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10화 (409/472)

410화. 병원에는 별일이 다 있다.

“자기야, 근데 생각해 보면 우리도 진짜 인연 아니야?”

입원복을 입은 중년 여자 두 명이 병동 휴게실에서 나란히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영아 아빠는 언니 수술하고 나도 수술한 거 보고 이 정도면 전생에 자매 아니냐고 웃더라.”

“우리 아저씨도 그랬어. 아니, 근데 진짜 생각할수록 신기하긴 하다. 어떻게 나 면회 왔다가 자기도 이렇게 되냐.”

“내 말이. 난 그냥 복통이 심해져서 장염인 줄 알았지.”

두 사람은 이웃집에 살며 언니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두 사람 중, 언니라는 여자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담석으로 통증이 심해지자 수술받았고 동생이라는 여자가 면회를 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계속 배가 아팠던 동생은 갑자기 복통이 심해졌고 진료를 본 결과 충수염으로 수술까지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웃사촌인 두 사람은 한 병실에 나란히 입원하게 됐다.

“난 자기가 아프다고 진료 보러 간다고 했다가 수술한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던지 몰라.”

“나만큼 놀랐으려고. 그래도 수술이 잘됐으니 지금 이렇게 웃고 있지.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찔해. 생전 태어나서 처음 수술하는 건데 어찌나 겁이 나던지……. 여기 선생님들이 달래줘서 수술했지 안 그러면 나 못했어.”

“왜 처음 수술이야. 애 낳을 때 했잖아?”

“언니, 나 자연 분만이유.”

“아! 맞네. 그래도 우리 둘 다 큰 병 아닌 거에 감사해야 해. 요즘에는 건강한 게 재산이야.”

“맞아. 건강이 최고지. 돈보다는 건강이 최고야.”

“그건 그렇고 난 있잖아. 요즘처럼 편할 때가 없다.”

“언니도 참! 수술해서 수액 바늘 꽂고 이러고 있는 게 좋아?”

편하다는 말에 옆에 앉아 있던 동생이 수액 걸이를 툭툭 치며 기막혀했다.

“말해 뭐해. 좋다마다요. 이거 뭐? 팔에 바늘 꽂은 거? 내 몸 살라고 꽂은 건데 이게 어때서. 남편 밥 안 차려줘도 되고 집 청소 안 해도 되고 집안일 빠이빠이잖아. 누워 있으면 밥 시간 맞춰 밥도 줘, 보고 싶은 드라마 마음껏 보고 아주 그냥 이만한 휴가가 없어요.”

“듣고 보니 언니 말이 맞네. 삼시 세끼 밥 안 차리는 것만 해도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

“그래. 밥 차리는 거 그거 보통 일 아니다. 월급쟁이로 돈 벌어오는 것도 힘들지만, 전업주부도 장난 아니야.”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어.”

“저기…….”

집안일에 해방된 두 여자의 즐거운 대화가 무르익을 때쯤 자판기 앞을 서성이던 여자가 조용히 다가왔다.

다가온 여자 역시 입원복을 입었는데 다른 입원한 환자와는 뭔가 분위기가 좀 달랐다.

보통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면 가장 편한 모습으로 입원 생활을 한다.

쉽게 말해 꾸미지 않는다는 소리다. 집에 있을 때처럼 머리도 매일 감기 힘들고 여자들은 화장하는 경우 또한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일명 앞머리 뽕을 한껏 넣고 어깨까지 오는 머리에 웨이브까지 넣었다. 게다가 손에는 반지와 팔찌까지 주렁주렁 차고 있었으며 슬리퍼 또한 눈에 띌 정도로 화려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한 마디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한껏 꾸몄다는 것이다.

“저기요?”

“뭐 우리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요?”

“네, 정말 죄송한데 혹시 동전 있으세요?”

“…….”

“……?”

“아! 이거 때문에요.”

황당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며 여자가 자판기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이 병원이 커피가 맛집이거든요. 제가 자판기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동전을 갖고 왔는데 100원이 모자라서요. 그래서 혹시나 동전이 있으신가 해서 물어봤어요.”

“어쩌나 난 동전이 없는데…….”

“어, 나 동전 있어. 여기 100원이요.”

나란히 앉아 있던 여자 중 한 명이 입원복 주머니에 있던 100원을 꺼내 여자에게 건네자 여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마워했다.

“어머!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음! 이 맛이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은 여자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여자의 리액션에 두 여자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저 언니들!”

