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62화 (461/472)

462화. 응급실

“저기, 8번 9번 베드 보이시죠?”

이찬희와 최모나가 물건이 날아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베드마다 쳐 놓은 커튼이 있는데 가운데 커튼을 젖혀 둔 채 각 베드마다 남녀 한 쌍이 자리했다.

“네, 딱 봐도 커플끼리 싸움 난 거 같은데요?”

“커플은 맞는데 반대예요.”

“네?!”

물음표를 가득 띄운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임정숙 간호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8번에 있는 여자랑 9번에 있는 남자가 커플이에요.”

“예? 그럼 8번에 있는 남자랑 9번에 있는 여자가 커플이고요?”

“네. 네 사람이 친구 사이고 그런데 서로 바람이 낮대요.”

“맞바람?”

이찬희 말에 임정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친구 사이이자 커플로 서로 친한 네 사람은 자기 연인의 눈을 속여 서로 바람을 피웠고 서로에게 걸렸다.

서로 속고 속였던 네 사람은 길바닥에서 개싸움이 났고 응급실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그 어디에 계십니까?”

두 커플의 사랑과 전쟁 브리핑이 끝나자 이번에는 유명한 노랫소리가 응급실에 울렸다.

아까부터 엄마를 외치며 통곡하던 남자가 부르는 노래였다.

“엄마아!!!!!”

노래를 한 소절 부르던 남자는 괴로운 표정으로 또다시 엄마를 외치더니 오른쪽 주먹으로 옷을 쥐어뜯다시피 하며 명치 쪽을 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겁니까?”

남자의 알 수 없는 언행을 보며 최모나가 물었다.

“혹시, 어머니께서 다치셨는데 보호자로 온 거 아닌가?”

가끔 연로한 어른들이 응급으로 병원에 와서 수술에 들어가는 경우 자식 중에 안타까운 마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찬희는 이번에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었다.

“스토막 크램프(Stomach cramp)래요.”

“위경련이요?”

“네, 같이 온 아내분이 증상 설명해 줬어요.”

“그래서 명치를 쥐어뜯고 있었구나.”

“그런데, 왜 저렇게 부모님을 부르는 거예요?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나?”

“아니요. 아내 말로는 시부모님은 멀쩡히 살아계신대요. 그것도 같은 건물 2층에요.”

“예?! 그러면 저건…….”

“주사요.”

“취객이에요?”

“네, 술 먹고 위경련 온 거고, 술에 취하면 레퍼토리로 부모님을 찾는 게 습관이라네요.”

“와! 오늘 응급실 빡세네요.”

임정숙 간호사가 가장 눈에 띄는 환자들만 설명했을 뿐 지금 응급실 상태는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오후까지 나름 무난하게 지나가더니 저녁 먹고 온 뒤로 응급실의 풍경이 눈 깜짝할 사이에 롤러코스터를 탑승한 기분이었다.

하긴! 여긴 응급실이다.

일반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한 사연과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 바로 응급실인 것이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환자 브리핑을 마친 이찬희와 최모나는 가장 급한 환자를 보고 차례대로 진료 보기 시작했다.

“자! 환자분 아까 기본 검사 하셨죠? 엑스레이, 피검사, 소변검사 결과 이상 없습니다.”

부모님을 외치며 주사가 심한 남자 환자는 이찬희가 담당했다.

“슨생님!!! 어머니, 우리 어머니 좀 불러 주세요. 제가 불효를 해서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슴다아!!!”

“나는 너 때문에 내 정신이 찢어질 거 같아.”

남편의 주사가 처음이 아닌 듯 아내가 화를 억누르며 추임새를 넣었다.

“의사 슨생님? 제가 어려서 우리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거든요.”

“어려서는 어머님 속 썩이고 늙어서는 마누라 속 썩이고……. 당신 참 대단한 사람이야.”

“순이야, 너 남편이 지금 의사 선생님과 대화 중이잖아. 지방방송 끄라고.”

“지방방송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나 조용하고 선생님 말씀 들어.”

“보호자분, 지금 환자분이 아직 숙취가 남아서 그런 거니까 조금만 진정해 주세요.”

탁구공처럼 멈출 줄 모르는 두 사람의 티키타카에 이찬희가 정신이 멀쩡한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우! 죄송해요. 저 인간이 술독에 빠져 살아서 제가 힘들어서 말이 곱게 안 나가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죄송함다. 선생님 제가 이렇게 가슴이 찢겨나갈 거 같은 건 이게 다, 제가 불효를 했기 때문이죠?”

