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화. 배로 가는 거지?
따뜻한 미소와 함께 태경이 들려준 좋은 소식을 듣자마자 김한솔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흑! 가…….”
수술이 잘됐다는 말 한마디에 김한솔은 잔뜩 힘을 주고 있던 긴장감이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며 감사하다는 말은 간신히 전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제대로 발음하고 싶었지만, 속절없이 터져 버린 울음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준역 환자분이 잘 견뎌 줬어요.”
“……네. 흐윽!”
남편이 잘 견뎌 줬다는 그 말에 수술방에서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생각에 울컥함이 더 밀려왔다.
“아이고! 보호자분?”
태경은 김한솔의 팔을 잡아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바닥 차가워요. 여기, 앉으세요.”
태경은 보호자와 환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주저앉아 눈물이 터질 만큼 걱정과 불안한 소용돌이 속에 있던 그 심경이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안다.
사랑하는 가족이 수술방으로 들어가면 보호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저,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자식이, 내 형제자매가 무사히 수술을 잘 받고 좋은 결과가 있는 것. 오직 그 하나뿐이다.
수술방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 수 없고 볼 수 없기에 그 마음이 더 애타고 답답한 것도 태경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수술이 끝나면 아무리 힘들어도 보호자를 만나는 일을 잊지 않는다.
아무리 힘든 수술이어도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대수술에 방광이 터질 것 같고 목이 저려도 수술이 끝나면 무조건 보호자가 우선이다.
간이 쪼그라들 것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린 보호자에게 수술이 잘 끝났다는 그 말 한마디만 하면 된다.
“이렇게 계속 우시면 기운 빠져요.”
화장실에서 가져온 휴지를 건넨 태경은 눈물을 그칠 줄 모르는 김한솔을 위로했다.
“보호자가 기운 내야죠.”
“흐! 선생님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리고 이준역 환자 조금 있으면 이송될 겁니다.”
“이송이요?”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된 김한솔은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네, 큰 병원으로 옮겨서 후 처치나 관리를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여긴 중환자실이 없으니까 옮기는 게 맞아요.”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저도 이송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기, 선생님 그런데 저…….”
뭔가 어려운 말을 하려는 걸까. 잠시 머뭇거리던 김한솔은 이내 태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남편 얼굴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저랑 같이 올라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남편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김한솔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태경과 함께 2층으로 향했다.
“태경아?”
“이준역 환자 보호자분이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이재현과 박준석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네, 맞아요. 여기 김태경 선생님께 말씀 들었어요. 두 분께서 수술 함께 하시고 많이 도와주셨다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한솔은 고개를 숙이며 두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감사하다는 한마디에 얼마나 진심을 담았는지 박준석과 이재현에게 그 마음이 다 전달되는 것만 같았다.
“아닙니다. 이 친구와 전 한 게 없어요.”
“맞아요. 김태경 선생이 다 했지 우린 한 게 없습니다.”
“이준역 환자 회복실로 이동했지?”
“어, 간호사 선생님이 옮겼어.”
“저쪽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마침 회복실에서 나온 중년 간호사가 김한솔을 데리고 다시 회복실로 향했다.
“혹시, 저 아래, 식당 사장님 맞으시죠?”
회복실로 향하며 김한솔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간호사는 그녀를 알아봤다.
사실 간호사는 수술방에서 이준역을 보고 뭔가 낯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워낙 긴박했던 수술이라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김한솔의 얼굴을 보니 이준역이 누군지 기억난 것이다.
“네, 맞아요.”
“우리 남편이 사장님네 음식 참 좋아해요. 저도 좋아하고요. 우리는 주로 포장해서 먹거든요. 늘 서비스도 많이 주셔서 감사해요. 어머! 제가 지금 별소리를 다 하네요.”
순간 내적 친밀감이 들었던 간호사는 이럴 분위기가 아님을 직감하고 사과했다.
“지금 할 소리가 아닌데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간호사 선생님도 수술방에 함께 들어가셨어요?”
“네, 제가 세 분 도와드렸어요.”
“제 남편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
김한솔은 간호사에게도 인사를 잊지 않았다. 남편 수술에 참여한 사람은 그 누구라도 전부 다 감사했다.
“세 분이 고생하셨죠. 저 세 분 아니셨으면 환자분 정말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특히 얼굴 훤칠하신 선생님 있죠?”
“네, 김태경 선생님.”
“맞아요. 그분이 특히 고생하셨어요. 몇 시간 잠깐 봤지만, 좋은 의사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네,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이쪽이 회복실이에요. 아까 뭍에서 이송 수단 온다고 했으니까 연락이 오면 또 안내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간호사가 잠시 자리를 피해 주고 김한솔은 남편이 누워 있는 베드로 다가갔다.
“하! 여보…….”
머리카락이 밀린 흔적과 칭칭 감겨 있는 붕대, 그리고 부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흔적들 마주하자 남편이 수술방에서 얼마나 힘겨운 사투를 했는지 그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했던 건지 알 것만 같았다.
“혼자서 많이 무서웠지? 큰 수술 이겨 낸 당신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를 거야. 여보? 나 당신 사고 소식 듣고 심장이 내려앉은 줄 알았어. 제발 살아만 있으라고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 이렇게 살아 줘서 고마워 여보.”
