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65화 (464/472)

465화. 이명 소리

“원장님! 지금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왜요?”

“하아! 그게, 응급실에 난리가 났습니다.”

어찌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최 팀장은 간신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난리요? 응급환자 왔어요?”

“아니요. 환자가 문제라기보다는 아니, 환자도 문제긴 한데 조, 조폭들이 와서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조폭이요?”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은 태경이 되물었다.

“네, 영화에 나오는 막 검정 정장 있고 떼거지로 다니는 놈들 있잖아요. 지금 한 열댓 명이 응급실에 와서는 우리 큰형님 어쩌고 그러면서 그놈들이 이찬희 선생님 멱살을 잡고 있어요.”

“이 선생 멱살을 잡아요?”

태경이 눈썹을 구기며 말했다.

“의료진 멱살을 잡았다는 말인가요?”

“네, 원장님. 이놈들이 진짜 보통이…….”

흥분해서 말하고 있던 최 팀장은 태경이 벌써 저만치 가고 있는 걸 발견하며 뒤를 쫓아갔다.

“원장님! 같이 가요.”

앞서가던 태경이 별안간 걸음을 멈춘 뒤, 최 팀장을 돌아봤다.

“아! 깜짝아. 왜 그러세요?”

“팀장님, 곧 있으면 수술실에서 오 선생 나올 거예요. 데리고 와 주세요.”

태경은 수술실에 들어갔던 오창규를 데려오라고 말했다. 그가 남자 간호사이기 때문에 환자 진료에 있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원장님.”

최 팀장에게 말한 태경은 빠르게 응급실로 향했다.

보통 수술이 끝나면 보호자 대기실을 갔다가 진료실로 들어가 수술 환자 챠트 기록과 함께 수술 복기를 파일에 남긴다.

아무리 비슷한 수술을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증상이 미세하게 다르기도 하고 막상 수술에 들어가면 그때도 다른 부분이 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복기 파일을 남기는 자체가 공부가 되기도 했고,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복기할 겨를이 없었다. 응급실에 조폭들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조폭이 응급실에 온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병원이나 응급실은 사람을 가려 받으면서 특정인만 오는 곳이 아니다.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아이, 어른, 남녀, 나아가 범죄를 일으킨 죄인까지. 누구든지 올 수 있는 전국에서 출입증 없이 문턱이 가장 낮은 곳이 바로 병원이었다.

그런데, 조폭이 와서 의료진이나 환자를 위협하면 그때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

가뜩이나 후배인 이찬희의 멱살이 잡혔다는 말을 들은 태경은 응급실 내 의료진이 걱정되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응급실 입구를 넘어가자 베드 위에 있는 환자들과 의료진의 표정 위로 걱정스러움이 전해졌다.

그들의 시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처치실을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베드에서 환자를 보고 나온 최모나가 태경을 발견하고 급히 다가오며 불렀다.

“지금 처치실에서 환자 진료 중인데 같이 온 조폭들 때문에 이 선생이 진료를 보지 못하고 있어요.”

최모나는 하소연하듯 말했다.

“그래, 나도 들었어.”

“선생님, 저 사람들 느낌이 좀 안 좋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아요.”

“최 선생, 지금 당장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잖아. 그렇지? 괜찮아.”

응급실의 공기마저 긴장감이 가득했지만, 태경은 평소와 같이 차분한 표정과 말투로 답했다.

태경은 우리 병원의 수장이다.

일이 생길 때, 환자들은 물론 직원들까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 수장이 동요하면 직원들은 더 긴장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가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저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아니야. 최 선생은 다른 환자 봐야지. 조금 있으면 정 선생도 올 거니까 같이 환자 봐. 손 부족하면 그때 내가 부를게.”

“네, 선생님.”

최모나에게 다른 환자들을 부탁한 태경은 안에 있는 이득현의 대해 간단히 듣고 처치실로 걸어갔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처치실로 다가가자 소리를 지르는 구대춘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렸다.

“우리 큰형님께서 위험하시다고? 그렇다면 뭐! 당장 죽기라도 한다는 거야? 어!”

목소리에 깃든 감정은 당장이라도 누구를 죽일 듯한 말투로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야, 내가 지금 묻고 있잖아?”

구대춘의 우악스러운 외침을 뚫고 서둘러 처치실로 향하는 태경의 표정이 전과 다르게 확연히 달라지고 있었다.

한 발짝씩 다가갈수록 좁혀지는 눈매와 구겨지는 눈썹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탁-

이윽고 반쯤 열려 있는 처치실 문을 확 열고 태경이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그리고 이찬희의 멱살을 잡고 있는 구대춘을 향해 소리치던 바로 그때였다.

힘 있는 목소리로 힘주어 외치던 태경이 순식간에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

다섯 번째 바이탈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마자 방 안에 휘몰아치던 극심한 냄새가 거대한 폭풍처럼 태경을 휘감는 기분이었다.

마치 귓속 이명 소리로 모든 대화가 순간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처럼, 다섯 번째 바이탈 때문에 집중하느라 주변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사실 태경이 응급실에 들어와 처치실로 향하며 점점 표정에 변화가 있던 건 구대춘의 외침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이 다섯 번째 바이탈 때문이었다.

1단계도 아니고 2단계, 3단계도 아니었다. 4단계인 포르말린 냄새도 아니었다.

죽음을 직면한 5단계 냄새였다.

동물이 썩어 가는 냄새인지 시체가 썩는 냄새인지 명확히 구별하기 어려운 냄새와 유황 냄새가 이 방, 처치실 안에 가득했다.

정말이지 눈앞이 아찔하고 콧속이 얼얼한 기분이었다.

