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399화 (398/472)

399화. 어처구니없는 사고

그런데 입구를 향해 가던 그의 발길이 급브레이크에 걸린 자동차처럼 멈춰 섰다.

‘뭐지?’

그와 동시에 그의 미간이 좁혀지며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순간 다섯 번째 바이탈이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아주 미세하고 미약했지만, 4단계인 포르말린 냄새가 느껴졌다.

‘이건? 그때 그 냄새?’

그리고 태경은 지금 느껴지는 다섯 번째 바이탈이 며칠 전 접수처에서 느꼈던 패턴과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리가 아프다며 진료를 본다고 접수했다가 사라졌던 여자. 그 여자에게도 지금 같은 포르말린의 잔향이 간헐적으로 났었다.

냄새가 워낙 독특한 패턴으로 났었기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발에 접착제라도 붙은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던 태경이 그 상태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 또 한 발짝 뒤로 갔다.

“원장님 뭐 하세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장득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집중하고 있던 태경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뒤로 옮기던 발걸음을 멈칫하고 다시 원래 있던 앞으로 이동했다.

‘뒤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뒤로 갈수록 옅어지는 냄새에 태경은 확신했다.

이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병원 안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태경이 입구를 지나 병원 안으로 막 들어가던 바로 그때였다.

“제발! 원장님 좀 만나게 해 주세요.”

웬 남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심히 보던 태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환자분. 원장님 진료는 조금 기다리셔야 해요. 그리고 먼저 대기하고 계신 분들이 있어서 응급이 아니면 순서대로 진료를 봐야 합니다.”

“선생님, 제가 너무 급해서 그럽니다.”

“급하시면 저희 다른 선생님들도 계시니까 일단 접수부터 하시고 도와드릴게요.”

“아니요. 전 김태경 원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어떻게 좀 안 될까요?”

임정숙 간호사가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해도 계속해서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남자는 아내와 병원에 가는 문제로 심각하게 이야기하던 이재산이었다.

“간호사 선생님. 잠깐, 아주 잠깐이어도 좋으니까 원장님만 뵙게 해 주세요.”

“그럼 일단 접수부터 하시고…….”

“무슨 일이죠?”

임정숙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전에 태경이 남자에게 다가와 물었다.

작은 소란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자에게 다가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입구 근처에서 느껴지던 미세한 포르말린이 바로 이 남자에게서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건, 그때 접수처 직원의 말로는 분명 여자였다고 했는데 지금은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남자에게서 분명 포르말린 냄새가 나고 있었지만, 남자의 다섯 번째 바이탈이 아니었다.

포르말린 냄새가 남자에게서 나는 거라면 지금처럼 계속 미세한 강도로 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다섯 번째 바이탈은 점점 강하게 풍겨야 정상이었다.

이 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태경은 이쯤에서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이렇게 미세한 냄새가 나고 있다는 건 이 남자와 관련 있는 다른 사람이 아픈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 벌써 오셨어요?”

“마당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가 음료수 가지러 들어왔어요.”

“원장……. 혹시 김태경 원장님이세요?”

“예, 맞아요. 제가 김태경입니다.”

“원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이분이 계속 원장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무슨 일인데 그러시죠?”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급해서 막무가내로 원장님을 찾았습니다. 혹시 저랑 잠시 대화할 수 있을까요? 잠깐이어도 괜찮습니다. 긴 시간 아니어도 됩니다.”

다섯 번째 바이탈 4단계인 미세한 포르말린 냄새를 풍기며 도와달라는 남자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특히나 병원까지 와서 이 정도로 부탁하는 건 분명 환자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더 그랬다.

접수처에 걸린 시계를 보던 태경이 임정숙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외래 시작할 때까지 시간 좀 있죠?”

“네, 원장님. 20분 정도 있어요.”

“그러면 잠깐 저 남자분과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저기 원장님?”

임정숙 간호사가 돌아서는 태경에게 급히 물었다.

“어머님은요?”

“……!”

순간 남자 때문에 잠시 어머니를 잊고 있었다.

“이런, 어머니가 밖에 계신 걸 제가 깜빡했네요.”

“제가 가 볼게요.”

어머니를 바로 보내야 하나 싶던 그때 의진이 다가왔다.

“정 선생이?”

“네, 어머니께 가 볼 테니까 선생님은 편하게 대화하세요.”

“고마워, 정 선생.”

“별말씀을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의진은 챙겨 온 차와 함께 벤치로 향했다.

“저기, 어머님……?”

“어머, 세상에!”

벤치에서 태경을 기다리고 있던 이 여사는 의진이 다가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배가 급한 환자 때문에 자리를 비워서 제가 왔어요. 이거 대추차인데 드세요.”

“나 혼자 있어도 되는데……. 마음 써 줘서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막 반말하면 안 되죠. 나 때문에 괜히 바쁜 선생님 시간 뺏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니에요. 시간 있어서 나온 거라서 괜찮아요.”

“우리 태경이가 잘해 줘요? 무심하지는 않고? 병원이랑 환자밖에 모르는 놈이라 여자 친구에게 잘해 줄지 모르겠네.”

“아니요. 선배 되게 따뜻하고 배울 점도 많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인데 태경이가 어딜 때부터 그런 면모가 있었어요. 생전 여자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태경이가 의진 씨 이야기를 참 많이 했어요.”

“선배가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기회가 되면 나한테 소개해 주고 싶다고 하더라고. 태경이가 그 이야기를 하는데 세상에 눈에 생기가 도는 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많이 좋아하는구나 싶었죠. 이미 다 큰 자식 어련히 알아서 잘 만날까 싶으면서 그래도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태경이가 말한 것보다 더 좋은 사람 같아요.”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태경이 좋아해 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어머님. 저도 선배가 절 좋아해 줘서 고마운데요.”