김한솔은 눈물을 보이며 남편에게 따뜻한 말을 계속 전했다.
“당신 머리 짧은 거 싫어하는 데 머리 한쪽이 짧아졌네. 그래도 여전히 멋있으니까 괜찮아. 여보, 있잖아. 지상이 찾아준 의사 선생님들이 당신도 살려 주셨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그러니까 당신이 얼른 일어나서 직접 감사 인사도 드려. 알았지? 여보, 내가 많이 사랑해.”
* * *
김한솔이 회복실에 들어간 사이 세 사람은 한쪽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선생님들, 커피 좀 드시겠어요?”
가만히 앉아 있는 세 사람에게 간호사가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건넸다.
“아휴! 감사합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제가 커피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제 거 뽑는 김에 선생님들 것도 같이 뽑았어요.”
“잘 마실게요.”
“안 마셔?”
“…….”
“갑자기 왜 이래? 얼른 커피나 받으슈.”
박준석의 커피를 대신 받아 든 이재현이 아무 대꾸 없는 그의 손에 종이컵을 쥐여 줬다.
“뭐야, 아직도 수술한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 태경이가 다 책임진다고 했잖아.”
“형, 걱정하지 마.”
“그리고 막말로 태경이 책임질 것도 없이 수술도 잘됐는데 왜 이렇게 죽상이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그래.”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 다 왜?”
이재현에게 피곤하다며 대꾸한 박준석은 별안간 커피를 벌컥 마셨다가 뜨거움에 깜짝 놀랐다.
“아! 시x. 존x 뜨겁네.”
“자판기에서 방금 뽑았으니까 뜨거운 거야 당연하지. 어디 가?”
“뜨거운 혓바닥에 소방하러 간다. 됐냐?”
퉁명스럽게 말한 박준석은 정수기에 있는 냉수 한 컵을 들이켰다.
사실 박준석의 표정이 안 좋은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인사말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조금 전, 김한솔의 인사였다.
무슨 생명의 은인을 대하는 눈빛과 행동을 보며 박준석은 기분도 마음도 민망해졌다.
그전까지는 어려운 수술이 잘돼서 기분이 좋았는데, 진정성이 느껴지는 보호자 태도에 절로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워낙 환자 살리는 일에 물불 안 가리는 태경이라 해도 그 역시 분명 걱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경은 그런 모습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환자를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마치 불을 보고 돌진하는 불나방 같았다.
그리고 태경이 만큼은 아니었지만, 이재현도 그랬다.
어쩌면 일반의라 더 신중하고 꺼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텐데,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이재현도 수술하는 일에 빼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두 사람보다 이준역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수술에 참여하기를 꺼렸다.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를 정도로 위급했던 환자보다 본인이 더 중요했다.
‘아! 쪽팔리네.’
보호자의 진심 어린 눈빛과 두 사람과 대비됐던 자기 모습이 계속 생각나 본인 스스로가 참 부끄러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박준석도 그런 때가 있었다.
신경외과 교수가 되고 후배들에게 환자의 중요성과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언제나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라고 호통치던 때가 있었다.
‘이 새끼들이 정신 안 차려? 수술실에 들어와서 이따위로 할 거면 나가!’
‘의사는 환자를 살리는 게 그게 의사야. 딴생각할 거 없어. 오직 환자 생각만 하면 되는 거야.’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난 박준석은 의사로서 자신이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입는 가운 앞에 자수로 새겨진 ‘의사: 박준석’이란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인지 스스로 묻고 싶었다.
아무리 소송이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었어도 오늘 본인의 모습이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형? 무슨 일 있어?”
터벅터벅 자리로 돌아와 앉은 박준석을 보며 태경이 물었다.
“일은 무슨. 아무 일 없어.”
“알았다. 형, 배고파서 그런 거 아니야?”
“그래! 배고파서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됐냐?”
괜히 분위기가 심각해질까 봐 박준석은 이재현이 한 말에 장단을 맞추며 배고픈 사람처럼 배를 두드렸다.
“하긴! 이 시간이 야식이 당기는 시간이기도 해. 형이 배고프다니까 나도 배고프네.”
“태경아, 그보다 환자 이송은 어떻게 되는 거야?”
수술이 끝나고 박준석과 이재현은 아직 이송에 관해 정확히 들은 것이 없었다.
“그러게. 수술 잘 끝난 거에 정신 팔려서 이송은 물어보지도 못했네? 배로 가는 거지?”
섬에 있는 응급 환자들이 육지까지 배로 이송되는 경우가 있기에 두 사람은 당연히 배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배지 그럼. 뭐 여기서 차로 가겠어? 아니면 날아가겠어.”
“그런데 배로 환자 옮기는 거 괜찮겠지? 괜히 배 타고 가는데 막 파도치고 배 흔들리고 그런 거 아니겠지?”
“재현아, 지금 날씨를 봐라. 이렇게 좋은 날 파도는 무슨 파도야. 이런 날씨는 파도 없어.”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이준역 환자 이송 배로 안 갈 거야.”
두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태경이 담담하게 말했다.
“배로 안 가면?”
“날아갈 거야.”
“날아가다니…….”
“날아간다고? 뭐로?”
“헬기! 이준역 환자 헬기로 이송할 거야.”
“뭐!?”
“헬기!”
당연히 배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동시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