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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바이탈-453화 (452/472)

453화. 상처가 좀 이상합니다

최모나의 답변에 설래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다른 환자들 있는 거랑 내가 너 진료 보는 거랑 무슨 상관이라도 있어?”

“그런 것보다 올 때마다 선생님께서 절 진료하는 것 같아서요. 다른 환자들은 진료 안 하시나 해서요.”

“난 또 뭐라고……. 다른 환자도 진료 봐. 그런데 내가 계속 진료 봤던 환자니까 진료 보는 거지. 혹시 다른 선생님께 진료 보고 싶은 거니?”

“아니요.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설래는 솔직히 다른 의사한테 진료를 볼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귀찮아서 그냥 진료 보기로 했다.

최모나는 설래를 데리고 응급실로 들어와 빈 베드에 자리 잡았다.

“팔은 좀 괜찮아? 밴드 준 거 잘 붙였니?”

“네.”

“팔 좀 보자. 오늘은 어디가 안 좋아서 왔어?”

최모나의 질문에 설래는 손에 쥐고 있던 투명 상자를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 교복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치료받았던 상처를 보여 주기 위해 반팔 티셔츠 소매를 조금 걷어 올렸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설래의 행동을 보고 있던 최모나의 미간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

앞전에 치료했던 상처 밑으로 생긴 새로운 상처가 보였는데 그 상처들이 뭔가 이상했다.

한쪽 팔에는 뭔가에 베이고 찔린 듯한 자상이 두 군데 보였고, 반대쪽 팔에는 불에 지진 듯한 상처가 보였다.

‘상처가 왜 이래?’

아이의 난 상처들은 최모나의 신경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러 상처를 보고 치료하는 입장에서 교복 입은 학생의 몸에 이런 상처가 있다면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거예요.”

“어! 방금 뭐라고 했어?”

상처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최모나는 설래가 하는 말도 잘 듣지 못했다.

“여기, 이쪽 팔이랑 이쪽 팔에 난 상처 치료하려고요.”

“어. 그래.”

최모나는 복잡한 표정을 최대한 감추며 아무렇지 않게 평소 하던 대로 진료했다.

“그리고 배가 좀 이상해요.”

“뭐? 배? 배 어디가? 아픈 거야?”

말을 하면서도 상처를 보고 있던 최모나는 배가 아프다는 말에 고개를 들고 설래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픈 건 아니고 뭐랄까……. 좀 빵빵한 느낌이고 답답하고 그래요.”

“일단 한번 바르게 누워 볼래?”

설래가 베드 위에 바로 눕자 최모나는 복부 왼쪽과 오른쪽 윗배와 아랫배를 나눠 가며 꼼꼼하게 진료했다.

“이쪽 눌렀을 때 아프니?”

“아니요.”

“이쪽은?”

“괜찮아요.”

비슷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대답은 많이 다르지 않았다. 무릎을 굽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걱정할 정도로 복부 어느 곳이 아픈 건 아니었다.

“맹장염이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 너, 혹시 요즘 변 잘 보니?”

“사실 며칠째 변을 못 보긴 했어요.”

아까부터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설래는 결국 배변 활동이 원활하지 않다는 걸 말했다.

원래 이런 적이 없었는데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배변 활동이 매끄럽지 않았다.

“오늘 검사를 좀 할 거야. 기본적인 엑스레이랑 피검사 할 건데 괜찮지?”

“네. 괜찮아요.”

“설래야, 너 팔에 상처들 이거 왜 이렇게 된 거야?”

“찔렸어요.”

“어디에?”

“버스에서 내리다가요.”

버스가 아닌 이라미 무리가 만든 상처였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굳이 현재 본인이 처한 상황들을 병원 의사에게 자세히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냥 만사가 다 짜증 나고 귀찮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설래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병원을 꼬박꼬박 들르는 건, 상처가 덧나는 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히 미련하게 치료받지 않고 있다가 더 큰 상처를 키울 수도 있기에 병원에 빨리 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버스?”

