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성인 주먹의 3배
딸과 눈높이를 맞춘 김연주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딸을 바라봤다. 그녀는 수술하러 들어가는 어린 딸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가 우리 진이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응. 알아. 나도 사랑해.”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잠자고 일어난다고 생각해. 진이 잘할 수 있지?”
“응. 잘할 수 있어. 나 수술 잘 받고 올 테니까 엄마 울지 말고 아빠랑 같이 있어. 알았지?”
아이들은 아프면 빨리 철이 든다. 또래보다 철이 일찍 든 진이는 수술하러 가는 것보다 엄마가 자신 때문에 울면 어쩌나 그게 더 걱정이었다.
“그럼. 엄마 안 울지.”
김연주는 자기를 걱정하는 딸 때문에 순간 눈물이 쏟아질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아빠가 엄마랑 같이 있을게. 진이는 그런 걱정 하지 마.”
“우리 딸 파이팅!”
“파이팅!”
아이는 엄마를 따라 작은 손으로 주먹을 말아 쥐며 씩씩하게 답했고, 그사이 수술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간호사가 다가왔다.
“진이, 안녕.”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진이 방 안으로 같이 가려고 왔어. 안으로 들어갈까?”
“네. 엄마, 아빠 갔다 올게.”
“진이야, 엄마 아빠랑 여기 앞에 있을게.”
“우리 딸 수술 잘 받고 와.”
“응. 엄마 아빠.”
이재산과 김연주는 간호사와 함께 수술할 방으로 들어가는 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기, 선생님…….”
방문이 닫히자 김연주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태경을 불렀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하고 간절하게 말을 이었다.
“이런 말 너무 염치없지만, 우리 딸……. 우리 딸 진이 꼭 좀 살려 주세요.”
“저와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원장님.”
“그럼 수술 끝나고 뵙겠습니다.”
철컥-
부부와 인사를 나눈 태경은 곧장 수술방 안으로 들어갔다.
“……흑!”
평소에도 수십 번씩 드나들던 안방 문이 굳게 닫히자 엄마인 김연주의 마음은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저 방 안에서 홀로 수술받을 어린 딸을 생각하자 결국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이 저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딸이 아픈 것만 같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찹찹하고 속상했다.
무엇보다 전날 남편으로부터 딸의 병명이 암이라는 사실을 들은 김연주는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어느 정도 어렴풋이 예상했던 남편과 달리, 그 정도로 안 좋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었기에 상당히 충격이었다.
아무리 안 좋아도 암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딸이 받았을 그 고통의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려왔다.
“흐윽!”
“당신 왜 울고 그래. 진이 아픈 거 나으려고 수술하러 들어간 거잖아.”
“뭔가 진이가 저렇게 된 게 우리 때문인 것만 같아서. 미안해서…….”
“연주야,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일단 수술만 잘 끝나길 기도하자.”
이재산은 울고 있는 아내를 위로하며 달랬다.
“여보, 수술 잘되겠지?”
“당연하지. 당신 조금 전까지 진이 앞에서 씩씩하더니 왜 그래.”
“아니, 다른 것보다 암이라고 하니까 자꾸 걱정돼서…….”
“당신 어제 원장님 말씀 기억 안 나? 어머니 설득할 때 원장님이 살릴 수 있다고 하셨잖아. 난 원장님 믿어.”
“나도 믿어.”
“그럼. 지금은 이런저런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원장님께 믿고 기도만 하자. 응? 당신이 힘을 내야지.”
“맞아. 내가 힘을 내야지.”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힌 김연주는 남편과 함께 수술이 잘 끝나길 두 손 모아 기도했다.
* * *
그 시각, 수술방에 먼저 들어간 진이는 팔에 정맥을 잡고 수면을 유도하는 약물이 주입되자 편안히 잠든 상태였다.
“원장님 들어오셨습니다.”
“주사 맞을 때 괜찮았어요?”
“네, 엄마랑 씩씩하게 수술 잘 받기로 했다면서 얼굴만 살짝 찌푸리고 주사는 잘 맞았어요.”
