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화. 조직검사
“지연이가 유방 초음파를 받았어요.”
유방이란 말에 김말자의 표정이 커튼이 쳐진 방처럼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일부러 유방이란 단어만 쏙 빼놓고 말했는데 정답처럼 돌아온 그 단어에 잡고 있던 정신 줄이 풀어지는 것만 같았다.
“유방이라고?”
“네…….”
“그런데 결과는 무슨 소리야? 초음파라면서 결과를 왜 기다려? 초음파는 보면 결과 바로 말해 주잖아.”
“…….”
“말 안 할 거야? 현준아!”
“초음파를 봤는데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검사를 하고 결과 기다리는 중이에요.”
“……!”
“어머니!”
막내딸이 조직검사를 받았다는 말을 듣자마자 김말자는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으려 했다. 그러자 딸의 남자친구가 그녀를 얼른 부축하며 의자에 앉혔다.
자식이 초음파 검사가 이상해 조직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말자의 놀라는 모습은 뭔가 조금 달랐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에 큰일이 닥친 것처럼 망연자실에 가까운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왜 말 안 했어?”
“어머니께서 이렇게 놀라고 걱정하실까 봐 지연이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어요. 저도 말씀 안 드리는 게 나을 거 같았고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도 말을 했어야지. 초음파는 왜 받게 됐는데?”
“크게 어디가 아파서 받은 건 아니고 그냥 좀 가슴이 가끔 콕콕 쑤시는 느낌이 좀 있었는데 회사 직원 건강 검진하다가 아무래도 정확한 검사가 필요할 거 같다는 의견을 들었대요. 그래서 추가 검사를 하게 됐어요.”
“검사는 어디서 했는데? 병원도 잘 가야 해. 그러지 말고 그쪽으로 잘하는 선생님 계셔. 그분한테 한번 가 봐야겠다.”
“안 그래도 그 선생님…….”
그렇게 두 사람이 밝지 않은 표정으로 심각한 대화를 이어 가던 도중 대화에 주인공인 구지연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드르륵-
김말자와 남자친구는 구지연이 들어오자 대화를 멈췄고, 의자 끌리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김말자는 딸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 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엄마 표정이 왜 그래? 둘이 무슨 일 있었어?”
화장실에 갔다 온 구지연은 엄마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느끼며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어머니께서 너 검사 받은 거 다 아셨어.”
“뭐! 어떻게? 자기가 말한 거야?”
“내가 그걸 왜 말해. 아까 우리 대화한 걸 다 들으셨대. 너 화장실 간다고 나가자마자 바로 들어오시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셔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어.”
“하! 어떻게.”
구지연은 엄마가 자신이 검사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걸 알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머니 많이 놀라신 거 같아.”
“당연하지. 나 엄마한테 좀 갔다 올게.”
“그래, 여기 내가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얼른 가 봐.”
대기실을 나온 구지연은 곧장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릴 적부터 내 집처럼 드나들던 식당이기에 지금 엄마가 어디에 있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엄마 여기 있지? 나 들어간다.”
식당 안쪽에 있는 직원 휴게실을 지난 구지연은 사무실과 연결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
“에이, 엄마아 나 좀 봐.”
구지연의 살가운 언행에도 김말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우리 예쁜 김말자 씨, 어디 가셨나? 대답이 없으시네.”
“…….”
“엄마 내가 말 안 해서 화났어?”
“화나긴! 검사받은 사람이 넌데 엄마가 왜 화가 나. 화는 내 자신한테 낫지.”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엄마가 본인한테 화가 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우리 딸이 검사받게 됐으니까 그렇지.”
딸의 유방이 이상한 걸 김말자는 본인 탓을 하며 한탄했다.
“또! 그런다. 내가 엄마 이럴까 봐 말 안 하려고 했던 거야. 이게 왜 엄마 탓이야. 내가 한동안 일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은 거 엄마도 알지? 원래 몸에 가장 안 좋은 게 스트레스받는 거라고 하잖아. 굳이 따지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거니까 엄마 탓으로 돌리지 마.”
구지연은 심란해하는 엄마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것아! 어떻게 네 탓이고 스트레스 탓이야. 엄마가 유방암에 걸려서, 그래서 나 때문에 네가 그렇게 된 거야. 그러니까 엄마 탓이야.”
저 말이 맞았다.
막내딸의 조직검사 소식에 세상 무너진 듯 표정을 보인 것도 모든 걸 자신 탓이라며 한탄한 것도 김말자가 유방암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나름 건강하게 살고 있던 김말자는 평소처럼 식당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물에 샤워하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던 그녀는 몸을 씻던 중 가슴에 무언가 만져지는 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단체 손님을 받고 바빴던 탓에 근육이 뭉친 거라고 생각하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통증도 없었기에 하루 이틀 자고 나면 없어지겠지 라고 느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며칠 동안 잊고 지냈는데 가슴에서 만져지는 그 몽우리는 없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통증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동네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말자는 역시나 몸에 이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초음파상 안 좋은 게 보여서 추가 검사를 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추가 검사요?’
‘네. 조직 검사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많이 안 좋은가요?’
‘정확한 건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어요.’
그렇게 조직검사를 받고 일주일이 지난 후 병원을 찾은 김말자에게 의사는 차분하게 암 선고를 했다.
‘검사 결과 암으로 나왔습니다. 환자분 소견서 써 드릴 테니까 얼른 큰 병원 가 보세요.’
