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누굴 병자 취급하나
“혹시 어디 아픈 곳 없어요?”
“아픈 곳? 뭐야, 어이 원장 씨? 설마 지금 나한테 아픈 곳 없는 건지 물은 건가?”
구대춘은 갑자기 아픈 곳은 없는지 묻는 태경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설마 구대춘 씨한테 묻고 있는 거 맞아요.”
참 신기하다.
불과 아까 전까지만 해도 태경은 눈앞의 이 남자가, 조폭에 전과도 있고 사람을 죽이기 위해 칼을 품고 있는 이 남자가 무서웠다.
하지만 다섯 번째 바이탈이 이 남자의 것이라는 걸 확신한 뒤 태경은 구대춘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불쌍했다.
“원장님이 보기에는 내가 아픈 사람처럼 보입니까? 내가 힘은 또 얼마나 장사인데. 안 그러냐?”
“작은형님은 힘이 장사가 아니라 괴물이시죠.”
“대춘이 형님, 어릴 때 운동하셔서 힘이 장난이 아니잖아.”
구대춘은 마치 뭐라도 되는 사람처럼 자신의 건강을 강조하며 과시했다.
주변에 있던 조직원들은 그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 엄지를 추켜세우며 힘을 실어 줬다.
무슨 원숭이 떼 사이에서 왕 노릇을 하는 침팬지를 보는 거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태경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건강을 자랑하는 사람을 뽑을 것이다.
건강을 자랑하는 것만큼 미련한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감기 빼놓고는 아파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아픈 게 뭔지 몰라.”
계속해서 건강하다며 으스대는 구대춘을 보며 태경은 그래, 저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동안 어디가 아프거나 몸에 이상이 있다면 병원을 오고도 남았을 텐데, 아무 증상이 없으니 저렇게 건강을 자신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구대춘 씨, 살면서 건강검진 받아 본 적 있어요?”
“건강검진? 없는데. 건강한데 그딴 걸 왜 받아.”
“건강한 사람도 건강검진은 때 되면 다들 받아요. 그리고 건강 그렇게 자신하는 거 아닙니다.”
“그딴 말은 의사들이 돈 벌라고 하는 말이지 나 같은 사람한테는 필요 없는 말이라서 들을 것도 없어.”
구대춘의 말대로 그는 정말 태경이 하는 말을 눈곱만큼도 귀담아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밥 잘 먹어요? 혹시 소화가 안 되거나 불편한 곳 없나요? 대변 소변에 이상이 있거나 평소와 다르게 몸에 다른 점은요?”
“아니, 누굴 병자 취급하나. 이 양반 이거 왜 이래?”
태경의 집요한 질문에 구대춘의 얼굴에는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봐! 원장 씨, 나 건강하다고. 어! 멀쩡한 사람한테 자꾸 지랄이야. 아까 보니까 실력 있는 의사라고 하더니 이거 순 돌팔이 아니야.”
“돌팔이 맞는 거 같습니다. 형님.”
“그러게 말이다. 우리 큰형님 괜찮으시려나 모르겠네.”
급기야 구대춘은 태경을 향해 돌팔이라는 말을 하며 크게 웃었다.
몇몇 조직원이 따라 웃으며 비아냥거렸지만, 태경은 저들의 말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의사가 이 정도로 말하면 보통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의 건강 상태를 생각하며 찝찝해서라도 검사를 받아 보려 할 거다.
하지만, 구대춘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오롯이 이득현을 살해하려는 계획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독한 냄새를 본인이 맡을 수 있다면 저렇게 웃고 있을 수 없을 텐데 싶었다.
‘뭘까?’
태경은 구대춘의 병명이 뭘까 생각했다.
눈앞의 남자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다 보니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암이지 않을까 싶었다.
‘췌장? 담낭? 아니면 담도?’
보통 증상이 없고 발견돼도 예후가 좋지 않은 장기를 떠올렸다.
물론 위에 나열한 장기가 아니더라도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 구대춘이 이런 병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었다.
