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화. 감히 내 딸을 건드려!
다음 날-
“야! 이설래?”
점심을 먹고 온 이라미 무리가 책을 꺼내러 사물함에 온 설래 앞을 가로막았다.
“네 덕분에 밖에서 맛있는 거 잘 먹고 왔다.”
“담x도 졸라 샀잖아.”
오늘 오전, 등교하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라미와 그 무리는 설래에게 돈을 뜯었다.
전날, 공터에서 물리적으로 괴롭히고 나쁜 짓을 했던 무리는 설래가 완전히 쫄았다고 생각하며 더 막 나가기 시작했다.
‘애들이 그러는데, 너희 아빠 좋은 직장 다닌다며? 너 용돈 많이 받지?’
‘우리 돈 좀 줄래?’
설래는 아무 소리 없이 지갑에 있던 5만 원 지폐를 한 장 줬다.
사실 주기 싫었다. 당연히 주고 싶지도 않았고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엄마가 오늘 이라미 무리가 요구하는 게 있으면 힘들게 상대하지 말고 주라고 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돈을 받은 무리는 밖에 나가서 맛있는 점심과 담x를 사서 학교로 돌아왔다.
“너, 팔은 괜찮니?”
“아니, 병원 가서 봉합했어.”
“어머! 정말? 아팠겠다.”
병원을 갔다 왔다는 말에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왜? 양심에 찔려서 치료비라도 주려고?”
설래의 말에 이라미 무리는 기가 막힌 듯 비웃었다.
“뭔 소리야. 치료비는 네가 우리한테 줘야지. 쓸데없이 우리한테 까불어서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잖아.”
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어쩜 이렇게 잘하는지 설래는 어이가 없었다.
“근데 이설래 너 그거 알아?”
“아니. 몰라.”
“너, 어제 그게 끝일 거 같지? 아니다. 우린 더한 것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내일부터 우리 간식값 좀 주라.”
“나보고 돈을 상납하라고?”
“어, 역시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 이해가 빨라.”
“내가? 왜?”
“왜라니. 안 그러면 너 또 몸에 상처 생긴다니까.”
“…….”
“입 꾹 닫고 있는 거 보니까 이설래 쫄았나 보네.”
“원래. 안 맞아 본 애들은 한 번 손봐주면 개 쫄잖아.”
“설래야, 쪼는 것도 하다 보면 습관 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설래를 보며 나쁜 아이들은 즐거운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 우쭐거리는 것 같았다.
“얘들아?”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설래가 입을 열었다.
“나 너희들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웬일이야? 이설래가 우리한테 질문이 다 있다네. 뭔데, 해 봐.”
“김하영, 넌 꿈이 뭐야?”
“나? 메이크업아티스트. 내가 화장을 좀 잘하거든.”
“최수리 넌?”
“난, 베이커리 전공할 거야.”
“김찬솔 너는?”
“난, 일단 서울 4년제 대학 간 다음에 생각해 볼 건데.”
“그래? 이라미 넌? 넌 꿈이 뭐야?”
“갑자기 뭔 꿈 타령이야.”
“왜? 재미있잖아. 말해 봐.”
이라미가 짜증 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대답해 보라며 부추겼다.
“나는 배우 할 건데?”
“배우? 너 배우가 꿈이야?”
“라미 얘 지금 유명한 소속사 연습생이야.”
제법 예쁘장한 얼굴인 이라미는 연예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연기 좀 하다가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거? 그게 내 꿈이야.”
“그렇구나. 생각보다 다들 되게 구체적이네.”
“근데 너 갑자기 이런 건 왜 물어본 거야?”
“그러게. 난 무슨 장래 희망 조사하는 줄.”
이라미 무리는 갑자기 설래가 왜 자신들의 꿈을 물어봤는지 궁금했다.
“김하영 너,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이라고 했지?”
“어. 맞아.”
“너, 절대 그거 못할걸. 왜인 줄 알아? 애들이나 괴롭히는 사람이 무슨 사람 얼굴에 메이크업을 해. 그렇게 악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한테 누가 메이크업을 받고 싶겠어. 안 그래? 그리고 너 화장 진짜 못 해.”
