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얘들아, 나 다리가…….
작은 손으로 다급하게 가리는 아들의 손 너머로 케이크를 본 김한솔은 이제야 부자가 아침 일찍 육지로 나간 이유를 알았다.
“내 생일 때문에 뭍으로 간 거였어?”
“응. 맞아. 서울에서 버스 타고 케이크 와서 아빠랑 엄마 주려고 케이크 받으러 갔어.”
“아니, 그깟 생일이 뭐가 중요하다고. 난 생일 챙기고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거 알잖아.”
“내가 신경 써. 당신 생일 그냥 지나가는 거 난 싫어. 가족들 생일은 죄다 챙기면서 왜 본인 생일은 그냥 넘어가는데.”
“뭘 새삼스럽게 그래. 연애할 때도 그랬잖아.”
“그러니까 올해는 생일이라도 좀 챙기자고.”
김한솔은 친정 식구부터 시댁 식구까지 누구 하나 소외되는 사람 없이 온 가족의 생일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지만, 정작 본인 생일에는 늘 시큰둥한 사람이었다.
막상 생일 때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는 아내를 보며 이준역은 이번에는 제대로 된 생일을 챙겨 주고자 마음먹었다.
“아무튼 오늘은 내가 자기 생일 제대로 준비할 테니까 당신은 애들이랑 방에서 나오지 말고 쉬고 있어.”
“아빠? 지상이도 같이 하기로 했잖아.”
“그래. 아빠랑 같이하자.”
“지윤이도 할 꼬야.”
“우리 공주님도 할 거예요? 그럼, 다 같이 하자.”
몇 시간 만에 감정이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이준역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모습으로 집으로 향했다.
김한솔과 이준역은 희락도에서 태어난 동갑내기로, 서울로 대학을 가며 섬을 떠났다.
건축 설계사와 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첫사랑으로 사랑을 키우다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후 열심히 일에 전념하던 둘은 쳇바퀴 돌 듯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 지쳐 모든 걸 정리하고 섬으로 유턴했다.
원래부터 요리를 좋아한 두 사람은 한식 자격증을 취득한 뒤 섬에 식당을 차리며 아들, 딸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준역은 아들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생일파티를 준비했다.
“아들 어때?”
나란히 앞치마를 입은 부자는 식탁에 차려진 생일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엄마가 좋아할 거 같아?”
이준역의 말에 아이의 시선이 식탁 위를 훑었다.
해산물이 가득 들어간 미역국부터 잡채, 소불고기, 전복 버터구이 등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응! 아빠 최고야.”
아이는 양손으로 엄지를 바짝 세우며 아빠를 칭찬했다.
“엄마가 진짜 좋아할 거 같아. 아빠? 그런데 나 오늘 아빠 보조 잘했지?”
“그럼. 지상이가 오늘 음식 만드는 거 도와줘서 아빠가 빨리할 수 있었어. 아들 고마워. 이제 엄마 불러볼까?”
“응. 엄마 부르자.”
“그럼, 지상이가 엄마 불러와.”
“알겠어.”
똑- 똑-
아이는 아빠가 건넨 고깔모자를 들고 안방으로 다가가 노크했다.
“엄마? 이제 나와도 돼.”
“세상에! 이게 다 뭐야?”
딸과 함께 방 밖으로 나온 김한솔은 풍선과 생일 축하 멘트로 꾸며진 거실을 보며 진심으로 놀란 듯 보였다.
“나랑 지윤이 방에 있는 동안 이걸 다 한 거야?”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엄마, 쩌기 풍선 있오.”
“그러네. 우리 지윤이가 좋아하는 풍선 아빠랑 오빠가 잔뜩 달아 줬네. 지윤아, 예쁘지?”
“응. 예뽀.”
“엄마, 이거 머리에 써.”
아이는 잔뜩 들뜬 표정으로 엄마에게 고깔모자를 건넸다.
“이거 엄마 거야? 멋지다. 어때? 엄마 어울려?”
“응. 잘 어울려.”
“감동 그만하시고 김한솔 씨. 얼른 와서 앉으시죠.”
“뭐야, 이거 직접 다 만든 거야? 언제 다 만들었어?”
“오늘 새벽에 당신 잘 때 준비 다 해 놨지.”
“정말? 나 어제 곯아떨어져서 당신 중간에 나간 것도 몰랐네.”
“어때?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내가 다 좋아하는 것만 있잖아.”
“엄마, 이거 계란말이는 내가 만들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하트 모양 접시에 담긴 계란말이를 가리켰다.
“어쩜 이렇게 잘했어. 엄마 아까워서 이거 못 먹겠다.”
계란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양도 찌그러지고 형편없었지만, 김한솔 눈에는 아들의 사랑이 느껴지는 소중한 계란말이였다.