그저, 본인 스스로 건강하고 아픈 곳이 없다고 하니 병이 생겼을 때 가장 안 좋을 곳이 먼저 생각난 것뿐이다.
“구대춘 씨, 날 돌팔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어떻게 생각해도 좋으니까 지금 여기 우리병원 아니더라도 꼭 한번 병원 가 봐요.”
“아니, 이 사람이 왜 아까부터 자꾸 멀쩡한 사람 병신을 만들고 난리야. 어! 이런 거 다 과잉 진료인 거 몰라? 네가 병원 원장이면 다…….”
계속된 설득에 기어코 기분이 상한 구대춘이 버럭 화를 내지르려던 그때였다.
“야!”
대기실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간결한 호흡과 함께 누군가 소리쳤다.
“어이! 구대춘이?”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조금 전, 경찰서에서 출동한 광수대 팀장이었다.
“……!”
깡패들은 한번 본 경찰은 절대 안 잊어버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미 구면인 구대춘은 팀장을 보자마자 대번에 알아봤다.
‘씨x! 저 팀장 놈이 여긴 왜 온 거야? 설마 아니겠지.’
구대춘은 속으로 초조함을 감추며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게 굴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광수대 오 팀장님 아니세요?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세요? 설마! 범인 잡다 칼 맞아서 온 건 아니시죠? 아니면 총 맞으셨나?”
“그래? 하! 이 새끼들 쳐 웃고 떠들고 있네. 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떠들어 봐.”
아무것도 모르는 구대춘과 조직원들이 웃자 함께 웃던 팀장이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 시간, 그것도 서울 시내 하고많은 병원 중에 여기, 이 병원에 왜 왔을까? 어!”
“아니, 팀장님? 한 다리만 건너면 누가 사는지 다 아는 게 좁은 대한민국입니다. 고작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거 갖고 너무 뭐라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고작? 야! 구대춘이? 너 조직원 애들 다 끌고 이 시간에 병원에 왜 있어?”
“우리 큰형님께서 곧 죽을 것처럼 아파서 애들이랑 모시고 왔습니다. 그게 그렇게 잘못입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병원도 마음대로 못 다닙니까? 그렇게 못 믿겠으면 여기, 이 사람이 병원 원장님이니까 직접 물어보시든가.”
“병원 원장님 되십니까?”
광수대 팀장이 태경을 보며 물었다.
“네, 우리병원 원장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저 사람 말대로 여기, 이득현이라는 환자가 치료받고 있나요?”
“네, 맞습니다.”
그때 태경의 핸드폰이 울렸다.
-원장님, 저 김 경사입니다.
발신자는 김 경사였다.
광수대 사람들과 함께 병원에 온 김 경사는 태경이 대기실 안에 있다는 말에 얼른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께서 나오셔야 진압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환자 전화를 받은 것처럼 행동하시면서 밖으로 나오세요.
“환자요? 바로 갈게요.”
태경은 김 경사가 시키는 대로 아주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으며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구대춘? 내가 너 여기 왜 온 건지 모를 거 같아?”
태경이 대기실을 나가자 팀장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우리 큰형님 아파서 왔다니까 자꾸 왜 그러세요.”
“그래, 이득현 때문에 온 건 나도 아는데 너 걱정돼서 온 거 아니잖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무슨 말을 하긴. 너, 이득현 죽이려고 왔잖아. 내 말이 틀려?”
“……!”
순간 정적이 흐르고 깜짝 놀란 구대춘과 함께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쌍!”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구대춘이 재킷 안에서 회칼을 꺼내려 하던 그때였다.
탁-
그 순간, 열댓 명의 광수대 팀원인 형사들이 우르르 들어왔고, 빠르게 뛰어든 팀원이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자 구대춘이 꺼내든 칼을 가격해 바닥에 떨어뜨렸다.
떨어진 칼은 형사들이 재빨리 수거했다.
“다들! 가만히 있어!”
광수대 팀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몰려온 형사들을 본 조직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것들이 지금 어디 환자들 고치는 병원을 살해 현장으로 만들려고 해! 어! 쌍놈의 새끼들이 쳐 돌았나. 얘들아, 빨리 이놈들 데려가자.”
