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19화 (418/472)

419화. 고소? 그래 어디 해 봐

“아니, 어떻게 이러냐! 마누라 식당일 시키고 젊은 년이랑 병원에서 붙어먹고 있는 게 말이 돼?”

한바탕 난리가 난 뒤 병실에 몰려 있던 환자들은 각자 병실로 돌아가며 아까 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말이. 하다 하다 병원에서 외도하는 사람들은 처음 보네. 막장 드라마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니까. 현실이 더 해.”

“그러게. 오늘 우리 드라마 다 봤다. 여기가 훨씬 재미있어.”

“그런데 아까 그 아주머니 마지막에 말을 아주 똑 부러지게 잘하더라.”

“사람이 아주 강단 있어 보이던데?”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마. 지금쯤 아마 속은 짓눌려서 가루가 됐을걸. 저런 인간들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되니까 정신 줄 꽉 잡고 있던 거지.”

“하긴 그러네. 세상에 어느 사람이 배우자 바람난 현장을 직접 보고 멀쩡할 수 있겠어. 상처 많이 받았겠다.”

“하여간에 바람피운 년, 놈들은 아주 그냥 아작을 내야 해. 어휴! 재수 없는 것들.”

“자기 왜 그렇게 열불이 났어?”

“우리 오빠도 예전에 부인이 바람나서 이혼했거든. 그래서 난 저런 것들만 보면 아주 이가 갈려.”

“그런 일이 있었어? 오빠는 지금 괜찮고?”

“지금은 애들이랑 잘 살지.”

“저기요?”

이야기하며 병실로 들어가는 환자들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불렀다.

“우리 부른 건가?”

“저기, 죄송한데요?”

자세히 보니 그들을 부른 건, 김말자의 딸 구지연이었다.

“네?”

“혹시 아까 병실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다 보셨나요?”

“보기는 했는데…….”

“뭐 때문에 그래요?”

“조금 전에 그 병실에서 나온 분이 우리 엄마세요.”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환자들을 보며 구지연이 김말자와의 관계를 밝혔다.

조금 전, 식당에서 이모와 통화 후 병원으로 되돌아온 뒤 곧장 접수처로 향했다.

‘저기, 우리 엄마 병원에 다시 오시지 않았어요?’

‘어머! 따님 오셨네.’

‘어머니 지금 병동에 계시는데 일이 좀 생겼어요.’

‘일이요? 엄마가 어디 아프신가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대충 접수처 직원에게 말을 듣고 병동으로 올라온 구지연은 몰려 있는 환자들 틈에서 세 사람을 목격했다.

식당에서 오느라 앞의 상황은 보지 못했지만, 김말자가 날린 사이다 발언을 들고 어떤 상황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태경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엄마의 모습을 봤지만, 구지연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엄마가 이런 모습을 딸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구지연은 지금 정확한 내막을 알고 싶었다.

“세상에! 따, 딸이라고요?”

“아가씨가 아까 그 본처 아주머니 친딸이라는 거예요?”

“네, 맞아요. 제가 조금 전에 와서 자세한 상황을 못 봤어요.”

“그랬구나. 근데 이거 남의 가정사를 우리가 이렇게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딸인데 당연히 알아야지. 대충 눈치챘겠지만, 아가씨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까 병실에 있던 여자랑 바람이 났어요.”

오빠 와이프가 바람이 났다며 분노했던 환자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상황을 설명하자 곁에 있던 다른 환자도 덧붙이기 시작했다.

“맞아요. 여자는 건강검진이고 그쪽 아빠는 허리 치료받으러 왔는데 병동에서 어찌나 눈꼴시게 붙어 다녔는지 몰라. 다른 환자들이 항의해서 여기 원장님께 주의도 받았어요.”

“아가씨 엄마가 막 뭐라고 하니까 임신했다고 거짓말까지 하다 딱 걸렸잖아.”

“언니도 참! 그런 것까지 뭐 하러 이야기해.”

“왜, 전부 다 말해야지.”

