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흉터
자리에서 일어난 설래는 일진 무리가 상처 낸 곳을 사진 찍었다.
“미치겠다. 진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짜증스럽고 기가 막혔다. 이 커다란 세상에 홀로 있는 기분이었다.
답답한 설래는 가방에서 아크릴 상자를 꺼내 작은 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손안에 든 조각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야! 이설래?”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구희영이 헐레벌떡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구희영은 설래 이전에 이라미 무리가 괴롭히던 같은 반 아이였다.
설래 때문에 괴롭힘에서 벗어난 구희영은 고마운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자신 때문에 설래가 괴롭힘 대상이 된 것만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설래는 자신과 달랐다.
무서움에 몸부림치며 죽고 싶어 하던 자신과 달리 이라미 무리에게 쫄지 않는 모습이 대단하고 멋있었다.
구희영은 학교에서 이라미 무리가 설래를 괴롭히고자 하는 계획을 우연히 듣고 걱정돼서 몰래 따라와서 현장을 보게 됐다.
지금까지 설래에게 어떤 짓거리를 했는지 전부 보고 있었지만, 보복이 두려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설래의 몸을 살피며 구희영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너 괜찮아? 이거 그냥 두면 안 될 거 같은데. 많이 아프지? 이라미, 김찬솔, 최수리, 김하영 얘네 진짜 다 사이코 같지 않아? 정말 나쁜 것들이야. 어떻게 사람한테 이런 짓…….”
“야!”
교복 뒤쪽에 묻은 흙을 털고 있는 구희영의 손길을 뿌리치며 설래가 소리쳤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
“나 지켜보고 있었니?”
“아니, 난 그냥 네가 걱정돼서. 설래야 그보다 우선 병원부터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구희영? 네가 날 왜 걱정해?”
“그게 그러니까……. 네가 나 편들어 줘서 괴롭히지 않게 됐잖아. 그리고 괜히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된 거 같아서. 미안해.”
“됐고. 너 편들어 준 게 아니라 내 책 꺼내려고 한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갈 길이나 가.”
“아, 알았어. 근데 설래야 너 이거 이대로 두면 흉터 남을 거 같은데 병원 가자.”
“병원은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네 갈 길이나 가라고.”
설래는 구희영의 이런 오지랖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저 성가시고 귀찮았다.
“갈게! 갈 건데 병원까지만 같이 가고 그다음에…….”
“야!”
구희영이 답답한 설래는 소리를 높였다.
“네가 뭔데? 너, 내 친구야? 아니지? 눈치가 좀 있어. 내일 내가 알아서 해. 부탁인데 가.”
“그래. 내가 미안해…….”
구희영은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공터를 벗어났다.
* * *
우리병원-
하나둘, 퇴근할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을 시간이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병원은 때가 되면 퇴근하는 회사나 마지막 손님이 나가면 문을 닫는 식당이 아니다.
늘 대중없이 환자가 온다.
어느 날은 낮부터 정신없이 바쁘고 어느 날은 저녁, 또 어느 날은 새벽까지 바쁘다.
특히 우리병원처럼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바쁘고 덜 바쁨에 차이일 뿐 환자는 언제나 있다.
오늘은 초저녁부터 정신없이 환자가 쏟아지더니, 한 무더기의 환자들이 나간 지금에야 여유가 생겼다.
잠깐 찾아온 여유에 의료진은 화장실을 갔다 오고, 못 먹은 저녁을 먹기도 하고 커피 한 잔으로 카페인을 충전하기도 했다.
“이 쌤. 20번 베드 번(burn, 화상)이에요.”
임정숙 간호사가 환자 진료를 마치고 다른 베드에서 나오는 이찬희에게 전했다.
“네.”
“이 선생?”
이찬희가 스테이션에서 PC로 진료 본 환자 정보를 입력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응급실로 막 들어온 태경이 후배의 어깨를 틀었다.
“내가 볼 테니까, 가서 저녁 먹어.”
“정말요? 안 그래도 배가 등에 붙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감사합니다. 선생님 혹시 오늘 메인이 뭔가요?”
“네가 좋아하는 소고기 나왔더라. 많이 먹고 와.”
“네, 선생님. 밥 많이 먹고 오겠습니다.”