“아니야, 엄마 꼭 먹어. 엄마 주려고 내가 아빠랑 열심히 만들었단 말이야.”
“알았어. 엄마 이거 다 먹을게.”
“자! 케이크 나갑니다.”
잠시 주방 창고로 나갔던 이준역은 촛불이 꽂힌 케이크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 케이키 안에 그림 있오.”
“지윤아, 이거 아빠랑 엄마랑 오빠랑 지윤이야. 우리 가족이야.”
“우리 다 같이 엄마 생일축하 노래 불러 줄까?”
“좋아.”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 축하합니다.”
“후!”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김한솔은 기분 좋게 촛불을 껐다.
“엄마, 소원 빌었어?”
“응. 우리 지상이랑 지윤이 아빠랑 엄마까지. 모두 건강하고 네 식구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빌었지.”
“나도 그렇게 빌었어.”
“정말? 잘했네.”
“여보, 생일 축하해. 이건 우리 셋이 함께 준비한 선물이야.”
이준역은 아이들과 함께 준비한 목걸이와 팔찌를 아내에게 선물했다.
“엄마, 이거 지윤이랑 내가 용돈 아빠한테 줘서 같이 선물 골랐어.”
“마자. 지윤이도 천 원 보태써. 아빠, 아빠 지윤이도 보태지?”
알록달록 고깔모자에 시선이 뺏겨 있던 막내딸도 아빠를 쳐다보며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우리 공주님이 용돈 보태 줬지.”
“지상이랑 지윤이가 엄마 주려고 용돈으로 선물까지 사 준 거야? 엄마 너무 감동이다.”
김한솔은 뿌듯하게 말하는 두 아이를 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기뻐하기를 기대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일부러 보인 행동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격스러웠다.
이준역과 김한솔은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있었는데, 단순히 그냥 주지 않았다.
아직 어린아이들이지만, 돈의 소중함을 알려 주기 위해 집안일을 할 때 용돈을 줬다.
주로 신발 정리나, 장난감 정리, 다 먹은 밥그릇 정리 등 지극히 사소하고 지극히 간단한 일을 할 때마다 백 원, 삼백 원, 오백 원씩 나눠줬다.
비록 작은 동전이지만 아이들은 돈의 가치를 알고 받을 때마다 좋아하며 소중하게 모았다.
그렇게 매년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장난감을 사곤 했다.
그런데 그런 소중한 용돈을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사는 데 보태줬다니 그 마음이 사랑스럽고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 이거 아까워서 못 하겠는데? 어쩌지?”
“아니야. 해야 해.”
“선물은 원래 아까워하면 안 돼. 내가 채워 줄게.”
이준역은 상자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목걸이를 아내 목에 걸어 줬다.
“어때? 잘 어울려?”
“당연하지.”
“엄마 너무 예쁘다.”
“예뻐? 엄마 예쁘다니까 기분 좋네.”
김한솔은 아이들과 남편이 함께 준비한 선물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생일파티 하는 것도 괜찮지?”
“괜찮은 게 아니라 너무 좋아. 고마워 여보. 지상이랑 지윤이도 고마워.”
“맞다! 여보?”
아이들에게 케이크를 잘라 주던 이준역은 뭔가 생각난 듯 아내를 쳐다봤다.
“응. 왜?”
“실은 아까 지상이 찾을 때 도와주신 분들이 계셔.”
“맞아. 아저씨들이 아빠 찾을 수 있게 같이 있어 주고 저 잉어도 뽑아서 나 주셨어.”
생크림을 입에 묻히며 맛있게 케이크를 베어 물던 아이도 태경과 친구들이 생각난 듯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그 아저씨들 아니면 나 혼자서 아빠 기다리기 힘들었을 거야.”
“그분들이 누군데?”
아저씨들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이준역은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드론으로? 너무 감사하다. 자기야, 그분들 섬에 왔다고 했지? 연락처 알면 이따 우리 식당에 오시라고 하자. 지상이 찾아 주셨는데 밥이라도 대접해야지.”
김한솔은 목숨보다 귀한 아들을 찾아준 사람들에게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다.
“연락처는 모르고 안 그래도 아까 배에서 명함 주면서 오라고 했는데 올지는 모르겠어.”
“그래? 꼭 오라고 문자라도 남길까? 아! 번호 모른다고 했지? 왔으면 좋겠다.”
“그러게. 당신 얼른 케이크 먹어.”
“응. 빵이 진짜 부드럽다. 당신도 먹어.”
부부는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가족이 함께한 행복한 생일 파티를 마무리했다.
* * *
그 시각, 섬에 도착한 태경과 친구들은 개인택시를 섭외해 섬을 관광하고 있었다.