“어, 언니들?”

“얼래! 우리는 그쪽 언니들이 아닌디…….”

“에이! 딱 봐도 저보다 언니 같은데 언니 맞죠. 언니들 5학년 아니에요?”

“뭐, 5학년이 맞긴 한데…….”

“5학년 맞죠? 가만 보자 언니는 5학년 1반이고 이쪽 언니는 5학년 2반 정도?”

“세상에! 우리가 그렇게 보인다고?”

“그러게. 내가 쉰일곱이고 여기 언니가 아홉이에요.”

“정말요? 말도 안 돼. 두 분 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세요.”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데 무슨 소리야.”

“어머! 아니에요. 피부도 좋으시고……. 아! 맞다. 이거 드세요.”

“갑자기 이걸 왜 준대.”

커피를 마시던 여자는 들고 있던 검은 봉지에서 탐스러운 포도 한 송이를 꺼내 두 사람에게 건넸다.

“저 커피 마시라고 동전 주셨잖아요.”

“백 원짜리 하나 주고 샤인머스캣 한 송이는 너무 과한데…….”

“그러게, 이거 값이 꽤 나가는데?”

“괜찮아요. 많아서 다 먹지도 못해요. 언니들 나눠 드세요.”

“그래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런데 그쪽은 몇 살이에요?”

“한참 동생인데 그냥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전 40대예요.”

“요즘 40대면 아직 청춘이지. 젊네. 젊어.”

“그렇죠. 요즘은 100세 시대라서 40대는 애기라고 우리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애, 애기?”

“네, 우리 남편이 저한테 애기야라고 부를 때가 많거든요.”

“남편분이 너무 사랑하시나 보다.”

“맞아요. 호호호! 그리고 전, 저기 2인 병실에 입원해 있어요.”

“그래요?”

“그런데 언니는 입술 필러 맞은 거예요?”

어딘지 모르게 살짝 백치미가 느껴지는 여자는 묻지도 않은 병실도 알려 주고 이것저것 혼잣말을 하더니 갑자기 입술 타령을 했다.

“입술에 무슨 주사를 맞아. 난 엉덩이 주사도 무서운 사람이라 그런 거 못 해.”

“나도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게 편해.”

“가만 보니까 언니들 다 입술 모양이 예쁘네요. 전 이거 주기적으로 필러 맞은 거거든요.”

“아, 그래요. 저기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나란히 앉아 있던 여자 중 나이가 좀 더 많은 언니가 아까부터 묻고 싶던 말을 꺼내려 하자 동생이 옆구리를 살짝 치며 말렸다.

“왜, 그래. 하지 마.”

“뭔데요? 편하게 말하세요.”

“그게. 같이 입원하신 남자분하고는 어떻게…….”

“당연히 남편이죠.”

여자는 긴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해 맑은 표정으로 당연한 듯 답했다.

“나, 남편이라고?”

남편이라는 말에 두 여자는 진심으로 놀라며 반응했다.

“근데 남편분이 나이가 좀 더 들어 뵈던데?”

“네, 맞아요. 그이랑 나이 터울이 좀 많이 나요.”

“얼마나……. 미안해요.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 정도?”

여자는 굵은 금반지가 돋보이는 손가락 두 개를 보이며 답했다.

“어머 세상에!”

“저랑 그이가 좀 늦게 만났어요. 저희 아직 신혼이거든요.”

“아! 그렇구나.”

“제가 가수가 꿈이었는데 앨범도 내는 것마다 망하고 정말 콱 죽고 싶었는데 우리 그이가 제 팬이었거든요. 그래서 많이 위로도 해 주고 힘을 주고 그렇게 친해지다가 함께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나이 차이 때문에 저도 고민했는데 이 사람은 정말 다르더라고요. 이제는 뭐 주변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여자는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하긴. 요즘은 본인들이 좋으면 나이는 크게 신경 안 쓰긴 하지.”

“그, 그렇지. 그런데 신랑이 참 잘해 주나 보다.”

“그럼요. 이런 말 좀 주책이긴 한데 얼마나 절 사랑하는지 몰라요.”

“자기야?”

여자가 한참 이야기에 빠져 있던 사이 그렇게 자랑하던 남편이 그녀를 불렀다.

“안 오고 뭐 해?”

“미안. 언니들 저 이만 가 볼게요.”

“그래요. 포도 잘 먹을게요.”

“다음에 또 봐요.”

