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48화 (447/472)

448화. 이것도 진료비에 들어가나요?

방금 이설래가 당황했던 것처럼 최모나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지 못한 아이의 답변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잠시 머리를 굴리다 답을 찾았다.

“아,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는데 네가 요즘 병원에 자주 오니까 의사로서 물어보는 거야. 지금 내가 네 담당 의사니까. 그리고 의사가 환자 상처에 관해 물어보고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거야.”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완벽한 대답이었다. 최모나는 속으로 이보다 확실한 답은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제가 몸치인데 운동하고 싶어서 혼자 용쓰는 중이에요.”

최모나의 말이 이해됐는지 아이는 이전과 다르게 제법 길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좀 부상이 잦아요. 이 정도면 원하시는 대답이 됐어요?”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말인데 네가 하고 싶어서 몸치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그 운동이 어떤 운동인데?”

“…….”

“얘?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아까 설명했잖아. 의사는 아픈 환자가 궁금하다고.”

“정말이세요?”

이설래는 안경 너머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뭐?”

“선생님은 저 말고도 여기 오는 다른 환자들을 다 궁금해하시고 이렇게 질문하나 해서요.”

“당연하지. 의사가 아무 말 없이 환자 상처나 아픈 곳만 보고 어떻게 진료하니? 안 그래? 소통을 해야 진료가 되지.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여긴 그래.”

정확한 말이다.

전국에 있는 모든 병원, 모든 의사가 그런다고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병원은 확실했다.

스승인 태경이 그런 사람이고 그런 의사라 어쩔 수 없이 보고 배운 게 그거라 최모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무슨 운동하는지 말해 줄 수 있어?”

“……이팅 이요.”

“뭐라고?”

“피겨요. 피겨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은 빙판 위에서 음악에 맞춰 여러 동작을 선보이는 스포츠다.

운동이라고 해서 기본적으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 못 한 종목에 최모나는 살짝 당황했다.

“너, 피겨 해?”

“네. 이제 됐죠?”

“그래. 뭐, 일단은.”

상처가 깊지 않아서 소독과 치료는 금방 끝났다. 이설래는 벗은 교복 상의를 입고 베드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인사를 하려는데 최모나가 붙잡았다.

“안녕히…….”

“잠깐만!”

“소독 다 끝난 거 아니에요?”

“그건 맞는데, 잠깐이면 되니까 기다려.”

챠륵-

정말 잠깐 사이에 커튼 밖으로 나갔던 최모나가 빠르게 돌아왔다. 그 때문에 그냥 가려던 이설래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손 줘 볼래?”

“손이요? 왜요?”

“왜 요는 무슨. 줘 봐.”

최모나는 머뭇머뭇하는 이설래 오른쪽 손을 잡아당겨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쥐여 줬다.

“이게 뭐예요?”

“쉽게 설명하면 소독 밴드 같은 거야.”

상처 난 부위에 붙여 두면 좀 더 빠르게 아물게 하는 약이 발린 밴드였다.

최모나는 이설래 팔에 붙였던 밴드 한 개를 더 챙겨온 것이다.

“상처 치료한 팔뚝에 붙인 거랑 같은 거야. 내일 저녁쯤에 이걸로 새로 갈아. 방수되니까 샤워할 때 안 떼도 된다.”

“그런데 혹시 이것도 진료비에 들어가나요?”

“아니. 그냥 주는 거니까 가져가.”

“왜? 그냥 주세요.”

“운동하다가 자꾸 다친다고 해서. 다치지 말라고.”

“……예. 감사합니다.”

언제나처럼 형식적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한 이설래는 베드를 벗어났다.

“운동을 한다고?”

어딘가 묘한 느낌이 드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최모나는 작게 읊조렸다.

“아닌데……. 뭔가 운동하는 사람 같지 않은데. 아닌가? 맞나? 모르겠다.”

