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55화 (454/472)

455화. 있을 수도 없는 일

“설래야? 다 됐다.”

“끝났어요?”

“응. 고생했다. 그리고 잠깐 나 좀 따라와 볼래?”

“어디 가는데요?”

“약 처방 때문에 자리를 옮겨야 해서.”

설래는 별 의심 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최모나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의국실로 향하고 있었다. 최모나는 설래와 조용히 대화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중이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설래가 순순히 따라올 것 같지 않아 약 처방 핑계를 댔다.

‘뭐라고 말을 하지?’

의국실로 걸어가면서도 최모나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 환자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태경의 말은 동의하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질 않았다.

몸에 있는 상처나 병을 고쳐 주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어루만져 주는 태경이 오늘따라 새삼 더 존경스럽게 느꼈다.

‘어떡하지?’

이럴 거면 이찬희에게 넘길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차올랐지만, 이미 의국실 문을 열고 있었다.

“이쪽에 앉아. 너 혹시 커피 마시니?”

“마시긴 하는데 디카페인만 마셔요.”

“아, 그래? 여기 선생님들은 카페인 힘으로 일해서 디카페인이 없네. 사과차랑 캐모마일 있는데 뭐 줄까?”

“그런데요. 지금 뭐 하시는 건지 물어봐도 돼요?”

처방전 때문에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해서 따라왔지만, 어쩐지 이곳에서 처방전이 나올 거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뜬금없이 차는 왜 권하는 건지 최모나의 언행을 보며 설래는 이상함을 느꼈다.

“처방전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려서 너한테 할 말도 있고 해서 의국실로 데려왔어. 여긴, 음……. 쉽게 말하면 의사들 사무실 같은 곳이야. 왜 드라마에서 많이 봤지?”

“저, 공부하느라 드라마 안 봐요.”

“그래? 대단하다. 차 안 마셔? 음료수라도 줄까?”

“그냥 사과차 마실게요.”

최모나는 너무 뜨겁지 않게 우려낸 사과차를 설래에게 건넸다.

“마셔. 거기 편하게 앉아.”

설래는 머그컵을 손에 쥐고 차 한 잔을 마신 뒤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먹을 만해?”

“네, 맛있는데요.”

“그래? 다행이네. 설래야, 이거 한번 볼래?”

최모나는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클릭한 뒤 최대한 확대해서 보여 줬다.

“여기 보이는 게 뭐로 보여? 뭔지 알겠어?”

“이거! 단추 같은데? 단추 아니에요?”

“단추 맞아. 이번에는 이걸 보여 줄게.”

노트북 가득 화면을 확대했던 최모나는 다시 정상 범위로 돌려놓았다.

“이것도 어떤 화면인지 알겠니?”

“엑스레이 사진?”

“맞아. 이거, 네 복부 엑스레이 사진이야. 네 배 속에 배출되지 않은 변과 단추가 들어 있는 모습이고.”

“……!”

설래는 아차 하며 변명을 대려고 했지만, 곧이어 들려온 최모나의 말에 그럴 수가 없었다.

“네가, 병원 올 때마다 손에 들고 있던 투명 상자 봤어. 거기에 단추랑 진주알 같은 게 있던데 설래야 이거, 잘못 삼킨 게 아니라 알고 삼킨 거지?”

“…….”

설래는 잠시 침묵했다.

“내 이름은 최모나고 직업은 의사야. 내가 갑자기 이 말을 왜 하냐면 너를 혼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의사로서 도와주고 싶고 도와야 해서 말을 꺼낸 거야. 응급실에서는 다른 환자들이 있으니까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려고 의국실로 온 거고.”

최모나는 최대한 자신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설명했다.

“보통 음식이 아닌 것들을 삼키는 걸 의학적으로 이식증이라고 하거든? 이게 관련 분야 선생님들은 불안함과 스트레스로 인해서 그런 증상이 온다고 하셔. 선생님은 네가 지금 그런 상황에 놓인 게 아닌가 싶어. 단추 잘못 삼킨 거 아니지?”

“……네.”

쉽게 말하지 않을 거 같았던 설래는 예상과 달리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일부러 삼킨 거 맞아요.”

“그리고 설래 네가 괴롭힘당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어. 오늘 네, 팔에 있는 봉합한 상처 말고 다른 상처는 자해 상처라는 것도 알고 있고.”

“그걸 어떻게……!”

전부 다 알고 있는 최모나 말에 설래는 꽤 놀란 얼굴을 보였다.

단추야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괴롭힘 상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해한 상처를 알아봤다는 게 놀라웠다.

“설래야, 나쁜 친구들이 너를 괴롭히고 있는데 왜 너 스스로 너를 괴롭혔는지 선생님은 그게 이해가 안 가.”

“…….”

“내 도움받기 싫으면 받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그래도 네가 나한테 이야기하면 답답한 속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고민은 혼자 끙끙 안고 있으면 해결할 수 없어.”

“처음에는…….”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자신의 엑스레이 속 단추 사진만 보고 있던 설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 상관도 없고, 아는 사이도 아닌 의사에게 왜 말을 하려고 하는지 본인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만, 방금 의사가 했던 말처럼 말을 하고 나면 답답한 마음이 좀 풀리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은 마음에 먼지가 꽉 들어차 숨 쉴 구멍조차 없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호기심이었어요. 그걸 삼키는 순간, 잘못됐구나? 라는 생각보다는 어떡하지? 단추를 삼켰는데 괜찮은 걸까? 하는 걱정이 밀려오더라고요.”

