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화. 문신
“와! 오늘은 유독 기운이 빠지는 거 같아요.”
응급실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가 뭉친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왜 안 그러겠어요. 오늘따라 취객 환자에 싸우는 환자에 울고 소리 지르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평소에도 힘든 환자들이 내원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보통 그런 환자들이 하루에 수용 가능할 정도로 내원했다면, 오늘은 무슨 힘든 환자 집합소라고 해도 될 만큼 쉽지 않았다.
아무리 응급실 경력에 의료진 경력이 만렙이라고 해도 다들 사람이기에 이런 날 지치는 건 똑같았다.
“그런데 아까 최 쌤 멋있지 않았어요?”
“맞아요. 내가 환자 처치 때문에 옆 베드에 있었는데 최 쌤 보통이 아니던데요.”
간호사는 맞바람으로 응급실까지 와서 소란스럽게 했던 두 커플에게 최모나가 한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남자 친구 이야기할 때 그때 뭔가 더 멋지더라고요.”
“물건 던지고 싸우더니 최 쌤 말 듣고 조용히 나가서 어찌나 다행이던지. 아무튼 최 쌤 덕분에 잘 넘어갔어요.”
“아! 다들 왜 그러십니까. 그만들 하세요.”
바로 옆 PC 앞에서 환자기록을 작성하던 최모나는 간호사들에게 그만하라며 손을 가로저었다.
“다들 무슨 이야기 중이세요.”
때마침 환자 진료를 마치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이찬희가 궁금한 표정으로 최모나 옆에 자리 잡았다.
“그게요. 이 쌤, 아까 최 쌤이…….”
“아니에요.”
최모나는 이찬희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간호사를 말렸다.
“쌤, 거기까지만 해요.”
“그럴까요?”
“네.”
“무슨 일인데 그래.”
“이 선생은 몰라도 돼.”
“뭔데? 감추니까 더 궁금하네. 그나저나 다들 출출하지 않아요?”
“출출해요.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더 출출하네요.”
“오랜만에 사다리 한 번 탈까요?”
“좋죠.”
한바탕 환자들이 몰아치고 잠시 숨을 돌린 이찬희와 의료진은 출출한 배를 달래고자 간식을 먹고자 했다.
병원 일이 은근히 체력 소모가 많은 일이라서 환자가 쏟아진 날에는 저녁밥이 금방 꺼졌다.
“햄버거, 떡볶이, 와플 다들 어떤 게 좋아요?”
“아무래도 야식하면 뭐니 뭐니 해도 떡볶이를 이길 수는 없죠.”
“맞아요. 살짝 매콤 달달한 게 들어가 주면 또 힘 나서 새벽까지 일을 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떡볶이로 하고 다들 번호 골라 주세요.”
“전, 3번이요.”
“5번.”
“3번 5번, 최 선생은 1번, 난 2번…….”
이찬희는 핸드폰 화면에 동료들이 선택한 번호를 차례로 입력했다.
“병동 쌤들이랑 다른 쌤들 번호는 톡방에 올렸으니까 조금 기다려 주세요.”
“수 쌤, 어서 오세요.”
스테이션 간호사가 임정숙 간호사에게 말했다.
“수 쌤, 간식 시키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좋죠.”
“원장님 수술 끝나려면 더 있어야 하죠?”
“네, 좀 있어야 해요.”
태경과 의진을 비롯한 몇몇 의료진은 아직 수술방에 있었다.
“떡볶이랑 순대, 튀김에 어묵도 넣어 주고 맵기 선택은 1단계로 하겠습니다.”
“이 쌤 메뉴 초이스가 탁월한데요.”
“제가 또 이런 걸 좀 잘하잖아요.”
이찬희가 함께 시킬 다른 메뉴를 고르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야!!!”
별안간 큰 소리와 함께 누군가 소리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의료진과 베드 위에 있던 환자들까지 전부 들을 정도였다.
소리를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응급실로 바로 들어오는 자동문으로 향했고, 의료진의 얼굴 위로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이!! 여기, 의사 어디 있냐?”
한 무더기의 남자들이 응급실 안으로 들어오며 다시 소리쳤다.
그들은 모두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우리병원 보안요원인 장득칠과 비슷한 체격이거나 그보다 더 큰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아주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이었고 몇몇은 손목부터 이어진 이레즈미 문신이 보였다.
또 다른 몇 명은 용과 뱀 문신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문신 못지않게 많이 보이는 게 흉터 자국이었으며 아마도 칼에 의한 자상으로 보였다.
옷에 가려져 전신에 있는 흉터까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이는 손등이나 목 주변 뺨 위로 눈에 띄게 자상이 보였다.
의료진은 저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닌, 일명 조폭이라 불리는 사람이란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
“……!”
베드 위에 있던 환자들은 커튼을 더 젖히며 놀란 얼굴로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의료진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검은 옷을 입을 남자들은 모두 열 명이었다.
“야! 여기, 의사 없냐고?”
또 한 번 고성이 응급실에 울렸다.
아까부터 소리를 지르던 남자로, 그는 웨이브가 들어간 어깨까지 오는 짙은 갈색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장발의 남자였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였고, 체격도 좋고 신장도 컸다.
“제가 가 볼게요.”
“저도 이 선생이랑 같이 갈게요.”
“아니요. 최 쌤은 가지 않은 게 좋을 거 같아요.”
