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03화 (402/472)

403화. 의료법 위반이 맞다

“당신, 계속 그렇게 버티고 있으면 내가 방문 진료로 인한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할 거야.”

단호한 태경의 답에 눈매가 일그러진 고 여사는 급기야 고소를 운운하며 아들 내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어머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신 거예요.”

“자! 자! 일단 다들 진정하세요.”

보다 못한 경찰관이 중재하며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경찰 선생님, 뭔가 오해가 있던 것 같습니다. 여기 이분께서는 의사 선생님이세요. 손녀딸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어머니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아까 지구대로 들어오셔서 웬 남자가 손녀딸을 위험하게 만든다고 하셨어요. 어찌나 다급하게 말씀하시던지……. 저희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들으면 출동해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경찰관 역시 고 여사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여기 신고자분이 어머님 되시고 이쪽 두 분은 아드님, 며느리 되시죠?”

“네, 맞아요.”

“그리고 여기 선생님께서는…….”

“제 이름은 김태경이고 직업은 의사입니다.”

“혹시 어디서 근무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여울동 우리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여울동 우리병원 김태……. 어!”

“반장님 왜 그러세요?”

태경의 인적 사항을 적던 경찰관이 멈칫하자 함께 온 후배 경찰이 이유를 물었다.

“아니, 잠깐만. 저기 우리병원 원장님 아니세요? 맞죠?”

“맞습니다.”

“맞네! 어쩐지. 어디서 뵌 분 같은데 가운을 안 입고 있으셔서 제가 못 알아봤습니다.”

선배 경찰은 태경을 알아보며 반가워했다.

“와이프 몸이 안 좋아서 새벽에 응급실 갔었는데 그때 원장님께서 진료해 주셨거든요. 그날 환자들이 많아서 인사도 못 드리고 나왔는데 친절하게 설명도 잘해 주시고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신원이 확실하신 분인데 절차 때문에 제가 확인 좀 하겠습니다.”

“당연하죠.”

“네, 신원조회 끝났습니다. 제가 아까 들어보니까 가족분들끼리 내부적으로 소통이 안 된 거 같은데 어쨌든 어머님 말씀은 사실이 아닌 거죠?”

경찰관은 기록에 남겨야 하므로 이재산을 보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 정말 아닙니다. 어머님께서 병원 가는 걸 싫어하셔서 제가 딸아이 진료를 직접 부탁드렸고, 그래서 원장님께서 집에 오신 겁니다. 저희 때문에 어렵게 오셨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기 원장님이야말로 진짜 좋은 의사죠. 아무리 아파도 그렇지 누가 직접 진료를 옵니까? 원장님 참 대단하십니다.”

“아닙니다.”

“어쨌든 어머님, 오해 푸시고 다음에는 가족분들이랑 대화로 잘 해결하세요.”

“네, 바쁘신데 이런 일로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죄송은요. 이런 일 하는 게 우리 일인데요.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잠깐만요! 이대로 간다고요? 조사 안 해요?”

팔짱이 끼고 서 있던 고 여사가 현관으로 가려는 경찰을 불러 세웠다.

“제가 아까 말했잖아요. 이 사람이 방문 진료했다고. 신분이 정확한 의사면 그냥 그렇게 가면 되는 거예요? 경찰관님이 진료받은 의사라서 그러세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아무 잘못한 게 없는데 어떻게 조사를 합니까?”

“왜 잘못한 게 없어요. 의사면 잘못해도 그냥 눈감아 줘야 하나요? 예! 저 사람 의료법 위반이라니까요.”

“어머니! 그만하세요.”

“그만하긴 뭘 그만해.”

“실례지만, 제가 어떤 걸 잘못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점점 더 높아지는 목소리에 보다 못한 태경이 나섰다.

“그쪽 의사라면서요?”

“네, 제가 의사라는 건 여기 계신 경찰관 두 분께서 신원조회를 했고 어르신도 그걸 보신 걸로 아는데요.”

