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화. 이십 년도 더 된 일
“안녕하……!”
“……!”
자연스러운 인사와 함께 병실 미닫이문을 열던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병실 안에 있는 남녀가 한 베드에 실과 바늘처럼 붙어 앉아 애정행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르륵-
그 모습이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바로 문을 닫아 버리고 말았다.
물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과한 행각은 아니고 볼에 뽀뽀하는 정도였지만, 지금까지 회진하면서 이런 환자들이 없었기에 태경과 임정숙 간호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 본 거 아니죠?”
“저도 봤으니까 아닐걸요.”
“당황스럽네요.”
“그러니까요.”
드르륵-
들어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던 사이 병실 문이 빠르게 열리며 안에 있던 여자가 나와 사과했다.
“어머! 원장님, 간호사 선생님, 죄송해요. 회진 오신 거죠?”
“아, 네.”
“들어오세요.”
“원장님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여자의 남편이라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과했다.
“허리는 좀 어떠세요?”
“첫날보다 통증도 많이 줄고 움직이기도 편하고 훨씬 부드러워졌습니다.”
남자는 허리디스크 증상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고,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코스 건강검진을 위해 입원 중이었다.
“오전이랑 오후에 물리치료 잘 받고 계시죠?”
“그럼요. 물리치료 선생님이랑 도수 치료 선생님께 잘 받고 있습니다.”
“이예림 환자분 내일 대장내시경 있으신 거 아시죠?”
“그럼요. 약도 잘 받았어요.”
“저기, 선생님. 내시경 끝나고 이 사람 수액 좋은 것 좀 맞아도 될까요?”
“특별히 어디 불편한 곳이 있으세요?”
“이 사람이 몸이 좀 약해서요. 요즘 자주 피곤함을 느끼고 입맛도 없고 그래서 좋은 걸로 하나 맞았으면 해서요.”
“네. 내일 내시경 끝나고 설명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원장님 그런데 제가 대장 내시경이 처음이거든요. 많이 힘들까요?”
“수면 내시경으로 하면 크게 불편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요. 원장님 그게 아니라…….”
태경의 답변을 듣고 있던 여자는 말끝을 흐리더니 남편을 슬쩍 쳐다보며 우물쭈물했다.
“괜찮아.”
“자기야, 나 민망해.”
“원장님이 의사 선생님인데 말씀드려야지.”
“아이, 참! 그래도 좀 그렇잖아. 저기 간호사 선생님 잠시 귀 좀.”
“네?”
“귀 좀 빌릴게요.”
머뭇거리던 여자는 임정숙 간호사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실은 작은 게 그러니까……있어서요.”
“아! 이예림 환자분 치질이 있으시대요.”
“어머! 간호사 선생님, 작게 말해 주시지. 민망해라.”
“치질이 있어도 내시경 하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저기, 원장님?”
회진을 마치고 가려는데 여자가 상당히 작은 목소리로 태경을 다시 불러 세웠다.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자는 방금 전에 태경을 불렀으면서 다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죄송해요.”
회진을 마친 두 사람은 병실 밖으로 나왔다.
“원장님 제가 아까 회진할 때 병동이 핫하다고 했던 말 기억하세요?”
“아까 핫하다고 했던 게 혹시…….”
“네, 맞아요. 방금 두 사람이 요즘 병동에서 핫한 그분들이세요.”
“독특해서요? 아니면 두 사람 관계 때문에 그런가?”
“뭐, 그런 것도 있긴 하겠지만, 엄청 붙어 다녀서 그런 거 같아요.”
“붙어 다녀서요?”
“네. 보통 병원에 오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붙어 다니는 경우는 잘 없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저 두 분은 화장실 갈 때고 그렇고 휴게실에서도 그렇고 엘리베이터에서도 그렇고 아주 그냥 꼭 붙어 다녀서 환자분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좀 많은가 봐요.”
“그럼 혹시 아까 응급실에서 직원들이 말한 커플도 저분들인가요?”
“네, 그 커플이 저분들이에요.”