구지연은 세 명의 환자에게 병실에서 있던 일부터 그동안 두 사람이 병원에서 했던 일까지 전부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엄마가 마음이 좀 힘들 텐데 딸이 잘 위로해 드려요.”

“네, 이야기해 줘서 감사합니다.”

“지연아? 너 괜찮아?”

환자들이 병실로 들어가고 옆에 있던 남자친구가 구지연을 걱정하며 물었다.

“아니!”

짧은 대답을 마친 구지연은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그대로 구동곤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오빠? 아까 한 말 사실이야? 나한테 진심이라며? 나 좋아한다며?”

그 시각 병실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감정을 쏟아내며 말다툼하고 있었다.

“야! 내가 언제 널 좋아한다고 했어. 너 혼자 설레발 친 거잖아. 그리고 뭐, 임신? 그땐 말은 왜 해가지고 일을 크게 만들어.”

“크게 만들긴 뭘 크게 만들어? 그래서 뭐야? 지금 나랑 헤어지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너랑 헤어지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뭐, 뭐라고!”

방금 구동곤의 발언으로 이예림은 상당한 타격을 받은 듯했다.

“헤어지고 말고라니. 지금 말 다 했어? 정리한다며! 정리할 거라고 했잖아?”

“말은 똑바로 하자. 내가 언제 정리할 거라고 했어? 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한 거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난 아내랑 헤어질 마음 없어.”

“하! 오빠 나 지금 버리는 거야? 나 버리지 마. 내가 그 여자보다 못한 게 뭔데? 나 좋다고 했잖아. 그 늙어 빠진 뚱뚱하고 가슴도 없는 여자도 아……!”

쫙-

구동곤 태도에 충격받은 이예림의 선 넘는 막말이 이어지던 그때, 병실에 들이닥친 구지연이 뺨을 날렸다.

“악!”

온 힘을 실어 내려친 손에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이예림의 고개가 한쪽으로 쏠리며 맞은 뺨이 순식간에 벌겋게 변해 버렸다.

“이건 또 뭐야!”

“나? 아까 여기 계신 분의 딸이다. 왜?”

이예림이 맞은 뺨을 잡고 노려보자 구지연은 당당하게 답했다.

“따, 딸! 오빠 얘 오빠 딸이야.”

“…….”

남자친구와 함께 들어온 딸의 모습을 본 구동곤은 아내를 볼 때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그렇지 네가 뭔데 날 때려.”

“뭘 때리냐고? 한 대 더 맞고 싶어? 왜 맞은 건지 몰라? 가슴도 없는 여자? 우리 엄마 유방암 걸려서 수술하신 거야. 힘들게 암 투병한 분에게 그게 할 소리야?”

“사, 사람이 화가 나면 무슨 말을 못 해. 그리고 너! 내가 너보다 나이도 많은데 어른한테 함부로 반말하고 그러는 거 아니다.”

“어른이 어른다워야 어른 대접을 하지. 내가 장담하는 게 당신 언젠가는 꼭 피눈물 흘릴 거야.”

“내가 피눈물을 왜 흘려? 그리고 너, 너 내가 지금 맞은 거 진단서 떼어서 고소할 거야.”

“고소? 그래 어디 해 봐. 고소하는 순간 나도 당신 우리 엄마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고 인터넷에 가정 파탄범으로 바로 올려 버릴 거니까 마음대로 해 봐. 난 무서운 거 없어.”

“이, 이게 진짜…….”

순간 손을 올리려던 이예림은 구지연 뒤에 서 있던 체격 좋은 남자친구가 매섭게 노려보자 손을 내리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연아, 미안해.”

이예림에게 돌아선 구지연이 자신을 쳐다보자 구동곤이 고개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미안은 내가 아니라 엄마한테 해야지. 정말 저 여자랑 바람 난 거야? 맞아?”

“내가 미안하다…….”

구동곤이 풀죽은 개처럼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구지연은 그런 아빠의 모습이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엄마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이래!! 아빠가 내 아빠라는 게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어.”

“지연아…….”

