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43화 (442/472)

443화. 계단이 왜요?

당연히 배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동시에 말했다.

“야! 태경아 너 방금 제대로 말한 거 맞아?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러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시간에 그것도 섬에 헬기가 온다고?”

“어! 와. 환자 이송하는데 시간이나 섬이 뭐가 중요해. 필요하면 와야지. 여보세요?”

벙찐 표정을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말하던 태경은 별안간 진동하는 핸드폰을 받았다.

“네, 제가 김태경입니다. 그런가요? 네. 제가 알아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무슨 전화인데 그래?”

조금 전과 달리 진지해진 태경의 표정을 보며 이재현이 물었다.

“소방헬기에 탑승한 구급대원인데 주변에 헬기 착륙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 알 수 있냐고 연락 왔어.”

희락도에서 헬기로 환자를 이송하는 게 처음이었기에, 구급대원은 태경이 섬에 있는 의사인 줄 알고 직접 연락한 것이다.

보통 환자를 이송할 때 사용하는 헬기는 날아다니는 응급실이라고 불리는 닥터헬기와 소방 당국에서 운영하는 구조헬기, 소방헬기가 있다.

특히 닥터 헬기는 일본은 40대가 넘고 미국은 900대가 넘게 있지만, 우리나라는 고작 10대도 안 되는 7대가 전부다.

워낙 대수가 적기 때문에 전국에서 필요한 때 즉각 사용하는 게 쉽지 않다.

다행히 이준역은 응급 수술이 잘된 상태였기에 소방헬기로도 이송이 가능한 상태였다.

헬기 소리를 들은 박준석과 이재현이 상당히 놀란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태경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수술 후 감덕찬에게 연락이 왔었다.

‘원장님, 접니다. 환자 수술은 잘됐습니까?’

‘네, 의원님 덕분에 수술방에서 수술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놀러 가서 수술까지 하셨는데 환자가 괜찮아서 다행이네요. 그보다 이송 말입니다.’

‘네, 의원님.’

‘제가 이래저래 생각을 해 봤는데 바닷길보다 하늘길이 나을 것 같은데 원장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하늘길이라면? 설마 헬기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헬기입니다.’

‘그게 가능한 겁니까?’

‘사람 목숨 하나 살리는 데 불가능할 건 또 뭐가 있겠습니까. 저도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는데 오히려 도지사님께서 헬기 생각을 먼저 하시고 이야기하셨어요.’

‘의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태경은 생각지도 못한 헬기 이송에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통화하면서 헬기 소리를 듣고 어찌나 놀랐던지 지금 박준석과 이재현의 기분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헬기라니……. 그 사람 누군지 몰라도 스케일 장난 아니다.”

“그러게. 근데 헬기 장소부터 일단 알아봐야지. 어차피 우리는 여기 주민도 아니니까 우리끼리 의논해 봐야 소용없는 거잖아.”

“헬기요?”

이재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한솔이 회복실에서 나와 세 사람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거 혹시 우리 남편 이야기예요? 준역 씨, 헬기로 이송되나요?”

“네, 보호자님. 맞습니다.”

“어머! 세상에 이렇게까지 애써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보호자님 그보다 근처에 헬기가 착륙할 만한 공간이 있을까요?”

감덕찬 덕분에 어렵게 움직인 헬기였기에 태경은 지금 마음이 급했다.

아무리 국회의원과 도지사가 헬기를 보내 줬다고 한들 착륙할 곳을 찾지 못하면 환자 이송에 어려움이 생긴다.

“헬기라면 공터 같은 곳이면 될까요?”

“넓은 공터나 그런 비슷한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넓은 공간이라…….”

김한솔은 머리로 생각하고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검색하며 찾았지만, 실제로 헬기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난감했다.

“넓은 공간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가로세로 22미터 이상인 공터면 될 겁니다.”

그사이, 헬기 이착륙 시 필요한 공간을 검색한 태경이 말했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 뉴스에 가끔 건물 옥상에 H가 크게 쓰인 공간을 보았을 것이다.

그 공간들을 헬리포트라고 부른다.

건축물의 피난·방화 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으로 22미터로 되어 있지만, 건물 바닥 규격이 22미터에 미치지 못하면 15미터까지 감축할 수 있다.

“최소 15미터 정도 공간만 돼도 가능합니다.”

자세히 검색해 본 태경이 김한솔에게 덧붙였다.

“15미터?”

순간 식당 주차장을 떠올리던 김한솔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15미터는 고사하고 주변 구조물 때문에 헬기가 도저히 착륙할 수 없는 구조였다.

희락도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헬기가 이착륙할 만한 공간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시부모님께 한번 물어볼게요.”

“그 방법이 있었네요.”

“그거 좋다.”

“어른들은 잘 아실 테니까 그게 좋겠어요.”

열심히 지도 어플로 검색하고 있던 세 사람이 동의했다.

양가 어른들, 특히 시모님에게 남편의 사고 소식을 내일 알려 드릴 생각이었다.

시간도 너무 늦었고 혈압이 있으신 두 분께서 갑자기 놀라실까 봐 차분하게 말씀드리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김한솔이 시부모님께 전화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잠시만요!”

오심보가 계단으로 올라오면 외쳤다.

조금 전, 김한솔에게 팩폭을 맞은 오심보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좋은 소리가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보다는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식당에서 있었던 아들 이야기 때문이었다. 아들 이야기를 듣자 그동안 본인의 언행들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기에 딱히 기분이 나쁠 일도 없었다.

