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54화 (453/472)

454화. 단추

“자해군요.”

“맞아. 자해야.”

지금까지 태경이 봤던 환자 중 가장 많이 본 환자는 암 환자도 교통사고 환자도 아닌, 자해 환자였다.

지금 병원이 아닌, 예전 근무지에서 한창 응급실 근무를 봤던 시절 자해 환자를 정말 많이 봤다.

병원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에 그만큼 자해 환자도 많았다.

이런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원래 응급실 단골 환자 중 큰 퍼센트를 차지하는 환자는 단연 자해 환자가 일등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셀 수조차 없는 자해 환자를 보며 그들이 스스로 본인 몸에 낸 상처도 숱하게 봐왔다.

일반 자해 환자부터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자해 환자까지 다양한 케이스를 접했다.

그렇기 때문에 태경은 자해 관련 외상을 잘 알고 있었다.

자해 환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본인 스스로 자해했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인정하지 않은 환자를 마주할 때면 소통이 쉽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자해한 경우 일반 자해 환자보다 어려울 때도 있다.

태경은 한때 이런 자해 환자의 상처를 좀 더 쉽게 파악하기 위해 환자의 상처를 기록하며 관찰하며 나름대로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수술받은 환자의 보호자로 온 아들이 법의학자였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수술받고 꽤 오랫동안 입원했는데, 효심 깊은 아들은 일이 바쁜 와중에도 병원을 자주 찾았다.

그 보호자는 자주 본 태경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친절하게 잘 알려 줬다. 그 뒤로 추천받은 서적을 구입해서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의 외상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때 알게 된 지식이 지금까지 환자를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태경은 설래 팔에 있는 자상이 힘의 방향이 다른 것과 하나는 자해 상처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나?”

“…….”

“최모나?”

태경은 벙찐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 속 상처를 주시하는 최모나를 연신 불렀다.

“네, 선생님.”

“괜찮아? 표정 보니까 많이 놀랐나 보네.”

태경의 말대로 최모나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왜 스스로 자해를 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요?”

“뭐가? 자해?”

“네.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힘들었을 텐데, 왜 또 스스로를 괴롭힌 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거야, 우리가 섣부르게 이렇다 저렇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을까? 왜 자해를 했는지는 본인이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르는 거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게 있지.”

“그게 뭔데요?”

“저 학생은 지금 상처 난 곳 못지않게 마음이 아프다는 거. 그거 하나는 확실할 거야.”

“아!”

“맞다! 중요한 걸 하나 깜빡할 뻔했다.”

“……?”

“저 아이의 자해는 NSSI(Non suicidal Self-Injury)라는 거야.”

“그 말씀은 자살하려고 한 자해가 아니라는 뜻이네요.”

“맞아.”

NSSI(Non suicidal Self-Injury)는 비자살적 자해의 줄임말로 죽으려고 하는 자해가 아닌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자해를 뜻한다.

“최 선생, 자살하려고 자해한 환자 봤지?”

“네. 많이 봤습니다.”

“적어도 저 학생은 손목에 주저흔(hesitation mark)은 없잖아.”

주저흔은 자해로 인한 상처를 뜻하는 말이다.

주로 손목이나, 배, 가슴, 목에서 발견되며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 손목이었다.

“지금 딱 생각해 봐도 자해 환자들과 상처가 다르다는 거 알 수 있을 거야.”

태경의 말이 맞았다.

자해 환자들의 특징은 주로 손목에 상처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래의 양쪽 손목은 깨끗했고, 목도 깨끗했다. 그리고 아까 복부도 봤지만, 깨끗했다.

병원에서 저 아이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손목 쪽에 상처가 난 걸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가슴까지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치료받은 설래의 패턴을 봤을 때 다른 곳에 상처가 있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최 쌤?”

두 사람의 심각한 대화가 이어지던 그때, 임정숙 간호사가 최모나를 불렀다.

“이설래 환자 검사 결과 나왔어요.”

“네, 감사합니다.”

임정숙 간호사의 말을 들은 태경은 바로 앞에 있는 모니터로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피검사 결과는 특이점 없이 정상이었다.

“며칠째 변을 못 봤다고 했지?”

“맞습니다.”

“보니까 배 안에 변이 가득하네. 이 정도면 일단 대변 잘 나올 수 있게 약을, 잠깐만……!”

모니터로 설래의 엑스레이 화면을 보던 태경은 순간 미간을 좁히며 모니터 가까이 고개를 들이댔다.

그리고 옆에 있던 최모나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주시했다.

엑스레이 화면 안에 동그랗고 그 안에 네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뭔가가 대변 주변에 있었다.

태경은 여태까지 저런 걸 사람 대장 안에서 본 적이 없었다.

“이게 뭐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두 사람 궁금증을 격하게 일으켰다.

“최 선생, 이런 거 본 적 있어?”

“아니요. 처음 봅니다. 이게 뭘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먹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이거 먹는 것도 아닌데 모르고 삼킨 건가……. 최 선생?”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을 있는 대로 확대하며 뚫어져라 보던 태경이 고개를 들었다.

“이거 말이야. 꼭 그거 같지 않아?”

“어떤 거요?”

“단추 같지 않아? 이거 단추 같은데.”

“단……추요?”

태경의 말을 듣고 단추를 떠올리며 화면을 보던 최모나의 머릿속에 순간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

“……!”

대기실 의자에서 앉아 있을 때도, 베드 위에서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도 몇 번이나 설래의 손에 들려있던 작고 투명한 아크릴 상자.

분명 그 상자 안에서 단추랑 여러 조각이 들어 있던 걸 확실히 봤다.

머릿속 기억들이 떠오르자 엑스레이 속 정체 모를 물건이 단추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최모나는 설래가 저걸 일부러 삼켰다는 걸 직감했다.