응급실을 벗어나는 이설래를 보며 혼자 갈팡질팡한 최모나는 원인 모를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환자에게 향했다.

“최 쌤? 15번 베드요?”

“네, 지금 갑니다.”

* * *

한 무더기의 고등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학원가.

“우리 엽떡 먹고 갈까?”

“오! 좋은데 오반 떡만으로 먹자. 어때?”

“치즈 추가해서. 콜!”

공부하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야식 메뉴를 정하는 아이들 뒤로 이설래가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 음식점으로 향하는 아이들, 부모님이 기다리는 차로 향하는 아이들 틈에서 이설래는 혼자 걷고 있었다.

오늘 학원에서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메모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그렇게 수많은 무리가 점점 줄어들고 학원가 거리가 끝나갈 즈음 들리지 않을 것 같던 아이의 고개가 정면을 향해서 들렸다.

“설래야~??”

저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 다정한 목소리도 부르고 있었다.

“이설래~~!”

여자는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허허실실 웃기 바빴다.

“설래야? 이제 끝났어?”

“여긴 왜 왔어요?”

“왜 오긴. 하나밖에 없는 딸이 학원 갔다 늦게 오는데 엄마가……!”

“…!”

‘엄마’라는 말이 나오자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던 여자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이설래는 여자에게 눈을 치켜떴다.

“엄마요? 누가요? 아줌마가 내 엄마예요?”

“미안. 아줌마가 오늘 너무 바빠서 요, 주책맞은 입이 막 제멋대로 움직였네. 미안해.”

“그리고 왜 자꾸 데리러 와요? 제가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했죠?”

“어머! 너, 데리러 온 거 아니야. 아줌마 급하게 살 거 있어서 나왔다가 저기서 너가 걸어오는 거 보이길래 반가워서 부른 거야.”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는 여자는 이설래의 새엄마인 김하선이다.

김하선은 설래 아빠인 이재천과 1년 전에 재혼했다.

이재천은 5년 전, 아내와 이혼한 뒤 홀로 딸을 키우다 2년 전, 모임에서 우연히 김하선을 만났다.

일찍 결혼해 20살 아들이 있던 김하선은 사고로 남편을 하늘나라에 보냈다.

두 사람은 처치가 같아서인지 아이 키우는 문제로 고민을 주고받다 친해지고 가까워졌다. 그렇게 만남을 지속하다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이들 때문에 재혼을 하는 게 맞나 한참을 고민했지만, 행복한 가정을 위해 두 사람은 마음을 굳혔다.

김하선의 아들은 엄마의 새 출발을 누구보다 축복하며 새 아빠와 새로 생긴 여동생에게 먼저 다가가며 다정했다.

김하선 역시, 새로 생긴 가정과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친엄마가 돌아와 온 가족이 함께 살 거라고 생각했던 이설래는 새로운 가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히 엄마 자리를 차지한 새엄마인 김하선에게 더 삐딱했다.

결혼 전에도 후에도 아무리 아빠가 상황을 설명하고 말했지만, 이설래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려 했다.

그저 저 여자 때문에 엄마가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며 김하선을 인정하지 않았다.

“설래야, 배고프지 않아? 떡볶이 먹을래?”

“…….”

“별로야? 그럼, 뭐? 치킨 피자?”

“…….”

몇 번의 물음에도 이설래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지만, 김하선은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딸이 갖고 싶었던 그녀는 설래가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까칠하고 어쩌면 무례한 아이 태도에 서운하거나 속이 상할 법도 한데 김하선은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자신 때문에 아이의 마음이 상처받은 건 아닐까 싶어서 어떡해서든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본인이 아이의 입장이었어도, 이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 같았다.

그저, 마냥 아이가 예뻤다.

“가방 안 무거워? 아줌마 힘 센데 아줌마가 들어 줄까? 아줌마 체대 나와서 힘 엄청 세.”

“싫어요.”

