고저 애써 말하지 마시라요. 전 괜찮슴다. 그것보다 큰 사모님께서도 병원을 데려가는 걸 싫어하시나요?”

“어머니는 우리보다 병원을 더 싫어하세요. 솔직히 저랑 와이프 역시 병원에 가고 의사를 만난다는 게 아직 걱정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아주머니도 진이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고 의사한테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남편의 말이 끝나자 가정부 옆에 앉아 있던 김연주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 세상에! 작은 사모님 날래 일어나시라요. 무릎 상합니다.”

그 모습을 본 가정부도 덩달아 무릎을 꿇으며 김연주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아까 저한테 그랬죠?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저도 그래요. 다른 건 몰라도. 내 자식 관련된 일인데 제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한 글자 한 글자 말하는 김연주는 절실하다 못해 절박함까지 느껴졌다.

“어머님이 알면 진이 계속 저렇게 있어야 하고 그러다가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모른 척해 주시고 우리 좀 도와주세요.”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하는 김연주를 본 가정부 역시 금방이라도 따라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울지 마시라요. 제가 돕겠슴다. 전, 두 분께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오해했다는 걸 알게 된 가정부는 두 사람을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같은 엄마로서 아픈 자식 일이 얼마나 애타고 마음이 아픈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전 두 분이 하는 그 어떤 이야기도 큰 사모님께 전하지 않고 못 들은 척하겠슴다. 그러니 고조 마음 놓으시라요. 그동안 저 때문에 마음 상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그런 말 마세요. 제 마음 알아줘서 고마워요.”

가정부와 대화가 잘된 부부는 딸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당신 괜찮아?”

“하아!”

땅이 꺼질 듯 쏟아지는 깊은 한숨이 아내가 괜찮지 않음을 대변했다.

“아니 안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어머님께서 어떻게 이래? 산이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건 잘 알겠지만 이건 좀 너무하신 거 같아.”

“맞아. 이건 어머니가 지나친 거야. 일단 진이 문제가 급선무니까 문제는 내가 나중에 확실하게 말씀드릴게. 그리고 이따 퇴근하면서 병원에 가 볼 거야.”

“오늘 당신 퇴근하고 진이 병원에 데려가자고? 그런데 여보, 진이를 어떻게 병원에 데려가지? 어머님을 어떻게 속이지?”

딸을 병원에 데려가 의사에게 진료를 보고 싶었지만, 막상 시어머니란 큰 산을 어떻게 넘어야 할지 뾰족한 수가 생각나질 않았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며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어머니를 피해 병원에 간다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고민하는 김연주에게 이재산이 입을 열었다.

“데려올게.”

“뭐! 데려오다니 누구를?”

“누구긴. 의사지.”

“의사?”

“우리가 갈 수 없으면 의사를 데려와야지.”

“의사를 집에 데려오겠다고? 그게 가능해?”

“우리 진이를 위한 일인데 안 돼도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내가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해 볼게. 당신은 걱정하지 말고, 진이만 잘 보고 있어.”

이재산은 단호한 표정으로 아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 *

그날, 오후 옥탑방-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태경의 모친인 이 여사는 서울의 볼일을 마치고 아들의 자취집을 찾았다.

집에서 준비해 온 밑반찬을 냉장고에 두고 나오려는데 청소가 필요한 집을 보며 두 손을 걷어붙였다.

“이게 뭐야.”

태경이 집보다 병원에 있는 날이 더 많아서 눈에 띄게 지저분하지는 않았지만, 깔끔한 이 여사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현관문이랑 방에 있는 창문을 싹 열어 환기한 뒤, 청소기를 돌리고 방바닥을 닦고 밀린 빨래까지 전부 해치웠다.

“이렇게 먼지가 많은데 그냥 앉은 거야?”

하다못해 이 여사는 옥탑에 있는 평상까지 깨끗이 닦으며 청소를 마무리했다.

“이제야 좀 깔끔하니 속이 다 시원하네. 집에 있는 것보다 병원에 있는 게 더 좋다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잠시 아들을 걱정하던 이 여사는 문단속한 뒤 옥탑방을 내려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에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기다리던 이 여사는 핸드폰을 들어 태경에게 전화하려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 엄마야. 엄마 볼일 때문에 서울 왔다가 집에 들러서 밑반찬 몇 가지 넣어뒀어. 끼니 잘 챙겨 먹고 혹시 얼굴 잠깐 볼 수 있니?

