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화. 검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배가 아프다는 말과 함께 이득현은 뭔가 더 전할 말이 있었다.
“……오세요.”
이득현이 뒷말을 이어서 말했지만, 태경은 이번에도 잘 듣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귀를 그의 입가에 좀 더 가까이 갖다 댔다.
“가까이……오세요.”
그러자 가까이 오라는 이득현의 말이 귀에 들렸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태경은 이득현이 하는 말을 이제야 들을 수 있었다. 분명 작은 소리였지만, 살려 달라고 확실히 말하고 있었다.
뒤에 따라온 조폭 무리가 없었다면 이득현이 이들의 큰형님이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로 차분하고 공손했다.
아마도 몸이 많이 아파서 기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태경은 생각했다.
이럴 때 보면 건강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더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부디…… 절 살려 주세요.”
고개를 든 태경이 이득현의 얼굴을 쳐다봤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살고 싶어 하는 말투와 함께 그의 눈빛 역시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지금 이 환자가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 그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위로일 것이다. 의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위로가된다는 걸 태경은 잘 알고 있었다.
“환자분,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득현의 손을 잡고 한마디를 남기며 자연스레 손을 빼려 하던 그때였다.
“……!”
순간 손안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태경이 손에 힘을 준 게 아니었다. 맞잡은 손에 전달된 약한 힘은 이득현의 것이었다.
다시 한번 환자와 눈을 맞추자 방금 전보다 더 간절하고 애타는 눈빛이 돌아왔다
환자에 대한 지나친 오지랖일지 모르겠지만, 뭔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이 들자 태경이 다시 한번 이득현에게 다가가려 하던 그때였다.
“어이, 원장!”
순간 구대춘이 이득현을 향해 내려가던 태경의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말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뭔 놈의 의사가 그렇게 말이 많아.”
구대춘은 환자랑 소통하는 태경이 마음에 안 드는지 빨리 진료나 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시답지 않은 대화 그만하고 우리 큰형님 힘든데 빨리 진료나 좀 봅시다. 형님?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태경에게 말하던 구대춘이 이득현을 향해 묻자 그는 괜찮다며 손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혹시 뭐, 할 말 있으십니까? 의사 놈들이 말을 잘 못 알아먹는 거 같은데 제가 대신 전달해 드릴까요?”
“괜찮아.”
다시 한번 구대춘이 묻자 이번에는 이득현이 의사 표현을 확실히 했다.
“불편한 부분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해 주세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경은 환자를 안심시키려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득현의 손등을 토닥였다.
“환자분, 우선 아프신 곳이 어디인지 배 좀 눌러 볼게요. 다리를 살짝 구부리시고요.”
“어이! 원장. 우리 큰형님 조심해서 봐. 어! 귀하신 분이야.”
구대춘은 각별히 신경 쓰라는 말투로 한마디 거들었다.
태경은 환자에 집중하며 이득현의 복부를 살폈다.
“환자분, 안 아픈 윗배부터 눌러 볼게요. 지금 여기 어떠세요? 아프세요?”
태경의 질문에 이득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쪽 아래를 누를게요. 여긴요? 아프세요?”
이번에도 이득현의 행동은 똑같았다. 아프다는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네, 그러면 여기, 아랫배를 좀 눌러 볼게요.”
“으! 거기는 아프네요.”
태경이 아랫배를 누르자 지금까지 반응이 없던 이득현이 아프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환자분, 오른쪽이요? 아니면 왼쪽이 아프세요?”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찡그린 얼굴이나 아프다는 말에 반응하는 걸로 보아 이득현이 복부가 아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는 본인도 잘 모르는 거 같았다.
“그럼, 제가 어느 쪽인지 확인을 해 볼게요. 여기 왼쪽 아랫배를 누를 건데 지금 어떠세요?”
“아! 거기 아픕니다.”
아까 이득현이 아프다고 한 쪽으로 배를 누르자 반응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혈변 색은 어땠나요? 기억나세요?”
“그게…… 붉은색이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태경은 우선 환자의 항문을 보기로 했다. 선홍색 피는 출혈 시 항문에 있는 질환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
“환자분. 제가 지금부터 검사를 좀 할게요.”
이득현이 잘 들을 수 있게 다가가 말한 태경은 고개를 들어 조폭 삼인방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환자의 상태를 보아서는 항문 검사뿐만 아니라, 다른 추가 검사를 할 확률도 높았다. 그런데 의료진이 아닌 사람들이 처치실에 계속 있으면 동선 문제도 있고 검사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없었다.
사실 아무리 위중한 상황이라도 환자의 보호자가 처치실 안에 있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태경은 검사를 들어가기 전인 지금 저들에게 분명히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이득현 환자의 검사를 진행할 겁니다. 그런데, 그 전에 여기 있는 보호자 세 분이 처치실 밖으로 나가 주셨으면 합니다.”
“뭐?!”
아니나 다를까 구대춘은 인상을 구기며 반문했다.
“나가라고?”
“네, 검사를 위해서니까 협조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나가라고 난리야! 요즘 의사 같지도 않은 돌팔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쪽을 어떻게 믿어.”
구대춘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날 선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원장, 당신이 우리 큰형님 잘 못 진료하면 어떡하라고 우리보고 나가래. 어!”
“그만 나가!”
순간 태경이 노려보는 구대춘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버럭 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평소처럼 예의 있게 환자를 대하던 모습은 오간 데 없는 모습이었다.
