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31화 (430/472)

431화. 당황한 태경

“여기요?”

택시에서 내린 세 사람은 간판을 보며 다시 한번 기사에게 되물었다.

“기사님, 여기 맞아요?”

“확실해요?”

“확실하다마다.”

태경과 이재현, 박준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식당 간판으로 향했다.

“아니, 그런데 식당 간판이 어쩜 저렇게 깨끗하냐?”

“내 말이. 나 간판 이렇게 깨끗한 식당 처음 본다.”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함이 느껴지는 간판 위에는 정갈한 글씨체로 ‘바다 속 진주’라고 쓰여 있었다.

이 식당은 희락도를 들어오는 배에서 마주친 지상이의 아빠 이준역이 운영하는 명함 속 그 식당이었다.

“주인장들이 엄청 깨끗하고 청결해서 매일 간판도 닦아서 저래 광이 나는 거요. 뭐니 뭐니 해도 식당은 청결해야 하잖아요.”

“이 집이 그렇게 맛집이에요?”

“맛집이지. 내가 수더분하게 생겼지만, 이래 봬도 입맛이 보통 까탈스러운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집은 달라. 희락도뿐만 아니라 뭍에 있는 유명 식당이랑 비교해도 여기가 일등이야.”

“그 정도예요?”

“사장 내외가 젊은 사람들인데 여기 희락도 출신이에요. 서울 살다가 식당 하려고 자격증도 따고 유명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연구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둘 다 솜씨가 좋아. 요즘 사람들이 많이 하는 그 뭐냐, 그 사진 찍어 올리는 스타 뭐시기 있잖아요.”

“인스타요.”

“그래. 인스타. 거기 검색해 보면 왔다 간 사람들 사진도 많고 방송국에서도 촬영한다고 몇 번이나 찾아왔는데 손님들 불편하다고 거절하고 그랬어요.”

“기사님, 혹시 식당 사장님 가족 아니세요?”

무슨 가족 챙기듯이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는 기사를 보며 이재현이 물었다.

“가족은 무슨. 식당이 깨끗하고 맛있으니까 추천한 거지. 여기 사장님 때문에 우리 섬이 알려진 것도 있고 그러니까 얼마나 기특해.”

“그렇구나.”

“왜요? 의사 선상님들 여기, 별로야?”

뭔가 뜨뜻미지근한 세 사람의 반응에 택시 기사가 살짝 당황하며 물었다.

“아니요. 별로긴요. 신기해서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섬 토박이 기사님이 추천해 주셨는데 좋죠.”

“어! 진짜 인스타에 리뷰가 장난 아니네. 이거 봐.”

옆에서 먹는 거에 진심인 박준석이 핸드폰으로 검색하던 화면을 태경과 이재현에게 들이밀었다.

“다들 맛있다고 난리다.”

“거 봐요. 내 말이 맞는다니까 그러네. 여기 예약 꽉 차면 먹지도 못해요. 내가 가서 한 번 물어보고 올 테니까 잠시 기다려 봐요.”

택시 기사가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박재현이 제일 신난 표정을 지었다.

“야, 이 정도면 우리 이 식당과 운명이다. 여기서 저녁 먹자. 어?”

“근데 우리 들어갈 수는 있는 건가? 자리가 있어야 먹지. 안에 사람 꽉 찬 거 같은데?”

주차장에서 식당까지 약간의 거리가 있었지만, 여기서 보기에도 식당은 이미 만석으로 보였다.

“그러지 말고 우리 사장님이 준 명함으로 지금이라도 전화해 볼까?”

“아, 형? 그건 아니죠. 그러지 말고 기사님 와서 자리 있다고 하면 들어가고 아니면 다른 데 가요.”

“그래, 그게 좋겠다. 자리도 없는데 들어가면 미안하잖아.”

다들 태경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맛집이 분명한 식당을 보며 속으로도 자리가 있길 바랐다.

“선생님들, 자리 있대요.”

5분 뒤, 식당에 들어갔던 택시 기사가 입구에서 손짓하며 부르자 세 사람은 빠르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얼른 들어와요. 지상 아빠, 이분들이 내가 말한 서울에서 오신 의사 선생님들이야.”

“안녕하세……!”

손님 응대를 하다가 급하게 인사를 하던 이준역은 세 사람을 알아보며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오셨어요?”

“어라! 이분들 알아?”