“다행이네요. 오늘 수술이 평소랑 좀 다를 수 있습니다. 늘 하던 수술방처럼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다들 최선을 다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네, 원장님.”
“서로 동선 꼬이지 않게 잘 생각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우선 환자 금식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L-tube(위까지 들어가는 관) 집어넣어서 위를 비워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마취하고 왼쪽이 위로 오도록 눕혀 주세요.”
태경의 오더의 스텝들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기도삽관하고 마취 마저 진행할게요.”
위 속에 남은 음식물을 다 빼고 마취를 진행한 의진이 이어 말했다.
“원장님, 어디 서실 거예요?”
“아이 등 쪽으로 서 있을게요.”
“네. 마취됐습니다.”
“자! 이제 수술 시작합니다. 다들 집중해서 잘 끝내도록 하죠.”
“네, 원장님.”
태경이 본격적으로 수술 시작을 알리자 방에 있는 의료진의 눈빛에 파이팅이 넘쳤다.
태경이 메스로 갈비뼈 아래에 얕게 절개선을 넣은 뒤, 보비(bovie, 전기 소작기)로 깊게 절개해 나가자 근육들이 보인다.
최모나는 리트랙터(retractor, 시야 확보를 위해 나머지 구조물들을 당기는 도구)를 이용하여 근육들을 하나하나 당겼다.
근육을 보비로 절개해 나갈 때마다 근육이 움찔,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손가락 좀 넣고.”
태경이 마지막 근육층을 자를 때 손가락을 넣고 볼록하게 잡아당긴 후 그 손가락 위, 근육에다가 보비를 대고 절개해 나갔다.
그 이유는 장기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자……. 최 선생, 고정하자.”
“네, 선생님.”
태경의 말에 최모나는 철로 된 도구들을 주섬주섬 꺼내서 수술 테이블에 고정했다.
마지막 근육까지 모두 자르고 나니 불투명한 옅은 피, 색의 막이 보였다.
이 막은 파샤(fascia, 근막)로, 신장은 상처 입지 않고 근막만 자르도록 잡아당겨서 절개한다.
이제부터는 신장 주변에 끈덕지게 붙어 있는 지방들을 뜯어내는 단계이다. 지방을 본다면 정말이지 끈덕지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가위나 보비(전기칼)를 이용하면 신장에 손상을 줄 수 있으므로 뭉툭한 쪽으로 그 사이를 비벼서 넣는다.
“이 부분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조심조심해야지.”
태경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손길로 움직였다.
신장은 하나의 장기이기는 하지만 모세 혈관덩어리가 뭉쳐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가 나면 지혈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다 출혈이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현재 아이에게는 얼마만큼의 체액이 있는지 가늠이 안 된다.
“정 선생님. 지금 혈압 괜찮죠?”
“네, 원장님. 괜찮습니다.”
의진이 혈압이 괜찮다고 했지만 아주 안심할 수는 없었다.
비록 지금 혈압이 정상일지라도 오랜 시간 지병으로 인해 혈압이 체액에 비해서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태경이 이토록 혈압을 신경 쓰는 건 혈압이 출혈 정도를 보는 척도가 될 수 있었기에 그랬다.
즉, 약간의 출혈도 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신장의 손상은 없을지라도 중간중간 막을 걷어내면서 미세한 출혈들이 나게 된다. 그런 출혈은 그 위를 보비(전기칼)로 지혈해 나가면 된다.
“이제 요관을 찾아볼까?”
이제 비뇨기관 의사들의 전유물인 유레테(ureter, 요관)를 찾을 차례다.
이 요관은 손상 시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산부인과, 일반외과 모두 다 수술 시 이 요관이 손상될까 봐 굉장히 신경을 쓴다.
따라서 태경도 신장으로부터 방광까지 가는 요관을 지방들 사이에 잘 찾아서 모셔 두라고 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정말이지 모셔 둔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지방과 막을 뜯어 가다 보면 신장 아랫부분에 다른 조직과는 확연히 다른 감각이 느껴진다.
