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화. 길어야 2~3시간? 이후에는 PVS 상태
그 시간, 이준역의 식당에서는 이제 막 모든 정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아고! 이제야 끝났네.”
“저 혼자 해도 되는데 괜히 남은 일까지 하셔서…….”
“사장님이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도와주겠다고 한 건데. 그리고 이거 지상 엄마 혼자 못 해.”
“저 일 잘하잖아요. 제가 생각보다 힘세요.”
“아서! 아무리 그래도 아들딸 다섯이나 키운 나보다 힘이 세려고. 적어도 힘이 세려면 나처럼 이런 몸매를 유지해야 해.”
남아서 일을 도와준 직원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한솔을 보며 허리를 양쪽으로 귀엽게 흔들었다.
“이모님, 힘드시죠?”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이 팔을 이쪽저쪽으로 흔들자 김한솔이 다가와 직원의 팔을 주물렀다.
“제가 좀 주물러 드릴게요.”
“아이고, 아서. 나만 일했나. 오늘 손님 많아서 지상 엄마도 힘들 텐데. 괜찮아.”
“저는 그래도 홀이랑 주방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일해서 좀 덜해요. 이모님은 주방에서 계속 계시니까 더 힘드시잖아요.”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 그리고 장사 잘되니까 우리 사장님 두 분이 알아서 월급도 올려 주셔서 난 힘든지도 몰라. 사람이 돈 버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거든.”
“그건 맞아요.”
부부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청결과 맛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언제나 직원들을 살뜰히 챙겼다.
“옛날에 농사지을 때보다는 훨씬 편하니까 마음 쓰지 마. 어머! 우리 아저씨 왔다고 문자 왔네. 나 이만 가 볼게.”
“이모님. 이거, 가져가세요.”
김한솔은 사과가 가득 담긴 검은 봉투를 직원에게 건넸다.
“어머, 웬 사과야?”
“뭍에서 과수원 하는 친척이 먹으라고 넉넉히 보내 줬어요. 직원들 다 담아 주고 이건 이모님 거예요.”
“그래. 고마워요. 잘 먹을게. 그런데 지상 아빠는 손님들 태워다 주러 가서 왜 아직 안 와?”
“안 그래도 전화 한번 해 보려고요. 얼른 가 보세요.”
“그러게. 우리 아저씨 기다리는 거 싫어하는데 얼른 나가야겠다. 사장님 나 먼저 가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마지막 직원이 식당을 나가자 김한솔은 주방 불을 끄고 홀로 나와 가까이 있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어머니. 저예요.”
그녀는 남편 이준역에게 전화를 걸기 전, 아이들을 봐주고 계신 시부모님 댁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래, 이제 일 끝났구나?
“네, 어머님 애들은요?”
-우리 강아지들은 잠들었지.
“죄송해요. 애들 보기 힘드시죠?”
-죄송하긴. 손주 보는 게 얼마나 낙인데 하나도 힘 안 들어. 요 녀석들 보는 게 우리 비타민이야. 힘든 거야 너랑 준역이가 힘들지.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실 때마다 참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아들 며느리 일하는데 이것도 안 해. 섬에 들어와 식당 하는 너랑 아범 보면 그냥 기특해. 오늘도 손님 많았니?
“네, 어제랑 비슷했어요. 어머니, 애들은 이따 지상 아빠 오면 데리러 갈게요.”
-아이고, 아서라. 애들 자는 거 깨웠다가 다시 재우는 것도 일인데 집에 가서 씻고 편하게 자.
“네, 그럴게요.”
-아범은?
“낮에 말씀드렸던 지상이 찾아 주셨던 분들이 식당에 식사하러 왔는데 차가 없어서 숙소까지 데려다 주러 갔어요.”
-그래? 잘했네. 사람이 베풀면서 살아야지. 그분들한테 뭐라도 대접하지 그랬어.
“안 그래도 그이랑 제가 식사 대접한다고 했는데 밥값을 먼저 계산하셨더라고요.”
-저런, 어찌 됐든 정말 좋은 사람들이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그땐 꼭 대접해 드려.
“네, 그렇게 하려고요. 어머님 피곤하실 텐데 얼른 주무세요.”
-너도 피곤할 텐데 아범 오면 조심히 잘 들어가고. 오늘도 애썼다.
“네, 어머님. 안녕히 주무세요. 아버님께도 말씀 전해 주시고요.”
-그래. 들어가라.
“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김한솔은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마신 뒤 다시 의자에 앉았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안 와?”
김한솔은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누르며 혼잣말했다.
“설마, 의사 선생님들이랑 술 마시고 있나? 그건 아니겠지. 어! 여보?”
몇 번에 연결음 끝에 통화가 됐다.
-여보…세요?
그런데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가 낯설었다.
김한솔은 전화를 받은 사람이 남편이 아니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거 우리 남편 핸드폰인데 실례지만 누구세요?”
-예. 사장님 저는 이재현이라고 아까 식당에서 밥 먹었던 세 명 중 한 명입니다.
“아, 네. 혹시 남편이랑 같이 계시나요?”
-네. 사장님이랑 같이 있는데…….
이재현은 아내인 김한솔에게 이준역의 사고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재현은 의사고시를 합격 후 전문의 시험을 보기 위해 수련하는 레지던트 과정을 하지 않았다.
의대 시절 공부도 잘하고 성적도 좋았지만,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았다.
이유는 빨리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로 필드로 나가 피부, 미용 쪽 의원을 돌며 기술을 익혀 개원했다. 결과적으로 망했지만 선택한 일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사고를 당한 환자 보호자에게 이런 일을 알리는 게 익숙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도 환자와 직접 대면하는 곳이 아니었기에 더 난감했다.
