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 번째 바이탈-468화 (467/472)

468화. 진짜 주범

서울 광역수사대-

“저, 집에 보내 주세요.”

“형사님. 저도요. 우리 엄마랑 아빠가 기다리신다고요.”

늦은 시간 광역수사대는 잡혀 온 사람들도 시끄러웠다.

“저 찾는다니까요.”

“집 같은 소리 하네. 너 지금 경찰서에 잡혀 온 거야. 마약 하는 새끼가 잡혀 와 놓고는 무슨 집 타령이야. 그리고 깡통 넌 혼자 살면서 무슨 부모님을 팔고 있어. 싸가지 없이.”

광역수사대 팀장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남자 둘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너희! 누가 공급책이야? 길룡이지?”

“공급책은 무슨 공급책이요?”

“그러게. 그리고 길룡이는 누구예요? 난 처음 들어 보는데……. 깡통아 넌 길룡이가 누군지 아냐?”

“아니, 나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광수대 팀장 질문에 잡혀 온 남자 둘은 뻔뻔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야, 이 개놈의 새끼들이 지금 누구 앞에서 약을 팔고 있어? 너 이 새끼야 너 마약 누구한테 배달받았는지 빨리 말 안 해?”

마약 배달원으로 잡혀 온 남자 둘이 계속 깐족거리며 대답을 회피하자 광수대 팀장은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 새끼들이 지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잔대가리를 굴리고 있어! 야! 이, 뽕쟁이 새끼들 오늘 아주 너네 죽고 나도 죽어 보자.”

“팀장님!!”

서류철을 들고 앞에 앉아 있는 남자 둘을 때리려 하자 동료 형사들이 팀장을 말리기 시작했다.

“우리 팀장님 또 흥분하셨네. 고정하세요.”

“야!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냐? 일주일 야근에 밤새 쫓아다녀서 고작 운반책 애새끼들 둘 잡은 게 다인데 고정하게 생겼냐고?”

“진짜 뽕쟁이가 누군지 얘들 데리고 깊이 있는 대화 좀 해 볼게. 야! 일어나.”

“어휴! 속 터져.”

후배 형사들이 잡혀 온 남자들을 데리고 자리를 옮기자 팀장은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하나 쉽게 되는 일이 없어요. 쉽게!”

“팀장님?”

“왜 불러? 속 타 죽겠으니까 부르지 마.”

“그게 아니라 손님이 오셨는데요?”

“손님? 이 시간에 무슨 손님이야?”

손님이란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팀장은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남자를 보며 순식간에 표정을 밝혔다.

“안녕하세요. 수고들 많으십니다.”

“야! 김 경사?”

팀장이 반색하며 반긴 남자는 아동학대 사건 때 태경과 인연을 맺은 경찰 김 경사였다.

김 경사와 광수대 팀장은 선후배로 친한 사이였다.

“너 갑자기 이 시간에 웬일이야?”

“웬일은요. 선배님 보러 왔죠. 제가 아까 전화 안 받으셔서 메시지 남겼는데 못 보셨어요?”

김 경사는 팀장이 내어주는 의자에 앉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랬어? 오늘 하루 종일 약쟁이들 잡으러 돌아다녀서 볼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잡으셨어요?”

“잡기는 개뿔! 허탕만 쳤어. 배달원들 잔챙이 둘만 낚고 공급책은 이미 거주지를 날랐더라고. 커피 한잔할래?”

“커피 마실 시간 없어요.”

“그나저나 너 웬일이야? 왜 광수대 오려고?”

“전 광수대 싫습니다. 선배님, 건수 올려드리려고 왔죠.”

병원에서 경찰에 알리라고 했던 태경은 이찬희에게 친분이 있는 김 경사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이찬희는 곧장 김 경사에게 연락했고, 전후 사정을 전부 들었다.

김 경사는 광수대 팀장이 이쪽으로 수사를 많이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팀장을 찾아온 것이다.

“……건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선배, 흥돔파 애들 잘 아시죠?”

“잘 알지. 그 홍돔파 보스가 이득현이라고. 그 사람 빵에 넣은 게 우리 팀이잖아.”