방금 회진한 구동곤, 이예림 두 사람은 요즘 우리 병원에서 가장 유명한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의료진부터 시작해서 직원들은 물론 병동에 입원한 남녀 환자들까지 아주 그냥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워낙 이예림이란 여자의 화려한 모습이 눈에 띄는 것도 있었지만, 상당한 나이 차이를 자랑하는 두 사람 모습이 사람들이 보기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젊은 남녀가 계속 붙어 있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가는데 60대 남자와 40대 여자가 그것도 병원에서 계속 붙어 있으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하도 붙어 다닌다고 민원도 좀 들어와서 최 팀장님이 정중하게 말했대요.”
“그 정도예요?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네요.”
“원장님이 요즘 엄청 바쁘셨잖아요. 수술 준비하시느라 정신없으셨을 텐데 이런 일까지 자잘하게 다 말씀드리면 원장님 머리 아프실까 봐 지금 말씀드린 거예요.”
“역시. 임 선생님이 최고십니다.”
“정 쌤이 최고 아니고요?”
“그건 맞죠. 그럼 임 선생님이 두 번째로 최고로 하죠.”
“수 쌤?”
두 사람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때, 병동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가 두 사람을 따라와 임정숙 간호사를 불렀다.
“왜?”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
“먼저 내려갈게요.”
따로 할 말이 있는 분위기에 태경은 자리를 피해 줬다.
“뭐라고!”
그런데 태경이 몇 발짝 떼자마자 등 뒤에서 크게 놀란 임정숙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지간하면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임정숙 간호사가 목소리를 높이자 무슨 일인가 싶었다.
혹시나 환자 일인가 싶어 물어볼까 했던 태경은 그런 일이면 간호사가 따로 임정숙에게만 말할 것 같지 않아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원장님!!”
계단을 올라오는 보호자와 인사하며 1층 중간계단까지 내려오던 그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임정숙 간호사가 태경을 불렀다.
“원장님?”
“네, 왜 그러세요?”
“하! 그게요……. 하아! 아 숨차.”
계단을 몇 칸씩 뛰어 내려온 임정숙 간호사는 숨이 차서 그런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천천히 숨 고르고 말하세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방금 들은 건데요 구동곤, 이예림 환자가요.”
“네.”
“정말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
“왜요? 뭐 때문에 그런데요.”
“그게…….”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던 임정숙 간호사는 결국 태경에게 말했다.
“예!?”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태경의 표정은 그야말로 그대로 굳어 버리며 역시나 큰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 그 말이 사실이에요?”
“한 사람만 말한 게 아닌 걸 보면 맞는 거 같긴 한데 거기가 사각지대라서 CCTV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고, 그래서 확실한 건 아닌 것 같고 좀 애매해요.”
“알았어요. 내가 가서 확인해 볼게요.”
“직접 물어보시려고요?”
“본인들한테 물어봐야죠.”
표정이 싹 굳어 버린 태경은 그대로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더니 조금 전에 나왔던 병실 문을 노크한 뒤 다시 들어갔다.
똑- 똑-
“네.”
“두 분께 확인할 게 있는데 솔직히 대답해 주세요. 거짓말하면 바로 CCTV 확인하겠습니다.”
태경은 일부러 보이지도 않은 CCTV를 운운하며 두 사람이 솔직하게 말하도록 유도했다.
“이게…… 사실인가요?”
태경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환자에게 보인 적 없는 표정이었으며 싸늘한 눈빛과 함께 분위기가 묵직했다.
“예에!?”
잠시 뒤, 그의 말은 들은 두 사람은 크게 놀라더니 펄쩍 뛰며 억울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맞아요. 둘이 붙어 다닌 건 사실이고 애정 표현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짓은 하지 않았어요.”
“원장님. 제가 이 나이 먹고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사람들이 보기에는 꼴 보기 싫을 수도 있다는 거,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맞아요. 제가 겉모습이 좀 화려하고 시선을 끄는 타입이라 원래 아무것도 안 해도 막 사람들이 오해하고 함부로 욕하는데……. 그래도 저 그렇게 경우 없고 상도덕도 모르는 여자는 아니에요. 하!”
남편과 함께 억울함을 토로하던 여자는 급기야 눈물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가 병원까지 와서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네요.”