“뭐?!”
“그리고 최수리 너도 마찬가지야. 네가 무슨 베이커리야. 다른 사람 괴롭히는 사람이 만든 빵을 먹을 사람이 있을까?”
“야! 너 지금 뭐라는 거야?”
설래는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그들이 한 말에 전부 반박했다.
팩폭이 이어질수록 반 아이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너도 마찬가지야. 인서울 4년제 대학? 네가? 웃기지 마. 저기 보이지?”
설래는 고갯짓으로 다른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애들은 대학 가려고 열심히 공부해. 너 공부 머리 없잖아? 대학 아무나 가는 거 아니야. 공부하는 사람이 가는 곳이 대학이지, 너 같은 애들은 못 가. 인서울 쉬울 거 같아? 이렇게 놀면서 무슨 대학에 가겠다고? 웃기지 마.”
“…….”
“마지막으로 이라미? 네가 배우가 되겠다고? 학폭이나 하는 네가 배우? 그게 가능할까? 라미야. 네가 배우가 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뭔 개소리야?”
“한마디로 절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 내가 너 그렇게 못 하게 할 거거든.”
“뭐, 뭐야! 이게 미쳤나?”
설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라미는 죽일 듯한 눈빛을 하더니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씨x년이 너 진짜…….”
탁-
이라미가 손을 올린 그 순간,
“다들 자리에 앉지 않고 뭐 해. 뒤에 왜들 몰려 있니? 어서 앉아.”
다음 수업을 위해 담임이 들어왔다.
그 바람에 이라미는 올리던 손을 빠르게 내리고 설래를 협박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개 같은 게. 너 이따 두고 봐.”
설래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고 돌아오고 수업이 시작됐다. 그렇게 한참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교실 앞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네.”
당연히 다른 선생님이거나 행정 직원일 거라고 생각했던 담임 앞에 처음 보는 인물들이 서 있었다.
“2학년 3반 담임이신 이선자 선생님 되시죠?”
“아, 네. 맞습니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전, 설래 엄마고.”
“전 아빠입니다.”
교실을 찾아온 사람은 김하선과 이재천이었다.
설래를 위해 학교를 찾은 두 사람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미용실에 출근할 때 입는 복장이나 집에서 입던 복장과 달리 김하선은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상태였다.
큰 키와 늘씬한 체격의 투피스 정장을 입은 모습에 화장까지 한 모습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월차를 쓰고 함께 온 이재천도 정장을 입고 신경 쓴 모습이었다.
“설래 부모님 되시는군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쩐 일로…….”
“선생님, 저랑 남편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급하게 학교에 왔어요.”
두 사람은 일부러 교실로 한 발짝 들어와 반 아이들이 전부 들을 수 있게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 설래가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그 소리에 담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반 아이들도 똑같은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하지만 설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김하선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웬일이야? 저분들이 설래 부모님들인가 봐.”
“설래가 다 말했나 본데?”
“야, 부모님 포스 장난 아니다. 이거 난리 날 거 같아.”
웅성거리는 아이들 사이로 갑자기 김하선이 걸어오더니 정확히 이라미 앞에 걸음을 멈췄다.
“얘? 네가 이라미지?”
“네? 아, 네…….”
“이런 싸가지 없는 게. 네가 뭔데 감히 내 딸을 건드려!”
김하선은 버럭 소리를 높였고 불호령에 깜짝 놀란 이라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얼른 일어나!”
* * *
잠시 후, 이 사건과 연관된 모든 사람이 교장실에 모였다.
설래와 부모님과 이라미 무리와 담임, 교감과 학생부장 선생님은 물론이고 문제 아이들의 부모까지 중요한 사람들은 전부 있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 잘 간수하지 못했어요.”
“저도, 남편이랑 맞벌이라서 애들이 이런 일을 벌이는지 몰랐습니다.”