이게 눈으로 보이는 색으로는 명확히 구분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 만져보며 잘 찾아야 한다.
그 주변의 지방들을 잘 뜯어내면 소중한 요관이 등장하고, 잘 모셔 두기 위해 굵은 실로 매듭을 가볍게 지어서 줄을 꺼내 놓는다.
‘아까보다 더하네…….’
신장을 꺼내려 하자 절개를 했을 때보다 강한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그래도 방 안 가득 찬 3단계인 분뇨 냄새가 포르말린보다 강해서 큰 불편함은 없었다.
물론 포르말린 냄새도 섞여 있고 분뇨 냄새가 독할 정도로 강했지만, 이미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에 내성이 생긴 태경은 끄떡없었다.
곧이어 아이를 힘들게 했던 암을 떼어 내기 위해 신장을 끄집어냈다.
막과 지방들을 모두 날린 상태라서 온전히 신장만 그대로 있다.
신장은 혈관덩어리이기 때문에 신장의 일부분을 떼어 냈을 때의 출혈이 장난이 아니다.
“최 선생, 어때?”
“누가 봐도 암입니다.”
“그렇지?”
“네. 암이라 그런지 뭔가 더 기분이 나쁜 느낌입니다.”
“맞아. 나도 그래.”
보기에도 일반 신장 조직과 암 조직은 구분이 가능하다. 경계가 지저분하며 색도 허옇게 되어 있는 암 덩어리는 보기에도 그냥 악해 보이는 느낌을 준다.
“지혈 거즈 꺼내 주세요.”
“뭐로 드릴까요?”
“지금 테이블에 있는 거 그냥 주세요. 시간이 더 중요해요.”
태경은 신장의 출혈이 우려되기에 우리 몸에서 녹는 지혈 거즈를 암과 잘린 신장 단면에 데고서 봉합할 계획이다.
“꽤 크네요.”
“그러게.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네.”
소아라지만 암의 크기가 제법 컸다. 그러니까 외부에서 봤을 때도 보였을 것이다.
정확히 크기를 측정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 봐서는 성인 주먹의 3배는 되어 보였다.
태경은 출혈을 최소로 하기 위해 한 땀 한 땀 자르고 붙이는 것을 할까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온전한 봉합이 힘들 수 있기에 한 번에 암을 자르고 거즈로 막고서 빠르게 봉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자! 이게 거의 다 왔다. 내가 자르면 이 거즈들을 펼쳐서 잘린 신장 면에 잘 고정시켜 놔. 그럼 내가 옆으로 빨리 봉합할게.”
“네! 선생님.”
태경은 거침없지만 정확하게 절개해 나갔다.
물론 당연히 온전한 절개를 위해 신장 쪽으로 절개선이 더 갈 수밖에 없다.
최모나가 거즈를 옆에서 펼쳐 가져다 댔다.
“빨리!”
이제 태경만의 그 특유의 일정하고 정확한 봉합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긴장감도 중요했다.
이유는 봉합과 지혈을 동시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느낌은 외과 의사들이 여타 장기를 봉합할 때와는 다르다.
그 미묘한 봉합의 차이를 알아내고 파랜카임(parenchyme, 실질. 장기의 실질적 기능을 하는 조직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는 감각이 정말 어렵다.
약하면 출혈이 생기고 너무 강하면 신장 주변 부분에 손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순전히 감각의 영역으로 집중해서 잘해야 한다.
비집고 나오는 혈액으로 인해 이미 지혈 거즈는 하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한 뒤였다.
“……!”
태경의 완벽한 봉합에 순간 저도 모르게 정신이 팔렸던 최모나가 중요한 것이 생각난 듯 놀라며 움찔했다.
“선생님! 프로즌 바이옵시(frozen biopsy, 동결절편. 절단면에 암세포가 없는지 확인하는 수술 중 응급 병리 검사) 결과도 안 나왔습니다.”
“응. 알아.”
“……예!?”
너무나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대답에 최모나는 살짝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