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화. 절차
외딴섬이라 그런 건지 원래 시간이 늦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나 싶었다.
“뭐야?”
“왜 아무도 없어?”
박준석과 이재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동시에 말했다.
세 사람은 일단 침낭에 있는 이준역을 응급실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베드 위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무슨 병원이 이래?”
“폐업 앞둔 거 아니야?”
“물품 상태 보니까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저기요!”
이준역이 누워 있는 근처 스테이션 위에 켜져 있는 모니터와 물건들을 확인한 태경이 소리쳤다.
병원으로 이송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답답함이 밀려왔다.
“아무도 없어요?”
“저…….”
“누슈?”
태경의 이어 박준석이 목소리를 높이려던 그때, 중년 남자가 계단에서 내려와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친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데 병원 직원이신가요?”
“예. 직원이기는 합니다만.”
자신을 직원이라도 소개한 남자는 겉옷을 입고 작은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퇴근하려던 것 같았다.
“여기 다른 선생님들은 없습니까?”
“그보다 응급 환자가 있는데 여기 CT 좀 찍을 수 있나요?”
“섬이라 뭍에 있는 병원처럼 환자가 많지도 않고 당직하는 사람들 퇴근 시간이 맞물려서 조용합니다. 아니 그런데 환자분이 얼마나 다쳤는데 응급인가요?”
다급함을 토로하는 태경과 달리 병원 직원의 대답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교통사고 환자고 응급입니다.”
“응급이라…….”
병원 직원은 응급이라는 말에 그다지 놀라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더니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태경과 친구들을 위아래로 훑으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딱 보니까 외지 분들이 관광하러 오셨다가 사고가 난 모양입니다. 차가 어디 받혔나 보죠? 원래 그래요. 외딴섬에 놀러 와서 술 먹고 신나게 놀다가 사고 나는 사람들 꽤 있어요. 그런데 막상 와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그렇게 막 걱정할 정도로 다친 사람도 없습니다.”
태연하게 할 말을 마친 남자 직원 앞에 있던 태경이 기다란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여 이준역 앞으로 걸어갔다.
“여기!”
그러더니 남자 직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남자 보입니까?”
“아, 예……. 보입니다.”
태경의 곁으로 다가온 남자 직원은 베드 위에 누워 있는 이준역을 알아봤다.
“아니, 저쪽에 있는 바다 속 진주 식당 사장님 아닌가요?”
아무리 섬이라고 해도 모든 가구를 전부 다 아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준역은 알고 있었다.
뭍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워낙 인기 있는 식당이라는 말에 몇 번 찾아갔었기에 이준역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이 사람, 이렇게 계속 있으면 이 사람 죽습니다.”
“예!? 죽다니 그게 무슨…….”
“사고로 핸들에 머리를 박고 정신을 잃었어요.”
태경의 죽는다는 말에 남자가 움찔하며 반응하자 이번에는 박준석이 말을 이었다.
“육안으로 봤을 때 큰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안으로 문제가 생긴 거 같아요.”
“저랑 이 두 사람 다 의사입니다.”
“의, 의사요? 세 분 다 의사 선생님들이세요?”
“네. 심각하고 위중한 상태입니다. 빨리 CT 찍어서 확인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이 사람 죽습니다.”
“……!”
의사라는 태경의 말에 직원은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듯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된 죽는다는 말에 살짝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공기 좋고 물 좋고 거기에 끝내주는 경치까지 좋은 곳에 살아서 그런지 희락도 사람들은 건강이 좋은 편이었다.
아직까지 섬에서 소문날 정도로 크게 아픈 사람도 없었다.
큰 사고가 난 사람도 없었다.
휴가철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외지 사람들이 가끔 놀러 와서 이런저런 사고가 나거나 다쳤다면서 병원을 찾기는 했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 오면 다들 심각한 건 아니었다.
사람이 그렇지 않은가.
자기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 감기 하나 걸려도 중병보다 크게 여기는 게 사람 심리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방사선사로 희락도에서 평생을 일했어도 의학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드라마틱한 상황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는다는 말에 직원은 순간 깜짝 놀라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이가 들어 자연사하는 노인들은 봤어도 젊은 사람이 위급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 그 기분이 더 이상했다.
