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삐이- 삐이- 삐-
“수제비 괜찮으냐고?”
“엄마는 못 갈 거 같아.”
어딘가 김말자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다.
분명 화장실을 가기 전까지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할 정도로 기분 좋았던 그 표정이 아니었다.
뭔가 억지로 애써 웃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왜? 같이 가야지.”
“급하게 가 봐야 할 거 같아.”
“급하게 가다니……. 갑자기? 어디를?”
“방금 이모한테 전화가 왔는데 좀 일이 생겼다고 엄마한테 급히 좀 와 달래.”
“정말? 이모 무슨 일 있는 거야? 무슨 일인데?”
“엄마도 자세한 건 가 봐야 알아.”
“그러면 나도 같이 갈게.”
“그래요. 어머니,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타세요.”
두 사람이 함께 가겠다고 하자 김말자는 손사래를 치며 격하게 반대했다.
“아니야, 그러지 마. 이모가 엄마랑 둘이 대화할 게 있어서 그래. 여기서 가면 얼마 걸리지도 않아. 배고플 텐데 너 현준이랑 얼른 가서 밥이나 먹어.”
“정말 괜찮아? 안 좋은 일 아니지?”
“괜찮아. 안 좋은 일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요 앞에 택시 정류장도 있으니까 얼른 가.”
“알았어. 엄마, 도착하면 전화해.”
“어머니, 가 보겠습니다.”
“그래, 운전 조심하고. 현준아, 오늘 고마웠어.”
막내딸 커플에게 손을 흔들며 주차장 밖으로 걸어간 김말자는 뒤를 돌아 딸이 탄 차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 뒤, 골목을 완전히 벗어난 걸 확인하고 천천히 걸어가던 그녀는 어느 건물로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조금 전에 나왔던 병원이었다.
건물 반 바퀴를 돌아 정문을 통해 우리병원 안으로 다시 들어간 것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김말자는 접수처를 지나고 화장실을 지나 코너를 돌았다.
‘이상하다. 분명 이쪽으로 가는 걸 본 거 같은데…….’
코너를 돌자 인출기와 복도에 있는 의자가 보였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기, 혹시 실례지만 이쪽에서 환자복 입은 남자랑 여자 못 봤나요? 이렇게 생긴 사람이거든요.”
김말자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에 있는 사진을 클릭하며 보여줬다.
“방금 진료받고 돈 보내러 와서 전 잘 모르겠네요.”
“네, 감사합니다.”
모른다는 말에 왔던 길을 되돌아와 계단으로 올라간 김말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병실 문 옆에 걸려 있는 환자 이름을 속으로 말하며 유심히 살폈다.
‘김고동, 이기영, 최순천, 이민훈, 김예준…….’
마치 한글을 막 깨친 어린아이처럼 한 글자씩 이름을 곱씹으며 확인한 뒤 다음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철훈, 박기준, 고영표. 여기도 없네.’
이번에도 찾는 이름은 없었다. 그렇게 모든 병실 환자의 이름을 확인한 뒤 병동 스테이션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죄송하지만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네, 말씀하세요.”
“저기, 여기 입원한 사람 중에 이 사ㄹ…….”
김말자는 내밀던 휴대폰을 다시 가방 안으로 넣으며 스테이션 간호사에게 하던 말을 멈췄다.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려던 말을 삼키며 발길을 돌리던 김말자는 다시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혹시 병실이 여기 말고 또 있나요?”
“네, 위층에 병동이 하나 더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인사를 하고 계단으로 올라온 김말자는 아까처럼 모든 병실을 옮겨 다니며 병실 앞에 있는 환자 이름표를 확인했다.
“……!”
계속해서 병실 앞 이름을 확인하던 중 익숙하다 못해 머리에 문신처럼 박힌 이름이 발목을 붙잡았다.
구동곤.