얼굴 가득 반가움이 느껴지는 이준역을 보며 택시 기사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요. 잘 알죠. 제가 신세 진 분들입니다.”

“그래? 잘됐네. 오늘 택시 관광 다니신 분들인데, 맛집 추천해 달라고 해서 내가 모시고 왔으니까 우리 지상 아빠가 잘 좀 해 드려.”

“당연하죠. 기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난 이만 가 볼게요. 선생님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즐거웠어요. 저녁 잘 드시고 이따 숙소 들어갈 때 택시 필요하면 그때 연락해요. 내가 서비스로 모셔다드릴게.”

“그러지 마시고 식사 같이하고 가세요.”

택시 관광을 처음 해 본 태경과 친구들은 좋은 기사님을 만나 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아니에요. 난 괜찮아.”

세 사람은 기사와 함께 식사할 것을 권했지만, 기사는 쿨하게 식당을 떠났다.

“난 우리 마누라 밥 먹어야지. 지상 아빠, 나 가요.”

“네, 기사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기사가 식당을 떠나고 태경과 친구들은 이준역을 따라 홀이 아닌 룸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여기, 이쪽으로 앉으세요. 오늘 장사하면서 세 분 언제 오시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빈말이 아니라 이준역과 아내는 식당 문이 열릴 때마다 태경의 무리가 아닐까 하면서 계속 고개를 돌리고 했었다.

“전 계속 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이제야 오셨어요.”

“이 친구들이 사장님 부담스러울 거 같다고 다른 데 가자고 했는데 기사님이 여기가 제일 맛집이라고 하면서 데려왔습니다.”

“잘 오셨어요. 오늘 안 오셨으면 저 서운할 뻔했습니다. 혹시 메뉴 중에 못 드시는 해산물이나 음식이 있을까요?”

메뉴판을 펼친 이준역은 세 사람이 못 먹는 음식은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했다.

“없어서 못 먹죠. 저희는 다 잘 먹습니다.”

“그럼, 제가 알아서 맛있는 걸로 음식 준비할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드르륵-

“형? 뭐 해?”

이준역은 룸을 나간 뒤, 이재현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박준석을 부르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야, 여기 맛집 확실하다. 아까 내가 홀에서부터 느꼈는데 문틈으로 들어오는 냄새가 죽여. 그냥 끝났어. 나 진짜 맛집 오면 내 콧구멍이 알아서 벌렁거리거든. 보이지?”

“형 때문에 진짜 미치겠다. 무슨 개코야?”

“나 고등학교 때 별명 개코였어. 태경아. 너도 맛있는 냄새 느껴지지?”

“진짜 맛있는 냄새긴 하다.”

똑똑-

세 사람이 맛있는 냄새에 취해갈 무렵 기다리던 음식과 함께 부부가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이쪽은 제 와이프입니다.”

“안녕하세요. 지상이 엄마예요.”

김한솔은 남편과 함께 음식 세팅을 하며 세 사람에게 인사했다.

“우리 지상이 찾게 해 주신 분들이라고 남편한테 얘기 들었어요.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아닙니다.”

“모쪼록 맛있게 드시고 필요하신 거나 불편한 거 있으시면 여기 벨 눌러 주세요.”

“그럼 맛있게 드세요.”

부부가 나가고 세 사람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천천히 맛보기 시작했다.

“우와! 야, 얘들아? 이거 먹어 봐. 거짓말 아니라 회가 입에서 녹아. 소고기보다 맛있어.”

“형, 이것도 먹어 봐요. 국물이 끝내줘.”

“이건 뭔데 이렇게 맛있냐? 여기 사장님들 솜씨가 진짜 보통이 아니네.”

“술 한잔할까?”

“일단 먹고 나중에 생각하자.”

“그래, 술이랑 같이 먹기는 좀 아깝다.”

눈이 즐겁고 입이 행복한 식사에 세 사람은 한동안 말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식사에 집중했다.

“이쯤에서 우리 술 딱 한 잔만 할래?”

그렇게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질 즈음 박준석이 술 이야기를 꺼냈다.

“한잔만 할 거면 뭐 하러 마셔.”

“제대로 마시면 낼 못 일어날 거 같은데?”

“그것도 그래. 그럼 마시지 말까?”

“그러기엔 또 아깝잖아. 혀라도 적시자.”