최모나가 이찬희와 함께 조폭 무리에게 가 보겠다고 하자 임정숙 간호사가 말렸다.
“네! 왜? 저 사람들 위험해 보이는데 이 선생이랑 제가 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이 쌤이랑 가 볼게요. 최 쌤은 다른 환자들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다른 응급 환자가 올 수도 있었고 기존에 있는 환자들도 돌봐야 했기에 둘 다 저들에게 가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았다.
“저 사람들 위험해 보이니까 최대한 자극하지 않게 대응하는 걸로 하죠.”
“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이찬희와 임정숙 간호사는 저들에게 다가가며 작은 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진료 보러 오셨나요?”
“야! 네가 의사냐?”
이찬희가 질문하자 장발의 남자가 못마땅한 말투로 받아쳤다.
“형님, 여기 가운에 의사 이찬희라고 쓰인 거 보니까 이쪽이 의사 양반이 맞는 거 같습니다.”
주변에 서 있던 다른 남자가 이찬희 명찰에 얼굴을 갖다 대며 확인했다.
“나도 보고 있어. 이 새끼가, 아가리 싸 물어.”
“죄송합니다. 형님.”
“그래서 그쪽이 의사야?”
장발 남자는 태생부터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었는지 아니면 조폭이라 그런 건지 예의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 제가 의사입니다.”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찬희는 최대한 차분한 어투로 응대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한다.
때로는 인격이란 게 존재는 하는 걸까 하는 사람부터 소위 말해 인간 말종인 사람까지 전부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응급실 의료진은 속된 말로 아무리 진상인 환자가 와도 그들을 응대하는데, 어느 정도의 노하우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노하우가 쌓여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환자들이 아주 가끔 올 때가 있다.
바로 폭력을 휘두르는 환자들이었다. 의사, 간호사 할 거 없이 의료진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나아가 흉기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의료진으로서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진료할 뿐인데 예상 못 한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아직도 병원 곳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특히 의료진이 힘들 때가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단골 소재로 나오고 사람을 괴롭히며 나쁜 일을 하는 조폭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응급실에 내원했다.
내리깔 듯 쳐다보는 눈빛에는 살기가 느껴졌으며, 실제로 풍기는 분위기도 그랬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게 주목적인 의료진과 생명보다 집단 간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람들이 마주한 것이다.
“어이!”
장발의 남자가 손가락으로 이찬희의 쇄골과 어깨 사이를 찔렀다.
이찬희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하지 않았다.
태경이 늘 당부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 중에 가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왔을 때는 특히 조심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이 왔을 때는 도발하는 행동이나 말투를 삼가고 가능한 저한테 콜하도록 하세요. 괜히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 의료진이 다치는 일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환자가 중요한 만큼 여러분 자신도 중요하니까 함부로 맞서지 마세요.’
태경은 이찬희와 최모나를 비롯한 의사들에게 항상 조심할 것을 주의했다.
“내가 저 자동문 들어올 소리 질렀는데 이제야 기어 나오네. 보니까 아직 어린 거 같은데……. 이찬희 선생? 혹시 그쪽 인턴인가 뭔가 하는 그런 병아리는 아니겠지?”
“아닙니다. 진료 보실 건가요?”
“그럼, 병원에 진료 보러 오지 못하러 오겠냐?”
“환자분께서 직접 진료 보실 건가요?”
“어이, 의사 양반. 내가 어디 고장 난 사람처럼 보여? 내가 아니라 저기, 우리 큰형님 보이지?”
장발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 있던 부하로 보이는 남자들이 물이 갈라지듯 하나둘씩 양쪽으로 비켜섰다.
그들이 완전히 비켜서자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60대로 보이는 남자는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면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는 검은 정장을 입은 조폭들의 보호를 받는 모습이었다.
저들이 하는 행동이나 ‘큰형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걸로 봐서 조폭들의 우두머리로 보였다.
“우리 큰형님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이 야심한 밤에 온 거니까 빨리 진료 봐. 그리고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너 진료 제대로 봐야 한다. 만약 하나라도 잘못되면 그땐 각오해야 할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사람을 협박하는 게 몸에 밴 남자는 이찬희에게도 으름장을 놓았다.
자신이 모시는 큰형님에게 흠집이라도 나면 죽일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의료진은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일단 보호자분이 접수부터 하시고 나머지 분들은 원활한 진료를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세요.”
이찬희가 말한 뒤, 임정숙 간호사가 그들에게 안내했다.
응급실에 오는 모든 환자에게 하는 지극히 당연한 안내 멘트였다.
임정숙 간호사는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평범한 환자가 아닌 조폭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의료진에게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접수? 야! 막내 네가 가서 접수하고 와라.”
“예, 형님.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가 다 보호자라서 나갈 수가 없겠는데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우리 큰형님이나 진료 보지. 뭐해? 너희 의사랑 간호사들 얼른 우리 형님 진료 보라고.”
조폭들은 도저히 이찬희와 임정숙 간호사의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일단 환자부터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야! 손 치워! 우리가 모시고 갈 테니까 안내나 해.”
이찬희가 휠체어를 밀고 가려 하자 장발 남자가 힘을 주어 이찬희의 손을 내리치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 남자가 내리치는 힘을 그대로 받아 대신 맞았다.
곧이어 걸걸하지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호자분, 저쪽 12번 베드로 이동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