김말자가 그토록 찾았던 남편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이름 옆으로 나란히 있는 이름이 그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예림.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이 확실했다.
두근- 두근- 두근-
“후!”
점점 더 빨라지는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짧은 숨을 내뱉은 김말자는 병실 미닫이문에 있는 직사각형의 작은 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자기야, 우리 내일 퇴원이잖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시경해서 먹는 거 조심해야 해. 죽 먹자.”
“내일은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아.”
병실 문 밖으로 들려오는 여자와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창으로 다가갔던 발걸음이 멈칫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빠르게 화장실로 향했다.
탁-
화장실 제일 안쪽 칸에 들어와 문을 잠근 김말자는 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베드 위에서 엿가락처럼 딱 붙어 앉아 여자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삐이- 삐이- 삐-
그 모습을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두근거리는 심방 박동 소리가 아까보다 커지더니 별안간 이명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김말자는 가방 안에 넣어 둔 핸드폰을 꺼내 카톡을 클릭했다.
-가격 안 맞으면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밥때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드시고요.
-무리는 무슨, 당신이 식당 혼자 보느라 고생이 많지.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좀 더 걸려서 미안해. 너무 늦지 않게 올라갈게.
오늘 아침 남편과 나눈 메신저 대화를 본 김말자는 생각에 잠겼다.
며칠 전, 남편은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한다고 지방 농장으로 출장을 떠났다.
고깃집이다 보니 쌈 채소의 사용량이 많았는데 기존 거래처에서 갑자기 가격을 너무 올렸기에 더 이상 거래가 힘들게 됐다.
이리저리 알아보던 중 도저히 답이 안 나왔고 어쩔 수 없이 농장을 직접 돌며 새로운 거래처를 뚫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렇게 김말자는 동생에게 며칠 식당을 맡기고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당연하게 남편과 함께 농장으로 내려가려 했다.
‘여보? 지훈 엄마?’
그런데 농장으로 가기 이틀 전 갑자기 구동곤이 계획을 틀었다.
‘농장 나 혼자 갔다 올게.’
‘당신 혼자? 힘들어서 안 돼. 한두 군데도 아니고 몇 군데를 내리 돌아다녀야 하는데 어떻게 혼자 다녀.’
‘우길이 형님 있지? 그 형님이 알아봐 준다고 해서 두어 군데 소개해 주기로 했는데, 근데 거리가 한참 멀어.’
‘멀어도 어떡해. 우리 식당 일인데 가야지. 그리고 내 무릎만 안 좋나. 당신도 힘든 건 똑같지 뭐.’
‘난 그래도 괜찮아. 당신 무릎도 약한 사람이 시골 비탈길 오래 다니면 힘들잖아. 괜히 갔다왔다가 고생하고 힘든 거보다 식당이나 봐.’
일주일 전부터 무릎이 쑤신다는 말을 달고 살아서 그런 건지 그날따라 남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난롯불처럼 따뜻했다.
‘늘 같이 갔는데 당신 혼자 어떻게 가. 가격 흥정도 잘해야 하는데…….’
‘걱정하지 마. 당신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흥정 잘해. 그리고 당신 식당 비우고 가면 또 걱정돼서 계속 전화기 붙들고 있을 거 아니야. 무릎 찜질이나 하면서 식당에 있어.’
‘정말 괜찮겠어?’
‘아, 글쎄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래요. 알았어.’
김말자는 자신을 걱정하는 남편의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믿으며 오히려 혼자 지방을 돌아다닐 남편을 걱정했다.
“여보세요? 저예요. 지훈 엄마.”
생각에 잠겨 있던 김말자는 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제수씨 잘 지냈어요?
전화를 받은 사람은 구동곤에게 농장을 소개해 주기로 한 우길이 형님이었다.
남편이 농장에는 간 것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농장 소개해 주신다고 남편한테 들어서요. 감사하다는 말씀드리려고 전화 드렸어요.”
