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진짜 악질 중의 악질
그 냄새의 진짜 주범은 처치실에 있던 조폭 삼인방 중 한 명인 구대춘이었다.
조금 전, 그러니까 이득현의 검사를 위해 태경은 처치실에 있는 조폭들에게 모두 나가 달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 구대춘은 반발하며 날 선 반응을 보였고, 같은 조폭 일원인 김민교가 그를 제지하며 밖으로 내보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태경은 김민교와 의료진이 연속해서 부를 때까지 벙찐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다들 그 상황 자체 때문에 태경이 놀란 건가 싶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태경이 놀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독하다 못해 악독하기까지 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다섯 번째 바이탈의 주인공이 구대춘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다섯 번째 바이탈을 인지하면 대체로 누구한테서 냄새가 나는지 알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누가 그 냄새의 주인공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독하고 아무래도 처치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평소처럼 냄새가 누구의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혈변으로 병원에 온 이득현이 높은 확률로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구대춘이 처치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마치 다섯 번째 바이탈 냄새 분자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처치실 안에 터질 것처럼 들어찼던 5단계 냄새들이 다른 때처럼 하수구 구멍으로 빠지듯이 순식간에 냄새가 빠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 독한 냄새는 남아 있었지만, 강도가 달랐다.
구대춘이 나가니 그 강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처치실에 남아 있던 김민교도 다른 조폭도 아닌 구대춘의 냄새였다.
“하!”
태경의 잇새로 어이없는 웃음이 짧게 터졌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기에 뭔가 좀 황당했다.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는 이득현은 오히려 가벼운 증상이었다.
반면 이득현을 처치하고 조직을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운 구대춘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였다.
이득현 차트에 기록을 마친 태경은 김 경사로부터 전화가 들어와 간단히 통화한 후 응급실로 향했다.
“선생님?”
스테이션으로 향하자 이찬희가 옆으로 다가왔다.
“김 경사님과 통화했는데, 지금 오시는 중이고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도착하면 선생님 핸드폰으로 전화 올 겁니다.”
“그래, 수고했어.”
“이득현 환자 어떻게 됐어요?”
“큰 병은 아니고 허혈성 대장염이야.”
“그래요? 혈변에 나이도 들고 기력이 너무 없어 보여서 안 좋으며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그러게. 이득현 환자는 다행이고 다른 환자는 안 다행이고…….”
“네?!”
태경이 작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이찬희가 물었지만, 태경은 답하지 않았다.
“아니야. 이 선생은 최 선생이랑 여기 좀 있어. 응급 오면 콜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디 가시게요? 병동 올라가세요?”
“아니. 대기실 좀 가 보려고.”
“대기실이라면…….”
잠시 생각하던 이찬희는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설마, 구대춘이랑 조폭들 있는 그 대기실이요?”
“어, 그 대기실 맞아.”
“아니, 거길 왜 가세요.”
“맞습니다. 거기 가지 마세요. 그 사람들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환자를 보고 돌아온 최모나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 태경을 말렸다.
“그건 최 선생 말이 맞아요. 김 경사님 말 들어 보니까 그 사람 정말 무서운 사람이더라고요. 곧 경찰들 올 텐데 그분들에게 맡기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잠깐 들어갔다 나올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태경은 걱정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응급실을 나왔다.
이찬희도 최모나도 위험하다며 가지 말라고 했다.
태경도 대기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조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사는 사람인데 얼마나 무섭겠는가.
특히 구대춘이라는 사람은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조금 전, 진료실에서 김 경사와 통화할 때 태경 역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원장님, 괜찮으세요? 그 녀석들 환자 괴롭히거나 소란 피우지는 않았고요?’
‘네, 아직은 별문제 없어요. 현재 이득현과 분리해서 대기실에 몰아 둔 상태입니다.’
‘잘하셨어요. 정말 잘하신 겁니다. 원장님, 구대춘 그놈 상당히 위험한 인물입니다. 분노 조절 잘 안 되고 조폭으로 사는 걸 무슨 훈장처럼 여기고 사는 놈이라고 하니까 원장님과 의료진 모두 조심하세요. 가능하면 자극하지 말고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 경사는 의료진과 환자들이 걱정돼 신신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어진 구대춘의 관한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홍돔파가 활동하는 특정 지역에서 구대춘은 성매매와 불법 사채를 기반으로 조직원들과 활동한다고 했다.
특히 외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중간에 브로커를 두고 현지에서 한국으로 오는 방법을 알선하며 구대춘이 조직원과 함께 여자들을 인계받았다.
그 뒤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거짓말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했다.
그렇게 여자들을 데리고 원정까지 뛰었고 그 사건으로 교도소까지 갔다 왔다고 전했다.
출소 후, 그쪽은 손을 씻은 듯 보이지만 다른 쪽으로 제보가 들어와 형사들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이나 사고가 생기면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그걸 접한다. 하지만 모든 사건, 사고가 언론에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구대춘에 관해 이야기할 게 더 많지만, 김 경사는 말을 아끼며 조심하라고만 전했다.
아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저, 나쁜 놈은 아프지도 않고 건강하냐고. 저런 놈이 아파서 힘들어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구대춘 때문에 정신없던 와중에 어느 직원이 한 말이었다.
