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화. 의사가 없잖습니까?
너무나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대답에 최모나는 살짝 당황했다.
“물론 병원까지 운전해서 볼 수야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을뿐더러 사실 이 이상 열어 두는 것은 좋지 않아. 비록 우리가 양압기기를 설치하고 여기를 소독했다고 해도 여긴 엄연히 가정집이야. 지금 한 시간이 채 안 되었을 때 닫고서 우선 아이의 차도를 보여 주면 우리가 보호자의 마음을 살 수가 있을 거야. 그러면 그때 더 많은 것을 해 주면 돼.”
“아!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최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건 그럴싸한 핑계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다. 엄연히 따지면 저 말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말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유는 다섯 번째 바이탈 때문이다.
태경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어느 정도 암이 남아 있는지 가늠할 수가 있었다.
조금 전, 보기만 해도 일반 조직과 다른 암을 떼어 냈을 때, 방 안에 가득했던 냄새가 변했다.
좀 더 확실하게는 아이 몸에서 지독하게 뿜어져 나오던 그 독한 냄새들이 순식간에 패턴이 달라졌다.
진이에게서 나던 냄새는 코를 찌를 듯한 아찔한 분뇨 냄새와 그 사이에서 포르말린 냄새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포르말린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고 독한 분뇨 냄새 또한 많이 순해졌다.
냄새의 패턴이 이 정도로 바뀌었다는 건, 현재 아이의 몸에서 암을 잘 제거했다는 뜻과 같았다.
그건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태경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최모나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기에 아까같이 말한 것이다.
“자! 이제 닫는 것만 남았으니까 배액관 넣고 빨리 닫자.”
“네. 그런데 선생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태경을 어시하던 최모나가 궁금한 눈빛으로 물었다.
“여긴 가정집인데 진이는 주치의가 없어서 어떡합니까?”
보통 병원에서 수술받은 환자는 수술이 끝나면 의사들이 잘 회복하고 있는지 상태를 관찰하고 그에 맞게 처방하게 된다.
수술이 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술이 끝나고 잘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런데 아이는 집에서 수술했기 때문에 수술 후 경과를 지켜볼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어쩌나 싶었다.
“수술하고 병원으로 옮기나요?”
“수술하고 옮길 거였으면 굳이 집에서 수술하지도 않았지. 일단은 집에서 경과 지켜봐야지.”
“그렇지만 의사가 없잖습니까?”
“없긴 왜 없어?”
“네!?”
“여기 있잖아.”
“여기라면 혹시 선생님…….”
“나도 있고 최 선생도 있고 이 선생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러면 오늘 올라온 근무표도 이것 때문입니까?”
“그렇지.”
오늘 출근하면서 근무표를 받았던 최모나와 이찬희는 저번 주와 비교해 조금 여유로운 일정을 받았다.
‘모나모나, 개모나! 이거 뭔가 이상한데? 지금 나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거야?’
‘아니. 내가 보기에도 좀 이상한데.’
안 그래도 평소와 다른 근무표를 보고 두 사람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럼 근무표가 잘못된 게 아니었네요.”
“잘못되긴 왜 잘못돼. 제대로 된 거 맞아. 출퇴근 시간 여유 있게 조정했으니까 그때마다 돌아가면서 아이 상태 확인이랑 처치하면 돼. 그리고 아이 회복할 방에 아버님이 카메라 설치했다고 했으니까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바이탈 기기들 모두 핸드폰이랑 연동되니 이만하면 뭐 주치의 있는 셈이지. 안 그래?”
태경은 이미 집에서 수술하기로 한 그때부터 수술 후에 일정까지 전부 생각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이 정도면 주치의가 확실합니다.”
“끝!”
마무리 봉합까지 완벽하게 마친 태경이 수술이 끝났음을 알렸다.
“다들 정말 수고 많았어요. 병원 수술실도 아니고 가정집에서 하는 수술이라 환경도 다르고 급하게 준비하느라 바빴을 텐데 잘 따라줘서 고마워요.”
태경은 함께한 스텝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원장님께서 제일 고생 많으셨죠.”
“맞습니다.”
“살면서 병원 수술방이 아닌 곳에서 수술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늘 수술이 뭔가 색다른 경험이 된 거 같아요.”
“저도요. 원장님 그리고 다들 고생하셨어요.”
완벽하지 않은 곳에서 완벽하게 수술을 끝난 태경과 스텝들은 서로를 격려했다.
“다들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일 고생한 건 아이가 아닐까 해요. 지금까지 꽤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텨 주고 수술도 잘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이야, 수고했어.”
아이를 보며 격려한 태경은 부부를 만나기 위해 수술방을 나갔고 의진과 간호사는 미리 준비한 방으로 진이를 옮겼다.
철컥-
“원장님?”
“원장님 어떻게?”
초조함으로 기다리고 있던 이재산과 김연주는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방에서 나오는 태경을 동시에 불렀다.
“수술은 잘됐나요?”
“걱정 많이 하셨죠?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방금 진이 나가는 거 보셨죠? 곧 깨어날 겁니다”
“감사……!”
“어! 여보?”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에 긴장이 풀린 김연주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괜찮아?”
“괜찮으세요?”
“나, 괜찮아. 제가 너무 기뻐서 그래요. 감사합니다.”