“기, 기사님!”
힘겨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 이재현은 택시 옆에 서 있던 기사를 불렀다.
“아이고, 우리 의사 선상님들 이제야 도착했네. 갔다 왔어요?”
“예, 갔다 오긴 했는데 그게…….”
“어때요? 내 말대로 경치가 죽이죠? 희락도 경치를 즐기려면 반짝 등대를 올라가야 한다니까. 나도 소싯적에 전국으로 여행을 꽤 다녀 봤는데 이만한 데가 없어요.”
“좋기는 한데 길이 너무 힘든데요.”
“힘들긴 무슨.”
“얘들아, 나 다리가……. 우욱!”
“형? 괜찮아요?”
앉은 자세로 계단을 내려오다시피한 박준석이 말을 하다 말고 오바이트를 하려 하자 태경이 등을 토닥였다.
“태경아, 이거 힐링 맞는 거지? 나 조상님 보는 줄 알았다. 요단강 건너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보였어.”
세 사람은 평생을 섬에서 산 기사님의 추천으로 반짝 등대라는 곳을 방문하게 됐다.
문제는 그 등대가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는데 가뜩이나 높은 곳에서 계단을 타고 또 올라가야 했다.
멀리서 볼 때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기에 세 사람은 호기롭게 등대로 출발했지만, 내려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이제 보니까 기사님 높아서 안 올라가신 거죠?”
“당연하지. 내 나이에 높은데 잘못 올라갔다가 무릎 나가면 큰일 나요.”
“그렇게 높은 곳에 있었으면 미리 알려 주시지 그러셨어요?”
“사실 저기 올라가면 반짝 별이 보인다고 해서 반짝 등대이기는 한데……. 조금 높긴 한데 젊은 사람들이 엄살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닌데?”
“엄살이 아니라 진짜 힘들었어요. 그러는 기사님은 저기 올라가 보셨어요?”
“나야 섬에서 자고 먹고 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주말에 약수 뜨러 가듯이 밥 먹듯 올라가요.”
“저기를 주말마다? 기사님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내가 육십 넘도록 건강하잖아요. 그래도 경치는 좋지 않았어? 저기가 대한민국 일등이야.”
“그건 맞아요.”
마치 등산을 한 것처럼 힘들었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멋진 풍경을 감상했기에 세 사람 모두 만족스러웠다.
“고생했으니까 간식이나 먹으러 갈까? 먹물 핫도그로 유명한 곳이 있는데 좋아해요?”
“그럼요.”
섬에서 유명한 핫도그를 맛본 세 사람은 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바다낚시를 즐겼다.
열심히 넋 놓고 물멍을 하며 집중했지만, 낚시에 소질이 전혀 없는 세 사람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일어나야 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붉은 노을이 희락도 전체를 비추며 곧이어 저녁이 찾아왔다.
“얘들아. 슬슬 배고프지 않냐?”
“배고프다. 저녁은 무조건 맛있는 걸로 제대로 먹자.”
“그러면 우리 여기로 가는 거지? 사장님한테 연락드린다.”
박준석이 오전에 이준역으로부터 받은 명함을 흔들며 말했다.
“형, 그냥 우리 다른 데 가는 게 어때요?”
“왜? 가는 거 아니었어?”
“우리가 가면 사장님이 분명 돈 안 받으려고 할 거 같아요. 다른 손님 받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는데 뭔가 미안하잖아요.”
“그건 태경이 말이 맞아. 이런 데는 식자재도 배로 공수받을 텐데 한 테이블 공짜로 나가면 손해잖아.”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러지 말고 다른 곳 가요.”
“어쩔 수 없지. 그러자.”
마음은 고마웠지만, 신세 지고 싶지 않던 세 사람은 결국 이준역네 식당을 가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저녁 먹으러 갈 곳은 정했어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사가 넌지시 물었다.
“아니요. 사장님께서 추천 좀 해 주세요.”
“희락도에서 가장 맛있고 유명한 집으로 부탁드립니다.”
“저희 저녁 진짜 맛있는 거 먹고 싶거든요.”
“우리 섬에 있는 식당은 다 맛있는데 그중에 제일 맛있는 집이 하나 있긴 한데……. 어떻게 그 집으로 데려다줄까요?”
“네, 기사님.”
원래 진짜 맛집은 그 동네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는 식당이 진짜라고 했다.
자신 있게 말하는 기사의 말에 세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사가 그토록 추천한 식당 앞에 택시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내가 말한 식당이 바로 이 집이에요.”
“여기요?”
택시에서 내린 세 사람은 간판을 보며 다시 한번 기사에게 되물었다.
“기사님, 정말 여기가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