전화로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었지만, 혹시라도 수술 중이거나 진료 중이면 방해가 될 거 같았다.

“바쁜데 내가 괜히 보냈나?”

메시지를 괜히 보냈나 싶어 그냥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이 여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들! 엄마야.”

전화를 건 사람은 태경이었다.

-서울 오시기로 한 날이 오늘이셨어요?

“너 엄마 서울 오는 거 알고 있었어?”

-저번 주에 형이랑 통화했는데 형이 알려 줬어요. 지금 집이세요?

“반찬 두고 이제 집에 갈까 하고 버스 정류장 왔다가 너 시간 되면 보고 갈까 해서 연락했지.”

-힘든데 뭐 하러 청소하셨어요. 그냥 두시지.

“그냥 두기는 먼지가 보이는데 어떻게 그냥 둬. 집에 오면 환기 꼭 시켜.”

-그럴게요. 바로 병원으로 오시는 거죠?

“너, 시간 돼? 안 바빠?”

-잠깐 괜찮아요.

“괜히 바쁜데 그러는 거면 엄마 그냥 버스 타고 가면 되니까 괜찮아.”

-우리 이 여사, 아들 얼굴 보고 싶으시면서 괜히 그러신다.

“엄마가 자식 보고 싶은 거 당연하지. 너 정말 괜찮아?”

-괜찮다니까. 아직 그렇게 바쁘지 않아요. 조금 전에 수술 끝내고 쉬고 있었어요.

“그래. 알았어. 택시 타고 얼른 갈게.”

-네, 조심히 오세요.

전화를 끊은 이 여사는 오랜만에 아들을 본다는 사실에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택시를 잡았다.

“택시!”

* * *

우리병원-

“혹시 아팠어요?”

의진이 자궁경부암 검사를 끝내고 진료 의자에 앉은 젊은 여자 환자에게 물었다.

“아니요. 선생님 말씀대로 조금 불편할 뿐이지 아픈 건 전혀 없었어요. 결과는 언제쯤 나올까요?”

“보통 일주일 정도면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생리양이 줄은 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일단 요번 달 생리할 때 어떤지 봐요.”

“네, 선생님. 안 그래도 제가 요즘 시험 기간에 따로 자격증 공부까지 하느라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우리 몸에 가장 좋은데 사실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가 없잖아요. 최대한 좋은 생각 하면서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좋아요.”

“맞아요. 제가 성격이 예민해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저 사실 이번에 산부인과 국가검진 처음 받아 보거든요.”

“그래요? 산부인과 처음 왔어요?”

“네, 그래서 엄청 떨렸어요.”

“당연하죠. 처음 오시는 분들은 대개 긴장하고 떨리고 그래요.”

“맞아요. 집이랑 가까워서 왔는데 선생님이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도 잘해 주셔서 오길 잘한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네.”

처음 산부인과를 방문했다던 여자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나가고, 곧이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예약 환자?”

태경이 진료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아니요. 예약 환자는 아까 갔어요.”

“오늘 예약 환자 때문에 한 시간 일찍 온 거야?”

“네. 산모님이 태교 여행 가는 데 가기 전에 급하게 진료 볼 일이 생겨서 제가 일찍 온다고 했어요.”

“좋은 의사네.”

“선배만 하려고요. 응급실 급한 거 없죠?”

“아직은.”

“지금 외래 예약 있어요?”

“아니, 없는데.”

“그럼…….”

의진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외래 시작까지 40분 정도 남았으니까 떡볶이 먹으러 갈래요?”

“의진아, 미안한데 떡볶이는 이따 먹어야겠는데.”

“괜찮아요. 선배 일 있어요?”

“아니, 일이 아니라 어머니 오시는 중이라서.”

“……!?”

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에 의진은 순간 말이 없었다.