그렇게 아쉬운 대로 소주 한 병이 올라왔다. 내일 오전에 배를 타야 하는데 주량껏 마시면 아침에 못 일어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아예 안 마시기에는 맛있는 안주들이 유혹을 견디기 힘들었기에 정말 목만 축이기로 했다.

“야! 한잔하자. 태경아, 재현아 너희들이랑 여행 와서 겁나게 행복하다. 건배.”

“건배!”

“크! 좋다.”

“달다. 달아. 인생은 쓰고 소주는 달구나.”

“이 형. 왜 이래? 박준석 씨 한 잔 마시고 취했수?”

“얘들아, 인생 뭐 있냐? 열심히 살아봐야 3평 5평 남짓한 진료실 안인데, 우리도 가끔 시간 내서 이렇게 여행도 다니고 그러면서 살자.”

맛있는 음식들로 배가 채워지고 알코올이 입안을 맴돌자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는 이야기와 함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늘 웃는 얼굴이 가득했던 세 친구의 얼굴 위로 웃음기가 거치고 진지함이 밀려왔다.

“맨날 진료실에만 있었는데 여행 오니까 좋다.”

얼큰한 국물을 넘기며 말한 박준석은 삼수 만에 의대에 들어왔다.

그는 열심히 공부한 끝에 신경외과를 전공한 뒤 지방 대학병원의 교수로 재직했다.

하지만 교수가 된 지 얼마 안 돼 소송에 휘말려 등 떠밀다시피 로컬로 나와 개원한 케이스였다.

“재미있게 살자.”

“그래, 그건 형 말이 맞아. 열심히 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재미있게라도 살아야지.”

이재현은 의사 면허 취득 후 누구보다 빠르게 로컬로 나가 병원을 개원했지만, 폭삭 망했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병원이 망했다.

“재현이 너 병원 망하고 죽느니 마느니 하더니만 그래도 잘 산다.”

“말도 마. 죽으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

“많이 갚았어? 빚이 얼마라고 했지?”

“10억 좀 넘지.”

“야! 그 정도로 죽긴 왜 죽냐? 그냥 살아.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인생 x도 별거 없어. 아무리 개같이 힘들어도 살아지더라.”

“그러게. 이렇게 셋이 놀러 다니고 좋네.”

“그대도 우리 셋 중에 태경이가 제일 성공했다.”

“내 말이. 이 자식 교수 떨어지고 속상할까 봐 연락도 잘 못 했는데 그렇게 큰 병원에 원장으로 가고 대단해. 태경이 너 돈도 많이 벌지?”

“아니야. 난 운영만 하는 거야. 돈은 이사장님 주시는 월급 받는 거지.”

“그래도 많이 받지 않아?”

“뭐, 적게 받지는 않죠. 형도 잘 벌잖아요.”

“난 소송비용 아직도 갚고 있잖아. 그거 털어내려면 아직 한참이야.”

“태경아 그러지 말고 나 너희 병원에서 근무하면 안 되냐?”

“재현아, 넌 전공과가 없잖아. 미안하다.”

“농담이야. 새끼야.”

태경의 말에 이재현이 민망한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말이라도 좀 된다고 하면 안 되냐? 형, 이 자식은 대학교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다니까.”

“그게 태경이의 매력 아니겠냐? 사람이 진실하잖아. 얘, 아직도 나한테 존댓말 쓰잖아. 태경아, 넌 왜 아직도 나한테만 존댓말 해?”

“형한테는 존댓말이 편해요.”

“하긴, 형 얼굴을 보면 말을 놓을 수가 없지.”

“너는 그러면 왜 놓는데?”

“난 얼굴만 보면 형이랑 친구잖아.”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근데 재현이 너, 지금 일자리 괜찮지 않아? 중앙 뭐시기였는데…….”

“중앙통제 센터라고 응급의료 연결해 주는 곳에 있어.”

“그래? 월급은 괜찮고?”

“그냥 먹고살 만하고 편해서 있기 좋아. 열심히 벌어 봐야 빚 갚는 데 다 나가는데 열심히 벌 필요가 없더라고.”

“제수씨는 뭐라는데?”

“태경아 너 무슨 소리야? 재현이 이혼했잖아.”

“뭐! 이혼?”

친구의 처음 듣는 이혼 소식에 태경은 진심으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재현은 늘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친구였고, 무엇보다 주변에서 손꼽을 정도로 부부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런 친구의 이혼 소식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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