갑작스러운 태경의 모습을 보고 구대춘은 잠시 당황하는 듯싶더니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기막혀했다.
“하! 이거 보소! 어이? 원장 양반, 내가 뭐 하는 사람으로 보여?”
“그딴 거 모르겠고, 환자 살리고 싶으면 당장 나가.”
저들이 조폭이든 뭐든 지금 태경에게는 그딴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콧속을 유린하고 눈까지 시큰하게 만드는 이 죽음의 냄새의 원인을 찾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밥 말아 먹은 이런 것들과 더 이상 입씨름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신, 아까부터 우리 큰형님, 큰형님 그러는데 정말 이득현 환자 살리고 싶은 거 맞아?”
“……!”
태경의 말에 구대춘의 눈빛 위로 순식간에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뭐라고! 얘들아, 이 원장 선생이란 놈이 뭐라고 씨불이는 거냐. 어이! 의사 원장 씨, 뭔 개소리를 하고 있어? 어! 당연한 소리를 뭐 그렇게 하고 있냐고! 당연히 우리 큰형님 살려야지.”
태경의 말에 구대춘은 노발대발했다.
“그러니까 당장 처치실에서 나가고 당신 부하들도 데리고 다른 보호자처럼 대기실 가서 대기해. 여기서 이렇게 무식하게 계속 버티면 당신들 때문에 검사 못 해. 이대로 있으면 저 환자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당장 나가!!”
태경은 전혀 쫄지 않고 자신보다 덩치 큰 구대춘에게 소리쳤다.
조폭이 무섭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죽어가는 환자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솔직히 죽음의 냄새를 피우는 환자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울 게 없었다.
“이게, 진짜!”
“형님?”
구대춘이 태경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처치실 문이 열리며 밖에서 대기하던 부하 한 명이 들어왔다.
“종구 형님 전화 왔습니다.”
그는 전화가 왔다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말했다.
“뭐! 종구 형님?”
“네, 형님 핸드폰 안 된다고 큰형님 어떻게 되셨는지 걱정된다면서 바로 연락 달라고 하셨습니다.”
“형님!”
지금까지 과묵하게 입을 닫고 구대춘과 함께 서 있던 부하 김민교가 그를 제지하며 나섰다.
우악스럽고 사람을 무시하며 주먹이 앞서는 구대춘과 달리 그는 좀 달라 보였다.
검은 정장에 손등 위에 있는 문신으로 보아 그 역시 저들의 일원인 건 맞지만, 적어도 예의라는 기본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종구 형님 전화부터 받고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여기 의사분과 이야기해 볼 테니까 일단 전화부터 받고 오시죠.”
그가 침착하게 말하자 구대춘 역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까?”
“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종구 형님이시잖아요. 종구 형님께서도 형님 못지않게 큰형님을 걱정하고 계신데 형님께서 통화하고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긴, 딴 놈은 몰라도 민교 네가 여기 있으면 나도 안심할 수 있지.”
“그러니까 여긴 저한테 맡기시고 다녀오세요.”
김민교가 종구라는 사람의 이름을 자꾸 강조하는 걸로 봐서는 저들에게 꽤 중요한 사람인 듯 보였다.
“알았어. 일단 전화 좀 하고 올게.”
“네, 다녀오십쇼.”
구대춘이 나가자 김민교의 시선이 함께 남아 있던 나머지 부하에게 향했다.
“건식아, 너도 나가 봐.”
“예? 저도 말입니까? 형님.”
“그래, 큰형님 때문에 둘째 형님 기분이 시끄러울 텐데 전화 끝나면 네가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실 수 있게 옆에 있어. 애들도 데리고 나가고.”
“아! 예, 형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드르륵-
구대춘에 이어 다른 부하도 나가자 긴장감에 싸여 있던 의료진에 얼굴이 그나마 풀어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하가 나가자마자 김민교가 태경과 의료진을 향해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말을 전했다.
“……님.”
“원장…….”
“원장님!”
순간, 멍하니 있던 태경을 김민교와 의료진이 불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원장님!!”
임정숙 간호사가 다시 한번 힘껏 부르자 그제야 태경이 상황을 인지했다.
“원장님,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선생님?.”
그때 이찬희가 태경을 불렀다.
“환자분이 부릅니다.”
이득현이 베드 옆에 있던 이찬희에게 불러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네, 환자분. 말씀하세요.”
“선생님, 저 좀 살려 주세요.”
“네, 환자분.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일단 검사부터 진행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득현이 뭔가를 말하려던 찰나 김민교가 옆으로 다가와 먼저 말했다.
“큰형님,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미, 민교 네가 다 안다고?”
이득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구대춘이 나갈 때까지 일부러 기회만 보고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제가 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큰형님께서는 몸만 신경 쓰세요.”
김민교는 이득현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태경에게 다가왔다.
“원장님? 우리 큰형님 좀 도와주세요.”
“네, 도와드릴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분 검사를 진행해야 하니까 보호자분도 이만 나가 주시죠.”
골칫거리였던 구대춘을 처치실에서 나가게 해 준 건 고마웠지만, 검사를 위해서는 김민교 역시 나가야 했다.
“아니요. 지금 검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잠시만요.”
뭔가 말하려던 김민교는 처치실 문으로 가더니 문에 있는 직사각형의 작은 창밖으로 시선을 넘겼다.
그러면서 밖에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이 응급실 밖으로 나갔는지 확인한 뒤 다시 태경에게 다가왔다.
“원장님, 방금 나간 구대춘이 큰형님을 살해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