결과지를 받은 손이 덜덜 떨렸지만, 수술받아야 하는 병원을 알아보는 게 우선이었기에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주변에 유방암 수술을 잘하는 의사를 수소문했고 어렵게 예약 후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했다.
김말자는 한쪽 가슴에 암 선고를 받았지만, 반대쪽 가슴까지 양쪽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수술 전, 여러 검사를 받았고 그중에는 유전자 검사 중 하나인 브라카 BRCA(BReast CAncer gene) 검사도 있었다.
브라카 유전자는 신체를 보호하고 손상된 DNA를 복구해 암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유전자다.
브라카 유전자가 손상되면 돌연변이 유전자인 브라카 BRCA1, 브라카 BRCA2가 발생하는데 유방암, 난소암 등이 발생할 위험도가 증가하게 된다.
김말자는 BRCA1, BRCA2가 모두 나왔고 보통 검사 결과 후, 유전자가 있는 환자는 몇 년 뒤 암에 걸리는 경우가 있었기에 김말자 스스로 양쪽 유방의 완전 절제를 강하게 원했다.
그리고 그녀는 유방 재건술을 받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걸렸다면 재건술을 받았겠지만, 나이도 많은 편이었고 굳이 받고 싶지 않았다.
수술을 잘 마치고 퇴원한 뒤 집에서 마주한 밋밋해진 가슴을 보며 씩씩했던 김말자는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괜찮을 줄 알았지만, 거울로 마주한 낯선 자신을 보자 괜찮지 않았다. 여자로서 삶이 끝난 것 같은 절망감과 남모를 수치심이 몰려왔다.
하지만 아직 항암치료가 남았기에 무너질 수 없었다.
사랑하는 새끼들 결혼도 시켜야 했고 아직 더 살고 싶었기에 힘든 항암도 씩씩하게 견디며 전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그 결과 수술 후 5년 지나고 의사에게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오늘 기록지에는 완치 판정이 쓰여 있을 거예요. 수고 많으셨어요.’
‘그게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완치 판정을 받은 날 김말자는 하늘을 나는 듯이 기뻤고 감사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고민이 있었는데, 자신 때문에 아이들이 혹여 암에 걸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 해도 암 치료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다.
수술이야 마취하는 동안 진행되고 깨어나서도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짜 힘든 건 항암이었다.
항암 치료하는 동안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발열과 구토, 설사, 메스꺼움과 손발 저림 등 생각지 못한 부작용까지. 정말이지 항암 치료 과정은 겪어 본 당사자가 아니면 그 심정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개인마다 느끼는 부작용이 다르고 통증이 다르긴 하지만 환자들이 힘든 건 똑같다.
눈물 날 정도로 괴로운 날이 많았기에 내 새끼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막내딸이, 그것도 결혼을 앞두고 유방 조직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김말자 입장에서는 온갖 걱정이 전신을 덮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 때문에 지연이 네가……. 나 때문이야.”
그저 이 모든 게 다 자신 탓인 것만 같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우리 엄마 한동안 저 소리 달고 사시겠네. 언니랑 그때 유전자 검사 받았고 이상 없다고 나왔잖아. 그러니까 엄마 탓 아니야.”
“그래도 엄마 때문에 네가 영향을 받았으니까 그런 거지.”
“됐습니다요. 결과 나올 때까지 이상한 생각 금지야.”
조금 전, 대기실에서 남자친구에게 불안한 마음을 내보였던 구지연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보다 자신을 더 걱정하며 자책하는 엄마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병원은 어디 병원에서 받았어? 엄마 수술해 준 선생님한테 가자. 그 선생님이라면 확실해.”
“안 그래도 그 선생님께 받았어.”
“누구? 김태경 선생님?”
“응.”
수년 전, 김말자는 태경으로부터 수술을 받았다.
그 당시 마음을 다해 환자를 위로하고 진심으로 진료하는 태경 덕분에 큰 힘을 받았다.
“그런데 엄마 이름은 말 안 했어.”
“왜? 엄마 이름 말해야지 선생님이 더 신경 써 주시지.”
“친절하시고 설명도 엄청 잘해 주셨어. 조직검사 할 때도 하나도 안 아프게 잘해 주셨고. 엄마 병원에 있을 때 난 잠깐 봤잖아. 그때도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하신 거 같아.”
“그나저나 너 결과 언제 나오는데?”
“곧 나와요.”
“곧이 언제야.”
“내일 나와.”
“내일? 엄마도 같이 가.”
“아이고, 됐네요. 나 혼자 편하게 듣고 올게.”
“여러 말 할 거 없어. 같이 가. 너 혼자 가면 엄마 궁금해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아무것도 못 해.”
“알았어. 그럼 같이 가.”
“언니랑 오빠한테는 말했어?”
“아니, 결과 받고 말하려고 괜히 걱정하잖아. 아빠도 그렇고 아직 말하지 마.”
“그래, 그렇게 하자. 지연아…….”
김말자는 딸의 손을 잡으며 안쓰러운 표정과 함께 미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 또 이런다. 자꾸 이러면 나 정말 속상해.”
“그래. 알았어. 안 그럴게. 그리고 너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분명 결과 잘 나올 거야. 그러니까 마음 편히 먹어. 알았지?”
“당연하지. 난 괜찮으니까 엄마나 마음 편히 가져.”
두 사람은 둘 다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됐지만, 서로를 걱정하느라 애써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김말자는 식당 정리를 모두 마치고 막내딸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불 꺼진 방에 나란히 누운 모녀는 사소한 대화로 시간을 보내며 긴 밤이 어서 지나가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