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화. 쌍둥이
“야, 준현아, 이거 이쪽으로 가야 해.”
“나도 알아.”
“우와! 준현아, 너 진짜 잘한다.”
“잘하지?”
“응. 이제 나 하면 안 돼?”
“그래. 너 해.”
쌍둥이는 조부모님 집에서 사이좋게 게임을 하며 놀고 있었다.
“우리 강아지들 배고프지 않아?”
“배고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밥때가 되도 놀기 바쁜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을까 싶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준혁이는 배고파요.”
“우리 작은 강아지 배고프구나. 우리 큰 강아지는 배 안 고파?”
“네, 별로 배 안 고파요.”
배가 고프다는 둘째 준혁이와 달리 첫째인 준현이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 말에 할머니의 표정에 걱정이 스쳤다.
아이들이 놀이에 몰두하다 보면 배가 안 고플 수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모든 게 똑같은 쌍둥이였지만, 먹는 스타일마저 같지는 않았다.
둘째인 준혁이는 평소 입이 좀 짧고 먹는 거에 크게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반면, 첫째인 준현이는 밥때가 되면 밥도 씩씩하게 잘 먹고 가리는 음식도 크게 없었다.
항상 밥 먹을 때면 알아서 먹는 첫째보다 둘째가 손이 더 많이 가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밥을 거르는 법이 없던 첫째가 밥 생각이 없다고 하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준현아, 배가 안 고프다고?”
“네.”
“간식도 안 먹어서 배고플 텐데…….”
괜히 밥맛 없을까 봐 간식을 안 줬기 때문에 배가 고파야 하는데 준현이는 전혀 배고파하지 않았다.
“정말 괜찮아?”
“네. 괜찮아요.”
“할머니, 반찬 뭐예요?”
형과 달리 아침을 대충 먹은 준혁이는 제법 배가 고팠다.
“아침에 할아버지랑 우리 강아지들 주려고 소고기 사 왔지. 그걸로 불고기 하려고.”
“불고기 좋아요. 맛있겠다.”
“맛있겠지? 할머니가 얼른 만들어 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네.”
“준현아, 준혁아. 할머니 요리할 동안 할아버지랑 책 읽을까?”
“네.”
“책 가져올게요.”
할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쌍둥이는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잠시 뒤, 할머니는 식사 준비를 끝내고 할아버지, 쌍둥이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우리 준현이, 준혁이 많이 먹어.”
식탁 위에는 불고기에 미소 된장국과 계란말이, 버섯볶음, 김치 등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음식이 가득했다.
“할머니, 불고기 너무 맛있어요.”
배가 고팠던 준혁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주는 반찬을 맛나게 먹었다.
“그렇게 맛있어?”
“네, 엄마가 해 주는 것보다 조금 더 맛있어요.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
“그래, 할머니가 엄마한테는 비밀로 할게. 많이 먹어.”
“네.”
“준현아. 왜 이렇게 못 먹어?”
맛있게 잘 먹는 준혁이와 달리 준현이는 밥을 먹는 게 시원찮았다.
“할아버지?”
“그래. 반찬이 별로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할머니가 뭐든 만들어 줄게.”
“아니요. 괜찮아요.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요.”
그 뒤, 몇 번 밥과 반찬을 먹은 준현이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화장실에 들어온 준현이는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또 그러네. 배 아파.”
옷을 입으며 혼잣말을 한 준현이는 뒤처리하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러더니 식탁을 지나 정수기가 있는 싱크대 쪽으로 걸어갔다.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말해. 할머니가 줄게.”
“따뜻한 물 마시려고요.”
“아이고, 그렇게 먹으면 뜨거워서 혀 데어. 당신이 물 좀 섞어 줘요.”
“그래, 알았어.”
정수기에 있는 뜨거운 물을 컵에 받는 준현이를 보며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준현아, 너 왜 따뜻한 물을 찾아? 혹시 배 아파?”
할머니의 말에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신 준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냥, 따뜻한 물이 마시고 싶었어요. 따뜻한 물이 몸에 좋대요.”
“거짓말!”
“야, 유준혁. 거짓말 아니거든.”
“그건, 준현이 말이 맞아. 따뜻한 물이 몸에 좋다고 하더라.”
“그것 봐. 내 말 맞지?”
준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준혁이가 다 먹은 밥그릇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할머니, 저 밥 다 먹었으니까 이제 아이스크림 먹어도 되죠?”
“밥 다 먹었는데 아이스크림 먹으려고? 배부르지 않아?”
“아니에요. 할머니. 아이스크림은 배부르지 않아요. 조금만 먹을게요.”
아직 어린아이라 그런지 준혁이는 간식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집에서는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잘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껏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데 가끔가다 먹을 수 있으니 오늘처럼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오면 간식을 먹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대신 진짜 조금만이다. 알았지?”
“네, 조금만 먹을게요. 신난다. 할아버지 초코랑, 딸기 맛으로 주세요.”
“오냐, 그래.”
“저도요!”
동생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소리에 따뜻한 물을 마시던 준현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 저도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준현이는 안 돼. 밥도 안 먹고 아이스크림 먹으면 배 아파.”
“아니에요. 할머니. 저 안 아파요. 그리고 밥도 좀 먹었어요. 제발요. 할머니!”
밥맛은 없어도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었던 준현이는 아주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했다.
“할머니, 제발요. 진짜 조금만 먹을게요.”
“할멈, 그러지 말고 준현이도 아이스크림 줍시다.”
“밥을 안 먹어서 줘도 될지 모르겠어요.”
“조금만 주자고. 준현아, 조금만 먹기다. 알았지?”
