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47화 (446/472)

447화. 운동 연습하다

출근 전, 함께 운동하는 최모나와 이찬희는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샐러드 식당에 들어갔다.

“오셨겠지?”

“누구? 선생님?”

“응.”

“오셨네.”

태블릿 PC로 의학 자료를 보고 있던 최모나는 핸드폰에 단톡방을 확인하더니 고개도 들지 않고 이찬희에게 화면을 보여 줬다.

“뭐야? 웬 쥐포?”

“팀장님이 방금 올린 건데 선생님께서 직원들 선물이라고 사 오셨대.”

교도소에서 유혁진을 면회한 다음 날, 역시나 우리병원 붙박이 태경은 당연한 듯이 일찍 출근했다.

“어디 바닷가 갔다 오셨나 보네. 난 솔직히 선생님께서 휴가 가신다고 하셨을 때 안 믿었다.”

“선생님도 사람인데 이렇게라도 쉬셔야지.”

“그건 그래.”

“모나야?”

“어.”

“나. 봐 봐.”

그 말에 태블릿을 보고 있던 최모나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왜?”

“어때, 몸에 근육 좀 붙은 거 갖지 않아?”

요즘 이찬희가 최소 두 번 이상은 하는 질문이다.

운동하러 가는 날이면 헬스장에서 한 번 나와서 한 번씩은 꼭 물어본다.

처음에는 운동하기 귀찮아하더니 점점 몸이 변하는 모습이 본인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최모나는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뭐야? 그 웃음은? 별로야?”

“아니. 멋있어서.”

“뭐……!”

예상 못 한 반응에 이찬희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한 번도 멋있다는 소리는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최모나는 평소 애정 표현을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런 발언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멋있다니까?”

“너! 누구야? 개모나 어디 갔어? 당장 내 여자 친구 불러와.”

“이 선생 운동하고 몸 좋아졌으니까 멋있다고 한 거야.”

“그래? 내가 진짜 멋있어?”

“어. 멋있어. 됐냐?”

“하여간! 무드가 없어요. 무드가.”

드르륵-

“왜? 화장실 가게?”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는 최모나를 보며 이찬희가 물었다.

“아니, 진동벨 울려서.”

“앉아 있어. 내가 갖고 갈게.”

잠시 후, 이찬희가 먹음직스러운 포케가 담긴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오늘도 연어 포케야?”

“어. 나 한 번 꽂히면 한동안 그것만 먹잖아.”

이찬희가 최모나 입술 옆에 묻은 음식물을 자연스럽게 떼어 주며 말했다.

“오늘 307호 정권자 환자 오후에 퇴원이랬나?”

“오후 맞을걸. 아드님이 오후에 온다고 알고 있어. 근데 그거 알아? 우리 이야기하다 보면 마지막은 환자 이야기다.”

“둘 다 의사라서 그래.”

한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의사 커플이다 보니 태경과 의진처럼 두 사람도 결국 환자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권자 환자 퇴원하면 한동안 심심할 거 같아.”

307호 환자는 발목 수술을 받고 한 달 동안 입원한 할머니 환자였다.

조금 말이 많긴 해도 유쾌하고 입담이 좋아서 직원들과 다 잘 지냈다.

“원래 장기 입원한 환자들 퇴원하면 정들어서 더 그렇지.”

“그건 맞아. 이 선생? 나 궁금한 거 있어.”

음식을 입에 넣으려던 최모나가 포크를 내려놓고 이찬희를 쳐다봤다.

“뭔데? 말해.”

“상처가 자주 생길 수 있나?”

“뭔 소리야? 주어 좀 붙이라니까.”

“운동하는 사람들 몸에 상처 자주 생기나 해서.”

“자주 생기지. 내 친구 중에 운동한 애 있었는데 그놈도 맨날 몸에 상처 있고 그랬어. 아무래도 운동하다 보니까 크고 작은 부상들이 자주 있더라.”

“그렇구나.”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뭐야, 싱겁긴.”

이찬희 대답을 듣고 뭔가 생각하던 최모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두 사람은 밥을 먹은 뒤, 평범한 연인처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병원으로 출근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이 쌤, 최 쌤 안녕하세요.”

“선생님 휴가 잘 갔다 오셨어요?”

직원들과 인사를 주고받던 이찬희는 응급실에서 나오는 태경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그럼. 잘 다녀왔지. 두 사람, 고생 많았다며? 수고했어.”

