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두 번째 삶
“팀장님, 잠시만요!”
주차장으로 나온 김 경사는 승합차에 조직원들을 태우며 통솔하고 있는 팀장을 불렀다.
“어! 김 경사.”
“병원 원장님께서 구대춘에게 잠시 할 말이 있다는데 잠깐 괜찮을까요?”
“병원 원장님이?”
“네.”
의사가 조폭이자 살인 미수범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싶은 팀장이 태경을 슬쩍 쳐다봤다.
“원장님, 오늘 구대춘 처음 보신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오늘 응급실에서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중요한 업무 중에 죄송하지만, 의사로서 지나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짧게 말할게요.”
광수대 팀장은 우리병원에 오는 동안 김 경사로부터 태경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로서 실력은 물론이고, 인성도 좋고 환자를 생각하는 진짜 의사라고 들었다.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확실히 뭔가 좀 달라 보였다.
게다가 훤칠한 인상과 중저음의 목소리가 사람을 더 신뢰하게 만드는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태경 덕분에 골치 아픈 구대춘을 편하게 잡았으니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다.
“선배?”
김 경사가 태경을 위아래로 빤히 보고 있는 팀장을 재촉하듯 불렀다.
“알았어. 안 그래도 이야기하시라고 하려고 했어. 말씀하세요. 대신, 위험하니까 따로 단둘이 이야기하는 건 안 되고 여기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럼요. 따로 이야기할 정도로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고 형사님들 계셔도 상관없습니다.”
“고 형사, 구대춘이 좀 잠깐 데려와 봐.”
잠시 뒤, 승합차에 타고 있던 구대춘이 형사 두 명에게 팔을 붙들린 채 밖으로 나왔다.
“차에 태웠다 내렸다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시끄럽고 여기, 의사 선생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니까 입 다물고 듣고 있어.”
“구대춘 씨?”
“뭐! 아니 아까부터 왜 자꾸 날 보자는 거야. 악!”
“이 새끼가 싸가지 없이 어디 의사 선생님께 반말지거리야.”
팀장이 구대춘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눈을 흘겼다.
“공손하게 말해.”
“알았으니까 때리지 말고 이야기해요. 할 말이 뭡니까?”
“구대춘 씨, 내 이야기 장난으로 듣지 말고 새겨들어요. 앞으로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안 좋으면 형사님한테 이야기해서 병원 꼭 가도록 해요. 알았어요?”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귀찮게 왜 자꾸 난리야.”
태경은 진지한 눈빛과 말투로 눈앞에 죽어 가는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구대춘은 마지막까지 심드렁한 태도로 귀찮게 반응했다.
결국 구대춘은 태경의 말을 한 뒤로 듣고 흘렸고 형사들과 승합차에 탑승했다.
그 뒤 팀장은 태경에게 조폭들을 잡을 수 있게 협조해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며 병원 주차장을 떠났다.
지독한 냄새, 죽음이 곧 다가왔음을 알리는 시체가 썩는 냄새.
사방이 뻥 뚫린 주차장에서도 코를 유린하는 다섯 번째 바이탈 5단계는 그렇게 구대춘이 탄 승합차 뒤를 따라 나갔다.
한 달, 두 달? 아니면 그보다 더?
태경 역시, 저 남자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의사로서 진료를 보라고 했고, 아프면 병원에 가라고까지 했지만 구대춘은 끝까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마도 구대춘은 자기 병을 모른 채 죽어 갈 확률이 높을 것이다.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는 나쁜 사람인 건 분명하지만, 자신이 죽어 가는지도 모르는 저 남자가 한편으로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사람들을 괴롭혀서 벌을 받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장님?”
한참을 승합차가 나간 곳을 바라보고 있던 태경을 김 경사가 불렀다.
“어디 아픈가요?”
“……?”
“구대춘이요.”
의아해하는 태경의 표정을 보며 김 경사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까 대기실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표정이 너무 진지하셔서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던데 구대춘이 많이 안 좋은 가 해서요.”
“의사의 촉이죠.”
태경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본인이 아픔의 냄새를 맡고 있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아, 촉!”
“제가 너무 애매하게 이야기했죠?”
“아니요. 전, 원장님께서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 하신 건지 이해합니다. 뭐랄까? 저도 약간 그런 게 있거든요.”