“그럼요. 할아버지.”
결국 허락을 받은 준현이는 동생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쌍둥이는 간식을 맛나게 먹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즐겁게 놀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준현이와 준혁이는 엄마의 숙제인 책 읽기를 끝내고 다시 게임에 열중했다.
“아!”
“왜?”
게임을 하던 준현이가 얼굴을 찡그리자 동생인 준혁이가 이유를 물었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게임 너 하고 있어.”
“형아, 너! 배 아프지?”
화장실에 간다는 준현이의 말에 준혁이가 따라 일어나 조용히 물었다.
“조금. 많이 아픈 건 아니니까 괜찮아.”
그렇게 준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준혁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준혁이는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조용히 불렀다.
“응, 우리 강아지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준현이가 배 아픈 거 같아요.”
“준현이가 배가 아파?”
“네, 할아버지. 아까도 화장실 자주 갔잖아요. 근데 지금도 또 갔어요. 그리고 방금 제가 물어보니까 아프다고 했어요.”
준현이와 준혁이는 쌍둥이라 그런지 서로에 대한 교감이 상당했다.
가끔은 부모님조차 못 느끼는 감정이나 아픔도 잘 느끼며 한쪽이 이상하면 그런 점을 바로 캐치했다.
“그래?”
“네. 준현이가 조금 아프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거면 진짜 아픈 거 맞거든요. 왜냐하면 저도 아플 때 끝까지 안 아픈 척하다가 정말 아프면 조금이라고 말해요.”
“그랬어? 어쩐지. 그래서 그렇게 화장실을 자주 갔구나.”
준혁이의 말에 할머니는 그제야 지금까지 준현이의 행동이 이해됐다.
밥 먹고 난 뒤부터 이상하게 준현이가 부쩍 화장실을 자주 갔었다.
평소 집에 왔을 때보다 자주 가는 거 같아서 왜 그렇게 자주 가냐고, 배 아픈 거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요. 할머니. 아픈 곳 없어요. 그게 아니라 아까 물을 많이 마셔서 오줌이 마려워서 그래요.’
그 말에 준현이는 씩씩한 표정으로 소변이 마렵다고 말했고, 할머니는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 준현이는 어젯밤부터 설사 증상이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딱 한 번만 화장실을 갔고 배도 그렇게 아프지 않았기에 아빠랑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오후부터 배가 어제보다 좀 더 아픈 느낌이 들었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 증상이 더해졌다. 그런데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약을 먹기도 싫고 병원에 가는 건 더 싫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병원 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알 것이다.
아이 중에 아무렇지 않게 병원에 가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겠나 싶겠지만, 쌍둥이는 심했다.
병원까지는 잘 가면서 막상 진료를 보려던 어찌나 고집을 피우고 버티는지 진료 한 번 보기가 쉽지 않았다.
철컥-
“하! 힘들다.”
“준현아?”
화장실에서 나오며 혼잣말하는 준현이에게 할머니가 다가왔다.
“네?”
“우리 준현이, 할머니가 비밀로 할 말이 있는데 우리 저쪽으로 가볼까?”
할머니는 손자의 손을 잡고 주방 안쪽으로 들어왔다.
“준현아, 너 지금 배 아프지?”
“네!? 아니요. 저 배 안 아픈데요.”
준현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딱 잡아뗐다. 하지만 아직 아이라 그런지 아이들 특유의 진실을 숨기는 표정이 얼굴 위로 다 드러났다.
“진짜예요. 저 배 안 아파요.”
“할머니가 우리 준현이 배 아프다고 뭐라고 하려는 것도 아니고 엄마한테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 걱정돼서 그래.”
“엄마한테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럼.”
준현이는 혹시라도 할머니가 엄마한테 말할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준현아? 우리 강아지 약 먹는 거 싫어하지?”
“네, 쓰고 맛도 없고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병원 가는 건 더 싫지?”
“네, 병원은 더 싫어요. 진짜 싫어요.”
병원 이야기가 나오자 즉각적인 반응이 나왔다.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하는 표정이 어지간히 가기 싫은 거 같았다.
“지금 준현이가 계속 화장실 들어갔다가 나오고 또 나오고 다시 들어가고 반복하고 있잖아. 그게 배가 안 좋아서 설사가 나오는 거라서 그래.”
“…….”
“그런데 여기서 더 설사하면 몸이 힘들고 더 아플 수가 있어. 그래서 할머니 생각에는 일단 약을 한번 먹어 보면 어떨까 싶은데.”
“약이요……?”
“응. 약을 먹고 배가 괜찮으면 병원에 안 가도 되지만, 약 먹기 싫다고 계속 버티고 있다가는 병원 가야 하는데? 준현이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게 더 나은 거 같아?”
할머니의 말을 들은 준현이는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솔직히 둘 다 싫었다. 약이나 병원이나 다 싫었지만, 그나마 덜 싫은 걸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약이었다.
병원은 진짜로, 진짜로 가기 싫었다.
지난달에도 엄마한테 속아서 치과에 가서 눈물, 콧물을 뺏던 기억이 있었기에 더 이상 병원에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할머니. 약이랑 병원 중에 꼭 하나를 골라야 해요?”
“응. 안타깝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게 두 개밖에 없어.”
“그럼, 약 먹을게요.”
진지하게 고민한 준현이는 결국 약을 먹는 걸 선택했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배 아플 때 먹는 약을 손주에게 먹이며 증상이 가라앉길 바랐다.
준현이도 더 이상 화장실을 가지 않기를 바라며 쓴 약을 꿀떡 삼켰다.