태경은 이찬희와 최모나를 보자마자 흐뭇한 표정으로 칭찬했다.

출근하자마자 병원을 둘러본 태경은 두 사람이 휴가를 가 있던 동안 얼마나 일을 열심히 잘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보통 원장이 자리를 비웠다 오면 간혹 입원 환자 중에 다른 의료진에 불만을 생각했다가 말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들의 말이 전부 다 사실은 아니지만, 환자의 말이기 때문에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휴가를 다녀온 태경에게 다들 비슷한 말을 했다.

임정숙 간호사부터 병동 환자들이 하나같이 두 사람을 칭찬하며 좋은 말만 했다.

“힘들지 않았어?”

“아닙니다.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최 선생 말이 맞아요. 크게 바쁜 일도 없었어요. 그리고 저희도 이제 짬이 좀 찾는데 이 정도는 이제 거뜬합니다.”

“어쭈! 이 선생 어깨 힘이 잔뜩 들어갔는데.”

어깨를 으쓱거리던 이찬희가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아! 확실히 선생님이 병원에 안 계시니까 중증 환자가 크게 없는 거 같아요.”

“그래? 이 선생 말 들으니까 내가 환타라는 거지?”

환타는 환자를 탄다라는 은어로, 특정 근무자가 근무 시 환자가 많이 온다는 말이다.

“아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전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 아닙니다. 그런데 선생님, 휴가는 즐거우셨어요? 설마 휴가 가셔서 환자 본 건 아니시죠?”

“설마. 그건 아니다.”

“원장님 응급환자 생겨서 수술하셨대요.”

“예? 수술이요?”

옆에 있던 임정숙 간호사가 말하자 이찬희와 최모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휴가지에서 수술하셨다는 거예요?”

“응. TA(교통사고) 환자가 출혈 때문에 머리 열었어.”

“머리! 환자 머리를 열었다는 겁니까?”

“어. 그렇게 됐어.”

“역시 우리 선생님 환타 맞네. 선생님 머리 수술하신 적 있으세요?”

“아니. 이 선생 오늘 오후 수술 준비해 놨지?”

“당연하죠. 그보다 선생님 머리 수술한 이야기나 마저 해 주세요.”

“싫은데?”

“왜요?”

“진료 봐야지. 임 선생님 외래환자 진료 시작하죠.”

“네, 원장님.”

“선생님?”

“쫓아오지 마.”

“아니요. 전 언제까지나 선생님 뒤에 바짝 있을 거예요.”

이찬희는 진료실로 향하는 태경을 끝까지 쫓아갔지만, 결국 쫓겨났다.

태경은 외래 진료를 시작하고 의료진도 각자 위치에서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대기실에는 하나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어느새 몇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환자들 대기 번호가 점점 늘어나는 거 보니까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네요.”

“그러게. 사람들 슬슬 몰리는 거 보니까 직장인들 퇴근 시간 다가오나 보다.”

접수처 직원들은 대화를 나누며 대기실 너머 정문 옆에 있는 창문을 쳐다봤다.

“벌써 해가 다 떨어졌어. 안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시간 개념이 무뎌진다니까.”

“맞아요.”

“영이 씨, 저녁 먹고 와.”

“전 아직 생각 없어요. 언니 먼저 드시고 오세요.”

“나도 오늘 일하면서 간식 몇 개 먹었더니 아직 배가 안 꺼져서 이따 가려고.”

저녁 식사 생각이 없는 두 사람은 다시 환자 접수에 집중했다.

딩동-

안내음 소리와 함께 접수처에 있는 모니터에 번호가 뜨자 해당 대기자가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접수하시겠어요?”

“네, 예약한 건 아닌데 원장님 진료 보고 싶어서요. 가능할까요?”

“가능한데 원장님 지금 수술 중이시라 진료 보시려면 좀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요?”

“한 30분 정도면 나오실 거 같아요.”

“그 정도면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접수한 사람이 돌아가고 다음 대기음과 함께 모니터에 번호가 올라왔다.

딩동-

“157번 안 계신가요?”

접수처 직원이 아무도 오지 않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157번이요.”

“저요!”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이자 당사자가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가슴까지 오는 까만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고 안경을 착용한 교복 입은 여고생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했는지 여고생은 본인의 번호를 호명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제가 157번이에요.”

안경 너머 보이는 눈동자는 총기 어린 여고생의 눈동자라기보다는 뭔가에 찌들어 공허함마저 감돌았다.