오늘은 환자가 많아서 다들 저녁이 늦었다.
밥 먹을 생각에 기분 좋게 응급실을 나가는 이찬희를 보며 태경이 20번 베드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커튼을 열고 인사하자 베드 위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인사에 화답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젊은 여자였다.
“화상 입으셨다고요.”
“네, 여기요.”
여자는 냉장 식품을 택배로 시킬 때 딸려 오는 네모난 얼음팩을 팔에 대고 있었다.
“제가 좀 볼게요.”
태경이 얼음팩을 내려놓고 화상 부위를 살폈다. 상처는 팔목과 팔꿈치 사이 하완 부위에 생겼다.
“아이고!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어요? 보니까 물에 덴 것 같은데.”
“맞아요. 뜨거운 물 끓이고 있는데 잠깐 다른 일 하는 사이에 아이가 장난하다 냄비가 넘어졌어요.”
응급실에 있다 보면 자주 보이는 환자 유형이 있다.
자살 환자, 자해 환자, 사고 환자 그리고 아이나 그 부모 환자들이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잠깐 눈을 떼는 그 순간에도 아찔한 사고가 생긴다.
특히 오늘 이 환자처럼 주방에서 물을 끓이다 화상 입어 병원에 오는 경우는 제법 흔한 케이스였다.
“보시면 겉으로 화상 부위가 벌겋게 일어났죠?”
“네, 선생님.”
“눈으로 보이는 피부 바로 아래층을 표피라고 하고 그 아래를 진피라고 해요. 그런데 다행히 진피까지는 화상을 입지 않은 것 같아요. 2도 화상인데 심한 경우는 아니에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따로 화상 전문 병원을 갈 필요는 없고, 입원도 안 하셔도 됩니다. 다만 염증이 악화되지 않도록 소독 잘 받으시고 관리 신경 써 주셔야 해요.”
“네, 그럴게요.”
“잠시 기다리세요.”
잠시 베드에서 벗어난 태경은 간호사가 준비해 둔 의료용품을 갖고 다시 돌아왔다.
“소독 후 약 발라 드릴게요. 이건 화상 입은 사람에게 바르는 약이고 안에 항생제 성분이 있어요. 바를 때 따가울 수 있는데 참기 힘드시면 말씀하세요.”
“네.”
태경은 얇은 나무 막대기인 설압자로 생크림 같은 약을 화상 부위에 도포했다.
“괜찮으세요?”
“선생님께서 살살 발라 주셔서 그런지 참을 만하네요.”
“뜨거운 물 쏟아졌을 때 많이 놀라셨겠어요. 아이는 괜찮은 거죠?”
“네, 아이는 괜찮아요. 혹시나 아이에게 뜨거운 물이 쏟아지면 어떡하나 마음을 졸여서인지 당시에는 아픈지도 몰랐어요.”
“부모님 마음이 다 그렇죠. 아이를 키우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하잖아요.”
“하!”
태경의 말을 듣고 있던 여자는 짧게 탄식했다.
“선생님 말씀이 너무 공감되네요. 제 아들이 중증 발달장애가 있거든요. 초등학생인데, 아직 소통이 좀 힘들어요. 오늘도 장난하는 아들을 말리다가 냄비가 쏟아져서 이런 일이 생겼네요.”
아들이 중증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말에 태경은 그녀의 얼굴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환자를 응대하든 늘 막힘이 없었는데 남들보다 좀 더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환자에게 어떤 말을 꺼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환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제 친구 딸이 우리 아들이랑 동갑인데 조잘조잘 참 예쁘게 말도 잘하더라고요. 저는 우리 아들이랑 끊어지지 않고 대화해 보는 게 소원이에요.”
중증 발달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많이 힘든 일이었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하나씩 익혀 가고 알아가는 당연한 것들을 내 아이가 습득하려면 반복적인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외출할 때 따라오는 사람들의 시선은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 않기도 했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이지만, 그 마음과 별개로 하루하루 지치는 마음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환자분?”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약을 도포하던 태경이 환자를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많이 힘드시죠?”
“……!”
지쳐 보이는 환자를 위로하고자 던진 말에 잠시 말이 없던 환자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제가 지금까지 의사 생활을 하면서 여러 환자를 만났는데, 예전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70대 초반의 정정한 할머니 환자분이 있었어요.”