“C, CT 찍을 수 있기는 합니다. 제가 방사선사거든요. 그런데 일단 선생님에게…….”
상황 파악이 끝난 남자 직원은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한동안 전화를 붙들고 있던 직원은 반복되는 연결음에 결국 전화를 끊었다.
“안 좋다고 하더니 약 먹고 자는 건가? 일단 가시죠. 제가 찍겠습니다.”
직원은 태경의 무리와 함께 이준역이 누워 있는 베드를 밀며 CT실로 향했다.
정확한 판독을 위해 조영제를 맞고 촬영하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시간이 급하니 일단 찍을 수 있을 때 찍고 결과부터 보는 게 우선이었다.
“일단 밖에서 대기하고 계세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이준역을 CT 기계의 눕힌 세 사람에게 인사한 후 밖으로 나왔다.
“하!”
“태경아, 아직 결과 안 나왔잖아. 괜찮을 거야.”
바닥이 꺼지다 못해 뚫어질 듯한 한숨을 푹 내쉰 태경을 보며 박준석과 이재현이 양쪽으로 말했다.
그랬으면.
정말 이준역 몸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었으면 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걸 알기 때문에 태경은 더 답답할 노릇이었다.
“애도 어리고 사장님도 젊어서 큰일 없어야 할 텐데…….”
“혈종.”
이재현이 걱정하는 말투로 말하자 CT실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태경이 낮게 내뱉었다.
“그럼. 태경이 너 아까부터 혈종 예상하고 있던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태경을 보면 박준석은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지라고 덧붙였다.
겉으로 너무나 멀쩡한 모습.
지금까지 정신이 없는 이준역에게 있을 수 있는 건 혈종이 가장 크긴 했다.
교통사고 후 장기가 파열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까 이준역을 꼼꼼히 살핀 태경과 박준석은 장기파열 쪽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SDH가 아닐까 싶어요.”
‘아!’라는 짧은 단어와 함께 박준석이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 CT실 문이 벌컥 열렸다.
철컥-
“촬영 끝났습니다.”
직원이 문을 열고 촬영이 끝났다고 하자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이준역을 이동 베드로 옮겼다.
“그런데 여긴 당직 선생님은 안 계시는가요?”
“없긴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뉘앙스로 직원이 툭 말했다.
“있죠. 있어요. 당직의 선생님. 내과 선생님이세요.”
당직의가 내과라는 말에 이준역의 얼굴을 보며 결과를 생각하는 태경과 달리 이재현과 박준석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직원이 그 이유를 말해줬다.
“보통 응급의학과나 외과 쪽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여기는 섬이잖아요. 지금까지 섬에 큰 사고나 다친 사람이 없던 것도 있지만, 젊은 사람보다는 고령이 많다 보니까 필요한 인력이 자연스레 내과가 된 거죠.”
일리 있는 말이었다.
특정하게 아픈 병이나 그런 게 아니라면 나이가 들수록 내과를 많이 찾게 된다.
“그리고 막상 섬에 놀러 온 사람들도 병원 오는 경우가 다 몸살이나 소화기계통이 많지,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어요.”
“그럴 수 있겠네요.”
“그래서 아까 이 식당 사장님이 죽는다고 위급하다고 했을 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이렇게 젊은 사람이 일찍 죽으면 억울해서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당직 선생님은 왜 안 내려온 겁니까?”
“이런, 그걸 말한다는 게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네.”
당직의가 내과인 이유만 잔뜩 나열하고 정작 왜 안 보이는지 말하지 않았던 직원은 이유를 덧붙였다.
“선생님이 오늘 감기 기운이 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약을 먹고 잠이 든 거 같네요. 휴가철도 한 참 지났고 원래 이 시간에 환자도 없는 시간이라 아마 편하게 약 먹고 잔 거 같습니다.”
복도 위에 번지던 드르륵 소리가 멈추고 네 사람은 아까 처음에 왔던 응급실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왔다.
