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화. 물러날 곳도 없는데
예상 못 한 답변에 태경은 아주 잠시 말문이 막힐 뻔했다.
“모르다니? 형이 그걸 왜 몰라?”
“왜긴 왜야. 나 돈 벌려고 척추 전공했잖아. 기억 안 나?”
신경외과를 전공하면 그 안에서 세부 전공을 정하게 되는데 박준석은 척추를 전공한 것이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안 물어봤잖아!”
태경이 황당한 표정으로 묻자, 박준석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쳤다.
“하!”
정말이지 황당하고 어이없음에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첩첩산중이었다.
순간 벽에 가로막힌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들었지만, 인제 와서 머리를 닫을 수도 없었다.
어쩌겠나. 환자를 살려 보겠다고 생판 모르는 병원에서 수술방까지 들어왔는데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형?”
결국 태경이 박준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뚫자.”
“뭐!? 뚫자고?”
박준석은 설마 지금 본인이 제대로 맞게 들은 건지 확인이라도 하듯 되물었다.
“그럼. 뚫어야지.”
“야! 태경아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다가 안에서 출혈 안 멈추면 어떡해? 그 혈관은 어떻게 잡으려고? 그땐 지금보다 훨씬 일이 커진단 말이야.”
엄살이 아니었다.
심사숙고해서 뚫었다 치더라도 출혈이 안 멈춘다면 이준역의 결말은 끔찍할 것이다.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눈앞에 아찔했다.
“태경아. 다른 곳도 아니고 머리라고 머리!”
지금 하려는 부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상기시키듯 박준석은 ‘머리’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알아. 그래도 시도라도 해 봐야지!”
“그건 태경이 말이 맞지 않아? 시도라도 해 봐야지.”
심각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재현이 불쑥 끼어들었다.
“넌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
“모르니까 이렇게 말하지.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너라도 좀 조용히 해. 태경아, 혈관을 잡겠다고? 여기가 무슨 복부 안인 줄 알아? 머리라고! 뇌!”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듯 박준석은 앵무새처럼 계속 반복했다.
“뇌야! 뇌라니까. 조금만 실수해도 평생 후유증이 남는다고!”
“형, 뇌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지 나도 잘 알아. 그런데 그러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이 환자 어떻게 되는데? 형도 알겠지만, 이미 CT 촬영한 지 1시간 가까이 지났어. 아마 길어 봐야 1시간, 아니 30분만 있으면 이 환자 압력 때문에 뇌 죽을 거야. 아니 그 전에 뇌가 밑으로 빠져나올 거라고. 그냥 포기하자고? 이미 머리 다 열었는데?”
박준석이 무엇을 고민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는지 누구보다 태경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태경 역시 복잡한 심경은 똑같았다. 하지만 이미 판은 벌어졌고 환자는 수술방 베드 위에 누워 있는 상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소리였다.
“형? 여기서 포기할 거야?”
닦달하는 것도 분노도 아닌 그저 호소하는 눈빛으로 태경이 말을 이었다.
“이준역 환자 이미 머리 다 열었는데? 정말 여기서 멈추길 원해?”
지금 박준석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 그냥 한번 해 보자는 마음. 환자를 살려 보자는 그 마음 하나였다.
“우리 해 보자. 하자! 응? 형!”
“하! 돌겠네. 그래 씨발! 물러날 곳도 없는데 해 보자.”
박준석의 하면 안 된다는 이성이 결국 태경의 설득과 환자의 모습에 넘어가고 말했다.
“하자! 해!”
결심한 박준석이 머리뼈에 기구를 지그시 가져다 대자 태경이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손잡이를 돌리자 갈려 나가는 머리뼈와 피가 범벅이 돼서 수술 베드에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 씨. 피 장난 아니다.”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적잖이 놀란 이재현의 모습과 달리 이미 예상하던 두 사람은 오롯이 환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태경은 조금씩, 조금씩 잡고 있는 기구 손잡이를 계속해서 돌렸다.
“형, 시야.”
“어. 그래.”
태경의 말에 박준석이 한 손을 뻗어서 50cc 시린지를 들어 갈리고 있는 머리뼈에 식염수를 쏘았다.
