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보호자의 마음
수술방에서 이준역이 고비를 넘기고 태경과 친구들이 마무리를 향해 집중할 즈음 김한솔은 여전히 1층에 있었다.
너무 무섭고 불안해서 수술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지도 못했다.
가끔 병원을 찾는 환자의 말소리가 들렸지만, 김한솔은 의자에 앉아 미동조차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두 손을 모으고 생사의 기로에 선 남편을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준역 씨, 힘내. 제발 힘내 줘요. 나랑 우리 애들 당신 없으면 못 살아.’
이준역에게 김한솔이 첫사랑이듯이 김한솔에게도 이준역은 첫사랑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 하나밖에 없는 사랑이었다.
부부의 연을 맺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김한솔에게 이준역은 여전히 가슴 떨리는 상대였다.
여전히 아낌없이 사랑해 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섬 생활도 힘들지 않고 행복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위급한 상황에 놓여 어쩌면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에 모든 순간 내 옆에서 당연하게 함께할 사람은 오직 남편뿐인데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준역 씨, 이대로 가면 안 돼. 도와주세요. 제발……. 그 사람 수술이 잘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렇게 고개 숙인 채로 손이 발이 되게 간절히 빌고 있던 그때, 본인의 발 앞에 흰색 샌들이 다가와 멈춘 게 보였다.
“저기……?”
고개를 들자 샌들의 주인공인 수간호사 오심보가 손에 문서를 들며 말을 걸었다.
“이준역 환자 보호자분이죠?”
“네, 제가 아내예요.”
“다름이 아니라 아까 작성하셨던 수술동의서요.”
오심보는 눈가가 촉촉한 김한솔에게 수술동의서를 내밀었다.
“여기, 아랫부분에 사인을 잘 못하셔서 다시 해 주셔야 해요.”
“아, 그래요?”
김한솔이 동의서를 확인하자 정말 사인이 잘못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는 지금보다 더 정신이 없었기에 실수한 거 같았다.
“죄송합니다. 바로 다시 할게요. 여기, 다시 했어요.”
“네, 제대로 됐네요.”
“저기, 선생님……?”
수술동의서를 다시 받은 오심보가 막 돌아서려던 찰나, 김한솔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네?”
“죄송하지만, 물어볼 게 있는데 우리 남편 수술 언제쯤 끝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것까지는 제가 잘 모르겠는데…….”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김한솔의 표정과 달리 오심보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예?”
“우리병원 선생님께서 하시는 수술도 아니고 외부인이 하는 수술이라 지금 수술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몰라요.”
“아. 네……. 그러면 혹시 수술이 다 끝나면 여기서 치료를 이어 가나요?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송되나요?”
남편의 상태가 어떤지 수술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김한솔은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녀의 질문들이 유별나거나 이상한 게 아니었다.
수술받고 있는 환자의 아내로서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너무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저한테 물어보시면 안 되죠.”
“……예?!”
오심보의 대답을 들은 김한솔은 당황스러웠다.
“여기, 간호사 선생님이시잖아요.”
“전, 이 병원 간호사예요. 보호자분도 아시겠지만, 그 세 분 우리 병원 선생님들 아니에요. 규정상 여기서 수술하면 안 되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저도 원장님 연락받고 수술방만 빌려 드린 거예요. 그러니까 수술 후에 환자가 이송되는지 어떻게 되는지 저는 모르는 게 당연하죠.”
“…….”
“저 같으면 안전하게 뭍으로 이송하지 여기서 수술 안 했을 거예요. 수술 장비도 완벽하지 않을 텐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수술한다고 그러는 건지. 얼핏 듣기로는 뭐, 티비에도 나오고 했다는데……. 그래서 그런가? 자신감 하나는 끝내주네.”
오심보는 돌아서는 순간까지 혼잣말하며 스테이션으로 걸어갔다.
“…….”
가만히 오심보의 모습을 보고 있던 김한솔은 너무 어이가 없어 뭐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순간 여기가 병원이 아닌가 싶었고 저 여자가 간호사가 아닌가 싶었다.
안 그러고서야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술하는 환자를 기다리는 보호자에게 저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김한솔은 순간 가슴속에서부터 서운한 감정이 턱 끝까지 치고 올라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저, 보호자의 신분으로 환자 상황에 알고 싶다는 게 이렇게 민망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친하지 않은 사이라고 해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수 있는 게 섬 생활이었다.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가만히 있으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30대인 김한솔은 50대인 오심보보다 젊은 사람이었지만, 버릇없다는 말을 듣더라도 한마디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기요?”
저벅저벅 스테이션으로 걸어간 김한솔이 모니터로 업무를 보고 있는 오심보를 불렀다.
“제가요 젊은 여자가 버릇없다 싸가지 없다는 소문이 희락도에 퍼지더라고 오늘은 꼭 말해야 할 거 같네요.”
“네?”
“오심보 선생님은 의료인 아닌가요? 간호사 아니에요?”
“예?!”
김한솔이 던진 질문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오심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질문 그대로인데 제 말 못 알아들으셨어요? 간호사 아니신지 물어본 거예요.”
“맞는데요. 간호사.”
“저도 알아요. 오 선생님이 이 병원에 간호사이자 수간호사라는 거,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간호사면 환자는 물론 보호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실 분이 어떻게 말을 그렇게밖에 못하세요.”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건지……?”