“네, 팀장님.”
형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조직원들 손목에 수갑을 채워 한 명씩 병원 밖에 대기하고 있는 승합차로 연행했다.
“살해 현장이라니 전 모르는 일입니다.”
“저도예요. 전, 큰형님 아파서 같이 온 것뿐이라고요.”
조직원들은 처음 듣는 소리에 끌려나가는 내내 억울하다며 소리쳤다.
“경찰서 가서 이야기해. 가서 죄 없는 사람은 풀려나고 죄 있는 사람은 벌 받으면 되니까 조용히 나가자.”
“형사님, 저희는 아무것도 몰랐다니까요.”
“시끄러워. 이 새끼야! 얼른 나가!”
밑에 부하들이 나가고 김민교와 구대춘이 대기실에 남았다.
“시발!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알았습니까?”
수갑을 찬 구대춘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말이 새어 나갈까 봐 이득현을 담그기 직전까지 조직원들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계획이 틀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말했습니다.”
형사와 함께 나가려던 김민교가 팀장 대신 말했다.
“뭐라고!? 민교 네가 형사들한테 말했단 말이야.”
“네, 제가 했습니다.”
65세 홍돔파를 이끌고 있던 이득현은 출소한 후, 조용히 살라고 했다.
교도소 안에서 인품 좋은 목사님을 만나 죄를 뉘우치고 지난 삶을 반성하며 이 생활을 청산하겠다고 다짐했다.
구대춘을 포함한 조직원들이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조직원들에게 이 생활을 청산하고 땀 흘려 일하자며 합당한 일을 계획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구대춘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서 뒤에서 계속 안 좋은 일을 벌였다.
이득현은 그때마다 막았고, 화가 난 구대춘은 그를 죽이려고 집에 찾아갔다.
마침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가려던 이득현을 보며 구대춘은 그의 가족들에게 동생들과 본인이 모신다며 병원까지 데려온 것이다.
이득현은 본능적으로 구대춘이 자신을 죽이겠다는 걸 느꼈지만, 가족들이 다칠까 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까 처치실에서 태경과 이찬희에게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지금쯤 큰형님 집에서 지키고 있던 김종구 일당도 전부 잡혀갔을 겁니다.”
김종구는 구대춘이 병원 밖에서 통화했던 인물로 조금 전까지 이득현의 가족들을 붙잡고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우리가 할 말은 이 친구가 다 하네.”
팀장이 놀리듯이 구대춘을 보며 말했다.
“왜! 그랬어? 이 새끼야 네가 널 얼마나 아꼈는데?”
“아끼는 건 큰형님이 더 아꼈지. 이유는 큰형님이랑 같아.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고 더 이상 네가 나쁜 짓 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정신 차려야지.”
“야! 이 개x끼야!! 네가 날 배신해! 너, 내가 죽인다.”
“죽이긴 뭘 죽여. 시끄러운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나가!”
김민교의 말을 들은 구대춘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다 팀장 손에 이끌려 병원을 나갔다.
“원장님? 괜찮으세요?”
한바탕 소란스럽던 상황이 정리되고 김 경사가 태경에게 다가갔다.
“네, 괜찮습니다. 늦은 시간 직접 와 주시고 감사해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원장님 덕분에 살인도 막았는데 감사는 경찰인 우리가 해야죠.”
“그런데 구대춘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단 경찰서에 데려가서 조사하고 혐의가 밝혀지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혹시 조사받다가 아프면요?”
“꾀병으로 아프다는 핑계를 대는 놈들은 무시가 답이고 진짜 아픈 사람은 경찰이 동행해서 병원에 데려가죠.”
“김 경사님. 죄송하지만, 구대춘에게 한마디만 할 수 있을까요? 부탁드릴게요.”
아까도 계속 구대춘에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태경은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정말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다.
“구대춘에게요?”
“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김 경사는 평소 태경의 성격을 잘 알고 그가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 또한 알았기에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