뼈가 피와 범벅이 되어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경과 박준석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야말로 집중하다 못해 온몸의 신경세포까지 집중하듯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당연했다. 사람의 신체에서 모든 곳이 중요하지만, 머리 부분은 특히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완벽한 세팅을 갖춘 환경에서 수술해도 신경이 예민해지는데, 이런 중요한 수술을 열악한 환경에서 한다고 하니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둘 다 익숙한 수술도 아니었다.
예민한 신경으로 환자에 집중한 두 사람과 달리,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 이재현도 숨을 죽이며 두 사람의 손길에 집중했다.
‘머리 수술을……. 태경이 저놈 하여간 난 놈은 난 놈이야. 대단하다.’
본과 시절 인턴 생활을 할 때도 보지 못했던 리얼하다 못해 날것의 느낌마저 느껴지는 머리 수술을 보니 이재현은 숨도 편히 쉬지 못할 정도였다.
태경의 시선이 수술 부위에 못 박은 듯 1초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된 건가? 아니면 조금 더?’
얼마나 뼈를 갈았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다만 점점 머리뼈에 달의 운석 자국처럼 조금씩 파이고 있었다.
직경 1cm 정도 되는 구멍이 머리뼈에 서서히 나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
“잠깐!”
순간, 태경이 멈추라는 말과 함께 기구를 떼어 봤다. 기구를 떼어 낸 부위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누가 봐도 관통된 머리뼈였다. 머리뼈에서 피가 왈칵 솟아 나왔다.
“태경아, 방금 쏟아진 피는 괜찮은 거지?”
이재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확인하듯 물었다.
“어. 괜찮아. 형, 압력?”
“맞아. 떨어졌을 거야. 떨어졌어.”
태경과 박준석은 더 유심히 수술 부위를 살폈다.
피가 쏟아져 나오면 우선 내부의 압력이 떨어져서 뇌에 대한 응급은 된 것이다.
그다음으로 우선할 것은 감압! 감압이 중요했다.
“지금 H/S(Hartmann Solution, 수액의 한 종류)를 풀 드랍(full drop, 제어 장치를 풀고서 체내 정맥에 투여함)해 줘.”
태경의 말에 이재현이 동작을 취하고 나머지 인원은 뚫어져라 머리뼈를 보았다.
감압은 성공했지만, 그다음인 지혈이 남았기 때문이다.
셋은 의사이기 때문에, 아니 의사가 아니어도 피가 흐르는 모습만 보아도 지혈된 피인지 지금 동맥이 터져 있는지 등을 대번 알 수가 있다.
이제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문제가 있는 피는 일반인이 봐도 그 느낌이 뭔가 다르다는 소리였다.
피가 쏟아져 나와서 감압에 성공했으니 이제 지혈이 중요했다.
만약 지혈되지 않거나 뇌에 있는 동맥이 터진 거라면 그 혈관을 잡아서 결찰(ligation, 혈관을 묵거나 해서 지혈하는 행위)해야 하는데, 뇌라서 차원이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셋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환자의 머리뼈 구멍을 뚫어져라 보았다.
어찌나 집중해서 보던지 옆에서 누가 와서 때려도 모를 정도로 집중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이재현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고,
‘멈춰라. 멈춰야 한다.’
박준석도 피가 멈추길 빌었다.
뚝- 뚜둑- 뚝- 뚝
“어!”
“……!”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동공이 팽창했다 수축하며 세 사람 모두 움찔하고 말았다.
“다행이다.”
피가 멈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이준역의 다섯 번째 바이탈 패턴이 달라졌다는 걸 태경이 느꼈다.
‘옅어졌다.’
4단계, 그것도 독한 포르말린 냄새를 띠며 죽음에 가까워진 5단계로 넘어가려던 냄새는 그 기세가 한풀 꺾였다.
“다행이다. 하! 시발. x되는 줄 알고 존x 졸았네. 시발!”
“누가 아니래. 형! 나는 똥줄 탔다니까. 와! 나 심장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
다리에 힘이 풀린 박준석은 걱정된 마음을 내뱉으며 저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다.
옆에 있던 이재현도 한마디 하며 간신히 멸균 테이블에 기대서 몸을 가누었다.
“하…….”
두 사람을 보던 태경도 그제야 짧은 숨을 내뱉으며 심각한 표정을 풀었다.
“하하!”