몇 년 전, 몇 개의 조직들이 연루된 사건을 맡은 팀장은 다른 조직원과 함께 잘못을 저지른 이득현을 긴급체포했다.

그 당시 자기 협의를 대부분 인정하며 다른 조폭들의 정보까지 줬던 그는 모든 형을 마치고 나와 반년 전에 출소한 상태였다.

“이득현이는 나이도 들고 교도소 갔다 와서 정신 차리고 마음잡고 살려는 거 같은데, 거기 2인자 놈이 있어.”

“구대춘 말씀하시는 거죠?”

“어? 너도 알아? 그 새끼가 조폭 중에서도 좀 악질이라 지금 좀 주의 깊게 보고 있거든. 자세히 말은 못 하는데 들리는 소문도 있고 정보원들 말도 그렇고……. 근데 갑자기 건수 말하다가 홍돔파 이야기는 왜 꺼낸 거야?”

“그 2인자 구대춘 잡아가시라고요.”

“뭐!?”

갑자기 찾아와서 조폭 이야기를 하더니 광수대에서 주시하고 있는 구대춘을 잡아가라는 말에 팀장은 어리둥절했다.

“잡아가라니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구대춘이 이득현을 살해하려 한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뭐야! 이득혁을 죽이려고 한다고?”

“네, 병원에서 기회를 보고 있다고 김민교가 대신 경찰에 연락을 취해 달라 했다며 병원 의사가 연락해 왔어요.”

김 경사는 이찬희에게 들었던 모든 내용을 광수대 팀장에게 상세히 전달했다.

“그게 정말이야? 지금 홍돔파 애들이 병원에 있다는 거야?”

“네, 선배님. 우리 쪽 인력보다는 선배님께 연락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제가 급히 찾아왔어요.”

“잘했어. 구대춘 그 자식 그거 아주 무서운 놈이야. 야! 다들 모여 봐.”

상황 파악이 끝난 팀장은 광수대 팀원들을 소집해 출동 준비를 서둘렀다.

* * *

우리병원-

그 시각 구대춘을 포함한 홍돔파는 대기실에 있었고, 그 앞을 장득칠과 최 팀장, 오창규가 지키고 있었다.

한편 이득현은 기본 검사를 마치고 태경과 함께 다른 검사를 앞두고 있었다.

“환자분 기본 검사는 잘 받으셨고 지금부터 원장님께서 항문 검사를 진행하실 거예요.”

임정숙 간호사가 설명과 함께 이득현의 바지를 내리며 진료 준비를 했다.

“원장님, 준비됐습니다.”

“환자분 제가 항문 검사를 위해 손가락을 항문에 넣을 건데, 긴장하지 마시고 힘 빼세요.”

“네, 선생님.”

“후하고 숨을 내쉬어 보세요.”

“후!”

이득현을 숨을 내쉬며 항문에 힘을 빼자 태경이 손가락을 그의 항문으로 밀어 넣었다.

“잘하셨어요.”

손가락을 넣고 촉진해 보니 붉은색 피가 약간 묻어나왔다.

피라는 것은 출혈된 시간이 경과하면 검게 변한다. 따라서 출혈이 항문에서 가까울 것으로 생각하고 우선 대장내시경을 시행하기로 했다.

“환자분 지금 항문 검사는 끝났습니다. 아무래도 혈변의 자세한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대장내시경을 추가로 진행해야 할 거 같은데 괜찮으세요?”

“네, 선생님. 괜찮습니다. 그런데 혹시, 수면으로 할 수도 있나요? 그냥 하는 건 힘들 거 같아서요.”

“네, 수면으로 진행할 겁니다.”

이득현에게 의견을 물은 태경은 내시경을 수면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수면 마취 시 횡설수설하거나 환자가 거동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다.

가장 큰 문제점은 간혹 깊이 잠들어서 호흡을 느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자 손가락 끝에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계를 달고서 내시경을 진행한다.

태경은 임정숙 간호사에게 이득현의 심전도 검사와 대장내시경을 위한 다른 검사를 진행했다.

그 뒤, 검사를 마친 이득현이 내시경실로 들어왔다.