“말도 참 예쁘게 하네.”

이 여사는 의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 갔다.

* * *

의진과 이 여사가 대화하고 있던 그 시각 태경은 이재산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제 무슨 일인지 말해 보시겠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에게는 딸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아이가 많이 아픕니다.”

이재산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미세하게 풍기는 포르말린 냄새가 딸에게서 나는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증상이 어떤가요?”

“배가 점점 부풀어 오르고 통증을 호소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럴 게 아니라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오셔야죠.”

“맞습니다. 그런데 반대가 심해서요.”

“반대요?”

“네, 어머니와 같이 사는데 어머니가 극렬히 반대해서 병원에 올 수가 없습니다.”

“아……! 어머님께서 특정 종교를 믿으시나요?”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태경은 사이비 종교에 빠졌나 싶었다.

이미 환자 중에 그런 일을 겪었던 사람이 있었기에 또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했다.

“아니요. 그런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된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순전히 병원 때문입니다.”

“병원? 제가 좀 이해가 안 가는데 어머님이 아무리 병원 가는 걸 반대해도 와이프분과 둘이서 딸을 병원에 데려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자식이 아프면 내 목숨까지도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었다.

그런데 복부가 부풀어 오를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는 딸을 어머니가 반대한다고 그냥 두고 있는 부부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뿐만 아니라 저랑 와이프 역시 병원에 죽어도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원장님. 혹시 신화대학병원을 아시나요?”

“네, 당연하죠.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곳이잖아요.”

신화대병원 전 원장인 고계득 일과는 별개로 병원 자체로만 본다면 의료 장비나 인력 등 최고의 병원이 맞았다.

“저기서……. 그 신화대학병원에서 제 아이를 죽였습니다.”

“네……?!”

뜻밖의 대답에 놀란 태경은 이재산을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지금 딸아이 말고 첫째인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일이 어제 일처럼 선명한 이재산은 괴로운 기억을 꺼내기 쉽지 않은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쓰린 기억을 설명했다.

“그 당시에 우리 아들은 병도 아니었고 독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 기운인가 싶었는데 아닌 거 같아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내는 이왕 가는 거 좋은 병원으로 가자고 했고 최고의 병원이라는 것만 믿고 신화대병원에 입원시켰죠. 그런데 어이없게도 아이가 의료사고로 갑자기 죽었습니다.”

“아……!”

이재산과 김연주 그리고 시어머니까지. 온 가족이 병원을 극도로 싫어했던 이유가 바로 아들의 죽음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그 이유가 기가 막힐 정도로 어이없었어요. 구강으로 복용하는 것을 아이 정맥에 넣은 겁니다. 아들 얼굴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질리더니 한 시간도 안 돼서 죽었어요. 단순한 독감을요. 그냥 독감이었다고요.”

지금 생각해도 울화가 치밀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에 이재산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태경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재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잊고 있던 신화대병원 의료사고 건이 생각났다.

신화대병원에서 근무했던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 당시 자식을 잃은 부부의 통곡 소리가 병원 복도에 사무치게 울렸고, 가족들이 기절까지 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었다.

당직이었던 태경 역시 다른 환자를 보고 당직실로 올라가다 오열하는 부부의 울음소리를 들었었다.

그날 그 울음소리가 어찌나 처절하고 사무치던지 당직실로 올라와서도 먹먹한 마음에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명복을 빌었다.

그런데 그 의료사고를 당한 가족이 이재산일 줄은 몰랐다.

신규 근무자의 어이없는 의료사고로 병원이 뒤집혔던 큰 사건이었다.

생명을 다루는 일에 늘 긴장하며 집중해야 하지만, 의료도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실수의 결과가 이렇게 생명으로 직결되기에 너무나 무서운 것이다.

이런 실수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때 그 사건 이후 가족들이 병원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어머님께서 특히 더 심해진 거군요?”

“불신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해요. 솔직히 저랑 와이프도 아직 병원이란 곳이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어렵게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그 정도가 심하세요.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 많으신 분인데 특히 첫 손주에 대한 마음이 크셨어요. 그 뒤로 완전히 다른 분이 되셨습니다.”

“다른 분이요?”

“네. 확인도 근거도 없는 치료 사례를 들면서 딸을 치료하시려고 해요. 어느 날은 무슨 기적으로 병을 낳고 그 뒤로 아픈 사람들의 치료를 돕는다는 사람을 데려와서 아이에게 그 기운을 줘야 한다고 한 일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저도 이런 방법이 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

“사실 어머니도 진이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무서운 거죠. 아이가 병원에 가는 순간 갑자기 마음의 준비도 못 하고 손주를 떠나보낸 기억 때문에 아이가 죽게 될 거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계세요.”

“그 아픈 기억 때문에 병원을 마치 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상황이네요.”

“맞아요. 어머니에게 병원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원수 그 자체에요. 원래 이런 분이 아니세요. 저랑 회사도 운영하고 계시고 머리도 좋으신데 과거 일 때문에 변하셨어요.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지시니까 결국 와이프도 휴직하고 아이만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우리 가족의 이런 모습이 이해되지 않겠지만, 그 경험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자식을 잃은 부모의 그 마음은 겪어 보지 않으면 아무도……. 아무도 몰라요. 흐!”

설명하던 이재산은 떠나간 아들이 생각난 듯 잠시 손으로 눈을 가리며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금도 아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 흐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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