김한솔에게 사과하고 싶었던 오심보는 계단을 기웃거렸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아 머뭇거렸다.

그러다 네 사람의 헬기 이야기를 듣고 얼른 올라온 것이다.

“헬기 착륙할 만한 곳이라면 내가 알아요.”

“그런 곳이 있어요?”

“네.”

오심보는 즉각 핸드폰으로 검색하며 병원 근처에 있는 곳을 보여줬다.

“여기에요. 지금 공원이 있는 카페 공사하려고 노는 땅인데 공터에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바닥에 아스콘도 깔려 있어서 헬기 착륙하기 괜찮을 거예요.”

오심보의 말대로라면 헬기가 착륙하기 딱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병원에서 장소까지 얼마나 걸리죠?”

“여기서 1키로 정도 걸릴 거예요.”

1키로면 성인 보통 걸음으로는 8분이 좀 넘는 거리였다.

태경은 생각했다.

구조헬기가 착륙하고 구급대원들이 병원까지 오는 것보다 환자와 함께 움직이면 그만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굳이 구급 대원들이 병원까지 오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보세요? 네, 대원님 접니다. 헬기 착륙장소 찾았습니다. 네, 병원에서 동쪽으로 1키로 정도 떨어진 공터가 있습니다. 자세한 장소는 바로 문자로 드릴게요. 그리고 거기까지 환자는 우리가 옮길게요. 네, 거기서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태경은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통화 들었죠? 저 장소까지 이준역 환자 우리가 옮깁니다.”

“그래, 우리가 옮기자. 누가 옮기는 게 뭐가 중요해. 같이 도와서 하면 돼지.”

박준석이 태경의 말에 동의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차는? 선생님 여기 구급차 없죠?”

이재현이 오심보를 향해 물었다.

“네, 없어요.”

“차 필요 없어. 걸어서 옮기자.”

태경은 애초부터 직접 두 다리로 환자를 옮길 생각이었다.

물론 이준역을 옮길 수 있는 차가 있으면 여러모로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일단 차를 섭외해야 하는데 이 시간에 이동 베드가 들어갈 수 있는 차를 섭외한다는 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괜히 차를 섭외한답시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보도를 이용하는 게 더 좋은 생각이었다.

“그래, 직접 옮기자.”

“저도 도울게요.”

태경을 필두로 사람들은 이준역을 옮기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잠시 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사람들이 이준역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총 두 개의 이동 베드가 보였다.

하나는 고정할 수 있는 벨트가 있는 이준역이 누운 베드였고, 하나는 그의 몸과 연결된 장비들이 놓인 베드였다.

연결 된 기구를 일일이 손으로 들고 갈 수 없었기에 베드에 올려 두고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체격이 좋은 태경과 덩치가 있는 박준석, 이재현이 한 조로 이준역이 누운 베드를 들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수술방에서 세 사람을 도왔던 중년 간호사와 김한솔이 기계가 있는 베드를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오심보는 베드 위에 놓을 수 없는 수액과 약이 걸려 있는 수액 걸이를 들기로 했다.

당직의였던 내과의도 준비를 함께 도왔지만, 병원을 지켜야 했기에 함께 갈 수는 없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절대 환자 떨어트리면 안 돼. 넘어져서도 안 돼.”

태경은 박준석과 이재현에게 당부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절대 놓칠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두 분도 기계 떨어뜨리면 안 돼요.”

“그럼요.”

수술방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김한솔의 표정은 진지함을 넘어 심각하기까지 했다.

“밖이 많이 어둡습니다. 가로등이 없는 곳도 있으니까 다들 조심하시고 랜턴으로 잘 비추면서 가도록 하세요. 그럼, 다들 출발합시다.”

태경과 친구들은 이준역과 연결된 기계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병원을 나섰다.

저벅, 저벅 울리는 발소리가 고요한 밤길 사이로 퍼졌다.

사람들의 표정은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앞쪽에 있는 태경과 오심보 간호사가 병원에 있는 랜턴으로 사람들이 잘 걸을 수 있도록 가는 길을 밝혔다.

“형 괜찮아?”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태경이 사람들을 살폈다.

“그럼 괜찮지. 재현아 괜찮지?”

“당연하지. 남자 셋이 성인 한 사람도 못 들면 안 돼지.”

“보호자분과 선생님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저도요.”

앓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 건 아니었지만 응급 수술한 환자를 그것도 낮이 아닌 밤에 옮긴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사람들은 상당히 신중을 기했다.

혹시라도 작은 돌부리에 걸리거나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땐 내가 다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환자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 선생님,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아세요?”

“거의 다 왔어요.”

태경의 물음에 오심보가 답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수술을 반대하고 까칠하게 굴던 모습과 달리 지금 오심보의 모습은 상당히 협조적이고 적극적이었다.

“저 아래 쓰러진 팻말 보이죠? 저기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돼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문제요?”

문제라는 말에 태경을 비롯한 열심히 걸어가던 사람들이 귀를 쫑긋하며 반응했다.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길부터 내려가는 계단이에요.”

“계단이 왜요?”

이재현이 계단이 별거냐는 듯 묻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계단 몇 개 있는 거 그냥 천천히 잘 내려가면 되잖아.”

“그게 몇 개가 아니라 공터로 내려가는 길이 나선형 계단 모양으로 꽤 이어져 있어요.”

“……!”

그 말에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사람이 걸어가던 걸음을 멈췄다.

“나선형 계단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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