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67화 (466/472)

467화. 흉기

“원장님, 방금 나간 구대춘이 큰형님을 살해하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

“사, 사…… 살해요? 제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살해한다는 말 저도 분명히 들었어요.”

김민교의 말을 듣고 있던 모든 의료진이 아연실색했다. 너무 놀란 이찬희는 저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었다.

“방금 살해라고 했나요?”

“네, 맞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 사살한 태경은 조금 전에 있던 상황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이제야 이해됐다.

‘어쩐지…….’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속으로 지나친 오지랖이겠지 하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했던 일들이 맞았다고 생각하니 태경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이득혁에게 문진하며 그에게 질문할 때 배를 누르기 전까지 그가 했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됐다.

‘선생님, 살려 주세요.’

‘부디 절 살려 주세요.’

살려 달라고. 자신을 살려 달라고 간절하고 간곡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간절해 태경은 이 사람의 삶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뭔가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마치 더 할 말이 있는 듯 눈빛이 너무 애절했고, 마지막에 자기 손을 잡고 힘을 주었을 때 그 생각이 더 확실해지기도 했었다.

그래서 할 말이 있는지 이득현에게 확인하려 했지만, 구대춘이 다가와 태경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는 빨리 큰형님의 진료를 보라는 그의 으름장이 진심인 걸로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성냥불처럼 꺼 버리는 조폭들의 죽고 못 사는 의리인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득현의 입을 막기 위해 절묘한 타이밍에 태경을 막아선 것이었다.

이득현의 살려 달라는 말이 병명에 대한 것보다 진짜 목숨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기막히고 놀라울 뿐이었다.

김민교의 설명 듣던 이찬희도 왜 아까 그렇게 구대춘이 이득현에게 다가갈 때마다 난리를 치며 막아섰는지 그 상황들이 전부 이해됐다.

이득현은 도움을 요청하려 했고, 구대춘은 큰형님을 위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그걸 막아선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환자분, 말씀하실 수 있으시죠?”

태경이 이득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네, 원장님.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구대춘이 없어서 그런지 이득현이 말하는 게 조금 전과 달랐다.

입가에 귀를 갖다 대야 들릴 수 있는 작은 목소리와 달리 말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지금 김민교 씨가 한 말이 전부 사실인가요?”

“네, 원장님. 맞습니다. 민교가 한 말 전부 사실입니다. 저 친구 말은 전부 믿으셔도 됩니다.”

“그럼, 김민교 씨를 제외하고 구대춘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 모두 이득현 환자를 살해하려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구대춘이 누군가를 포섭했다면 아는 녀석들도 있겠지만, 그게 누구인지 현재 정확한 확인이 힘듭니다. 그리고 원장님과 여기 계신 모든 분이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게 또 있습니다.”

“그게 뭐죠?”

“현재 구대춘은 상의 안쪽에 사시미를 숨기고 있습니다.”

“사시미요?”

“사, 사……사시미라면?”

“칼 폭이 좁고 날카로운 회칼로 이쪽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흉기 중 하나입니다.”

임정숙 간호사 질문에 놀랍도록 차분하게 설명하는 김민교의 표정이 저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대변했다.

옷 안에 흉기를 숨기고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피부로 와닿았다.

모든 말을 들은 태경은 생각을 정리했다.

아파서 병원에 온 이득현은 현재 같은 조직원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고, 구대춘은 이득현을 살해할 생각으로 병원에 온 것이다.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까딱하다가는 병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날지도 몰랐기에 일단 구대춘을 막는 게 급선무였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임정숙 간호사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히 신고해야죠.”

“그런데 지금 경찰이 오면 솔직히 제압하기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말 하면 웃으실지 모르지만, 저 사람들 경찰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순찰차 한두 대 온다고 해서 조폭 무리를 한 번에 잡아가는 건 어려울 것이다.

“만약, 저들을 한곳에 몰아넣으면 그땐 경찰들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요.”

“그건 맞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걸로 하죠. 일단 구대춘과 저 무리를 자연스럽게 이득현 환자와 떨어뜨려 놓고 검사를 진행합시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신가요?”

김민교가 물어본 질문에 이득현도 답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태경을 쳐다봤다.

“아까 보니까 구대춘이 김민교 씨를 신뢰하는 것 같은데 그걸 이용해야죠. 지금 나가서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어떻게요?”

김민교는 태경의 설명을 들으며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했고, 그 의견에 동의했다.

“좋은 생각 같습니다. 그러면 전 바로 나갈게요. 큰형님 좀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민교야, 너도 몸조심해라.”

이득현은 나가려는 김민교에게 당부를 잊지 않았다.

“네, 큰형님.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몸만 생각하세요.”

“지금부터 나랑 임 선생님은 환자 기본 검사를 진행한 뒤, 내시경실로 환자를 옮기고 이 선생은 나가자마자 경찰에게 연락해서 여기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네, 선생님.”

“그리고 장 요원님은 팀장님과 오 선생과 함께 저들을 주시해 주세요. 혹시라도 환자들이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원장님.”

“무엇보다 현재 구대춘이 칼을 소지하고 있으니 조심하고, 가능한 그 사람과 조직원들 심기를 건드리지 마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바로바로 알리고요.”

“네, 원장님.”

“자! 빨리 이동하죠.”

태경의 지시가 끝나고 처치실에 모여 있던 의료진이 모두 밖으로 나갔다.

* * *

“그렇다니까. 여기 원장이 말했는데 이득현 상황이 안 좋대.”

