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27화 (426/472)

427화. 33번이요

이준역은 잔뜩 꾸겨진 옷자락처럼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아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이지상!”

다시 한번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질러 불렀지만, 들려오는 건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뿐이었다.

“저, 저기요. 혹시 제 옆에 붙어 있던 키는 한 이만하고……. 파란색 옷 입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못 보셨어요?”

“못 봤는데요.”

“나도 못 봤는데.”

“이렇게 생긴 남자아이 못 보셨나요?”

“네, 못 봤어요.”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아들 지상이를 본 사람은 없었다.

‘여보, 뭐 때문에 이렇게 일찍 나가려는 거야? 그것도 지상이까지 데리고.’

애가 타는 마음과 함께 순간 집을 나오기 전 와이프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말해 줄게.’

‘부자가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네. 아무튼 오늘 장날에 축제 기간까지 겹쳐서 사람들 말도 못 할 텐데 내 핸드폰 가져가.’

‘자기 핸드폰을 왜 가져가?’

‘사람 많으니까 혹시나 지상이 놓치면 그때 전화하면 되잖아.’

‘내가 우리 아들을 왜 놓쳐.’

‘당신 아들이 천방지축이라 혹시 모르니까 만약을 위해 가져가라는 거지.’

‘별걱정을 다하네. 아들 이리 와 봐.’

‘왜?’

‘지상아, 이따 아빠랑 시장 갈 때 혼자 막 뛰어가고 그러지 않을 거지?’

‘응. 안 그래. 사람 많은 곳에서는 어른 손을 꼭 잡고 붙어 다녀야 하잖아.’

‘봤지? 우리 아들이 이렇게 똘똘하다니까.’

‘그래도 가져가. 오늘은 육지에 사람 진짜 많을 거란 말이야.’

‘괜찮아.’

혹시라도 핸드폰을 가져가라고 당부하던 아내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거절했던 이준역은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하!”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높은 곳에 올라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많은 인파로 인해 아이의 모습이 보일 리 만무했다.

드론 쇼를 하는 곳과 장난감 노점을 번갈아 다녀 봐도 아이가 보이지 않자 이준역은 급하게 상가가 있는 건물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상 아빠 왔어?”

이준역이 급하게 들어온 곳은 단골 만물상 가게였다.

“저번에 말한 물건 가지러 온 거야? 그거 좀 더 있어야 한다고 내가 문자 넣었어. 그런데 오늘은 지상이가 안 보이네?”

“사장님 죄송한데 저 이것 좀 잠시만 맡아 주시겠어요?”

“물건 맡아 주는 거야 일도 아닌데,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그래?”

만물상 주인은 사색이 된 이준역을 보며 물었다.

“지상이를 잃어버렸어요.”

“뭐!? 애를 잃어버리다니. 어쩌다가?”

“제 옷 잡고 드론 보려고 갔는데 지상이가 안 보이더라고요.”

“사람들 속에서 떠밀려 갔나 보다. 오늘 완전 도떼기시장 저리 가라잖아. 파출소에는 연락해 봤어? 아! 거기 오늘 지원 나간다고 했는데……. 이를 어쩌냐.”

“찾아보면서 일단 연락해 보려고요.”

“그래. 물건은 여기 두고 나도 나가서 같이 찾아볼게. 여보? 마누라? 영아!”

“숨넘어가겠네. 왜요?”

“얼른 좀 나와 봐.”

만물상 사장은 함께 아이를 찾기 위해 방에 있던 아내를 불렀다.

“지상 아빠 왔네.”

“나, 나갈 테니까 당신이 가게 좀 봐. 지상이가 없어졌대.”

“저런! 언제?”

“시장에서 사람들 많아서 그런 거지 뭐. 아무튼 당신 여기 있어.”

“지상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 지상이 똘똘하잖아. 우리 아들놈들도 어릴 때 시장만 가면 없어지곤 해도 다 찾더라. 꼭 찾을 거야.”

“감사합니다.”

이준역은 만물상 사장과 함께 가게를 나와 아들을 찾기 시작했다.