“네, 사람이 많았는데 내리면서 누가 밀어서 정류장 기둥에 쓸렸거든요. 그때 찔린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이건?”

최모나는 불에 덴 상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촛농 떨어져서 데였어요. 학교에서 실험할 때 초를 사용했거든요.”

정말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설래의 대답은 하나같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 많이 아팠겠다. 선생님이 치료할 것 좀 챙겨올 테니까 엑스레이랑 피검사 받고 와. 여기 있으면 간호사 선생님이 안내 도와주실 거야.”

“네.”

치료에 필요한 용품을 가지러 갈 필요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들이 알아서 필요한 용품을 챙겨다 주기 때문이다.

최모나는 용품을 가지러 간 게 아니었다.

간호사에게 13번 베드에 아직 용품을 갖다 두지 말라고 전한 뒤 검사를 부탁하고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급히 나온 이유는 태경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수 쌤, 선생님 어디 계세요? 혹시 OR(Operation room, 수술실) 들어가셨나요?”

“아니요. 원장님 ICU(Intensive care unit, 중환자실)에 계세요. 급하면 콜 해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가 볼게요.”

접수처를 지나 ICU로 가는 복도를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태경의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최모나는 서둘러 걸어갔다.

“어, 최 선생?”

“지금 바쁘십니까?”

“아니, 왜? 응급이야?”

“응급은 아닌데 뭔가 좀……. 선생님께서 봐 주셨으면 하는 환자가 있어서요.”

“어떤 환자인데?”

“고등학생인데 팔에 자상과 화상이 있고 변비로 내원한 환자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 상처가 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뭔가 이상한데?”

“그게 좀 의심되는 부분이 있는데…….”

응급실로 걸어가는 동안 최모나는 태경과 설래의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 생각을 전했다.

“자상이 좀 희한한 거 같기도 해서 선생님께서 좀 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같이 가서 보자.”

응급실에 도착한 태경은 최모나 함께 설래가 있는 베드로 향했다.

챠륵-

“안녕, 네가 설래니?”

“……!”

분명 치료용품을 가지러 간다고 했던 최모나가 태경과 함께 등장하자 설래는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우리 병원에 다니면서 태경을 보기는 했지만, 진료를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여기, 선생님은 우리 병원 원장님이셔.”

“아, 네. 안녕하세요.”

“그래. 반가워. 갑자기 내가 와서 당황했나 보네. 선생님이 상처를 좀 보려고 왔어. 좀 볼 수 있을까?”

“……네.”

“버스에서 내리다 찔렸다고?”

“네.”

“저런! 많이 아팠겠다. 이거 봉합을 좀 해야겠는데?”

팔에 대칭으로 난 두 개의 상처 중 하나는 봉합이 필요한 상태였다.

“봉합이요?”

“응. 상처 끝부분이 좀 깊어서 몇 바늘 봉합해야 해. 이대로 두면 자꾸 벌어져서 잘 안 붙거든.”

“마취는 하죠?”

“당연하지. 마취 안 하고 하면 안 되지.”

“알겠어요.”

봉합해야 한다는 소리에 살짝 놀랐던 설래는 이내 별수 없다는 듯이 봉합하기로 했다.

“잠깐 상처 사진 좀 찍을게.”

“사진은 왜요?”

“상처가 이렇게 깊은 경우에는 환자 기록용으로 사진을 찍어 두거든. 당연히 얼굴은 안 나오고 상처 부분만 찍을 거야.”

기록용 촬영이라는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최모나도 사진을 왜 찍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저 태경이 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다.

“괜찮니?”

“네, 뭐…….”

찰칵-

“그럼. 잠시 기다려. 준비해서 봉합해 줄게. 혹시 궁금한 거 있어?”

“봉합은 원장님이 해 주시나요?”

“내가 해 줬으면 좋겠어?”

“저기…….”

지금까지 최모나의 이름조차 몰랐던 설래는 급히 가운에 있는 명찰을 보며 이름을 확인했다.

“최모나 선생님이 해 주셨으면 해서요.”