아파트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팔에 깁스하게 된 환자였다.
그 환자의 사고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하나둘 병원에 도착했는데 유난히 씩씩한 목소리의 한 남자가 들어와 그 환자의 곁을 지켰다.
‘선생님 우리 엄마 괜찮아요?’
‘선생님 우리 엄마 많이 아플까요?’
‘선생님, 우리 엄마 약 언제 먹어요? 이건 무슨 약이에요?’
남들보다 큰 목소리, 남들보다 과장된 행동을 보이던 남자는 환자의 아들이었다.
태경은 한눈에 그가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함께 온 남편의 손을 잡고 보호자 대기실로 간 아들을 보며 환자는 태경에게 멋쩍은 미소로 말했다.
‘우리 아들이 좀 소란스럽죠? 남들보다 좀 특별한 아들이라서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
‘전혀요. 씩씩하고 보기 좋은데요.’
태경의 말에 환자는 미소를 보였다.
“제가 참 대단하세요. 라고 하니까 그 환자분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왜 내 아들이 저런 상태로 태어났을까? 원망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대요. 하나를 가르치며 둘을 잊어버리는 아들을 보면서 같이 죽을까도 생각하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면서 그냥 버티면서 사셨다고.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고 아들이 청년이 됐을 때 어느 날 청소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환자는 자기 아들은 사람들과 다른데 나는 그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내가 노력하면 되겠지? 내가 가르치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나도 아이도 힘들게 했다고 전했다.
간단한 것조차 안 되는 아인데 자신이 그 간단한 것들을 하려고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때부터 환자는 그 마음을 내려놓고 내 아들이 그저 하루하루 밥 잘 먹고 나와 사는 동안 즐겁게 살아보자고 생각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삶은 고되고 다잡은 마음이 깨지는 날이 오겠지만, 그럴 때면 그 환자분은 아이를 낳고 품에 안았던 그 벅찬 순간을 기억했대요.”
“……!”
“그 순간들이 살면서 마주하는 절망스러운 순간을 이기는 힘을 준다고 하셨어요.”
“제가 그 상황에 있다 보니 그 할머니께서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알 거 같아요.”
“제가 감히 환자분의 마음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드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잘하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많이 힘들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힘들 때는 환자분도 조금 쉬어 가세요.”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팔에 입은 화상을 치료하러 온 환자는 태경에게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았다.
팔은 쓰리고 따가웠지만, 가슴은 따뜻하고 뭉클했다.
“자! 됐습니다.”
팔에 거즈를 덮고 EB(elastic band, 탄력 붕대)로 마무리한 뒤 처치가 끝났다.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하세요.”
챠륵-
인사를 하며 베드를 벗어나는 환자 뒤로 별안간 옆 베드에 커튼이 빠르게 열렸다.
“시상에, 어쩜 우리 원장님 말씀을 어찌나 잘하시는지…….”
옆 베드에서는 병원에 자주 오는 동네 할머니가 링거를 맞고 있었다.
“나 옆에서 듣다가 눈물 나서 혼났잖아. 다 늙은이 울리고 그러셔요. 말을 너무 잘해.”
“제가 말을 잘해요?”
“잘하다마다. 저 아이 엄마가 많이 위로받았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주사 맞은 팔 불편하지 않으시죠?”
“몸에 좋은 거 집어넣는데 불편할 게 뭐 있어요. 나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일 봐요.”
“네, 약 다 들어가면 알려 주세요.”
대화를 마친 태경이 몇몇 베드를 돌며 환자를 살피고 스테이션으로 향하자 최모나가 다가왔다.
“선생님?”
“어. 왜?”
“병동에 올라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가는 김에 204호 김운 환자도 한 번 확인해 주고.”
“네, 알겠습니다.”
응급실에서 나온 최모나는 잠시 의국실에 들러 개인 텀블러를 갖다 두고 이찬희가 준 젤리를 가운 주머니에 챙겼다.
밖으로 나와서 접수처를 지나 자연스럽게 중앙 계단을 오르던 최모나는 별안간 계단에 올려놨던 한쪽 다리를 다시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