왜 그렇게 투명한 상자를 들고 다니나 했는데 이제야 그 궁금증이 풀려 버렸다.

“선생님, 저거 단추 맞습니다. 제가 봤어요.”

“단추를 먹는 걸 봤다고?”

“아니요. 단추가 든 작은 상자를 자주 들고 다녔어요. 선생님 설래 이식증 같아요.”

이식증은 음식이 아닌 것을 먹는 것으로 섭식장애의 일종이며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나타나기도 한다.

자해에 이어 이식증까지 정말이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자해와 이식증이라……. 확실히 이 친구는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태네. 그렇지?”

“네, 그런데 아까 사진 촬영은 왜 하신 거예요?”

“치료하기 전에 상처를 남겨야 저 학생에게 나중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진단서 끊을 때 사진도 같이 첨부해서 끊어 주면 더 좋잖아.”

“경찰에 알릴까요? 아니면 치료 핑계로 보호자 불러야 한다고 해서 보호자에게 알리는 게 나을까요?”

최모나의 말이 빨라지고 약간 흥분된 것처럼 보였다.

“아니, 둘 다 하지 마.”

“네!?”

둘 다 하지 말라니. 전혀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태경이 저런 말을 했다는 게 최모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쟤, 지금 학교폭력이 의심되는 상황이고, 아니 거의 확실한데 둘 다 하지 말라고 하신 겁니까?”

“그래. 둘 다. 하지 마.”

“지금 선생님 말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장 도와줘도 시원찮을 판에 하지 말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지시였다.

“최모나? 너, 이설래 도와주고 싶지?”

“당연하죠.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도와주는 건 좋아. 좋은데 방향이 잘못됐잖아.”

“방……향이요?”

“그래. 경찰 부르는 것도 좋고 보호자에게 알리는 것도 좋은데 그 전에 먼저 할 게 있어.”

“……?”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를 설득하는 게 먼저야. 당사자는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일을 벌이면 그게 과연 도움이 될까? 주변에서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괴롭힘을 벗어나려면 본인이 의지가 바뀌어야 해.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해 학생들과 계속 마주하고 잘잘못을 따지게 될 텐데 아무 준비 없이 그들과 마주하면 피해자는 가해자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거 같아?”

“…….”

“괴롭히는 애들이 쟤는 아직도 우리를 무서워하고 있으니까 잘못했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뉴스 못 봤어? 요즘 애들 생각보다 영악하고 똑똑해.”

설래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와준답시고 일을 벌였다간 상황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었다.

“이설래가 어떤 상황인지 최 선생이 아는 게 없잖아. 저 친구를 도와주고 싶으면 최소한 대화라도 해 보고 도와주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

최모나는 태경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거 같았다.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 아이를 도와주고자 마음이 너무 앞서나갔던 거 같았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설래는 일반적인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과 좀 다른 거 같아.”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 학생들은 괴롭힘을 받으며 저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고 주눅 든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이설래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태경의 이야기를 듣던 최모나는 누구보다 저 이야기에 동의했다.

처음부터 상처에 꽂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설래는 오히려 조금 당돌한 느낌마저 드는 아이였다.

“선생님?”

“왜?”

“선생님께서 치료하시면서 설득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왜?”

“그거야 환자 설득하고 환자 마음 헤아려 주는 거 선생님께서 잘하시니까요.”

최모나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런데 막상 하려고 하니까 본인이 태경만큼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 선생님처럼 따뜻하게 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마음을 움직이는 재주도 없습니다. 괜히 아이가 오해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약한 소리 하고 있네. 최 모나?”

“네. 선생님.”

“대답해 봐. 이설래 내 환자야?”

“제 환자입니다.”

“그래. 이설래 내 환자 아니고 네 환자야. 네 환자면 끝까지 책임져. 뭐 해? 환자 기다려. 얼른 일어나. 얼른!”

단호한 태경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최모나는 설래가 있던 베드로 돌아갔다.

맞다. 이설래는 내 환자였다.

챠륵-

“오래 기다렸지?”

“아니요.”

베드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던 설래는 최모나가 오자 고개를 들었다.

“아까 원장님 설명 들었지? 팔에 난 이쪽 상처는 봉합이 필요해서 마취하고 봉합할 거야.”

“마취 많이 아파요?”

“따끔한데, 아이들도 참고 맞을 정도는 돼. 편하게 누워.”

설래가 자리를 잡고 베드 위에 눕자 최모나는 먼저 봉합하기 전, 상처 부위를 소독했다.

“검사 결과 큰 이상은 없고, 배에 변이 좀 가득하더라. 그것 때문에 배가 불편했을 거야. 일단 원활하게 변이 나올 수 있도록 약 처방해 줄게.”

“그거 먹으면 변이 잘 나와요?”

“잘 나와. 대신 물을 좀 많이 마시면 더 도움이 될 거야.”

“그래도 변이 안 나오면 어떡해요?”

“그때는 항문에 약을 놓고 관장하고 그래도 안 나오면 직접 꺼내야지.”

“윽! 생각하기도 싫은데요.”

“그러니까 약 먹고 물 많이 마셔. 마취한다. 좀 따끔할 거야.”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긴 했지만, 설래는 예상대로 마취 주사를 잘 맞았다.

최모나는 갈고리처럼 생긴 작은 바늘에 녹는 실을 걸어 벌어진 상처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움직이면 안 돼.”

“네, 안 움직일게요.”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한 최모나는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봉합했다.

“아프지는 않지?”

“괜찮아요.”

최대한 흉터가 남지 않도록 봉합한 최모나는 깔끔하게 실을 매듭짓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타이밍을 생각하며 이설래의 이름을 불렀다.

“설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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