“촉이요?”
“네, 범인들 잡으러 다닐 때 보면 그냥 얼굴만 보면 아, 저놈이 범인이구나 하는 그런 경찰의 촉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요? 저는 좀 어떤가요?”
“가만 보자. 우리 원장님은 뭐,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무조건 정해져 있죠.”
“그게 뭔데요?”
“뭐긴요. 당연히 환자를 고칠 의사라는 말이죠. 원장님은 얼굴에 그냥 ‘나 의사요.’라고 쓰여 있습니다.”
김 경사의 말에 태경은 웃음을 터트리며 병원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커피 한잔을 하며 간단히 대화를 이어 간 뒤, 김 경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수고하셨어요.”
“수고는요. 무슨. 그나저나 원장님 그때 저랑 한 약속 잊지 않으셨죠?”
“약속이요?”
“참나! 이러시면 저 섭섭합니다. 제 조카 부탁으로 학교에서 강의해 주시기로 하신 건 말입니다.”
“알고 있어요. 일부러 모른 척 좀 해 봤습니다.”
“안 그렇게 생기셔서 가만 보면 은근히 장난을 잘 치신다니까. 이만 갑니다. 전 이만 가 볼게요.”
“운전 조심하세요.”
태경은 김 경사가 병원을 나간 뒤, 병동으로 자리를 옮긴 이득현에게 향했다.
드르륵-
“좀 괜찮으세요?”
병실 안에서 뉴스를 보고 있던 이득현이 급하게 TV를 끄며 상체를 일으켰다.
“괜찮습니다. 수면 마취약 때문인지 얼마 잠들지도 않았는데 개운하네요.”
“내일, 형사분이 구대춘 일로 몇 가지 질문하러 온다고 했어요.”
이득현이 수면 마취를 했기 때문에 질의응답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내일 경찰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네, 형사님이 보낸 문자 받았습니다.”
“내시경 결과는 허혈성 대장염이라고 대장에 염증이 심해서 그것 때문에 혈변을 본 거예요. 부어 있는 곳을 살짝 떼어서 자세한 검사를 맡겼지만, 결과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원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장님과 병원 분들이 제 목숨을 살려 주셨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크게 한 일이 없는데요.”
“무슨 말씀이세요. 원장님 아니었으면, 전 여기 이렇게 있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득현은 농담이 아니라 태경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꼼짝없이 죽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반 사람이 조폭을 상대로 강단 있게 말한다는 자체가 사실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많이 고마웠다.
“치료 잘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전, 오늘 죽었다 살아난 거나 진배없습니다. 두 번째 삶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 겁니다.”
“아직 치료 중이니까 그 인사는 퇴원하실 때 받을게요. 그리고 제가 이런 말 드리기는 뭐 하지만, 환자분 말대로 두 번째 삶이니 나쁜 사람 말고 평범한 사람으로 좋은 일 하면서 살아가길 바랄게요.”
“그럼요. 물론입니다. 원장님. 전 이제부터 남은 인생 사회봉사 하면서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 겁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본인이 가진 천성을 바꾸기 힘들다는 말이다.
조폭이었던 이득현이 방금 한 말처럼 그렇게 봉사하며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출소 후 나쁜 짓을 일삼는 구대춘을 막았고 처치실에서 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눈빛만큼은 그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태경은 이득현이 과거보다 더 남은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응원했다.
“가족분들 오시고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 주세요.”
“네, 원장님 감사합니다.”
“그럼, 전 내일 회진 때 뵐게요.”
자칫 누군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조폭 소동은 다치는 사람 없이 잘 마무리됐다.
의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태경은 오늘따라 그 사실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별일 없죠?”
“네, 원장님.”
태경은 병동 스테이션 간호사와 대화 후 언제나 그렇듯 환자를 보기 위해 응급실로 내려갔다.
* * *
어느 아파트-
하얀색 승용차를 지상 주차장에 주차한 여자가 시동을 끄고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뒷좌석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긴 하지만, 말을 너무 안 듣는 쌍둥이 아들이 앉아 있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들, 보고 있는 거 그만 꺼야지. 아까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했지?”
“…….”
“유준현! 유준혁!”
“…….”