그 시간, 구대춘은 거사를 앞두고 심각한 통화 중이었다.

-뭐라는데? 바로 뒤진대?

“바로 뒤질 것 같으면 병원까지 오지도 않고 집에서 뒤졌겠지. 일단 검사 진행한다고 했어.”

-검사? 검사는 무슨 검사야? 그렇게 시간 끌다 이득현 명줄 놓치면 어떡하려고?

“종구야, 너 나 못 믿냐? 기다려 봐. 병원에서 난잡하게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칼 휘두를 수 없잖아. 시발 괜히 잘못했다 의사라도 찌르는 날에는 그땐 존x 피곤해지는 거야.”

구대춘은 확실히 이득현을 살해할 심사였다.

“안 그래도 아까 원장이라는 놈이 눈에 불을 켜고 나가라고 지랄해서 당장 칼 꺼내는 건 오바야. 깔끔하게 이득현만 처리하면 돼. 지금 안에 민교가 판 짜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민교가 판 짜고 있어?

“그래.”

-민교라면 믿을 수 있지. 이득현 담글 때 민교도 배신한 거 알려줘라. 너는 예상했어도 민교가 배신한 거 알면 이득현 죽으면서도 억울할걸.

“알았으니까. 전화 끊고 가족들이나 감시 잘해. 거사 치르고 전화할게.”

-알았어. 거사 끝내고 조직 개편해서 우리가 시발 조직 제대로 먹어 보자.

주차장에서 구대춘이 전화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던 김민교가 다가왔다.

“형님?”

“어! 민교야. 넌 왜 나왔어?”

구대춘은 김민교를 보자마자 이득현을 두고 왜 나왔냐고 물었다.

“너 여기 있으면…….”

“잠시만요. 형님.”

뭔가 말하려던 구대춘을 막더니 근처에 서 있던 처치실에서 내보낸 동생을 불렀다.

“건식아, 나 형님이랑 이야기 좀 할 테니까 넌 애들한테 가 봐.”

“네, 형님. 알겠습니다.”

동생이 자리를 떠나자 김민교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건식이가 들으면 안 돼서 보냈습니다.”

“근데 너 영감 혼자 두고 여기 나오면 어떻게? 괜히 영감이 경찰에 연락이라도 그땐 우리 다 끝이야.”

“제가 떠봤는데,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습니다.”

“그래?”

“예, 큰형님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랑 작은형님은 믿으시잖아요. 지금 몸이 많이 힘드셔서 그런지 이런 쪽으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실 겁니다.”

“하긴! 내가 민교 널 믿는 만큼 영감이 날 믿기는 하지.”

구대춘은 김민교의 말을 믿고 있었다.

무식하고 주먹이 앞서는 저와 다른 조직원과 달리 김민교는 달랐다. 유일하게 대학까지 나온 머리도 좋고 똑똑한 부하였다.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전 머리로 먼저 해결책을 내놓는 동생이라 구대춘은 김민교를 상당히 신뢰했다.

“현재 큰형님이 검사받으러 가서 제가 핸드폰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니까 어디든 연락은 힘들 겁니다.”

구대춘이 자기 말을 믿게 하기 위해 김민교는 처치실에서 일부러 이득현의 핸드폰을 들고나왔다.

“잘했어. 민교야. 그런데 넌 무슨 아직도 큰형님 소리를 입에 달고 있냐? 곧 없어질 인간인데.”

“습관이 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여간에 넌 사람이 너무 예의가 발라.”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

“네. 원장 말로는 검사 후 입원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그때 거사를 치르면 좋을 거 같습니다. 형님 생각은 어떠세요?”

“입원? 영감 입원한대?”

“네, 형님. 제가 1인실로 부탁했습니다.”

“입원을 하고 게다가 1인실이라……. 영감은 아파서 빌빌대고 보는 사람도 없고 사람 하나 담그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네.”

구대춘은 칼이 들어 있는 상의를 손으로 툭툭 치며 눈빛을 번쩍거렸다.

그 눈빛 안에 이득현을 살해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

“민교야. 내 옆에 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영감 처리하고 내가 조직 먹으면 2인자 자리는 무조건 너다. 나만 믿어.”

구대춘의 표정은 이미 자신이 1인자가 된 듯 의기양양했다.

아파서 비실거리는 이득현을 기다렸다가 저세상으로 보내 버리기만 하면 되니 이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이득현을 처리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네, 형님 감사합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어디? 1인실로 가면 되는 건가?”

“아니요. 다른 환자가 퇴원 절차를 받고 정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영감이 현재 검사 중이니까 일단 애들이랑 다 같이 대기실에서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영감이 나오면 바로 같이 올라가면 될 거 같아요.”

“그래, 다른 사람 피까지 볼 필요가 없지. 들어가자.”

“네, 형님.”

김민교는 부디 구대춘이 마지막까지 눈치채지 못하길 바랐다.

“야! 모여 봐.”

구대춘은 한쪽에 모여 있는 조직원들은 불렀다.

“지금부터 큰형님 검사가 끝날 때까지 함께 대기실에 대기할 거니까 괜히 소란들 피우지 마라.”

“네, 형님. 걱정하지 마십쇼.”

“괜히 일반 사람들한테 시비 걸었다가 누가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그땐 피곤해 지니까 다들 명심해.”

“예! 명심하겠습니다.”

구대춘의 주의 사항에 이어 김민교 역시 조직원들이 말썽을 부리지 않도록 당부하며 병원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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