“아니요. 그건 잦은 음주로 인해 위경련이 와서 그런 겁니다. 위와 장의 수축이 와서 통증이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환자분 술 끊으셔야 해요.”

“술 없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라고 이러십니까? 아악! 선생님 저 너무 아픕니다.”

넋두리하던 남자는 별안간 쥐어짜는 듯한 위통에 있는 대로 얼굴을 구기며 고통스러워했다.

“위경련이 좀 아파요. 진통제랑 제산제 맞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치던 환자는 심한 위통 때문에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히 베드 위에 누웠다.

“선생님, 이 양반 술 끊어야 하는 거 맞죠?”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아내가 속상한 표정으로 남편을 보며 물었다.

“그럼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당연히 금주하는 게 좋아요.”

“말도 마세요. 거의 알코올중독이라 끊지를 못해요.”

“이미 술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사실 혼자 술을 끊는 건 많이 어려울 거예요. 전문 치료 상담 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 보는 것도 많이 도움 되니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네, 그럴게요.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

환자가 취객일 경우 생각지 못한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때가 많았다.

채혈도 쉽지 않고 언어 폭행과 실제 손찌검을 서슴없이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한 주사에 비해 별 탈 없이 진료를 마친 이찬희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환자에게 향했다.

그사이 최모나는 사랑과 전쟁 커플을 진료할 차례가 다가왔다. 아직도 서로 육두문자를 주고받는 소리가 스테이션에서도 뚜렷하게 들렸다.

“죽어! 너희 둘 다 염치도 없고 인간도 아니야.”

“야! 나 잘 때 거실에서 주둥이 박치기하던 연놈들이 할 말은 아니지.”

“바람피우는 것도 폭행인 거 모르지? 그거 정신적인 폭행이야. 이 거지 같은 것들아!”

얼마나 대단들 한 지 두 커플은 피검사를 하는 동안도 소변을 받기 위해 화장실을 들어가서도 싸웠다.

“선생님, 그러지 말고 보안요원 부를까요? 여자분들 아까 화장실에서 머리채 잡고 있는 거 청소하시는 이모님이 보셨다는데 괜히 진료 보다 또 잡으면 어떡해요?”

최모나와 함께 베드로 향하던 간호사는 시한폭탄 같은 환자들을 보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걱정돼요?”

“그럼요. 느낌이 뭔가 쎄한 게 오늘 응급실에 일이 터질 것만 같다니까요.”

“전 생각보다 괜찮을 거 같은데요? 원래 남녀 문제 터진 사람들은 당사자들끼리 서로 화내느라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어요. 저번에, 병동에서 불륜 환자 왔을 때도 그랬잖아요.”

군인 집안 출신 최모나는 아버지와 오빠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이런 쪽으로는 멘탈이 강했다.

“닥쳐!”

“너나 닥쳐!”

“자! 자! 환자분들 자리에 앉으세요.”

최모나가 손뼉을 치며 8번과 9번 베드 사이에 자리 잡았다.

“목소리 낮추시고 결과 듣고 진료 봐야죠. 진료 안 보실 거예요?”

“선생님, 저 전치 3주는 나왔죠?”

“전, 전치 한 달은 나온 거 같은데 제가 더 많이 나왔죠?”

“야, 너희 둘 다 좀 진정하고 앉아.”

“그래, 목소리도 좀 낮추고.”

“닥쳐! 이 나쁜 놈들아!”

남자들이 여자 둘을 말리려고 한마디씩 건넸지만, 돌아오는 건 험한 소리였다.

“지금부터 목소리 또 높이거나 욕을 하거나 진료할 때 제 말을 안 듣고 서로 싸우면 네 분 모두 진료 가장 늦게 봅니다.”

최모나가 네 사람을 한 번씩 쳐다보며 분명한 말투로 덧붙였다.

“다들 응급실 가 본 경험 있으시죠?”

“전, 가 본 적 있어요.”

“난 처음인데…….”

“응급실은 항상 환자가 오고 응급 환자가 아니라면 순서에 따라 기본으로 대기가 길다는 거 알고 계실 겁니다. 처음 온 분도 그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꾸 이렇게 진료 방해하면 모든 환자 다 보고 제일 마지막으로 봅니다. 이미 기본 검사 다 해서 기다리다 가도 나갈 때 진료비 청구는 되니까 알고 계시고요. 어떻게 계속 목소리 높이고 싸울 거예요? 아니면 진료 잘 보실 건가요? 결정하세요. 참고로 제일 마지막으로 진료 보면 환자가 많아서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어요.”