자신을 부르는 아빠를 경멸하듯 쳐다본 구지연은 남자친구와 함께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엄마야! 이게 뭐래!”

구지연과 남자친구가 병실을 나가자마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청소 담당 직원이 청소 물품이 실린 카트를 밀고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병실이 왜 이래.”

최 팀장에게 연락받은 직원은 난장판이 된 병실을 청소하기 위해 올라왔다가 구지연과 남자친구를 보고 밖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그냥 쓰레기통이 따로 없네.”

“흐윽!”

김말자에 이어 구지연에게도 팩폭을 맞은 이예림은 자신의 처치가 기막혀 베드에 앉아 울고 있었고 구동곤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흐윽!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나한테 이래애애!”

“아으! 귀 따가워라. 가정 있는 남자 건드려 놓고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단다.”

“뭐라고요?”

병실 바닥을 청소하던 직원의 말을 얼핏 들은 이예림이 기분 나쁜 듯이 따져 물었다.

“아주머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뭐라고 하긴 뭘 뭐라고 해요. 귀 따갑다고 했지. 내가 내 입 갖고 떠드는데 그 짝이 왜 난리래.”

“정말이에요? 분명 나보고 잘 못했다고 한 거 같은데…….”

“무슨 소리래. 그 짝이 처맞아서 정신이 없어서 헛소리를 들었나 보지.”

“처맞기는 누가 처맞아요.”

“알았으니까 다리나 좀 들어 봐요. 병실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놓고 가만히 앉아……!”

타격감이 전혀 없는 이예림이 하는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청소하고 있던 직원이 별안간 빗질을 멈추더니 다시 빗질을 시작했다.

“……!”

그런데 서너 번 움직이던 빗질이 다시 멈추더니 직원이 정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어이!”

카트 안에 쓰레기통이 뻔히 있는 게 보이는데 이예림이 빗질하고 있는 병실 바닥에 코 푼 휴지를 보란 듯이 버리고 있었다.

“시방 지금 뭐 하는 거여?”

“예?! 뭐가요?”

직원이 집게로 코 푼 휴지를 들고 말하자 이예림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가요? 아니, 지금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어지간해서는 아파서 치료받으러 오는 병원 환자들에게 늘 웃는 얼굴로 대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전 아주머니에게 웃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말이야 막걸리야? 세 살배기 애도 사용한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걸 알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청소하는 거 뻔히 보이는데 바닥에 휴지를 버리면 어떡해요? 네?”

“아, 아니 청소하시길래 바닥에 버려도 되는 줄 알고 그랬어요.”

“바닥에서 청소하고 있으면 바닥에 버려도 된다는 말인가?”

“그런 뜻이 아닌데……. 제가 실수했네요. 쏘리.”

“쏘리 같은 소리하고 자빠져 있네. 저러니까 욕을 먹지?”

“아주머니 방금 또 내 욕했죠?”

“욕은 무슨 욕을 했다고 그래요? 청소하게 좀 일어나 봐요!”

직원은 이예림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쓰레기를 몰아가며 더 열심히 빗질을 시작했다.

* * *

“구지연 씨?”

병동 정리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온 임정숙 간호사는 접수처 직원과 이야기하고 있던 구지연을 부르며 다가갔다.

“혹시 어머니 찾고 계세요?”

“네, 선생님. 어디 계신 줄 아세요?”

“아까 원장님이랑 같이 내려오셨는데 아마 이야기하고 계실 거 같아요. 지금 불러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기다리셨다 같이 가실 거죠?”

“네, 주차장에 있으려고요.”

“그럼, 어머니 나오시면 제가 전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주차장으로 나온 구지연은 남자친구와 함께 일단 차에 올랐다.

“지연아…….”

“어떻게 이래? 아빠가 엄마한테 어떻게 이러냐고!”

감정이 복받친 구지연은 엄마를 생각하다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엄마……하! 엄마 어떻게……흑!”

남자친구는 어처구니없는 이 상황이 어떤 말로도 위로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조용히 그녀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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