병원에서 소리를 높이고 의료진에게 협조하지 않고 제멋대로 구니 화가 나서 한 말인데 진짜가 돼 버렸다.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 진짜 나쁜 상황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본인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오직 태경만이 알고 있었다.
예전에 의국실에서 몇몇 의료진이 모여 이야기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진짜 악질 중의 악질인 흉악범이 병원에 뛰어 들어왔는데 이 사람이 아픈 걸 알게 된다면 그때, 진료해 줄 거야?’
마취 담당 이동훈이 한 말이었다.
전날, 해외 뉴스에서 봤다면서 약에 취해 동네 주민을 살해하다 다친 범인이 병원에 뛰어 들어온 것이다.
목숨이 달린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의료진은 그의 진료를 거부했고, 나이 지긋한 의사가 직원들을 대신해 진료하다 숨을 거뒀다고 했다.
‘어려운데요?’
‘솔직히 무서워서 못 할 거 같아요.’
‘그런 나쁜 사람이라면 전 안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의사도 사람이니까. 칼 들고 설치는 사람을 진료하는 게 무섭지.’
대부분 의료진은 못 할 거 같다고 했다. 의사도 사람이라 이런 상황에서 무서운 건 사실이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걸 뭘 물어. 인간 김태경이 어떤 사람인데, 흉악범이 총을 들고 있어도 진료 봐 줬을걸.’
이찬희의 질문에 이동훈이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 대신 답했다. 태경은 별다른 말 없이 웃어넘겼다.
그때는 크게 생각해 보지 않고 웃어넘겼는데, 지금 대기실로 향하는 자신을 보며 이동훈의 대답이 정확하구나 싶었다.
사실 구대춘은 우리병원에 환자로 온 것도 아니고, 대놓고 사람을 죽이려고 온 나쁜 놈이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나쁜 짓도 서슴없이 일삼고 있는 그런 작자다.
누군가에게 구대춘은 인간쓰레기일 것이고 어쩌면 그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이기도 했다.
태경은 지금 그런 그에게 가서 아픈 곳이 없는지,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러 가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의사이기 때문이다.
아픔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오직 자신만 맡을 수 있는 구대춘의 냄새를 맡았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의사로서 선서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환자의 종교나, 국적이나, 종족이나, 정당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 관계 없이 그들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한마디로 아주 간단히 풀자면 의사는 환자가 누구든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겠다는 그런 뜻이다.
의사 앞에서는 나쁜 사람도 착한 사람도 그저, 한낱 환자이기 때문에 똑같이 진료해야 한다는 게 의사로서 태경의 신념이다.
목숨을 살리는 사람이라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머리로는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그가 저지른 죄의 심판은 경찰과 법이 판단할 일이지 자신이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원장님?”
대기실 앞을 지키고 있던 최 팀장과 장득칠 그리고 오창규가 다가오는 태경을 불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전할 말이 있어서요.”
“조폭…….”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던 최 팀장이 입을 틀어막으며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조폭 놈들한테 할 말이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팀장님 말이 맞습니다. 아까 처치실에서도 난리 친 거 보셨잖아요. 괜히 들어가셨다가 저놈들이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그냥 들어가지 마세요.”
“저도 두 분이랑 생각이 같아요.”
세 사람 모두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말렸지만, 태경은 괜찮다는 말과 함께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대기실 안에는 오직 조직원만 있었다.
이들을 대기실로 안내하기 전에 기존에 있던 다른 환자 보호자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
태경은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다 잠시 주춤했다.
걸어오는 내내 복도에 흩날리던 독한 냄새와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처치실에서 그렇게 냄새를 맡았어도 쉽게 적응되지 않은 냄새였다.
“원장님께서 여긴 왜……?”
대기실 안으로 들어온 태경을 보고 김민교가 예상 못 했다는 표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형사들이 올 때까지 의료진은 이곳에 들어오지 않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일이 잘못된 건가요?”
가까이 다가온 김민교는 계획했던 일이 틀어진 건 아닌지 태경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잠시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어! 뭐야? 원장님이 다 오셨네?”
저쪽에서 조직원과 대화하던 구대춘이 태경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큰형님 어떻게 됐는지 내가 몹시 궁금해하던 찰나에 마침 잘 오셨네.”
“이득현 환자는 마지막 검사를 앞두고 있고, 결과는 내일 오전이나 오후에 나올 예정이에요.”
모든 검사는 끝났지만, 일부러 아직 검사가 남았다고 했다.
괜히 검사가 끝났다고 했다가 조폭들이 이득현에게 갈 수도 있었기에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모든 검사가 마무리되면 그때 입원실로 이동할 겁니다.”
“젠장! 하여간에 병원이나 어디나 일하는 거 보면 느려 터졌다니까. 그래서 검사는 언제 끝나는데?”
아직 검사가 남았다는 말에 구대춘은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좀 기다리세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니까 좀 빨리 좀 해 줘. 원장님, 제가 부탁합니다. 예?”
태경은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구대춘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어이, 원장 양반?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먹었냐고요?”
“구대춘 씨?”
그를 빤히 보고 있던 태경이 입을 열었다.
“혹시 어디 아픈 곳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