“네, 봤어요. 의사라면 잘 아시겠네요. 의료기관 안에서만 진료를 봐야 한다는 거? 여긴 병원도 아니고 가정집으로 의사가 방문 진료하러 온 자체가 의료법 위반 아닌가요?”

병원이라면 치를 떠는 고 여사는 일반 사람은 모르는 의료법까지 알고 있었다.

직접 찾은 건지 누구한테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 여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아! 그러네요. 반장님. 저분 말이 맞아요.”

후배 경찰이 핸드폰으로 찾은 의료법을 빠르게 말했다.

“의료법 33조에 보면 의료인은 이 법에 따른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아니하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으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그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여야 한다.”

“거봐요. 내 말이 맞죠? 그러니까 얼른 저 사람 데려가서 조사하세요.”

“반장님 어떡하죠?”

“…….”

후배의 물음에 선배 경찰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물론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방문 진료인 일명 왕진으로 의료행위를 한 것은 정확히 따져 물으면 의료법 위반이 맞다.

하지만 이런 경우 무작정 태경을 지구대로 데려가는 것도 애매했다.

아픈 아이를 위해 일부러 온 사람에게 의료법을 운운하는 게 양심적으로 과연 맞는 일인가 싶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주변에 여러 이유로 병원에 갈 수 없는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진료 보는 나이 든 의사의 이야기가 나온 적도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 부탁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진료했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은 누구 하나 그 의사에게 의료법 위반이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TV까지 출연해 결국 훌륭한 시민상까지 받았다.

선배 경찰은 그 나이 많은 의사와 태경이 뭐가 다른가 싶었다.

둘 다 똑같이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도와주려는 선한 마음을 가진 의사일 뿐인데 굳이 거기에 법을 운운하고 싶지 않았다.

“반장님 어떡하죠?”

“내가 얘기 잘해 볼게.”

심각하게 고민하던 두 경찰은 고 여사와 대화를 통해 풀어볼 생각이었다.

“무슨 얘기가 이렇게 길어요. 어서 저 사람 데려가라니까요.”

“아니요. 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경찰관님?”

의견을 주고받는 경찰관에게 고 여사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자 태경이 두 경찰에게 다가갔다.

“네, 원장님.”

“전 의료법 위반이 아닙니다.”

“그래요?”

“위반이 아니라니! 저거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반색하는 경찰과 달리 고 여사가 반박하며 나서자 태경이 고 여사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경찰관님이 말한 의료법 제33조 뒷부분에 보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그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여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나요?”

“네, 원장님 정확합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다음 각 호의 경우를 제가 말씀드리죠.”

태경은 차례대로 방문 진료에 관한 의료법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나열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 1호에 따른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경우. 둘째,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하는 경우. 셋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요청한 경우. 넷째,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가정간호를 하는 경우. 다섯째, 그 밖에 이 법 또는 다른 법령으로 특별히 정한 경우나 환자가 있는 현장에서 진료를 하여야 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입니다.”

마치 책을 보는 것처럼 막힘없이 말하는 태경을 보며 모든 사람이 집중했다.

“지금 2층에 있는 아이는 응급환자이며 그에 따른 진료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러면 아까 말한 첫 번째 경우에 해당됩니다. 또한 전, 아이의 아빠인 보호자 이재산 씨의 요청에 따라 방문 진료를 왔으므로 이 또한 두 번째 경우에 해당됩니다. 여기 증거 기록도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경은 핸드폰에 저장된 녹음 파일을 클릭했다.

-원장님. 딸을 위해 우리 집까지 직접 진료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호자의 요청으로 제가 방문 진료하러 온 걸 인정하시나요?

-그럼요. 김태경 원장님은 나, 이재산의 요청으로 딸의 진료를 위해 우리병원으로 원장님을 찾아가 방문 진료를 요청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보다 더 정확하고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조금 전, 태경이 집에 들어가기 직전 이재산과 대화하며 녹음한 내용이었다.