학교로 불려 온 이라미 무리의 부모들은 뻔뻔한 아이들과 달리 잘못했다며 사과했다. 그런데 그 사과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설래 부모님, 아이들이 아직 잘 몰라서 놀다가 실수한 거 같은데. 너그러이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요. 저희가 애들이 알아듣게 따끔하게 잘 말할게요.”
“맞아요. 아직 애들이잖아요. 설래야, 아줌마가 부탁할게. 네가 한 번만 좀 봐줘. 넌 공부도 잘한다며.”
“너희들 얼른 설래한테 사과하지 않고 뭐 하고 있어.”
“미, 미안해.”
“미안.”
“나도. 너랑 친하게 지내려고 장난한 건데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몰랐어. 미안하다.”
이라미와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까지 전혀 진정성 없는 사과를 하고 있었다.
눈빛에 잘못한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직 입으로만 표면적으로 사과했다.
“설래 부모님. 저도 더 이상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따끔하게 벌을 줄 테니 마음 푸세요.”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
“일단 반성문과 함께 교내 봉사를 시키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장조차 반응이 똑같았다. 혹시라도 이 문제가 외부로 알려져 학교 평판에 영향을 줄까 봐 빨리 해결하기 급급한 태도를 보였다.
“저, 교장 선생님,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선생님은 가만히 계세요.”
오롯이 담임만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교장은 듣지 않았다.
“누가 봐도 학교폭력을 저질러 놓고 아이들이랑 부모들은 장난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네. 그렇지 여보?”
“그러게. 아니 어떻게 가해자들이 이렇게 뻔뻔하지? 설래야. 얘들이 한 행동이 친구들끼리 장난치는 그런 정도였니?”
“아니요. 그랬다면 제 몸에 상처를 내지는 않았겠죠.”
“들었죠? 이 아이들이 우리 딸 몸에 상처를 냈는데, 이래도 아무 일도 아닌가요? 진짜 어이가 없네. 여보 그거 준비됐지?”
“그럼.”
김하선이 말하자 이재천이 선생님들과 가해 학생 부모들이 볼 수 있게 들고 온 노트북을 꺼냈다.
‘야! 이거 놔!’
영상을 틀자 아이들에게 붙잡혀 있는 설래의 모습이 정확히 보였다.
‘시x! 까불지 말고 입 다물어라.’
‘이 설래 너, 오늘 아주 제대로 혼 좀 나 봐.’
‘아악!’
영상은 김하선이 병원에서 구희영에게 받은 영상으로 아이들이 설래에게 담배x을 가하고 몸에 위협을 가해 상처를 내는 모습까지 전부 담겨 있었다.
이라미 무리는 담배를 피우는 건 물론이고 누가 봐도 불량하고 위험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화질은 선명했으며 얼굴도 또렷이 보였다.
괴롭히는 영상이 끝나고 이어진 녹음 파일도 가관이었다.
교실에서, 길거리에서 괴롭히는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담긴 녹음 파일로, 설래가 핸드폰으로 녹음했던 것들이었다.
설래는 그동안 이라미 무리가 다가올 때 몰래 핸드폰 녹음 버튼을 눌러 대화를 녹음했다.
혹시나 한 마음에 몇 번 녹음한 건데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영상을 본 부모들은 자식들인 벌인 짓거리에 아연실색했고, 아이들도 이 상황에 놀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래도! 친구끼리 장난 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네!”
“세상 어떤 고등학생이 친구 팔에 담배로 살을 지지고 병원에서 봉합할 정도로 팔에 상처를 냅니까?”
“…….”
“당신들 자식이 이런 일을 당하면 그때도 지금처럼 장난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쉽게 할 수 있어! 어!”
김하선과 이재천은 가해자 부모들과 교장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두 사람 다 전날, 영상을 다 봤지만 다시 봐도 적응이 안 될 만큼 화가 났다.
이재천은 설래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기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당신들! 이게 뭔 줄 알아? 어제 우리 설래 치료한 병원 선생님이 써 준 진단서야.”
김하선은 복사해 온 진단서를 보란 듯이 테이블 위에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