속상하고 답답하고 짜증 난 상황과 맞물린 기분에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과 달리 삼킨 단추는 이틀 뒤, 변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투명 상자에 단추랑 작은 조각들을 모았다.

그리고 속이 상할 때, 짜증 날 때마다 조각들을 삼켰다.

“그런 물건을 삼키다 보면 그쪽으로 신경이 쏠려서 불안하고 두려운 생각을 멈출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삼켰어요. 자해도 같은 이유였고요.”

설래는 몸에 상처를 내는 게 아팠지만, 그 고통으로 인해 다른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몸에 손을 댔다.

“어떤 부분이 네 마음을 복잡하고 힘들게 했는지 물어봐도 될까?”

비자살적 자해와 이식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연구한 결과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불안감과 스트레스였다.

최모나는 설래를 이렇게 만든 원인도 그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빠가 엄마랑 이혼하고 재혼해서 새엄마랑 살고 있어요.”

“혹시 새엄마가 널 힘들게 하니?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거나 아니면 눈치를 주거나 그래?”

“아니요. 전혀요. 그런 문제는 없어요. 전 엄마랑 다시 살고 싶었는데 아빠가 재혼해서 그런 것들이 좀 속상했어요. 거기에 이상한 애들까지 들러붙고 그러니까 뭔가 스트레스받고 짜증 나서 자해를 한 거 같아요.”

아직 학생 신분인 설래 입장에서는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을 당연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다 큰 어른들도 저런 상황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은데 하물며 아직 고등학생인 아이는 오죽할까 싶었다.

안타깝지만, 가정문제는 최모나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새엄마라는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었다면 설래는 아까 새엄마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아니라는 대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래야, 선생님은 네가 자해는 더 이상 안 했으면 좋겠어.”

잠시 주춤하던 최모나는 손을 뻗어 설래의 손을 잡으며 계속 말했다.

“아니, 안 하는 게 맞아. 네 몸은 소중하고 아주 귀하고 중요한 너의 일부이자 전부야.”

“…….”

“그리고 네가 단추를 삼키는 것도 몸에 상처를 내는 일도 전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처한 상황들을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널 힘들게 했던 불안감과 스트레스도 사라질 거야. 널 괴롭히는 그 나쁜 애들 그 문제도 가만있지 말고 해결하자. 너 혼자 힘들면 선생님이 도와줄게. 물론 쉽지 않다는 거 아는데 네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괴롭힘당하는 건 절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안 그래도 요즘 학교폭력 문제가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데 설래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딴 애를 괴롭히다가 제가 한 번 말린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제가 타깃이 됐어요. 근데 괴롭힘당하는 건 맞는데, 그거 크게 신경 안 써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괴롭히는 걔들이 한심하고 귀찮을 뿐이지 무섭지 않아요.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에요.”

“아니야. 너 그거 잘못 생각하는 거야.”

뭔가 안일하게 생각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설래에게 최모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 몸에 상처 입혀서 봉합까지 하고 담배로 몸을 지졌는데 이게 무시할 일이야? 네가 무시하면 그만둘 거 같지? 아니. 네가 틀렸어. 학교 폭력 하는 애들 심리가 어떤지 알아? 네가 이대로 가만있으면 걔들은 네가 굴복할 때까지 괴롭히는 걸 멈추지 않을 거고 더 심하게 널 괴롭힐지도 몰라. 이거 봐!”

최모나는 팔에 난 담배빵과 상처를 가리켰다.

“그런 이상한 애들이 네 몸에 상처 두게 하지 마. 그것들이 만든 상처 때문에 네가 스스로 네 몸에 상처를 만들었잖아. 게네들 때문에 너도 스트레스받고 힘들잖아. 너 스스로 학대하는 거 멈춰야 해.”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다는 말에 설래는 뭔가 마음이 뜨끔했다.

사실 저 표현이 맞는지도 몰랐다.

단추를 삼키는 것도 이라미 무리의 괴롭힘을 방치하는 것도 몸에 상처를 내는 것도 전부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든 적도 있었어요. 친엄마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래서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리였던 거 같아요.”

“엄마의 마음까지 선생님이 뭐라고 말해 줄 수는 없지만, 이런 네 모습을 본다면 엄마는 아마 엄청 속상하시고 마음 아프실 거야.”

Rrrrrrr

한참 설래를 설득하고 있던 사이 갑자기 최모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네. 아! 정말요? 네. 알았습니다. 지금 나갈게요.

전화를 끊은 최모나는 맞은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설래야, 지금 밖에 어머니가 오셨대.”

“엄마요? 우리 엄마가요?”

순간 친엄마가 온 건가 싶은 설래는 핸드폰으로 친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 하긴, 친엄마가 여길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밖에 온 사람 새엄마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친엄마일 수도 있잖아.”

“방금 전화했는데 안 받아요. 우리 엄마는 바빠서 연락도 잘 안 해요.”

“일단 선생님이 나가서 어머니랑 이야기 나눌게.”

“선생님. 잠시만요! 저, 이렇게 된 거 말씀하실 거예요?”

최모나에게 실컷 말을 해 놓고 막상 새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하자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새엄마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보호자로 오셨는데 말해야지.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최모나가 의국실을 나가고 혼자 남겨진 설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알았지?’

학교 담임 선생님도 모르고 따로 연락할 사람도 없었을 텐데, 아빠도 아닌 새엄마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왔나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엄마가 알 길이 없었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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