‘태경이는 이런 일을 매일 하는 건가? 이거 진짜 못 할 짓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뭔가 잘못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얼굴도 보지 않고 전화로 말을 전하는 것임에도 여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보세요? 선생님, 우리 남편이랑 같이 계시는 거죠?”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사이 김한솔이 다시 한번 물어 왔다.
-예. 맞습니다. 같이 있기는 한데 실은 사장님께서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병원이요?”
병원이란 두 글자에 김한솔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병원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사람이 왜 병원에 있어요?
이준역은 식당을 하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고 한겨울에도 감기에 잘 걸리지 않을 만큼 건강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멀쩡하게 식당을 나간 사람이 갑자기 병원에 있다니 이재현이 하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까 사장님께서 저랑 친구들을 숙소까지 데려다 주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이재현은 침착하고 차분한 어투로 하지만 자세하게 이준역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 병원에서 CT를 찍었고 결과를 확인한 상태인데, 쉽게 설명해 드리면 머리에 충격을 받고 안쪽에 피가 고였어요.
“……!”
설명을 들은 김한솔은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아 말을 할 수 없었다.
“하!”
휴대폰 너머로 짧은 탄식이 들려왔다.
-사모님? 괜찮으세요?
“말도 안 돼. 우리 남편 OO 의료원에 있는 거죠?”
-네.
“알겠어요. 제가 지금 갈게요. 저기, 우리 남편 좀 잘 돌봐주세요.”
황급히 전화를 끊은 김한솔은 빠르게 가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다 잡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괜찮을 거야. 우리 준역 씨 괜찮을 거야.”
주문처럼 혼잣말을 되뇌며 김한솔은 병원으로 출발했다.
* * *
“형!”
박준석의 말을 자른 태경이 잔뜩 독해진 포르말린 냄새를 뚫고 뭔가 결심한 듯 그를 불렀다.
“이준역 씨, 지금 남은 시간이 얼마나 돼?”`
여기서 태경이 말하는 남은 시간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말하는 거였다.
“남은 시간? 길어야 2~3시간? 이후에는 좋아봤자 식물인간 PVS(persistent vegetative state, 식물인간)일 거야. 이미 뇌가 눌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봤지?”
식물인간이라는 박준석의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은 태경이 빠르게 말했다.
“뭐?”
박준석은 자기 말과 겹쳐서 들린 태경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다시 한번 물었다.
“형, 저거 SDH 수술해 봤지?”
“수, 수술?”
확고하게 결심이 선 듯한 태경의 눈빛을 본 박준석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말을 이었다.
“아니.”
“보기는 했지? 보기는 했을 거 아니야.”
“뭐, 그렇기는 하지 워낙 흔하니까…….”
“그럼 됐어.”
“태경아, 됐기는 뭐가 된 건데? 어? 야!”
간단하게 답을 한 태경이 잠시 자리를 피했다. 도대체 뭐가 됐다는 건지 연신 물었지만, 태경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뭐야? 쟤 어디가?”
그사이 김한솔과 통화를 마친 이재현이 다시 병원으로 들어왔다.
“몰라. 나보고 수술해 봤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했더니 본 적 있냐고 해서 있다고 했거든?”
“그런데?”
“있다고 하니까 됐다고 하더니 가 버렸어. 넌? 아내분이랑 통화됐어? 많이 놀랐겠다.”
“말이라고. 병원으로 온다고 했어.”
“야, 재현아. 태경이 쟤 말이야…….”
“태경이가 왜……!”
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말을 하다 말고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하! 설마!”
“그래, 설마.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태경이 아마 119에 전화하러 갔을 거야. 쟤가 원래 환자 살리는 일에 앞뒤 안 가리잖아.”
“맞아. 설마 하겠어.”
이재현과 박준석은 저만치 걸어가는 태경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이 태경의 의중을 궁금해하는 사이 병원 문밖으로 나온 태경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잠시 연락처에서 검색하더니 이내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현재 시각은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고, 평소에 태경이었다면 절대 전화를 하지 않았을 시간이었다.
그뿐인가, 지금 전화를 하는 사람은 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주무시나?’
반복된 연결음 소리에 태경의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여보세요.
행여 상대가 전화를 안 받으며 어쩌나 전전긍긍하는 사이 다행히 전화가 연결됐다.
“의원님, 밤늦게 정말 죄송합니다. 저 김태경입니다.”
태경이 다급하게 전화를 한 사람은 4선 의원인 감덕찬이었다.
감덕찬과는 백화점 사고로 수술받았던 그의 딸 감지연부터 중동 환자로 통 큰 기부를 했던 하마드까지 여러 일로 친분을 쌓았다.
무엇보다 감덕찬은 딸을 살려 준 태경을 은인으로 생각하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물론 태경의 성격상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대로 이준역의 골든타임이 지나 식물인간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금배지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고 막강했다.
그 대단한 힘을 태경은 환자를 살리는 데 쓰기로 했다.
다행히 지금, 이 병원은 개인 병원이 아닌 공공의료원이었다.
그 말인즉 감덕찬의 말 한마디면 병원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태경은 이 병원에서 이준역을 살릴 생각이었다.
-아니, 우리 김 원장님께서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바쁘신 분인데 제가 사사로운 부탁이 있어서 급히 전화를 드렸습니다. 의원님, 잠시 통화 괜찮으십니까?”
-원장님 전화라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 내야죠. 가만, 혹시 환자 일인가요?
감덕찬은 예의 바른 태경이 이 시간에 굳이 전화했다는 건 100% 무조건 환자 일인 거라고 확신했다.
“맞습니다. 의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