-참말로.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신. 다음 주인가 그다음 주에 동곤이랑 같이 내려오신다면서요. 그때 저랑 농장도 둘러보고 맛있는 것도 드시고 가세요.
“다음 주요?”
-네, 이번에 허리 치료도 받고 건강검진 받아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하던데, 동곤이는 좀 괜찮아요?
“…….”
-제수씨? 여보세요?
“아, 네. 괜찮아요.”
-그래요? 전화해도 안 받길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그럼, 또 연락드릴게요.”
-네. 동곤이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 주세요.
그 뒤, 간단한 안부 몇 마디를 주고받은 김말자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후우!”
전화를 끊자마자 귓가에 울리다 못해 때리는 듯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박동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하려 애썼다.
남편은 농장에도 가지 않았으면서 매일 농장에 간 것처럼 가격이나 채소 품목 등을 메신저로 보내오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려 미치겠네.’
사실 김말자는 구동곤이 병원에 있는 줄 전혀 몰랐었다.
조금 전, 그러니까 딸의 조직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접수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중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입원복을 입은 남편 구동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바로 옆에 웬 낯선 여자를 부축하며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비슷한 사람을 잘못 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 없다는 딸의 조직 검사 결과를 듣고 난 뒤 긴장이 풀리고 화장실을 갔을 때 또 한 번 남편의 모습을 봤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비슷한 사람이 아니라 남편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먼저 간 딸이 차에서 볼까 싶어 주차장에서 나와 일부러 건물을 반 바퀴 돌아 정문으로 들어와 병실을 전부 확인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진짜 남편일 줄은 몰랐다. 확신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니길 바랐다.
“하! 어떻게…….”
그러고 보니 농장으로 출발하는 날 새벽에 남편이 했던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며 김말자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여보, 당신 그 잘한다는 그 사람 이름이 뭐지?’
‘갑자기 그 사람이라고 하면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아니, 왜? 당신 수술해 준 그 의사 말이야. 실력이 좋다고 하지 않았어?’
‘아! 김태경 선생님. 그럼 그 선생님은 진짜 의사지. 환자 대하는 것부터가 달라.’
‘그 사람 이름이 김태경이야?’
‘응. 왜?’
‘나 아는 사람이 몸이 좀 안 좋은데 실력 좋은 의사를 물어보길래 물어본 거야.’
‘누군데? 많이 아파?’
‘내 고등학교 동창 놈인데 크게 아픈 건 아닌 거 같아.’
‘그런데 그 선생님 병원 옮긴 걸로 아는데. 그리고 진료 과목이 맞아야 진료를 보지.’
‘그건 그렇지. 일단 이름이라도 알려 주려고. 나도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는 아직 몰라.’
‘그래?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다.’
구동곤은 멀쩡한 친구를 아픈 사람으로 만들어 아내에게 실력 좋은 태경의 이름을 알아낸 것이었다.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는 구동곤은 이예림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아이고!”
남편의 바람을 확인한 김말자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입이 바짝 말라왔다.
그와 동시에 턱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까는 남편과 여자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화장실로 자리를 피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배신감과 함께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신 차리자! 내가 정신 차려야지. 정신 줄 꽉 잡자.”
화장실에 들어온 지 30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난 김말자는 화장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아까 봤던 휴게실로 가서 정수기에 있는 찬물을 연거푸 마셨다.
타들어 가는 속을 냉수로 식혀야 했기 때문이다.
물을 따라 마신 정수기 컵을 쓰레기통에 꾸겨 버린 뒤, 남편이 있는 병실로 걸어가던 김말자는 다시 휴게실로 되돌아와 컵을 버린 쓰레기통을 잠시 쳐다보더니 그대로 들고 병실로 향했다.
드르륵- 탁-
그리고 제법 큰 쓰레기통을 들고 병실 문을 세차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곧이어 구동곤과 이예림 머리 위로 온갖 쓰레기들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