딸의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1분이 한 시간처럼 길었던 부부에게 이보다 더 좋은 말은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딸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원장님.”
두 사람은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눈물을 보였다.
“원장님이 아니셨다면 우리 진이가 수술받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지금까지 잘 견뎌 준 아이가 고생했죠. 그리고 당분간은 저와 다른 선생님들이 들러서 진이를 잘 살펴볼 겁니다.”
“네, 원장님. 고맙습니다.”
철컥-
“진이 깨어났어요.”
잠시 뒤, 세 사람이 대화하던 중 아이와 함께 있던 의진이 방문을 열며 보호자들을 불렀다.
“들어오세요.”
“네.”
“어서 들어가 보세요.”
“네, 원장님.”
“진이야…….”
두 사람은 침대 옆에 주저앉아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조용히 딸의 이름을 불렀다.
“엄…마, 아빠…….”
“우리 딸 힘들었지? 너무 기특하다. 고생했어.”
엄마의 물음에 진이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괜찮다는 의사를 전했다.
수술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힘들 텐데도 아이는 아빠, 엄마에게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다.
“진이야. 선생님이 그러는데 수술이 잘됐대.”
“정……말?”
“그럼. 정말이지.”
“진이가 씩씩하게 수술 잘 받아 줘서 수술 잘됐어. 진이 최고야!”
뒤쪽에 서 있던 태경이 말하자 수술 결과가 궁금했던 아이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긴장감이 점차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수술 잘 견뎌 줘서 고마워.”
아이의 인사를 받은 태경은 의진과 함께 가족들이 대화할 수 있도록 방을 나왔다.
“저기, 원장님……?”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상담을 마친 고 여사가 조용히 태경을 불렀다.
“네, 할머님.”
“간호사 선생님께 수술 잘 끝났다는 말 들었어요.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상담은 잘 받으셨어요?”
“네, 원장님 덕분에 좋은 선생님을 만난 거 같아요. 전 제가 마음이 아픈 사람인 줄 오늘에야 정확히 알았어요. 앞으로 꾸준히 상담 치료받을 생각입니다.”
진심으로 상담에 임한 고 여사는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그동안 외면했던 자신의 문제점을 하나씩 인지할 수 있었다.
오늘 한 번의 상담으로 한 번에 많은 것들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천천히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문제점을 고치기로 다짐했다.
“그거 정말 잘됐네요. 그런데 안 들어가 보세요.”
그러고 보니까 벌써 손녀를 보고도 남을 고 여사가 방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서 있는 게 궁금했다.
“아들 내외한테도 그렇고 진이한테도 그렇고 미안해서요. 발길이 잘 안 떨어지네요.”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은…….”
“어머님?”
태경이 말하던 찰나, 방에서 나온 김연주가 시어머니를 부르며 다가왔다.
“왜 안 들어오시고 여기 계세요. 안 그래도 진이가 어머님 찾아서 나왔어요.”
“진이가 날 찾았어?”
“네. 얼른 들어가세요.”
김연주의 말을 들은 고 여사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우리 강아지 수술하느라 고생 많았어.”
방 안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대화 소리가 전과 다르게 다정함이 느껴졌다.
가족들이 진이를 보살피는 사이 의료진은 수술방 정리를 마치고 가져온 장비와 기구들은 차에 실었다.
그 뒤, 태경은 이재산에게 주의사항을 알려 주고 병원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저기, 원장님. 실은 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주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진이의 수술도 잘 끝나서 기분이 좋았던 이재산의 표정에서 어쩐지 웃음이 사라지고 머뭇머뭇하는 것만 같았다.
“네. 그럼요.”
“그게,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이요? 갑자기 뭐가 죄송하시다는 건지…….”
“우리 진이 수술해 주신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
이재산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태경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집에서 수술해도 괜찮은 건가 해서요.”
“아! 집에서 수술한 것 때문에 그러세요?”
“예. 사실 집에서 수술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진작 물어보려고 했지만, 못 했습니다. 제 자식 일이다 보니 일단 내 새끼부터 살리자는 심정에 선뜻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진이의 수술이 잘됐다는 말을 들은 이재산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수술을 준비해 준 태경의 대한 걱정이었다.
처음부터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랬다가 딸이 수술을 못 받는 건 아닌가 싶어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러셨군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아이가 급한 상황에서 이거저거 따질 순 없잖아요.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제가 책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땐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굳이 따지면 환자의 응급상황이었고 집에서 수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괜찮습니다.”
정말이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가는 당장 뭐라고 할 것 같은 이재산의 표정을 보며 태경은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저한테 꼭 알려 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이만 가 보고 제가 이따 저녁에 또 오겠습니다.”
“네, 원장님. 감사합니다. 살펴 가세요.”
태경과 인사한 이재산은 의료진이 탄 차에 가서 모두에게 인사를 전한 뒤 집으로 들어가고 의료진을 태운 차는 출발했다.
“전 이제야 말하지만, 수술 시작하기 전까지는 긴장돼서 혼났어요.”
“저도 그랬어요.”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간호사가 말하자 다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소감을 말했다.
“전 막상 수술 시작하니까 집중하느라 긴장되지도 않았습니다.”
“오! 최 쌤 대단한데? 원장님은 어떠셨어요?”
“신기하네…….”
“예? 뭐가 신기해요?”
혼잣말을 하고 있던 태경은 직원의 말을 듣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