냄새로 환자의 위중을 구별하며 냄새에 단련이 된 태경 또한 이런 냄새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문제는 냄새의 주범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어느 사람에게 나는 건지 확실히 분별이 가능했지만, 워낙 지독하다 못해 고약한 악취로 인해 그 대상이 명확하지 않았다.

“……새끼 뭐야!”

“너 뭐냐고!”

말도 안 되는 냄새에 정신이 쏙 빠져 있던 태경이 이제야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야! 너 뭐냐고 물었잖아!!”

태경은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구대춘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이찬희의 멱살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자신을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나? 이 병원 원장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원장? 당신이 이 병원 원장이라고?”

구대춘은 태경의 가운을 보며 이름을 확인했다.

“어! 원장 맞네.”

“일단 이것 좀 놓고 이야기하시죠.”

“내가 왜 멱살을 놓아야 하는데? 여기, 이 새끼가 우리 형님이 위험하다는 개 같은 소리를 나불대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냐고. 안 그래?”

“개 같은 소리 아니고 당신이 모시고 온 형님이 현재 위험할 수도 있으니 빨리 이거 놓으세요.”

거친 입담과 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악만 남은 살기 가득한 눈빛. 이들이 진짜 조폭이 맞는다는 걸 태경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태경은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도 놀라운 만큼 점점 더 차분해졌다.

칼과 물리적인 힘으로 사람을 해하는 사람들을 힘으로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과 마주하면 일반인들은 누구나 무섭고 두렵다.

그럼에도 태경이 이토록 차분한 이유는 다섯 번째 바이탈 때문이었다.

눈앞에 마주한 조폭보다 눈이 아리고 코끝이 시큰한 죽음을 몰고 있는 다섯 번째 바이탈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이 냄새의 주범이 누군지 그걸 찾는 게 우선이었다.

지금도 다섯 번째 바이탈이 어찌나 독하게 나고 있는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 환자 살리고 싶으면 빨리 이 손 놓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어이, 김태경 씨 당신이 원장이라고 했지?”

“맞아요. 내가 원장입니다.”

“우리 큰형님 위험하다는 거, 그 말 농담 아니지? 아니어야 할 거야. 만약 농담으로 하는 말이면 나 가만 안 있어.”

소리를 바득바득 지르던 구대춘은 목소리를 낮추며 태경을 뚫어져다 쳐다본 채 진지하게 물었다.

“환자의 상태를 두고 농담하는 의사는 없어요.”

“좋아. 그럼, 이거 놓으면? 원장 당신이 진료 볼 건가?”

“내가 진료 볼 겁니다.”

“대신, 방금 한 소리 헛소리한 거면 그땐 나 가만 안 있어. 어!”

구대춘은 그제야 잡고 있던 이찬희의 멱살을 풀었다.

“이 선생, 괜찮아?”

“네, 선생님. 전 괜찮습니다.”

태경이 처치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찬희는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뭔가 마음이 안정됐다.

“환자 상태 어때?”

“나이 65세이고 혈변으로 내원했습니다. 현재 눈꺼풀 아래쪽으로 당겨 보니 핏기도 많이 없고 혀가 마른 상태며 기본 검사를 진행하려던 상태입니다.”

환자에 대한 브리핑을 들으며 태경은 생각했다.

이 지독한 냄새의 주범인 과연 누구인지. 진지함을 넘어 심각하고 심오함이 깃든 눈동자가 분주하게 처치실을 돌아다녔다.

당연히 확실시되는 사람이 있었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이었다.

일단, 이찬희와 임정숙, 장득칠을 비롯한 의료진은 전부 배제시켰다.

하루 종일 몇 번이나 마주했던 직원들에게서 이 정도의 냄새가 진동한다며 모를 수가 없었다.

곧이어 태경의 눈동자가 조폭 삼인방에게 향했다.

장발의 구대춘 그 뒤에 있는 과묵한 남자와 옆에 있는 또 다른 남자.

물론 겉으로 느껴지는 모습만 보고서는 몸 안의 일어나는 일을 알 수가 없지만, 현재로서 세 사람도 아닌 거 같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사람.

유력한 사람은 현재 베드에 누워 있는 65세, 조폭들이 큰형님이라 부르는 이득현이었다.

검사를 해 보고 정확한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지만, 지금까지는 저 노인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분, 전 이 병원 원장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진료를 봐 드리겠습니다.”

태경은 조폭 삼인방의 시선을 받으며 이득현에게 다가갔다.

“언제부터 혈변 증상이 있었나요?”

“그게…….”

태경은 기력이 없어서 그런지 말 한마디 내뱉기 힘겨워 보이는 이득현 입으로 귀를 내렸다.

“어젯밤부터 그랬습니다. ……세요.”

짧은 말과 함께 이득현이 뒷말을 이었지만, 상당히 작게 속삭이며 말끝을 흐렸기에 잘 들리지 않았다.

“환자분. 말하기 힘드시면 최대한 천천히 말씀하셔도 돼요. 지금 앓고 있는 지병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없고…… 가슴에 관을 하나 낀 적이 있어요.”

“관이요?”

태경은 오른손으로 환자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가슴이라 하시면 여기 스텐트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전 일이라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스텐트(stent)는 쉽게 말해 막힌 혈관을 넓혀 주는 것으로 특수한 그물망을 넣어 혈관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태경은 이득현이 말하는 게 스텐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환자분 통증은 좀 어떠세요? 배가 아프지는 않으세요?”

“아랫배가 좀 아파요. 그리고 선생님, 저…….”

배가 아프다는 말과 함께 이득현은 뭔가 더 전할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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