* * *

그 시간, 배 시간이 남은 태경은 두 친구와 함께 전통 시장과 축제를 구경하고 있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으니까 여러분들 모두 즐겁게 놀다 가세요. 자! 한 곡 더 갑니다.”

“각설이 공연도 하고 확실히 전통시장 느낌 제대로 난다.”

“은근히 재미있네.”

“이상하게 어릴 때는 저런 거 별로였는데 지금은 넋 놓고 보게 되더라.”

“그게 다, 형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요.”

“나이는 나만 먹었냐? 너도 나이 들었어.”

“그래도 나랑 태경이는 형보다 두 살이나 어리잖아.”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어리긴 뭐가 어려. 나이 타령 그만하고. 야! 저기 봐 봐.”

각설이 공연을 보고 있던 박준석이 태경과 이재현의 어깨를 치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사진 찍는 곳인가 봐.”

박준석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지자체를 대표하는 캐릭터 인형과 꽃으로 꾸며 놓은 포토 스팟이었다.

“얘들아, 우리도 저기 가서 사진 한 장 찍자.”

“다 늙어서 무슨 사진이야?”

“그래요. 형 각설이 공연이나 마저 봐요.”

“사진 찍는 거랑 나이랑 뭔 상관이야. 그리고 각설이는 내년에도 죽지도 않고 또 와서 그만 봐도 돼.”

“사람 많아서 찍으려면 줄 서야 할 것 같은데…….”

“두 팀밖에 없는데 사람이 많긴 뭐가 많아. 동생들아, 결국엔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야! 너희 이럴 거면 뭐 하러 놀러 왔어. 각자 집에 틀어박혀서 잠이나 잘 것이지? 태경아, 재현아?”

“알았어요. 사진 찍읍시다. 재현아, 형이 저렇게 원하는데 가서 사진 찍자.”

“그래 어려운 일도 아닌데 사진 찍자.”

결국 박준석의 성화에 못 이긴 태경과 이재현은 사진을 찍기로 했다.

“야, 너희 이따 사진 찍을 때 나 따라서 이렇게 해. 알았지?”

“그게 뭐예요?”

손가락으로 만든 브이를 거꾸로 뒤집은 박준석을 보며 태경이 물었다.

“태경이 너도 이거 모르는구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진 찍을 때 브이를 거꾸로 한대.”

“아니, 셋 중에 나이는 형이 제일 많은데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형 진료 보는 시간 빼고 인터넷만 붙잡고 사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이번에 새로 들어온 막내 간호사가 알려 줬어.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집에 가서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진짜 이렇게 찍는다고 하더라. 뭔가 느낌 있지 않냐?”

“느낌 1도 없는데. 아무렇게나 찍자.”

“형, 나도 그건 좀 힘들 거 같은데요. 그냥 편하게 찍어요.”

“사진 찍습니다.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셋!”

찰칵- 찰칵- 찰칵-

절대 안 한다던 태경과 이재현은 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는 사람 목소리에 맞춰 거꾸로 브이를 하며 맏형의 기분을 맞춰 줬다.

즐겁게 사진을 찍은 세 사람은 그 뒤, 장터에서 간단히 국수로 끼니를 해결하고 소화를 시킬 겸 주변 노점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근데 재현아. 넌 희락도를 어떻게 알고 가자고 한 거야.”

태경은 이번 여행지를 섬으로 정하고 적극 추천한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즐겨 보는 여행 너튜브 때문에 알게 됐어. 그 사람이 숨겨진 여행 명소라고 하면서 영상 보여 주는데 셋이 같이 가면 좋겠다 싶어서 추진했지.”

“나도 아까 찾아봤는데 경치도 좋고 힐링하기 좋은 섬이라고 하더라. 태경이 너도 마음에 들어 할 거야.”

“힐링 좋지. 배 시간 얼마나 남았지? 아직 시간 있지?”

“어. 왜?”

“그럼, 우리 저거 한번 해 볼까?”

태경이 말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설탕으로 만든 뽑기 자판이 눈에 띄었다.