“여기가 섬에 있는 유일한 병원이라서 아플 때 어쩔 수 없이 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섬사람들 이 병원에 오기 꺼리는 사람들 꽤 있어요. 이유가 뭔 줄 아세요? 바로 오심보 선생님 때문에 그래요.”
“……!”
“선생님은 본인 친한 사람들 몇몇에게만 친절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건조한 거 아세요? 너무 건조하고 무뚝뚝해서 돈을 내고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눈치 보게 만들어요.”
김한솔은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이재현에게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섬에는 oo 의료원밖에 없는데 괜찮을까? 거기 선생님들이 잘해 주실까?’
평소 무뚝뚝하고 까칠한 병원이기에 걱정됐다.
아마 다른 병원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김한솔은 무조건 남편을 옮겼을 정도였다.
그만큼 oo 의료원은 병원으로서 그 서비스가 꽝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오심보가 있었다.
“눈빛에 영혼을 담아서까지는 아니더라도 말 한마디는 부드럽게 해 줄 수는 있잖아요. 저 아시죠?”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갑작스러운 김한솔의 질문에 오심보는 본 적이 있나 생각했지만 딱히 기억나지 않았다.
“저 아래 있는 바다 속 진주 식당 알죠? 지금 2층에서 수술받는 남편이랑 제가 거기 주인이에요.”
“아…….”
상호를 말하자 오심보는 그 식당을 안다는 표정을 보였다.
“저도 그래요. 종일 손님 상대하다 보면 힘들고 거기에 진상 손님이라도 오면 짜증 나고 화도 나요. 그래도 전, 한 번도 얼굴 찡그리거나 무뚝뚝하게 한 적 없어요. 맛있는 거 먹으러 온 손님한테 그런 표정 보이면 밥맛이 없잖아요. 그리고 아까 선생님이 그랬죠? 나였으면 뭍으로 이송해서 진료 봤을 거라고. 아니요. 선생님 그거 거짓말이에요. 선생님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 있죠?”
“그걸 어떻게……?”
작년 초 오심보는 가족과 함께 김한솔의 식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막내아들이 밥을 먹다 사레가 들렸는데 오심보가 아연실색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당시 아들이 사레가 깊게 들려 괴로워하자 오심보는 뭍으로 나가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지 주변에서 밥을 먹던 손님들은 순간 식당에 큰 사고가 난 줄 알고 오해까지 했었다.
결과적으로 사레들린 막내아들은 진정됐고, 오심보는 가족들과 함께 천천히 식사를 즐기고 갔다.
그 모습을 본 김한솔은 처음에 좀 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 새끼가 저런 일을 겪으면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어 이해했다.
“그때 기억나세요?”
“……!”
김한손의 이야기를 들은 오심보는 그때 일이 정확히 기억났다.
“그때 제가 뜨거운 물 달라고 해서 뜨거운 물 갖다 드리고 따뜻한 수건 좀 부탁한다고 해서 수건도 갖다 드리고 우리 아들이 체한 것 같기도 하다면서 소화제를 찾아서 약도 찾아서 드렸어요.”
“아, 네……. 맞아요.”
오심보는 순간 그때 당시 본인의 요구를 전부 다 들어줬던 김한솔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막내였기에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유난스럽게 굴었고, 그건 아들이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음식을 먹다 사레들린 것뿐이었다.
그런데 끊이지 않은 기침 소리와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얼굴을 보자 순간 잘못되는 건 아닌가 싶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고 식당 부부는 싫다는 내색 하나 없이 친절하게 대해 줬다.
“그때 선생님의 아들은 고작 사레였죠? 내 남편은 죽을지도 몰라요. 사레 하나에도 심장이 벌렁거릴 만큼 놀랐던 분이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환자 보호자에게 그렇게 말을 하세요? 선생님 아들이 이런 상황이었어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이송 수단을 기다렸다 뭍으로 갔겠어요? 아니요!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은 저보다 더 아들 살려 달라고 빌었을 거예요.”
“…….”
그렇게 따박따박 말을 하던 오심보는 입에 지퍼를 채운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병원에 온 환자나 보호자가 얼마나 심적으로 불안하고 두려운지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그냥 말,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의료진 말 한마디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요. 희락도 주민의 건강을 책임집니다.”
열변을 토해낸 김한솔은 갑자기 뜬금없이 말했다.
그 말은 스테이션 벽에 걸려 있는 포스터 속 문구였다.
“제가 보기에 저 표어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요. 제 말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고 선생님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야무지게 하고 싶은 말은 한 김한솔은 꾸벅 인사를 하고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 오심보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당직인 내과 의사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는 오심보 못지않게 민망해진 표정으로 역시나 멍하니 서 있었다.
“아직 안 끝났나?”
자리로 돌아온 김한솔은 핸드폰을 확인하며 남편이 수술방으로 들어간 시간을 확인했다.
“2층에서 기다릴까?”
수술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어!”
곧이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김한솔은 깜짝 놀랐다. 문이 열리자마자 태경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선생님!? 우리 준역 씨 어떻게 됐나요……?”
“오래 기다리셨죠?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습니다.”
따뜻한 미소와 함께 태경이 들려준 좋은 소식을 듣자마자 김한솔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