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화. 야생동물
순간 네 사람이 탄 차량이 무언가 충돌하며 상당한 소리가 울렸다.
산에서 갑자기 내려온 야생 멧돼지와 차량이 충돌한 거였다.
끼이이익-
콰앙- 쾅-
이준역은 본능적으로 핸들을 옆으로 돌렸지만, 충돌한 힘이 실린 차가 옆으로 회전하며 또다시 무언가 들이받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고서야 차가 멈췄다.
“으!”
“아……. 아.”
“아! 다들 괜찮아?”
양옆에서 들려오는 앓는 소리와 함께 앞좌석에 살짝 머리를 부딪쳤던 태경이 괜찮은지 물었다.
“으! 뭐, 뭐야?”
이재현이 한쪽으로 쏠렸던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준석이 형은? 형 괜찮아요?”
“나 괜찮아.”
태경과 친구들 모두 몸을 부딪쳤을 뿐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이 와중에 세 사람은 식당에서 출발하기 전, 안전벨트를 모두 착용한 게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교통사고 난 거지? 차랑 부딪힌 거야?”
“아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차는 아닌 거 같고 야생동물 같아.”
“맞아. 그런 거 같아. 이 정도 충돌이면 우리 멧돼지랑 박은 거 같은데.”
뒷좌석에 탄 세 사람은 멧돼지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차도 없었고 야생동물이 자주 나온다는 이준역이 했던 말을 생각하면 사고의 원인이 그것밖에는 없었다.
멧돼지와 부딪히는 사고를 뉴스에서 여러 번 봤는데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태경은 차끼리 부딪힌 사고가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이준역이 괜찮은지 물었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
아무 대답이 들리지 않자 불안한 기운을 느낀 태경이 다시 한번 불렀다.
“사장님?”
“…….”
“이준역 사장님!”
“…….”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 이준역은 핸들 쪽에 고개를 맞대며 상체가 숙여져 있는 상태였다.
“뭐야, 사장님 왜 대답이 없어? 사장님?”
“사, 사장님?”
이재현과 박준석이 연달아 불렀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순간 싸한 기분이 차 안을 감돌고 찰나의 정적과 함께 세 사람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지고 있었다.
직업이 의사인 세 사람은 직감적으로 이준역의 상태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
철컥-
뒷좌석에 앉아 있던 태경이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 이준역이 있는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충돌 후, 회전하며 비포장도로에서 벗어난 차는 비탈진 곳으로 내려와 커다란 나무를 들이받은 상태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
철컥-
운전석 문을 열고 가까이서 보니 벌어지다 만 핸들 가운데로 흰색이 보였다.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에어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거 같았다.
유추하건대 그 때문에 이준역이 머리가 보호받지 못하며 충돌하고 정신을 잃은 거 같았다.
“사장……!”
이준역의 이름을 부르던 태경이 순간 석상처럼 굳어 버리며 멈칫했다.
‘아,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태경이 속으로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안간 그의 몸에서 다섯 번째 바이탈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젠장!’
그것도 4단계인 포르말린 냄새였다.
섬에서 휴가를 즐기는 동안 마주쳤던 사람 중에 심각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태경 역시 더 안심하고 마음을 놓으며 휴가를 즐겼다.
그런데 제일 맡기 싫은 냄새가 제일 안타깝게도 이준역에게서 나고 있었다.
방금 전, 그러니까 차가 충돌한 직후 친구들에게 괜찮은지 묻기 전 태경은 다섯 번째 바이탈이 나는지 가장 먼저 체크했었다.
물론 교통사고야 일정 기간 잘 지켜보고 몸 상태를 체크해야 하지만 일단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고 있었기에 안심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분명 아까는 나지 않던 다섯 번째 바이탈의 존재가 지금은 확실했다.
마치 태경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 냄새의 강도는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다.
“태경아? 사장님 어떤 거 같아?”
“정신 잃은 거 보니까 머리를 세게 받았나 보네.”