“이야! 저거 진짜 오랜만이네. 나 어릴 때 학교 옆에서 방방이랑 같이 있었는데 추억 돋는다.”

“단순히 설탕 덩어리인데 어릴 때는 저게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볼라.”

“오랜만에 셋이 한 번씩 뽑아 볼까?”

“그냥 하는 것보다 가장 큰 거 뽑는 사람 만원 빵 어때?”

“좋은데? 가자.”

뽑기 엿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세 사람은 바로 자판으로 걸어갔다.

“어서 오세요.”

자판으로 향하자 작은 단검부터 성인 남자 팔 길이보다 큰 대왕 잉어까지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설탕 엿이 자판에 걸려 있었다.

“사장님, 이거 어떻게 해요?”

“한 번에 삼천 원, 세 번에 오천 원이고 단순하게 1번부터 100번까지 뽑으시면 됩니다.”

“오천 원짜리 할게요.”

“네, 순전히 운으로 복불복으로 뽑히는 거니까 편하게 뽑아들 보세요.”

“우리 돌아가면서 하나씩 뽑아 볼까?”

“좋아.”

“나부터 한다. 삼…….”

“난 33번이요.”

박재현이 먼저 신중하게 번호를 말하려던 그때 그보다 먼저 튀어나온 당찬 목소리에 선두를 빼앗겨 버렸다.

“이런, 아들이 먼저 말했네요.”

“아들이요!?”

“아들!”

뽑기 사장의 말에 세 사람이 황당한 얼굴로 동시에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세 사람 바로 뒤에는 아이가 있었다.

“너!”

태경은 아이를 보자마자 누군지 바로 알아보며 반응했다.

아까 터미널에서 이재현의 신용카드를 주워 줬던 바로 그 남자아이였다.

“너, 카드 주워 준 아이 맞지?”

“네, 저 맞아요.”

“그런데 아빠는? 너 아까 아빠랑 같이 있었잖아.”

그러고 보니 분명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이 옆에 보호자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를 잃어버렸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이의 말에 뽑기에 집중하던 세 사람의 신경이 바로 아이에게 옮겨 갔다.

“어떡하다가?”

“잠깐만!”

태경은 한쪽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옆에 두 사람에게 눈짓을 보내며 차분하며 물었다.

“우리 친구 이름이 뭐야?”

“이지상이라고 해요.”

“지상아, 아빠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나?”

“네, 저쪽에 드론 쇼 구경하러 갔다가 뒤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떠밀려 왔어요.”

당황했던 세 사람과 달리 지상이는 놀란 기색 없이 차분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원하는 걸 정확히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들한테 밀렸다가 드론 쇼 주변으로 갔는데 아빠가 안 보였어요. 아마 절 찾아다녀서 길이 엇갈린 거 같아요.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될 거 같아서 생각하다가 아저씨들이 보이길래 쫓아왔어요. 원래는 처음 보는 사람은 쫓아가면 안 되는데요 아저씨들은 아까 버스 타는 곳에서 한 번 봤잖아요.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부탁하려고 쫓아왔어요.”

아이의 똑 부러지는 설명에 세 사람은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녀석 되게 똘똘하네.”

“지상아, 아저씨들한테 부탁할 거 있다고 했지. 들어줄게. 말해 봐.”

“죄송하지만 아빠한테 전화하려고 하는데 핸드폰 한 번만 빌려주시면 안 돼요?”

“당연히 되지. 아저씨 거 써. 여기.”

태경은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건넸다.

“아빠한테 얼른 전화부터 해.”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 아이는 건네받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음만 들릴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아빠가 전화 안 받아?”

“네. 안 받아요.”

“아마 아빠가 지상이 찾느라 전화하고 계셔서 그럴 거야. 문자 한번 남겨 볼래?”

“그래도 돼요?”

“그럼, 문자 보낼 줄 알아?”

“네. 문자 보낼 줄 알아요.”

다시 한번 핸드폰을 받은 아이는 능숙하게 문자를 남겼는데 그 내용이 또 한 번 세 사람을 깜짝 놀라 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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