“어디 불편해서 왔어요?”

“팔에 타박상이 좀 생겨서 치료받으려고요.”

“네, 기다리면 호명해 줄게요.”

“저, 제가 좀 바빠서 그러는데 진료 빨리 좀 볼 수 있을까요?”

“가장 빨리 보려면 응급실 진료 보면 빠른데 그렇게 할래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접수해 놓을 테니 저쪽…….”

“알아요. 저기 응급실 입구로 들어가서 기다리면 되죠?”

병원을 한두 번 온 게 아닌 듯 직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접수를 마친 여고생은 응급실로 들어가다 최모나가 진료하는 걸 보고는 잠시 걸음을 멈칫했다.

그러더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거울을 보기 위해서였다.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한쪽에 내려 두고 거울 속 자기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마치 하자 상품을 고르는 감별사처럼 이곳저곳 고개를 좌우로 끝까지 돌리며 이상한 곳이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충분하다고 느낀 여고생은 그제야 다시 가방을 메고 응급실로 향했다.

“이설래 님? 이설래 환자분?”

응급실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자 여고생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네.”

“11번 베드로 가시면 선생님 가실 거예요.”

이설래가 간호사가 안내해 준 11번 베드로 가서 대기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커튼 열리는 소리와 함께 최모나가 다가왔다.

“안녕하……!”

인사를 하던 최모나는 잠시 멈칫했다.

이름, 이설래. 나이, 18살.

우리 병원 주변에 있는 여러 학교 중 OO 여고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다.

병원 주변에 학교들이 꽤 있었기에 병원에 오는 학생들을 진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느 학교 교복인지 알게 됐다.

최모나가 갑자기 멈칫한 이유는 며칠 전부터 이 학생이 거짓말 조금 더해서 병원에 출석 체크를 하다시피 자주 오고 있기 때문이다.

“안녕.”

최모나는 반가운 말투로 친근하게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이설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입으로만 인사말을 전했다. 아이의 시선은 손에 쥐고 있는 단어장에 고정된 상태였다.

“우리 또 보네.”

“네.”

“타박상 때문에 왔다고?”

“네.”

“선생님이 좀 볼 수 있을까?”

최모나의 말에 이설래는 아쉬운 듯 쥐고 있던 단어장을 내려놓은 뒤, 입고 있던 교복 상의를 벗었다.

그러자 반팔 소매 밑으로 한쪽 팔뚝에 상처 난 부위가 보였다. 상처는 깊지 않았고 뭔가에 쓸렸거나 긁힌 상처로 보였다.

“여기요. 소독 좀 해 주세요.”

이설래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한 눈빛 아래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잠시만.”

커튼 밖으로 나간 최모나는 약품을 챙겨 다시 돌아왔다.

“좀 따가울 수 있어. 많이 따가우면 말해.”

“네.”

늘 대답은 잘하지만, 이설래는 한 번도 따갑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상처가 깊지는 않지만, 면적이 좀 있는 편이라 소독약으로 소독하면 당연히 따가웠다.

그런데 진짜 안 아픈 건지 아니면 아픈 걸 참는 건지 이설래는 눈조차 찡그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엄청 쓰라릴 텐데. 잘 참네.’

그런 아이를 보며 최모나는 이설래가 참는 거라고 생각했다.

“학생?”

“네?”

“여기 왜 다쳤는지 물어봐도 되니?”

“운동 연습하다 넘어졌어요.”

‘운동 연습하다 넘어졌어요.’

최모나가 던진 질문에 이설래가 답하자 그 똑같은 대답을 최모나는 속으로 동시에 말했다.

똑같다. 항상 이, 여고생의 대답은 똑같다.

“어떤 운동하는데?”

“네?!”

이설래가 뭐지 싶은 표정으로 최모나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반문했다.

항상 운동하다 넘어졌다고 하면 ‘그래’라는 답변 외에는 덧붙여 오는 말이 없었다.

말이 많지 않은 의사라서 진료받기 편했는데 갑자기 왜 질문하나 싶었다.

그저 형식적으로 질문하고 형식적으로 답하면 됐는데 예상을 벗어난 질문에 이설래는 잠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바로 질문에 답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어떤 운동하는 것까지 선생님께 말해야 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요.”

“……!”

방금 이설래가 당황했던 것처럼 최모나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지 못한 아이의 답변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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