두 여자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 여자는 남편에게 팔짱을 끼며 다정하게 병실로 돌아갔다.

“우리 허니, 나 기다렸어?”

“당연하지. 포도 받으러 간 사람이 안 오니까 누가 데려간 거 아닌가 걱정했지.”

“내가 얘야. 데려가긴 누가 데려가.”

“그럼. 내 눈에는 우리 예림이가 애지. 애기야~”

“치! 다 늙었는데 애는 무슨 애야. 자기는 내가 그렇게 예뻐?”

“예쁘지 그럼 안 예뻐.”

걸어가는 두 사람의 대화 소리를 의도치 않게 듣던 여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기막혀했다.

“세상에 웬일이냐…….”

“설마 부부일 줄은 몰랐는데 진짜 부부였네.”

“딱 보니까 남자가 돈이 억수로 많네. 확실해.”

“언니가 보기에도 그래?”

“그럼. 당연하지. 남자가 돈이 많으니까 스무 살이나 어린 여자랑 살지.”

“왜? 아까 말하는 거 들으니까 서로 사랑한다고 하잖아. 요즘 애들 말로 찐사랑일수도 있지.”

“찐사랑? 아나 떡이다.”

“언니도 참. 말 좀 예쁘게 해.”

“에휴! 그래도 조금 부럽긴 하네.”

“뭐가? 돈 많은 거?”

“아니. 저렇게 사랑받는 게 부럽다. 넌 안 부러워?”

“아니. 난 아무리 부러워도 저런 사람들은 별로.”

언니의 말에 동생은 복도를 걸어가는 남녀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너 저 사람들 아는 사람들이야?”

“내가 저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 그게 아니고 어제 창문가 아주머니가 말한 사람들이 저이들이잖아.”

“그 왜 병원 마당 구석에서 둘이…….”

“어머! 웬일이니? 그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야?”

“응. 저이들이야.”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뭔가 생각난 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녀를 한 번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난 그래도 좀 젊은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사랑에 눈이 멀었나 보지.”

“아무리 눈이 멀었어도 그렇지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남자는 손주 볼 나이인 거 같은데 대단들 하다.”

“하긴 저 아저씨는 손주 볼 나이인 거 같긴 해.”

“아저씨는 무슨 아저씨야. 할아버지가 더 어울리는구먼. 저 남자 허리 치료받으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딱 보니까 허리도 왜 다쳤는지 알겠네.”

“어휴! 언니도 참 주책이야? 별소리를 다 하네.”

“내가 뭐라고 했어. 그냥 왜 다쳤는지 알겠다고 한 거지. 아무튼 기가 막힌다. 이래서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하는 거야.”

“재규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면 별일이 다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다고 하더니 진짜 별일이 다 있네.”

“여기들 계셨어요?”

두 사람의 대화가 절정을 향해 달려간 그때, 태경과 함께 근처 병실에서 나온 임정숙 간호사가 두 사람을 불렀다.

“회진하는데 안 보이셔서 어디 가셨나 했더니 여기 계셨네요.”

“세상에! 우리가 수다 떠느라 원장님 병실에 들어가시는 것도 못 봤네요. 죄송해요.”

“죄송은요. 괜찮습니다. 두 분 다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죠?”

“그럼요. 불편한 거 하나도 없어요. 원장님 저 고기가 너무 먹고 싶은데 아직 기름진 건 먹으면 안 되죠?”

“그럼요. 담낭을 제거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안 드시는 게 좋아요. 퇴원하는 날 식단도 알려 드릴게요.”

“난 고기 안 먹으면 힘이 안 나는데 어쩌나…….”

“조금만 참으세요.”

“그래야죠.”

“김자연 환자분 가스 나왔나요?”

“아니요. 원장님, 아직 안 나왔어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좀 걸어 다니시면 가스 나올 거예요.”

“네, 그래서 열심히 걷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휴게실에 있던 두 사람의 상태를 살핀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와 다음 병실로 이동했다.

“다음은 구동곤, 이예림 환자입니다. 이 병실이 마지막이에요.”

“오늘은 회진이 빨리 끝나네요.”

“이런 날도 있어야죠. 이따 저녁에 진이네 좀 갔다 올게요.”

“진료 시간 조정할까요?”

“저녁 시간에 갔다 올 거니까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대화하며 마지막 병실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

“……!”

자연스러운 인사와 함께 병실 미닫이문을 열던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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