시어머니가 강하게 반대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던 태경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녹음을 한 것이다.

실제로 환자 요청에 따라 방문 진료를 했다가 환자가 아닌 가족들로부터 고소당한 사례들이 있었다.

병원에서 출발하기 전, 의진은 물론이고 임정숙 간호사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염려했지만, 이미 다 계획이 있었다.

이재산의 녹음은 만약에 사태에 대한 일종의 안전장치였고, 태경의 예상은 적중했다.

“원장님은 제 부탁으로 오신 거 맞습니다. 도움을 받고자 무작정 찾아갔는데 싫은 티 내지 않고 흔쾌히 도움을 주신 분이에요.”

“아주 완벽하네요. 완벽해.”

고 여사가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의사와 견줄 수는 없었다.

그것도 일반 의사도 아닌 의사들 사이에서도 천재로 통하는 태경에는 소용없었다.

“어르신도 들으셨죠? 아드님께서 어렵게 부탁해서 집에 오신 거라고 하시네요. 증거 녹취까지 들어 본 결과 원장님께는 그 어떤 위반 사유가 없습니다. 이견 없으시죠?”

“…….”

말 그대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던 고 여사는 조목조목 팩트로 반박하는 태경 앞에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게다가 녹음 파일까지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 그럼, 더 이상 문제 될 게 없으니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이가 빨리 쾌차하길 바랄게요. 그리고 아무 상관 없는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웬만하면 아이 치료 얼른 하세요. 어른도 아프면 힘든데 애는 오죽하겠어요.”

“네, 경찰관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경찰관들이 자리를 비우고 이재산이 속상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은 고 여사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진이가 많이 안 좋대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상태가 더 안 좋은 거 같아요.”

“내가 그걸 모르니? 나도 안다.”

“우리끼리 얼굴 붉히고 싸울 일이 아니잖아요. 여기 원장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원장님께 진이 맡겨요.”

“아범. 넌 나를 참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구나. 내가 언제 진이를 치료하지 말자고 했니?”

이재산의 말을 듣고 있던 고 여사는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도 엄마야. 자식이 아프면 부모 마음이 어떤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진이 치료? 당연히 해야지. 내가 언제 치료하지 말자고 했어? 아니잖아. 병원에만 가지 말고 치료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말이 왜 안 돼? 사람 몸은 다 자가 치유 능력이 있어. 내 말 못 믿겠으며 서재에 있는 책 한 번 읽어 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병원 안 가고도 병 고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야.”

“어머니. 그건 심각한 병이 아니니까 그렇죠.”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범, 너야말로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진이를 병원에 못 데려가서 안달이니?”

“지금까지는 저도 그게 맞는 줄 알고 있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이제라도 바로잡아야죠.”

“잘못된 게 없는데 뭘 바로잡아! 그러다가 또 산이처럼 진이까지 가 버리면 어쩌려고? 진이까지 죽게 할 셈이니?”

“……아!”

“내가 이번에 용하다는 집에 다녀왔는데 올해 병원에 가면 집에 일이 생긴다더라. 내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고 화를 내니까 예전에 산이가 갔던 때도 안 좋은 기운이 끼어서 그런 건데 이번에도 그 기운이…….”

“어머니! 제발 그만해요!”

태경이 함께 있어 애써 화를 누르고 있던 이재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있는 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진이 할머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태경이 고 여사를 불렀다.

“그쪽은 그만 나가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니요.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그 비통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도가 지나친 언행에 태경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할머니께서는 진이를 사랑하시나요?”

“그게 지금 무슨 말인가요? 그럼 자기 손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죽습니다.”

“뭐라……고요?”

“……!”

무서울 정도의 차분한 어조와 정확한 발음으로 흘러나온 죽는다는 말에 고 여사를 포함한 이재산과 김연주까지 놀란 표정으로 태경을 주목했다.

“제가 이 자리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드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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