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화. 똥개훈련 시키냐?
“보호자분 저쪽 12번 베드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리병원 보안 요원인 장득칠이었다.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최모나가 조용히 나가 그를 데리고 온 것이다.
장득칠은 조폭들과 싸우려고 온 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들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온 것이다.
장득칠이 아무리 체격이 좋고 싸움을 잘하고 겁이 없다고 해도 현재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므로 조폭들과 마찰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의료진과 병원 소속 직원이 환자와 보호자가 위협한다고 해도 그에 맞서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사람을 해치는 일이 자연스러운 조폭 열 명을 상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잠시만요!”
장발의 남자가 휠체어를 밀고 나머지 부하들이 뒤를 따르며 12번 베드로 이동하던 중, 이찬희가 그들을 멈춰 세웠다. 그러자 심기가 사나운 눈빛으로 조폭들이 이찬희를 노려봤다.
“왜?”
“12번 베드가 아니라 저쪽, 처치실로 이동 부탁드릴게요.”
“뭐? 12번이 아니라 저기로 가라고?”
장발 남자는 이찬희가 가리킨 곳을 손가락질하며 되물었다.
“어이! 의사 양반?”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고 하자 안 그래도 험하게 뜨고 있던 눈가를 좀 더 구기며 이유를 따져 물었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하세요? 저쪽으로 가라고 했다가 이쪽으로 가라고 했다가 지금 뭐 하자는 플레이야. 지금 나 똥개훈련 시키냐?”
“그럴 리가요. 환자분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좀 더 편하게 진료 보실 수 있도록 단독 처치실로 안내해 드린 것뿐입니다.”
이찬희는 다른 응급실을 내원하는 환자들처럼 조폭 환자를 12번 베드로 이동하라고 했다가 단독처치실로 바꿨다.
응급실 안에 있는 단독 처치실은 응급실에 오는 환자 중 상태가 위중하고 긴급한 상황일 때 주로 사용한다.
의료진이 환자의 위중한 상황에 따라 처치할 때 일반 베드보다 좀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휠체어에 앉아 있는 조폭 환자가 그만큼 위중한 상황인가 하면 그건 확실하지 않았다.
아직 문진도 기본적인 검사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이찬희가 환자 상태에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단독 처치실로 환자를 옮겨 달라고 부탁한 이유는 다른 환자들의 안전 때문이었다.
지금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며 말끝마다 시비조로 말하는 조폭들이 괜히 응급실에서 난동을 피우면 다른 환자들이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공간이 막혀 있고, 저 많은 인원이 다 들어올 수 없는 단독 처치실로 옮기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반 외래 병원도 아닌 응급실에서 설마 난동을 부릴까 싶지만, 저들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일반 환자 중에도 가끔 의료기기를 던지고 난리를 치는 사람이 있는데 저들은 차원이 다르다.
상식과 기본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욕을 먹고 노려보고 깔보는 건 기분이 나쁘면 그만이었지만, 저들로 인해 누군가 다치면 그때는 문제가 다르다.
그래서 이찬희는 최대한 모두가 안전한 상황에서 진료를 시작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단독 처치실?”
“네, 다른 베드와 가깝지도 않고 단독 베드만 있는 공간입니다.”
“형님, 단독이라는 단어가 붙은 거 보니까 뭔가 VVIP실 같은 건가 본데요.”
장발 남자 뒤에 서 있는 남자가 말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와 함께 처치실로 향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찬희는 자연스럽게 장발 남자가 밀고 있는 휠체어 손잡이를 잡아 임정숙 간호사와 장득칠과 함께 처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장발 남자와 나머지 인원들이 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여기는 의료진이 진료 보는 공간이므로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야!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 너희가 우리 회장님 진료 엉터리로 하면 어쩌려고 나가 있으래. 너, 지금 우리 회장님께 떼어놓으려고 수작 부리냐?”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조폭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 보호자 한 명만 남아 주시는 걸로 하죠.”
“됐고? 나랑 민교 그리고 철호 이렇게 셋이 남고 나머지는 밖에서 기다려라.”
“네, 형님!”
장발 남자는 본인과 바로 뒤에 과묵하게 서 있는 남자와 그 뒤로 서 있던 남자와 처치실에 남고 나머지 부하들은 내보냈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몸이 불편하셔서 내원하셨다고요.”
이찬희는 휠체어에서 베드로 자리를 옮긴 60대 남자 옆으로 다가갔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 ㄷ…….”
힘없이 누워 있던 남자는 이찬희 질문에 대답하려 입을 열었지만, 기운이 없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말씀하셔도 돼요.”
“이……득…….”
남자는 다시 한번 말을 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은 이찬희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귀를 남자의 입 근처로 갖다 대려고 하던 그때였다.
“윽!”
장발 남자 구대춘이 별안간 이찬희의 목덜미 쪽 가운을 뒤로 잡아끌었다. 그 바람에 이찬희의 몸이 갑자기 뒤로 확 들렸다.
그 와중에도 구대춘은 잡고 있던 가운을 놓지 않았다.
“뭐 하시는 거예요?”
“보호자분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임정숙 간호사가 한마디 한 뒤로 함께 서 있던 보안요원 장득칠이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거 놓으시죠.”
“뭐냐? 형씨. 그러다 한 대 때리겠네.”
구대춘은 잡고 있던 이찬희의 가운을 보란 듯이 천천히 놓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어이, 나 때리려고? 어? 보호자는 의사한테 말 한마디 못 하냐? 의사가 시발 뭐, 벼슬이야?”