태경의 어머니께서 오신다는 말은 미래 시어머니가 오신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런데 아직 정식으로 인사도 드리지 못한 상황에서 이렇게 갑자기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의진은 병원에서 일할 때 썬 크림만 바르고 가볍게 입술만 바르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출산 환자를 받아야 할 수도 있었기에 화장하는 걸 선호하지 않았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지금 선배 어머님께서 병원에 오신다는 말이죠.”

“어. 맞아.”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말해요.”

“너 보러 오시는 거 아니고, 서울에 볼일 있어서 오셨다가 잠깐 내 얼굴 보러 오시는 거야.”

“그래도 둘이 같이 일하는 거 아시는데 어떻게 인사를 안 드려요. 그건 예의가 아니죠.”

“미안해서 그러지.”

“이게 뭐가 미안할 일이에요. 나 지금 상태 괜찮아요? 각설이 같지 않아요?”

“뭐? 각설이?”

“아니, 너무 프리하지 않나 해서요.”

“이렇게 예쁜 각설이도 있어?”

태경의 눈에는 긴장한 의진의 모습이 귀엽게만 보였다.

“웃지 말고요. 나 지금 진지하거든요?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에 고대기도 하고 힘 좀 주고 올걸.”

의진은 가방에서 쿠션을 꺼내 얼굴에 바르고 화사한 색으로 립스틱도 다시 발랐다.

“너 이럴까봐 말 안 하려고 한 거야. 먼저 한 번 봤잖아. 그런데도 신경 쓰여?”

의진은 일전에 태경의 옥탑방을 갔다가 이 여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신경 쓰이죠. 그때는 갑가기 본 거라 가볍게 인사만 드렸고, 이야기도 많이 못 했잖아요. 그리고 어쨌든 얼굴 뵙는 건데 좋은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은 건 당연한 거예요. 나 괜찮아요?”

“지금이 어때서?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좋아.”

“참나! 됐네요.”

그렇게 두 사람 귀여운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이 여사가 병원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어머, 반가워요. 우리 또 보내요.”

잔뜩 긴장했던 의진은 이 여사와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임 선생님, 저 30분만 나갔다가 진료 시간 맞춰서 들어올게요. 응급환자 오면 바로 콜 하세요.”

“네,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다녀오세요.”

태경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참이었다.

“병원이 생각보다 크네. 깨끗하고 좋다.”

아들이 원장으로 있는 병원을 본 이 여사는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다.

“진작 보여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환자 보느라 바빠서 그런 걸 뭐가 죄송해. 왜? 나가려고?”

태경이 정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이 여사가 멈칫하며 물었다.

“밥 사 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옆에 커피숍 가려고요.”

“일 없어. 이 시간에 커피 마시면 밤에 잠 못 자.”

“거기 차도 있어요.”

“그러지 말고 너도 진료 봐야 하는데 여기서 얘기해.”

“여기서요?”

“그래. 저기 벤치도 있네.”

이 여사가 병원 앞마당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괜찮으시겠어요?”

“병원도 잘 보이고 운치 있고 좋은데 뭘. 저기 앉자. 얼른 와.”

그렇게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 이 여사 어디 아픈 곳 없지?”

“네, 엄마 아직 건강하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보다 태경아?”

“네.”

“엄마는 보면 볼수록 마음에 쏙 들어.”

“의진이요?”

“그래.”

이 여사는 아주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어쩜 저렇게 사람이 싹싹하고 예의도 바르고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니. 그리고 아까 인사하면서 얼굴 자세히 봤는데 네가 말한 것보다 훨씬 어려 보이던데? 먼저보다 더 예뻐진 거 같아.”

“의진이가 원래 동안이긴 해요. 그래도 우리 이 여사가 마음에 든다니 기분 좋네.”

“아들이 좋다는 여자인데 엄마가 마음에 안 들 게 뭐 있어.”

“잠시만 계세요.”

한참 이야기하던 태경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환자 때문에?”

“아니요. 음료수 갖고 오려고요.”

“아휴! 괜찮다니까.”

“제가 안 괜찮아요. 금방 갔다 올게요.”

그렇게 이 여사를 벤치에 두고 태경은 입구로 걸어갔다.

“……!”

그런데 입구를 향해가던 그의 발길이 급브레이크에 걸린 자동차처럼 멈춰 섰다.

‘뭐지?’

그와 동시에 그의 미간이 좁혀지며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