차에서 내린 이재현과 박준석이 다가오며 차례대로 말했다.
여행 내내 웃고 떠들며 장난하던 두 사람의 모습도 진지함으로 바뀌며 살짝 긴장감도 보였다.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 크게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다.”
아니다. 전혀 다행인 게 아니었다.
“교통사고는 몰라.”
조금 안심한 말투로 말하는 이재현을 보며 신경외과 전문의 박준석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특히 교통사고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게 더 무서울 수 있어. 겉으로 보이는 외상과 달리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검사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잖아.”
맞는 말이다.
그래서 교통사고는 다친 곳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안심하기보다는 반드시 검사를 받는 게 중요하다.
교통사고 후 외상 하나 없이 멀쩡해 보이던 사람도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 뒤, 그 후유증으로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압니다. 알아요. 그냥 사장님이 심각해 보이지 않은 거 같아서 말한 거야. 태경아?”
머쓱하게 대답했던 이재현이 진지함을 넘어서 점점 심각해지는 태경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
“태경아? 너 괜찮아?”
“너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니야. 내가 아니라 이준역 씨 지금 심각해.”
심각해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묻는 두 사람을 향해 태경이 정확히 말했다.
“뭐? 심각하다고?”
“누가? 사장님이?”
박준석과 이재현은 태경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되물었다.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였다.
커다란 나무를 들이받고 앞범퍼가 많이 찌그러지고 한쪽 헤드라이트도 깨졌다. 그런데 차에 탑승한 네 사람의 부상은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물론 운전자인 이준역이 정신을 잃기는 했지만, 곧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박준석과 이재현은 이준역의 부상이 큰 부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두 사람의 생각이 이상한 게 아니었다. 누구라도 아마 저 두 사람과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준역은 정말 멀쩡한 사람이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태경만이 그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태경아, 너 원래 다친 사람 보면 열정적인 거 아는데 사장님 괜찮을 거야.”
“그래 그건 재현이 말이 맞아. 그리고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만, TA에서 이 정도면 그렇게 큰 사고는 아니잖아.”
하! 환장할 노릇이다.
다섯 번째 바이탈은 태경만 느낄 수 있는 능력이고 그렇다고 아픈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들 두 사람이 쉽게 믿어 줄 리도 없었다.
“두 사람 말 무슨 소리인지 나도 잘 아는데 사장님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여러 환자 케이스를 두 사람보다는 많이 보잖아.”
“뭐, 그건 맞지.”
“형도 대학병원에 있었으니까 알 거 아니야. 위급한 환자 봤을 때 의사로서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촉이란 게 있잖아.”
“아, 알지. 그래서 지금 네 촉이 위급하다는 거야?”
“어. 일단 검색해서 병원에 전화부터 하자.”
“알았어. 장기 파열 쪽은 아닌 거 같고 심각한 거라고 하면 경추골절이나 피 고인 거일 텐데…….”
경추, 일곱 개의 등골뼈로 된 척추의 목을 지칭하면 쉽게 목뼈라고 설명할 수 있다.
경추가 심하게 골절되고 거기에 신경까지 손상된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면 전신 마비가 올 수 있다. 하지만 태경은 경추 골절을 예상하고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박준석이 한 말 중에 후자, 즉 피가 고인 게 아닐까 의심됐다.
훨씬 더 정확히 예상되는 병명이 있었지만, 일단 확인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이준역을 빨리 병원으로 옮기는 게 우선이었다.
“괜히 사서 걱정하지 말자. 내가 일단 병원에 이송 가능한지 전화 한번 해 볼게.”
“나 저 앞에 나가 있을 테니까 형은 사장님 옆에 좀 있어요.”
이재현이 전화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들고 한쪽으로 걸어가자 태경이 박준석에게 말했다.
“왜?”
“일단 지나가는 차가 있는지 좀 보려고요.”
“차 세우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 알았어.”
“태경아? 형?”