“자! 환자분 이제 대장내시경을 위한 수면 마취를 진행할 거예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네, 불편한 곳은 없습니다. 저기, 선생님. 제가 사실 나쁜 사람입니다.”

검사를 앞둔 이득현은 자기 몸 상태에 겁이 나는지 태경을 향해 갑자기 신세 한탄을 했다.

“젊어서부터 나쁜 짓을 일삼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얼마 전에 나왔어요. 이제는 남은 인생 새 사람으로 살아 볼까 했는데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밑에 있는 놈은 죽이려고 병원까지 따라오고 몸은 안 좋고 아무래도 제가 벌을 받나 봅니다.”

“환자분, 아직 검사 전이라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니까 벌써부터 걱정하지 마세요.”

“네, 선생님. 모쪼록 검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마취 시작합니다.”

그 말과 함께 마취액이 정맥을 통해 들어가고 이득현의 눈이 감겼다.

“내시경 시작합니다.”

태경이 항문을 통해 내시경을 집어넣었다.

굽어 있는 대장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옆에 있는 임정숙 간호사와 의료진이 배를 눌러 주거나 환자의 자세를 바꿔 준다.

화면으로 장을 보니 이득현의 대장 안에 염증이 심한 상태였다.

처음에 들어가면서 대장 벽에서 혈관이 굵어져서 보이더니 올라갈수록 점점 더 염증이 심해진다.

왼쪽 상복부에서 대장이 한번 굽어지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염증 소견이 절정에 달해서 대장 벽이 붉게 부어 있었다.

그 모양이 괴상해서 생검을 해 보기로 했다.

“넣어 주세요.”

태경의 말에 따라 생검을 위한 집게가 내시경 카메라 주변의 얇은 관으로 길게 들어간다.

곧이어 집게 끝을 카메라로 보면서 생검하고자 하는 부위에 집게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집게를 물리고 간호사에게 신호를 주면 간호사가 빠르게 잡아 뜯으면서 끄집어낸다.

생검한 검체를 통에 담고서 다시 내시경으로 환자의 대장 안을 살핀다.

그 굽어진 곳을 지나치니 다시 대장이 깨끗하다.

생검의 결과가 나와 봐야 확실하겠지만, 태경은 스텐트를 했던 환자의 과거력, 나이 그리고 굽어진 곳을 절정으로 이후에는 염증 증세가 없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허혈성 대장염으로 의심했다.

사실 이 병은 혈변을 야기하지만, 수액과 침상 안전 그리고 염증을 가라앉게 하는 거 말고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그만큼 중한 병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혈변이 환자의 심적 부담감을 준다는 것 때문에 많이들 걱정하고는 한다.

대장에 공급하는 혈관이 살짝 좁아진 것으로 심장의 스텐트를 넣은 이유와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어쨌든 환자가 심한 병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시경 끝났습니다. 환자 회복실로 안내해 주세요. 혹시 모르니까 환자 곁에 의료진 함께 있어 주세요. 그리고 경찰들 온 다음에 대기실 상황 정리되면 그때 입원실로 옮기는 거로 하죠.”

“네, 원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득현은 하루 이틀 정도 입원 치료를 할 생각이지만, 바로 병동으로 올라가지는 않기로 했다.

병동에는 다른 환자들도 많기 때문에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게 되면 다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득현은 회복실에서 대기했다 구대춘과 조폭들이 정리되면 그때 병동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득현 환자가 내시경실을 나가고 태경은 잠시 진료실로 들어가 그의 기본 검사를 확인했다.

모니터에 결과를 클릭하자 예상했던 대로 크게 문제 되는 곳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득현 본인이 걱정하고 태경 또한 걱정했던 혈변은 큰 병이 아니었다.

그 말은 이득현이 아니라는 소리다.

다시 말해 처치실에서 코를 찌르고 눈까지 아리게 만들며 지독하다 못해 악랄한 느낌마저 들었던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

그 냄새의 주인공이 이득현에게서 나는 게 아니었다.

사실 태경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처치실에 있는 동안 다섯 번째 바이탈의 주인공이 당연히 높은 확률로 이득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주인공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냄새의 진짜 주범은 처치실에 있던 조폭 삼인방 중 한 명인 구대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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