“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박준석과 이재현은 해방감과 기쁨과 즐거움 긴장감이 한데 섞여 복잡 미묘했던 기분이 풀리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반면 태경은 순전히 행복해서 웃음이 났다.
“하하!”
“미친놈! 태경이 놈 웃는 거 봐라. 쟤 지금 저거 진짜 좋아서 웃는 거야.”
“하여간 김태경 넌 진짜 미친놈이야. 환자에 미친놈!”
“그걸 이제야 알았어? 자! 이제 거즈로 좀 정리하고 닫자.”
“그래, 닫아야지. 닫자.”
“잠깐만! 머리뼈는 저러고 두는 거야?”
마무리하자는 태경의 말에 이재현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괜찮은지 물었다.
“야! 이 무식한 자식아. 그러면 뭐 대줄까?”
“아……. 안 되는 거야?”
이재현이 뭔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태경과 박준석은 무시하며 피부를 당겨서 봉합을 진행했다.
안에서 피 주머니를 안전하게 고정해서 이후에 나올 출혈을 밖으로 빼낼 준비만 하고서 수술은 마무리가 된다.
물론 이후에도 얼마든지 출혈이 나올 수 있지만, 이렇게 하고서 내륙으로 이송하면 환자를 살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 점을 태경과 박준석은 알고 있기에 지금 수술방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크흠! 큭!”
“실성했냐? 태경아 쟤 봐라. 재현아 너 미쳤어?”
피식피식 웃던 이재현이 조용히 웃더니 이내 코를 먹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태경을 도와 마무리하던 박준석이 눈썹을 구겼다.
“그러게. 형 나 좀 미친 거 같기도 해.”
“야야! 미치려면 네 집 도착한 다음에 미쳐. 여기 태경이 하나만으로도 나도 벅차니까 괜히 너까지 미치지 말고 정신 꽉 잡고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솔직히 이게……. 그러니까 수술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 못 했거든?”
“이 새끼 태경이 너 못 믿었나 보다.”
“아니거든!”
이재현은 태경의 실력을 의심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태경의 실력이야 워낙 뛰어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게 다른 분야였고 박준석도 처음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모든 상황을 뛰어넘고 환자를 살리다니 그냥 이 모든 게 믿어지지 않았다.
환자인 이준역의 가족도 아닌데 그가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게 이렇게 뿌듯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환자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나 솔직히 아까 바닥에 피가 쏟아질 때 속으로 큰일 난 거 아닌가 싶었다니까. 농담 아니라 간이 콩알만 해졌어.”
“재현아, 간이 콩알만 하면 어떻게 살아 있겠냐?”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말이.”
“그러니까 생각 좀 하고 말해.”
“그렇게 생각이 많은 형은 본인 손해 볼까 봐 환자 죽든 말든 못한다고 했수?”
“야! 그 얘기가 왜 나와.”
“저기요, 박 선생님, 이 선생님. 아직 마무리 안 끝났거든요?”
마무리에 집중하고 있던 태경이 두 사람을 중재했다.
“네, 김 원장님 죄송합니다.”
“큭!”
지금까지 수술방에서 세 사람을 도와줬던 중년 간호사가 마스크 안으로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수술도 저희도 다 정신없으셨죠? 죄송해요.”
“아니에요.”
태경이 말하자 간호사는 전혀 아니라는 듯 부드러운 표정을 보이며 덧붙였다.
“여기 수술방에서 수술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사실 갑자기 응급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까 싶어서 늘 수술방 관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안 그래도 수술 환자가 없었다는 오심보의 말과 달리, 태경은 아까 수술방을 보며 깨끗하게 잘 관리했다고 생각했었다.
“선생님이 관리를 잘해 주시고 오늘 협조해 주셔서 수술이 무사히 잘된 거 같아요.”
“별말씀을요. 선생님들이 다 하셨죠. 오랜만에 수술로 환자를 살리는 걸 봐서 저도 뭔가 속이 뜨겁네요. 다들 정말 수고하셨어요.”
“선생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년 간호사가 인사하자 태경과 친구들과 도와준 그녀에게 인사했다.
“봉합 다 됐다. 끝!”
그리고 긴박하고 장담할 수 없었던, 그래서 더 쫄렸던 이준역의 수술은 잘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