태경이 비탈길을 올라가려는 찰나 전화하러 갔던 이재현이 난감한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왜?”
“여기 병원이 있긴 한데 전화를 안 받아.”
“뭐? 전화가 아예 안 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신호는 가는데 통 안 받아. 이거 어떡해? 사장님 아직도 안 깨어났지?”
“어. 그대로야.”
“병원으로 가야지 뭐라도 할 텐데 야단이다.”
“난 올라가서 지나가는 차 있는지 볼 테니까 재현아, 넌 형이랑 사장님 보면서 계속 전화 걸어 봐.”
“알았어.”
각자 역할을 분담한 태경은 비탈길을 성큼성큼 걸어 차가 다녔던 비포장도로로 올라왔다.
섬은 도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이 많지도 않았고 병원 운영이나 시스템에 차이도 있을 것이다.
예상하건데 환자를 이송할 구급차 또한 없을 확률이 높았다.
태경은 무작정 전화 연결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지나가는 차를 세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지금 환자에게 훨씬 도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잠시만요!”
올라온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소형 승용차 한 대가 보였지만, 차량은 핸드폰 불빛을 비추고 있는 태경을 민망할 정도로 지나쳤다.
생각해 보니 산길에서 웬 남자가 핸드폰 불빛을 들고 있는 모양새가 운전하는 사람으로서는 식겁하기 딱 좋은 그림이기는 했다.
이쪽에서야 지금 부상당한 이준역 때문에 마음이 급할 뿐이지 다가오는 운전자는 그 사정을 모르니 더욱 그럴 것이다.
“태경아?”
지나간 소형차를 허탈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태경에게 이재현이 다가왔다.
“전화됐어?”
“아니, 여전히 통화음만 들려. 혹시나 싶어서 택시 기사님한테 도움받으려고 전화했는데 꺼져 있어.”
“그 왜, 아까 오전에 배에서 내렸을 때 관광 안내소에 물어본다고 전화하지 않았어?”
“아! 맞네. 잠깐만.”
급하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이재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통화가 안 됐다는 뜻이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관광 안내소가 문을 닫은 거 같았다.
“식당!”
태경은 순간, 이준역 식당이 떠올라 물었지만 이미 전화를 한 상태였다.
“내가 병원 전화할 동안 준석이 형이 했는데 거기도 안 받아.”
아까 세 사람이 식당을 나올 때 영업 시간이 지났으니 전화를 안 받는 거 같았다.
“태경아, 아까 사장님 안 좋다고 했잖아. 네가 생각하기에는 많이 심각한 거야?”
“자세한 검사를 해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래.”
지금 태경이 해 줄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었다.
지금은 그저 지나가는 차가 부디 이곳에 멈춰 주길 바랄 뿐이었다.
“재현아, 너도 핸드폰 조명 켜서 흔들어.”
“알았어.”
두 사람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차를 기다리며 휴대폰 불빛을 흔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얼마 되지 않아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두 사람 앞에 멈췄다.
“무슨 일이세요?”
지잉 소리와 함께 운전석 유리가 내려가고 태경의 무리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사고가 나서 도움을 요청하는 중이었습니다.”
“사고요?”
사고라는 말에 운전자는 관심을 보이는 듯 되물었다.
“네. 사고로 사람이 다쳐 그런데 죄송하지만, 병원까지만 데려다 주실 수 있을까요?”
“병원이요.”
“네, 지금 환자를 빨리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그래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아함! 다 왔어?”
태경이 부탁하는 사이 보조석에 앉아 자고 있던 여자가 잠을 깨며 말했다.
“어머! 저 사람들 뭐야?”
갑자기 나타난 태경과 이재현을 본 여자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게 사고가 나서 사람이 다쳤는데 병원까지 좀 데려다 줄 수 있냐고 해서.”
“뭐! 사고?”
“자기야, 잠깐 창문 좀.”
남자의 말을 듣고 있던 여자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더니 창문을 올려 보라는 손짓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