“일단 당직의 선생님께 제가 메시지 남겼으니까 보면 내려올 거예요. 그리고 오심보 선생님이라고 수간호사 선생님이 내려와서 도움 주실 겁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저도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할 일 한 거죠. 저기 우리 수간호사 선생님이 여기 터줏대감인데…….”
직원은 살짝 말끝을 흐리며 말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문장을 완성했다.
“좀 까칠합니다.”
그 말과 함께 직원은 다시 CT실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태경아?”
“어. 왜?”
이준역의 몸에서 뚫고 나오는 다섯 번째 바이탈.
그중에서도 냄새가 역한 포르말린 냄새를 한껏 느끼고 있는 태경이 여전히 이준역에게서 시선을 고정한 채 대꾸했다.
“이거, 사장님…….”
“저기요!”
이재현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세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아까 직원이 말한 50대로 보이는 수 간호사가 빛바랜 서류철을 들고 다가왔다.
예전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이 신던 하얀 샌들과 정갈한 유니폼. 그리고 끝이 뾰족하게 올라간 뿔테 안경은 쓴 오심보의 모습이 어쩐지 만만치 않은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CT를 찍으셨다고요?”
“네, 워낙 급한 상황이라서…….”
“알아요.”
태경의 말허리를 가차 없이 자른 오심보가 한쪽 손으로 뿔테 안경 끝을 살짝 올리며 말을 이었다.
뭔가 직원의 까칠하다는 말도 그렇고 비협조적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사선 선생님한테 전화 받아서 설명 다 들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막무가내로 하시면 안 되죠.”
“막무가내요?”
“세 분도 의사 선생님이시라면서요.”
“네, 의사 맞습니다.”
“의사라면 잘 아시겠네요. 말투 보니까 서울분들이신 거 같은데 그러면 더더욱 잘 아실 텐데……. 아무리 급해도 절차대로 하셔야지 섬에 있는 병원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담당자도 없는데 의사라고 그렇게 함부로 CT를 찍으면 안 되는 거 아니겠어요?”
“죄송합니다. 환자 때문에 워낙 급한 상황이라서 저희가 정신이 없었습니다.”
“정신이 없어도 그렇죠. 여기가 서울에 있는 병원이었어도 그렇게 행동하셨겠어요?”
오심보는 자신에게 말도 없이 CT를 찍은 게 상당히 못마땅한 듯 보였다.
“오심보 선생님?”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재현이 그녀의 이름을 확인하고 말했다.
“그런데요?”
“자꾸 절차를 말씀하시는데 병원에 오자마자 아무도 없고, 계속 기다리다 아까 직원분이 나와서 사정해서 찍은 겁니다.”
“여기! 이거 안 보여요?”
이재현의 한마디에 오심보는 전보다 목소리에 더 힘을 주며 손가락으로 스테이션을 가리켰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어디 갔지?”
전화기 옆에 붙어 있어야 할 메모가 안 보이자 스테이션 안쪽으로 들어간 오심보는 떨어진 종이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게 왜 떨어지고 난리야.”
민망한 듯 입술을 씰룩거린 오심보는 ‘진료 보러 오신 분 전화주세요.’라는 멘트와 전화번호가 찍힌 메모지를 다시 스테이션에 붙였다.
“일단 환자분 접수부터 해 주세요.”
“실례지만 CT 결과 언제 나오는지 확인 한 번만 해 주시겠습니까? 상황이 좀 급해서 그럽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죠? 접수부터 하시라고. 결과야 기다리면 나오지 않겠어요?”
태경이 정중하게 말했지만, 오심보는 또다시 접수 타령을 했다.
“오 선생님 결과 나왔어요.”
그리고 그때, CT를 촬영했던 기사가 오심보의 눈치를 슬쩍 보다 큰 소리로 외치며 병원 밖으로 나갔다.
“나 퇴근합니다.”
“일 저질러 놓고 먼저 퇴근하면 어떡해요?”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요. 그리고 나 퇴근 시간 지났습니다. 그럼 당직 수고해요.”
“아으! 진짜 하여간에 안 맞아.”
“CT 좀 빨리 보죠.”
태경이 서둘러 말했다.
“접수부터…….”
“이봐요! 오심보 선생님. 이러다 환자 죽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태경이 정색하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