엄마가 이름에 성까지 붙여 말했다는 건, 심기가 좋지 않다는 거였다. 그런데도 두 아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일곱 살이 된 쌍둥이 아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쉽게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너희 둘 다 이럴 거야?”
“아! 엄마!”
“아! 엄마!”
급기야 엄마는 쌍둥이가 보고 있던 태블릿 PC를 뺏어 전원을 꺼 버렸다.
그러자 쌍둥이는 동시에 합창하며 똑같은 표정으로 엄마를 불렀다.
“갑자기 끄면 어떡해?”
“조금만 있으면 다 끝나는데 엄마 너무해.”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서운한데? 엄마가 아까부터 끄라고 했고, 너희들 이름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고 영상만 보고 있는데 엄마가 너무한 거 맞아?”
“아니. 준현이가 너무한 거야.”
“아니거든. 준혁이가 너무했거든.”
“난, 아닌데?”
“나도 아닌데?”
1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는 서로에게 가장 친구이자 가장 미운 친구이기도 했다.
사이가 좋을 때는 서로 사랑이 넘치지만 한 번 장난하다 누군가 삐지면 남보다 더 못하게 씩씩대며 싸우기 바빴다.
“알았으니까 둘 다 그만하고. 자꾸 그러면 엄마 화날 거 같은데 계속할 거야?”
“아니요.”
“아니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집에서처럼 우당탕탕 놀지 말고.”
“밑에 집 시끄럽게 뛰어다니지 말고.”
“마지막.”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듣기.”
“그래, 잘했어. 엄마랑 약속할 수 있지?”
“당연하지.”
“우리만 믿어.”
동시에 엄지를 올리며 따봉 하는 쌍둥이를 보며 엄마는 웃음이 터졌다.
“그래, 엄마는 우리 아들들 믿지. 가방 챙겨서 올라갈까?”
“네.”
쌍둥이는 엄마와 함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집으로 올라갔다.
“할머니!! 준현이 왔어요.”
“할아버지!! 준혁이도 왔어요.”
“아이고! 내 강아지들.”
“우리 강아지들 어서 와라.”
집에 도착하자 쌍둥이를 본 조부모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우리 준현이랑 준혁이 저번 주에 볼 때보다 더 잘생겨지고 더 멋있어졌네.”
외할머니는 한 명씩 볼을 쓰다듬으며 애정을 드러냈다.
“아니에요. 할머니. 틀렸어요. 저, 준현이 아니에요. 준혁이에요.”
“제가 준현이에요.”
외할머니가 이름을 틀리게 말하자 쌍둥이는 웃으면서 본인 이름을 다시 말했다.
“할머니가 틀렸구나. 미안.”
개구쟁이 천방지축인 7살 준현이와 준혁이는 눈, 코, 입 등 생김새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였다. 둘은 키와 체중, 목소리까지 똑같았다.
게다가 머리 스타일도 똑같고 입는 옷에 양말까지 똑같았으며 갖고 노는 장난감조차 둘이 똑같았다.
항상 둘이 모든 걸 똑같이 하길 원했기 때문에 간혹 두 사람을 구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둘은 가끔 쌍둥이만이 할 수 있는 장난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장난을 치고는 했다.
“할머니는 아직도 우리 강아지들이 헷갈리네.”
“할아버지도 그렇단다.”
“엄마, 아빠. 괜찮아요. 남편이랑 나도 가끔 헷갈려요.”
“너, 기차 시간 늦지 않았어? 얼른 가봐.”
“애들 과자 너무 많이 주지 마시고, 반찬 괜히 힘들게 하지 마시고 있는 거 주세요. 두 분 다 무리하지 마시고요.”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지방 출장을 가는 엄마는 친정집에 아이들을 맡기러 왔다. 남편은 일찍 출근했고, 마땅히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맡겨서 미안해. 엄마.”
“미안은 무슨. 우리 손주 보는 게 무슨 일이라고. 어차피 유 서방 저녁에 데리고 오잖아. 하루 같이 있는 거, 일도 아니야.”
“그래, 너 늦겠다. 얼른 가 봐.”
“가 볼게요. 전화할게요. 준현이, 준혁이. 할머니, 할아버지 말 잘 듣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엄마는 개구쟁이 두 아들이 부디 말썽부리지 않고 잘 있기를 바라며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