“그게 아니라 지금 선생님께서 환자분 진료 보는 중이신데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니까 위험하다고 안내해 드린 겁니다.”
“말 잘했네. 나도 방금 의사 양반이 우리 형님께 돌발행동해서 우리 형님이 위험할까 봐 그런 건데.”
구대춘은 자기 행동이 잘못됐다고 느끼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떳떳하고 당당했다.
“지금 진료 중이니까 모두 진정하세요.”
흐트러진 가운을 정리한 이찬희가 자신은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임정숙 간호사와 장득칠은 안심시켰다.
“아! 그리고 우리 큰형님 존함은 이자 득자 현자 되신다. 참고해.”
구대춘은 무슨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환자인 이득현의 이름을 대신 말했다.
“이득현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어요?”
“아! 그러니까 우리 큰형님께서 말이지 혈변을 보셔서 이렇게 우리가 모시고 병원까지 납시셨다 이거야.”
“……!”
혈변이란 말에 이찬희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소화기인 위나 장에서의 출혈이 때로는 굉장히 위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출혈이야 금방 지혈도 가능하고 외과적으로 처치를 하면 된다. 하지만 안에서의 출혈은 우선 어디인지부터 찾는 것이 쉽지 않고 찾은 후에도 멈추게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출혈 위치부터 알아야 한다.
“저, 환자분 말씀하시기 많이 힘드세요?”
“의사……선생님.”
기력 없이 누워 구대춘을 보고 있던 이득현이 천천히 이찬희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구대춘이 득달같이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야! 너 내가 우리 형님 피똥 싸서 왔다고 말했는데 시발, 빨리 치료나 처할 것이지.”
구대춘은 이찬희의 한쪽 어깨를 손가락으로 상당히 기분 나쁘게 밀며 말을 이었다.
“왜 자꾸 힘든 분한테 말을 걸어. 어!”
구대춘은 환자인 이득현에게 다가갈 때마다 자신의 먹잇감을 노리는 여우를 짓밟는 사자처럼 이를 세우며 달려들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가 아닌, 마치 본인보다 하등 생물을 대하는 태도와 잔뜩 날 선 말투가 솔직히 이찬희는 두려웠다.
구대춘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때릴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단골 소재로 재미있게 보던 조폭들의 모습이 실제로 마주하니 무서웠다.
특히 살벌한 눈빛 속에 느껴지는 살기가 분위기를 더 험하게 만들었다.
이찬희는 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섭다. 두렵고 떨린다.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임정숙 간호사까지 그럴 것이다.
순간 몇 년 전에 응급실에서 보호자의 난투극으로 안타깝게 사망한 의사의 기사가 떠올라 더 아찔한 기분이었다.
이럴 거면 왜 하필 우리병원에 와서 이 난리를 피우나 싶었다.
태경의 생각이 더 절실했다.
이 상황에 선생님이라면 어떻게든 진료를 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예전에 태경이 했던 말이 이찬희 머릿속에 떠올랐다.
‘병원에 환자가 온 이상 그때부터는 의사가 책임지고 살려야지.’
이찬희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보호자께서 환자분을 걱정하는 마음 잘 알지만, 저 역시 똑같아요. 그리고 환자분께서 말을 못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직접 소통하며 진료하는 게 맞습니다.”
“너! 만에 하나 우리 큰형님 몸에 작은 이상이라도 있으면 그땐 내가 가만 안 있을 거야.”
“워! 보호자분 진정 좀 하시죠.”
구대춘 앞을 막아서고 있던 장득칠이 그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좀 더 그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환자분 제가 눈 밑을 좀 볼게요.”
이찬희가 이득현의 아래 눈꺼풀을 당겨 보니 핏기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보통 건강한 사람의 눈꺼풀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 뒤로 혓바닥을 내밀어 보라고 해서 살펴본 결과 혀가 말라 있는 양상을 보였다.
“일단, 기본 검사인, 소변 검사와 엑스레이 그리고 피검사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장 요원님, 화장실까지 환자분과 함께 이동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수 쌤이 바이탈과 체크랑 피검사 해 주세요.”
“네, 선생님.”
“잠깐!”
장득칠과 임정숙 간호사가 이득현을 휠체어로 이동하고 처치실을 나가려 하자 구대춘이 또다시 이들 앞을 가로막았다.
“어이! 우리 형님 지금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설명이라도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보호자분, 지금 이러시면 안 됩니다. 현재 환자분 혈변으로 내장 기관 출혈이라 위험하실 수도 있어요.”
“야!”
구대춘이 별안간 소리를 버럭 질렀다. 지금까지 날 선 목소리와 달리 아주 보란 듯이 소리를 질렀다.
처치실에 있던 모든 의료진이 놀라고 밖에 있던 사람들까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 * *
그 시각, 응급 수술을 마친 태경이 수술실에서 막 나오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구급차로 실려 온 교통사고 환자였다. 몇 군데 골절상을 당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수술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졌지만, 수술이 잘 끝나서 태경은 기분이 좋았다.
“정 선생, 환자 회복실에서 깨어나면 콜 줘요.”
“네, 선생님.”
수술실에서 나온 태경은 곧장 보호자 대기실로 가서 보호자에게 환자의 수술이 잘 끝났음을 알린 뒤, 설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원장님!!”
대기실에서 나와 걸어가는데 저만치서 복도가 떠나가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온 복도에 다 울리는 것만 같았다.
“원장님? 원장님!!”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최 팀장 목소리에 태경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원장님! 지금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