“원래 최 선생님이 하려고 했어. 그렇지 최 선생?”

“네, 원장님.”

챠륵-

태경은 설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최모나와 함께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선생님?”

스테이션 의자에 앉자마자 최모나는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태경을 불렀다.

“최 선생 말대로 이거 담뱃불로 생긴 거 맞아.”

태경은 아까 핸드폰으로 찍은 설래의 상처를 화면에 띄우며 보여 줬다.

“그럼, 이게 담배빵이라는 겁니까?”

“어. 보통 담배빵이라고 많이 부르지.”

설래가 촛농에 덴 거라고 했던 상처는 두 사람의 예상대로 담배빵이 맞았다.

“그리고 자상이 이상하다고 했지?”

“네.”

담배로 인한 상처보다 최모나의 신경을 자극하는 건 바로 자상이었다.

한쪽 팔에 3, 4cm 정도 간격을 두고 나란히 대칭적으로 난 상처가 더 수상했다.

“정확하다는 건 아니고 제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두 상처가 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 거 같은데?”

“그게 느낌이 아니, 방향…….”

솔직히 최모나도 잘 몰랐다.

뭐랄까, 이게 상처를 봤을 때 느낌이 다른데 그걸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잘 설명을 못 하겠습니다.”

“최 선생 말이 맞는데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네!?”

“네가 말한 게 맞는다고. 방향이 다른 게 맞아.”

태경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최모나는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모르겠어?”

“네.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게 맞아. 이거 알아보기 쉽지 않아. 여기 봐 봐. 내가 말한 방향은 힘이 들어간 방향을 말한 거야.”

이설래의 한쪽 팔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상처.

이 상처는 얼핏 보기에는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점이 있었다.

봉합해야 하는 상처는 상처의 머리 부분 그러니까 위쪽의 상처 부분이 더 컸고, 봉합이 필요하지 않은 상처는 반대로 아래쪽이 더 컸다.

두 상처 모두, 마치 상처가 커졌다가 내려가면서 작아지는 모양이었다.

“봐! 상처를 보면 서로 반대쪽이 더 상처가 크지.”

“네, 맞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 거 같아?”

“…….”

“이 선생?”

태경은 별안간 지나가던 이찬희를 불러 세웠다.

“바빠?”

“아니요. 지금 괜찮아요.”

“손 내밀어봐.”

“손이요?”

엉거주춤 내미는 이찬희의 손을 태경이 잡으며 앞으로 쭉 내밀게 했다.

“자! 여기 잘 봐.”

태경은 가운에 있던 볼펜을 꺼냈다. 그러더니 볼펜을 쥔 손을 허공으로 올리고 순간적으로 이찬희 팔 부분. 정확히는 팔목과 팔꿈치 부분 안쪽으로 확 내리꽂으며 아래로 긁는 동작을 취했다.

“선생님, 진짜 찌르시는 줄 알아 깜짝 놀랐잖아요.”

깜짝 놀란 이찬희가 움찔하며 반응했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선생 수고했어. 가서 일 봐.”

“네? 아. 네.”

두 사람의 대화가 궁금하긴 했지만,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이찬희는 눈치껏 자리를 피해줬다.

“방금처럼 날카로운 걸로 팔에 상처를 냈을 때 어디에 힘이 더 실릴 거 같아?”

“처음 볼펜 심이 내려왔던 곳이요.”

“그래. 맞아. 그럼 답은 다 나왔네.”

태경은 고갯짓으로 핸드폰 사진 속 이설래의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알겠어?”

“상처를 낸 사람이 서로 다른 거 아닙니까?”

“맞아.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낸 거고, 전체적으로 봉합이 필요 없고 약한 상처는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설래 본인이 스스로 낸 걸 거야.”

“본인?”

요즘 들어 자주 병원을 오는 여고생을 보며 최모나가 처음 의심했던 건 학교폭력이었다.

오늘로서 그 의심은 확신이 섰지만, 본인 몸에 스스로 상처를 냈을 거라는 생각은 예상 밖이었다.

“자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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