“예림이 울지 마.”
“자기야 나, 나…… 정말 너무 속상해! 흐윽!”
“울지 마. 원장님, 나이 먹은 사람들은 연애도 못 하나요? 저희는 진짜 억울합니다.”
“그럼 두 분이 그런 적이 없다는 거죠?”
억울해 죽을 거 같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도 태경은 크게 흔들림이 없었다.
“정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다만 아시는 대로 여긴 병원이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여러 사람이 치료하러 오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과한 애정행각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네, 원장님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았습니다. 앞으로 이 사람이나 저나 주의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죄송해요.”
두 사람에게 약속받은 태경은 거듭 주의를 주며 병실을 나갔다.
“사람들 정말 너무한다. 흑!”
태경이 병실을 나가자 여자는 아까보다 더 서럽게 울며 눈물을 쏟았다.
“자기야, 그만 울어.”
“아! 됐어.”
“예쁜 사람이 참아야지.”
“이런 일을 어떻게 참아. 막말로 자기랑 내가 이상한 짓거리를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커플들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애정 표현한 건데, 사람을 아주 이상한 취급을 하고 있어. 내가 보기엔 아까 그 젊은 간호사 있지? 걔가 원장한테 가서 꼬지른 거 같아. 내가 간호사라고 안 하고 언니라고 불러서 좀 못마땅한 표정을 보였거든.”
“그만하고 자기가 기분 풀어.”
“몰라! 이게 다 오빠 때문이야.”
등을 돌리고 있던 이예림은 별안간 구동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무섭게 노려봤다.
“그래. 내가 조심할게. 미안해.”
“그런 게 아니라 오빠가 날 인정 안 해 주니까 사람들이 날 우습게 여기는 거잖아.”
“누가 우리 예림이를 우습게 여겨. 그런 거 아니야.”
“됐고! 나 사모님 소리 언제 듣게 해 줄 거야. 언제 정리할 거냐고?”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다 알아서 정리할게.”
“알아서 정리한다는 사람이 아직도 이러고 있어? 1년이 다 되고 있잖아!”
“조금만 기다려 줘. 나도 사정이 있어서 그래. 내가 이번에 퇴원하면 말할게.”
“정말이지?”
“그럼. 정말이지.”
“역시. 자기가 최고야.”
이예림은 레이저를 쏘면 눈빛을 부드럽게 풀며 구동곤 볼에 뽀뽀했다.
“그런데 여기 원장님 사람 좋은 줄 알았는데 아까 정색하면서 말하는 거 보고 좀 그렇더라. 벼는 익을수록 겸손하다고 했는데 그릇이 작다.”
“병원 대표니까 그럴 수도 있지. 여기 원장님 사람 좋기로 소문난 양반이야. 내가 주변에 물어봐서 일부러 이 병원 온 거잖아.”
“그래? 알았어.”
눈물 바람을 보이며 억울해하던 이예림은 뜬금없이 태경 탓을 하더니 구동곤의 위로를 받으며 눈물을 멈췄다.
그 시각 병실을 나온 태경은 스테이션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정숙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하! 참나.”
“참!”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어이없는 웃음이 짧게 터졌다.
“병원에 별별 사람이 다 온다고 하지만 이런 일은 듣기만 했지 처음 겪네요.”
“전, 두 번째에요.”
“그래요?”
“네. 실습 때 비상구 계단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이십 년도 더 된 일인데 얼마나 놀랐던지 잊히지도 않아요.”
“저도 예전에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진짜로 그런 일이 있긴 있네요.”
“생각보다 많아요. 예전에는 병원 애정행각으로 라디오나 TV에 사연도 자주 나오고 그랬어요.”
“원래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진짜 여러 사람 만나잖아요.”
“맞아요. 간호사로 일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이 만난 거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부인 척 연기하면서 그런 행동까지 할 줄은 몰랐네요.”
“그러니까요.”
“노래 제목처럼 세상은 정말 요지경 속이네요.”
임정숙 간호사의 말 그대로였다.
방금 태경에게 주의를 받았던 구동곤과 이예림은 부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