최모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네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조용히 베드에 앉았다.

“진료 볼게요.”

“잘 생각했어요. 이거 주인은 각자 찾아가시고 그럼 진료 볼게요.”

아까 날아왔던 화장품과 전자 담배를 최모나가 가운 주머니에서 꺼내자 여자들이 챙겼다.

“네 분 다, 검사 결과 이상 없어요. 그리고 팔이랑 목에 난 상처도 다들 깊지 않아서 소독하고 약 도포해 드리고 김철민 님은 눈 밑에 살짝 찢어져서 2바늘 정도 봉합해야 합니다.”

“저기, 선생님. 저 얼굴에 상처 난 거 이거 흉터 남을까요?”

전자 담배를 챙겼던 여자가 오른쪽 뺨에 길게 난 손톱자국을 가리키며 질문했다.

“제가 모델이라 3일 뒤에 촬영 있어서 흉터 남으면 안 되거든요.”

“아니요. 약 잘 바르면 흉터는 안 남을 거 같아요. 딱지 떼지 마시고 담배 피우지 마시고요.”

“전담도 안 돼요?”

“너, 바보니? 전담은 담배도 아니야?”

“넌 좀 닥쳐 줄래.”

“저 진료 아직 안 끝났어요. 싸울 거면 진료 끝나고 나가서들 싸우세요.”

네 사람은 다시 입을 다물었고, 최모나는 차례대로 네 사람을 진료했다. 한 명을 빼고는 비교적 가벼운 상처였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는 마취 후, 찢어진 부위를 봉합했다.

“얘들아?”

최모나가 남자를 봉합하는 사이 나머지 세 사람 중 비교적 말수가 적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하겠지?”

“그러지 않을까? 아니, 친구! 친구로는 지낼 수 있는 거 아니야?”

화장품을 던졌던 여자가 최모나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답했다.

“우리 네 사람이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대도 관계 쫑내기는 너무 그렇지 않아? 우리 추억도 많잖아.”

화장품을 던졌던 여자가 최모나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답하고 전자 담배를 챙겼던 여자도 뒤이어 말했다.

“다 됐습니다.”

최모나가 봉합을 마치자 세 사람이 눈 밑이 찢어진 남자를 향해 물었다.

“야, 봉규. 네 생각은 어때?”

“친구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저기, 선생님?”

봉합하고 있던 친구의 답변을 듣고 있던 맞은편 여자가 대뜸 최모나를 불렀다.

“선생님 의대 나오셨죠? 공부도 잘하셨고요?”

“아, 네. 뭐…….”

“그러면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네!?”

조용하다 싶었더니 갑자기 질문을 던지는 탓에 최모나는 좀 황당했다.

“아니, 선생님. 치료하면서 우리 사정 다 들어서 대충 아시잖아요. 똑똑한 사람은 이성적인 결정을 잘 내린다고 하는데 선생님이 보기에는 우리가 친구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은지 묻는 거예요.”

아니, 왜 네 사람의 개인사를 본인에게 물어보는 건지.

최모나는 질문의 답을 굳이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네 사람의 눈빛이 심하게 진지했다.

그래서 그냥 짧게 답해 주기로 했다.

“친구를 하든 그렇지 않든 그거야 네 분이 결정할 일이니까 제가 상관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 같으면 친구 못 하죠.”

“왜요?”

“이유가 뭔데요?”

“친구든 연인이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베이스가 신뢰인데, 이미 신뢰가 깨져 버린 관계가 의미가 있을까요?”

“…….”

“서로 마주할 때마다 잘못했던 일이 생각나서 좋았던 추억마저 변질되어 버리고 괴로울 텐데. 난 신뢰가 깨진 인간관계는 미련 두지 않아요. 비싼 인생 공부했다 치고 나도 정신 차리고 너도 차리고 내 인생 열심히 살아야죠. 뭐,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만약 선생님 남친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그래도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실 건가요?”

“이건 단호한 게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생각을 말한 건데요. 그리고 제 남자친구는 도덕적인 사고방식이 건강한 사람이라 애초에 이런 일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럼, 네 분 진료 끝났으니까 수납하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안녕히 가세요.”

깔끔하게 자기 생각을 말한 최모나는 베드를 벗어나 다른 환자에게 향했다.

“저, 선생님 걸크러쉬 오지네.”

“맞지. 저게, 정답이지.”

네 사람은 별다른 말 없이 들어올 때와 달리 조용히 응급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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