집에 들어오는 순간까지 이설래는 김하선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우리 딸 왔어?”

“설래야? 아빠가 치킨 사 오셨는데 같이 먹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아빠와 오빠가 식탁에 앉아 치킨을 먹다 말고 두 사람을 반겼다.

“당신도 얼른 와.”

“손부터 씻고요.”

“우리 딸 치킨 안 먹어?”

“안 먹어.”

“아줌마가 과일 깎아 줄게.”

“…….”

“싫어? 그럼 다른 거라고 갖다 줄…….”

쾅-

김하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속절없이 닫힌 방문이 대답을 대신했다.

“설래, 너! 아빠가 방문 그렇게 닫지 말라고 했지? 자꾸 그러면 아빠도 화나. 어!”

“당신도 참! 그만해요. 방문 하나 닫은 거 갖고 무슨 화를 내.”

남편 이재천이 굳게 닫힌 딸 방을 향해 소리를 높이자 김하선이 손을 흔들면서 진정시켰다.

“저 녀석이 방문을 일부러 닫으니까 그렇지.”

“무슨 일부러야. 그리고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이제 들어와서 가뜩이나 힘들 텐데 당신까지 그래야겠어. 나도 장사 늦게까지 하면 힘들고 당신도 야근하고 오면 힘들잖아. 안 그래?”

“참나! 당신 때문에 딸한테 뭐라고 말도 못 하겠다.”

적극적으로 딸을 옹호하는 김하선을 보며 이재천은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며 민망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거실에서 가족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오던 그때, 방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온 이설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하! 싫다!”

뭐가 그렇게 싫은지 이설래는 침대 매트리스가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대충 옷을 벗고 가방을 정리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가방에서 하나둘씩 교과서와 문제집이 나왔는데 겉표지에 아무렇게나 그어진 낙서들이 보였다.

“유치해!”

개중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민망하고 자극적인 낙서도 있었지만, 이설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두꺼운 매직으로 지워 버렸다.

탁-

그리고 빈 가방을 들고 창문으로 가져가 가방을 털자 그 안에서 흙이 쏟아졌다.

“도대체 이런 짓은 왜 하는 거야? 짜증 나.”

가방 안에 있던 흙을 전부 털어 버린 이설래는 지금 상황이 짜증 난 듯 가방을 바닥에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그리고 선반 위에 있는 작은 액자로 시선을 옮겼다.

사진 속에는 어린 이설래가 예쁜 피겨 유니폼을 입고 엄마와 함께 꽃을 들고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우두커니 서서 계속 사진을 보고 있던, 이설래는 핸드폰을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고객님의 사정으로 통화를 할 수 없으니 다시 걸어 주시길 바랍니다.

듣고 싶은 엄마 목소리를 기대했지만, 들려오는 건 녹음 된 기계 소리였다.

결국 이설래는 엄마에게 문자를 남겼다.

-엄마, 나야 설래. 잘 지내지? 바빠? 통화가 안 되네. 문자 보면 연락 줘.

‘늦었으니까 안 받을 거야. 낮에 다시 하지 뭐.’

문자를 보낸 이설래는 늦은 시간이라 엄마가 연락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며 책상에 앉았다.

그렇게 공부하려고 책을 펴는데 문 너머로 아빠와 새엄마의 다정한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우리 맥주 한잔할까?”

“내일 출근하는 사람이 무슨 맥주야.”

“딱 한 잔만 할게.”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웃음이 끊이지 않은 대화가 오늘따라 듣기 거북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와 새엄마와 다정한 아빠의 모습.

순간 짜증이 솟구친 이설래가 의자에서 일어나 나가려는데 방문이 먼저 열렸다.

철컥-

“설래야, 너 딸기 좋아하지? 이것 좀 먹어.”

김하선이 잘 익은 딸기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탁-

“누가 딸기 먹고 싶댔어요?”

앙칼진 소리와 함께 가지런히 담겨 있던 딸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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